<16회> "재개발구역 동네고양이 60마리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경덕
2024-05-01 23:27
245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주위로 모여든 고양이들 틈에 초코가 있었다. 초코는 밥그릇 쪽으로 오는 카레에게 헤드번팅Head Bunting(애정과 관심의 표현)을 하며 자리를 비켜줬다. 구내염을 앓고 있는 카레가 식사를 하는 동안, 초코는 다친 다리를 깔고 앉아 기다렸다. 나는 초코의 표정과 행동, 초코와 친구들이 주고 받는 '의례'를 주시했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라는 책에는 다양한 의례로 상호작용하는 동물들이 나온다. 이가 빠진 늙은 코끼리를 위해 음식을 대신 씹어주는 젊은 코끼리, 죽은 얼룩말 곁을 떠나지 않는 얼룩말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물들. 30년 넘게 코끼리를 연구한 케이틀린 오코넬은 죽음과 관련된 심리적·사회적 문제를 연구하는 전통적 "죽음학"을 비인간 동물의 삶으로 확장한다. "지금 이 학문의 범위는 몇몇 벌레, 새, 특히 원숭이와 유인원 등 사회적인 포유동물을 포함해 점점 넓혀가고 있다. 사회적 동물에 관한 연구들은 가까운 사이였던 동물이 죽었을 때 슬퍼하면서 사체를 옮기고, 옆에서 돌보고, 땅에 묻고, 애도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케이틀린 오코넬,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현대지성, 227쪽
 
 
 
 
또 다른 장소에서 동물의 죽음을 목격한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도살장 앞에서 돼지에게 물을 주고, 돼지를 향해 절을 하는 비질 활동도 의례라고 할 수 있을까. 활동가들과 비질 선언문을 읽는 낭독 행위("비질(vigil)은 도살장 앞을 찾아가 종차별주의 사회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함께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입니다.", "죽음 직전의 동물들에게 물과 음식을 건네며 그들과 짧은 순간이나마 돌봄 관계로 뒤얽힙니다.")는 어떤 의례일까. 도살장 안으로 들어가는 돼지들(뒤엉킨 몸들, 울부 짖음, 펜스를 코로 들어올리는 행동, 몸에 난 상처들, 빨갛게 충혈된 눈) 앞에서 우리의 의례는 어떤 의미였을까. 비질 활동을 함께 했던 봉봉오리님은 자신이 돌보던 고양이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교통사고 사체 사진을 처음 보았다. 그것이 내가 돌보던 고양이라 충격적이었던 것이지 피부를 비집고 나온 살점은 사실 너무나 익숙한 형태였다. 그 형태는 비질을 하러 간 도살장 바로 옆 축산물 도매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며칠간 나는 그 살점이 포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마침내 포포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장소로 걸어갔다. 뭘 해야 할지 하다 도살장 앞에서처럼 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포포에겐 이 도로가 드넓은 평지로 보였을까?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는데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다가 도로를 바라보며 산책길 구석에서 절을 했다. 우산을 안 써도 될 약한 비가 내렸다. 나는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구에 살 자격』, 94쪽
 
 
 
동물의 치료
 
예동동님의 인스타 계정에 마침내 초코를 포획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예동동입니다. 지난 1월 21일 한파 시작 첫날부터 초코가 안보였습니다. 거의 2주만에 초코를 만났지만 왼쪽 뒷다리가 덜렁거리며 절뚝거리는 상태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후 초코를 다시 만난 건 일주일 후였습니다. 치료를 위해 포획 시도를 계속 했지만, 실패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8일 초코를 포획하여 봉봉오리님과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초코의 진단명은 고관절 탈구와 대퇴골 골절입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교통사고에 의한 부상 가능성을 언급하셨습니다. - 예동동님 인스타그램
 
바로 수술을 진행했다. 골절된 부위에서 섬유화된 조직을 떼어내고 손상된 대퇴골두를 절단했다. 골격을 유지하기 위해 단단한 plate도 이식했다. 4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가 나왔다. 퇴원하기 전까지 초코를 입양하거나 임시 보호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아야 했다. 예동동님은 병원비 모금과 입양과 관련된 공지글에서 초코를 이렇게 소개했다.
 
