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명상의 신비

요요
2024-04-14 09:04
229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기본자세는 가부좌이지만 몸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자세면 된다.

 

길게 숨을 들이쉴 때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숨을 내쉴 때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숨을 들이쉴 때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숨을 내쉴 때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호흡에 대한 관찰과 몸에 대한 관찰의 도입부다. 호흡 관찰은 명상수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호흡은 생명을 마치는 순간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벗이다. 호흡은 언제 어디서나 관찰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또 대개의 경우 호흡은 우리가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에 좋다. 호흡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흥분되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몸과 마음이 안정되면 호흡도 고요해진다.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거친 호흡이 가라앉고 점점 미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흡은 매번 다르다. 단 한 번도 같은 호흡은 없다. 그것을 직접 알고 보면 기쁨이 일어난다.

 

 

 

몸에 대한 관찰

 

온몸을 체험하면서 숨을 들이쉬겠다고 훈련하고, 온몸을 체험하면서 숨을 내쉬겠다고 훈련한다. 몸의 작용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쉬겠다고 훈련하고, 몸의 작용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쉬겠다고 훈련한다.

 

명상스승들에 따라 몸을 관찰하는 구체적인 지도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호흡을 분명히 관찰할 수 있는 곳, 코끝이나 가슴, 배 등에 주의를 보낸다. 그렇게 들숨 날숨을 지켜보는 것을 전경으로 삼으면서 몸에서 어떤 감각이 일어날 때 몸을 관찰하라고 가르치는 스승이 있다. 몸에서 통증이나 가려움, 열감이나 떨림 등이 일어나거나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에 주의를 보내고, 분명히 알아차린 뒤에는 몸은 배경으로 두고 다시 들숨 날숨의 관찰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이와 좀 다르게 호흡을 배경으로 하고 몸을 관찰하는 것을 전경에 두라고 가르치는 스승도 있다. 머리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스캔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이다. 의식을 몸의 각 부분으로 보내면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다. 좀 힘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차림의 힘이 커지면서 평소 알지 못했던 신체를 경험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관찰하든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고정시키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명상을 위빠사나라고 한다. 위빠사나 명상은 관찰하는 힘, 통찰력을 기르는 수행이다.

 

관찰을 방해하는 요소 중 그 첫 번째가 잡음처럼 일어나는 생각들이다. 명상할 때 일어나는 생각은 우리가 의식을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어떤 주제에 마음을 기울일 때의 생각과는 다르다. 생각하려 하지 않는데 생각이 끝없이 떠오른다. 그래서 망상