초코/남아/7살 추정
- 간식 준비하는 제 손 앞까지 다가오면서 정작 닿으면 한 발짝 뒤로 가는 밀당 고수
- 구내염인 카레랑 붙어다니면서 챙겨주는 스윗남
- 가방에 있는 캣닢 냄새에 이끌려 머리 쏙 넣는 백치미
 
초코는 주변 고양이들을 든든하게 챙기는 고양이입니다. 그런 초코가 이번 사고로 친구들과 인사도 없이 떨어지게 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깝습니다. (...) 재개발 고양이들을 지키고 돌보며, 악성 민원에도 긍정적으로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초코의 부상으로 정신이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 퇴원 후 살던 곳인 재개발지역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 초코의 평생가족이나 임보자가 되실 분은 연락 주세요. 기다립니다.
 
초코가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다른 고양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병원으로 갑자기 잡혀와 큰 수술을 마친 초코는 어떤 기분일까. 고양이를 포획하고 치료할 때에는 어떤 의례가 필요할까. 병문안을 가서는 어떤 소리와 몸짓으로 위로해야 할까. 예동동님은 병실에 앉아 있는 초코 앞에서 이런 가상의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초코야 식빵(자세) 말고 조금 움직여 볼까?
눈나(누나)야말로 운동 좀 해.
어.. 음.. 같이 하자!
그럼 나 좀 풀어죠.
 
 
 
 
 
퇴원 전날에 초코의 소식이 올라왔다. 
 
오늘 초코는 진정 후에 피부 스태프럴 제거하고 방사선 재촬영했습니다. 방사선 촬영시에 수요일보다 대변의 경도는 조금 물러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요일부터 장에 좋은 사료를 먹이고부터 개선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목요일에는 대변 한 덩이 보았는데, 아직도 대변이 제법 있어 관장액 조금 주입하여 주었습니다. 피부는 잘 아물었고, 조금 큰 딱지가 있는데 곧 떨어지고 잘 아물 것으로 보입니다. 소독 후 연고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 2주간 유지되는 항생제 주사 한 번 더 맞추었고, 귀가 지저분하여 귀 진드기는 안 보이나 귀 진드기가 의심되는 상태라 진드기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애드보킷 발라주었습니다. - 예동동님 인스타그램
 
병원비는 76명의 후원자 덕분에 무사히 모금되었다. 초코는 한 달 동안 임보처(임시보호처)에서 지내다가 재개발 구역으로 돌아갔다. 입양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새로운 임보처를 찾지는 않았다. 움직임이 제한되는 실내 생활이 오히려 회복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코가 친구들과 재회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초코와 그의 완전체 친구들 만났어요!
저를 향한 초코의 눈빛은 불신(?)...ㅠ
신뢰-100에서 다시 찬찬히 올려야져ㅎㅎ
 
예동동님은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고양이들 소식을 전하며 6년 째 돌봄을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 초코와 이웃으로 지내는 오잉이가 관통상을 입었을 때에도 예동동님은 치료 과정을 도맡았다. 예동동님의 인스타그램 소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재개발구역 동네고양이 60마리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접촉지대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 돌봄과 새벽이생추어리의 돼지 돌봄은, 각각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인간과 동물이 접촉지대(contact zone)*에서 돌봄 관계로 뒤얽힌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접촉은 친밀한 만남의 지대이면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불평등한 힘이 소용돌이치고 언제나 예측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 복잡함으로 가득 찬 장소"(해러웨이, 2022: 271)이다. 돌봄을 수행하는 돌보미들, 보듬이들은 친밀한 접촉과 의례를 반복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을 맞닥뜨린다..
 
(* 개와의 친밀한 접촉으로 『종과 종이 만날 때』를 쓴 해러웨이는 '접촉지대'라는 말을 다양한 맥락에서 길어올린다. "상호 안정된 소통이 필요한 서로 다른 원어민들 사이에서 발달한 즉석 언어"를 뜻하는 접촉어contact language, 범-생물종 언어학을 주제로 한 과학 소설,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들이 함께 사는 장소를 종의 배치로 보는 민속지, 식민지배의 역사를 통과하면서도 원주민과 여러 동물들이 상호작용하는 아마존 숲은 모두 행위자들이 마주치는 접촉지대다.)
 
 
 
동물과 여성
 
재개발 구역의 골목을 걷다가 담장 너머로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그림에는 엄마 돼지와 젖을 먹는 아기 돼지들이 있었다. 새벽이와 잔디가 떠올라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아기를 돌보는 여성 돼지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면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엄마 돼지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림을 본 활동가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오 멧돼지 그림... 탐나네요ㅋㅋ 오래된 그림 같아 보이는데", "동물해방의 아우라가 느껴져.", "진짜...아기들에게 젖을 주면서 정면을 응시하는 엄마돼지.. 포스 있다." 봉봉오리님은 새벽이가 구조될 당시 감금틀에 갇혀 있던 새벽이 엄마를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성 돼지들이 그러하듯 강제적인 인공수정으로 인한 임신, 출산을 반복하다 3살에서 5살 사이, '생산 능력'이 떨어져 도살장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얼마 전, 공장에서 구조된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가 풀밭에서 뛰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 갇혀 출산만 하던 그녀가 풀과 흙을 밟고 자신의 아기와 폴짝폴짝 뛰는 모습. 그 릴스를 공유하자 생추어리에서 함께 돌봄 하는 활동가가 '여성 돼지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본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실 우린 새벽이도 그렇게 신나서 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느꼈을 '여성으로서'의 해방감. 그녀가 달리자, 그녀의 가슴도 함께 흔들렸다. 그 큰 가슴이, 그녀가 얼마나 강제된 출산을 반복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구에 살 자격』, 135쪽
 
 
 
 
'여성으로서'의 해방은 '여성으로서'의 돌봄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길고양이와 '캣맘'의 공생적 돌봄을 연구한 권수빈은 「교차하는 존재로서 동물-여성과 난잡한 돌봄」에서 '고양이 엄마'를 뜻하는 '캣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캣맘이라는 단어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행위가 가정, 재생산, 모성애와 같은 언어들과 엮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캣맘의 돌봄 행위를 단지 여성성으로만 연결하는 것은 그들의 주체성과 행위성을 무시하거나 삭제한다(이진, 2022:22). 동물권행동 카라는 길고양이와 캣맘 간 관계가 자녀와 부모 관계로만 정의되지 않는다고 판단, 케어테이커(caretaker)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캣맘이 더욱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며 실제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스스로를 캣맘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권수빈, 2023, "교차하는 존재로서 동물-여성과 난잡한 돌봄", 『여성학연구』33(2):41-85)
 
봉봉오리님은 자기를 '캣맘'이라고 부를 때 이런 기분이었다고 썼다.
 
처음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하고 친구가 나에게 '이제 캣맘이네!'라고 말했을 때 어딘지 멋쩍기도 하고 어색했다. 캣맘을 대하는 사회 전반의 혐오적인 시선, 그리고 돌보는 생명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확 와닿았던 것 같다. 『지구에 살 자격』, 90쪽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권나영은 택시 기사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픈 고양이 구조해서 고양이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왔어요."
"아 병원에 데려다줬어? 그러면"
"치료해서 입양 보내주려고요."
"아이고야 그거 돈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돈 있으면 아줌마나 좀 맛있는 거 사먹고 보약도 사먹고 그러지. 고양이는 알아서 다 먹고 살아."
"아니요, 다 먹고 산다고 해도 사람들이 못됐잖아요. 동물들이 자기 보고 뭐라고 그랬게요. 지금도 밖에 쓰레기 버리는 건 다 사람들이 버리잖아요. 더럽게 옳게 그것도 안 하고 버려 놓고는 동물 보고 뭐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리고 걔들이요. 먹을 게 있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사료를 주면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걔네도 먹을 게 없으니까 쓰레기 뜯고 하는 거지."(56:19~57:19)
 
 
 
 
권나영은 뇌병변 장애와 신장 질환이 있는 중년 여성이다. 권수빈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에서 '길에서 사는 작은 동물들과 늙고 장애를 가졌으며 여성인 존재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캣맘의 길고양이 돌봄을 '고통을 나누고, 타자의 슬픔에 연루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영화 개봉 후의 반응은 참담했다. 평점 테러와 혐오 댓글이 이어졌다. 영화 관람평에는 "생태계교란종 길고양이는 싹다 살처분해야 한다. 설취류랑 새들이 고양이에게 싹다 잡아먹히고 있다."(22.12.06 09:08), "캣맘=비건=페미니스트"(21.11.19 06:34), "밥주지 말라면 주지마 이 유해동물같은 년들아"(21.11.15 13:57)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현실에서는 "그런 돈 있으면 아줌마나 좀 맛있는 거 사먹으라"는 훈계가 따랐다.
 
지독한 혐오 반응에도 불구하고 취약함을 공유하는 존재들은 서로를 보살피는 돌봄 관계를 형성한다. 권나영은 자신의 길고양이 돌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애 몸으로 50년을 살면서. 어릴 적부터 다리가 장애라서.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해도 창피해서. 다니질 못하고. 그래서 아픈 추억만 있고 기쁜 일은 없었든 거 같네요. 말을 잘 안하든. 제가 불쌍하고 이쁜 길애기들로 인해 많은 캣맘분들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열고. 얘기를. 시작하니. 너무너무 행복하고 기쁨니다."(33.28)
 
권수빈은 권나영의 길고양이 돌봄을 이렇게 정의한다. "권나영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거나 집을 지어주고 구조하거나 임시보호하고 가족을 찾는 행위는 길고양이를 정상가족화된 인간사회에 넣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면서 또 넘어서는 반려종의 관계 맺기라 할 수 있다." 길고양이 돌봄은 가족 체계 바깥에서, 또 가족을 포함하는 반려종의 접촉지대에서, 동물과 여성, 길고양이와 캣맘의 공생적 돌봄을 실현한다.
 
 
 
철거 예정입니다
 
2027년 07월 예정. 3년 후 완공 예정이라면 이제 철거가 본격 시작이다. 청약과 분양 정보도 업로드 되고 있다. 그동안 더디던 공사가 올해 봄에 빠르게 시작 될 것이 예상 된다. - 예동동님 인스타그램
 
예동동님이 초코와 이웃으로 지내는 고양이들을 소개해줬다. 모짜, 뽀또, 예감, 오잉, 감자. 공장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 고양이들이었다. 모두 치즈색 무늬여서 치즈 군단이라고 불렸다. 고양이들이 은신처로 사용하는 공장 지하실 문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고양이들이 지하에 있을 때 철거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동동님과 함께 적당한 크기의 나무 팔레트를 찾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치즈 고양이들은 그런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은 3편(마지막회)에서 이어집니다.
 
 

 
 
** 지난번 글에 소개해드렸던 동동이가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고 합니다. 아지트로 지내던 마당에서 잠든 모습을 예동동님이 발견했다고 해요. 엄마의 마지막을 본 댕댕이와 콩콩이가 놀란 표정으로 한참을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동동님과 봉봉오리님이 동동이 보내는 길 함께해주셨어요. 동동이가 그곳에서 평안하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봉봉오리, 『지구에 살 자격』 구매 링크 
 
예동동님의 재개발지역 고양이 돌봄 계정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댓글 9
  • 2024-05-02 09:21

    읽어나가다가 어, 초코, 내가 데려올까....하다가....아이고....주제파악좀 하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개나 고양이 키우는 거 진짜 관심 없었는데
    계속 경덕님 글 같은 것을 읽고, 찾아보고 그러다보니 (주변엔 정말 "나만 없어 고양이"더군요.......ㅋㅋㅋㅋㅋㅋㅋ) 이젠 맘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13층이나 되는 저희 집 복도에 고양이가 한마리 돌아다녔어요.
    길낭이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온 모양이에요.
    어떤 집 문에 붙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엄청 신경쓰이더라구요.

    10분에 한번씩 나가봤는데, 어느새 또 없어졌어요.
    엘리베이터 타고 나간건지.

    요 며칠 그 녀석이 자꾸 생각납니다.

    KakaoTalk_20240429_.jpg

    • 2024-05-02 16:34

      아이고야 구석에서 돌아보는 눈빛이...
      길고양이이거나 집 밖으로 나왔다가 길 잃은 고양이일 텐데 (어디서든 무사히 잘 지내길)

  • 2024-05-02 20:26

    저희집 일생이와 멸치는 제가 근무하는 현장에서 업어온 친구들이예요. 어미가 버리고 갔는지 며칠째 현장 구석에서 울고 있어서 제가 모셔와 여지껏 함께 살고 있어요.
    일생이는 조금만 늦었음 형제들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널뻔해서 구사일생이라 지었어요.

    저는 차에 치인 고양이 사체를 만난적이 있어요.
    아직도 몸이 따뜻했어요.
    사체가 또 차에 치여 짓눌리지 않게 집까지 옷에 싸와 묻어둔적이 있어요. 길에 사는 고양이는 제명에 죽는경우가 거의 없는거 같아요.

    안따까운 죽음들이 줄어들도록 우린 어떠한 활동을 해야할까요? ㅠㅠ

  • 2024-05-03 00:06

    저희도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있어요. 키우는 건 아니고 저희보다 더 저희 집을 잘 살고 있는 산 속 고양이들입니다.
    녀석들이 신나게 뛰댕겨야 마당에 쥐도 뱀도 적어요. 그래서 잘보이려고 아주 노력합니다. 맛있는 거 나눠먹고 그래요.
    어디에 태어나 사느냐가 중요하군요. 인간이나 고양이나 말이죠...

  • 2024-05-03 09:56

    저희집에도 2대째 길냥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락가락 맘내키는대로 왔다갔다하지만요 ㅋ
    안보이면 신경쓰이고 걱정도 되고 하는데 동네를 돌아다니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ㅎ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 2024-05-03 11:11

    이사온 아파트단지에 길고양이들이 많아요.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넌 언제 이사 왔냐?" 물어보는 듯한 원주민의 시선입니다. 우리 동네엔 산이 있어선지, 고양이들에게서 야생의 느낌이 있고, 사람을 피하지도 반기지도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해요. 시간이 가면 이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인지....궁금해하고 있습니다.

  • 2024-05-03 13:35

    ** 지난번 글에 소개해드렸던 동동이가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고 합니다. 아지트로 지내던 마당에서 잠든 모습을 예동동님이 발견했다고 해요. 엄마의 마지막을 본 댕댕이와 콩콩이가 놀란 표정으로 한참을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동동님과 봉봉오리님이 동동이 보내는 길 함께해주셨어요. 동동이가 그곳에서 평안하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KakaoTalk_20240503_133315517.jpg

  • 2024-05-03 22:40

    앞으로 예동동님의 인스타에 종종 들러서 고양이들의 안부를 살피게 될 것 같아요.

  • 2024-05-04 08:28

    샘 글을 읽으니 한 때 길고양이들을 살피던 날이 문득 떠오르네요 퇴근이 늦어 자정 넘어 집에 들어가는 길에 길고양이들을 만나는 게 낙이었고 매년 사는 아이들과 지구별을 떠난 아이들을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이 들었었는데 말이죵 동동이도 그 친구들과 만나 새로운 별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남어진
2024.05.10 | 조회 168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54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302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7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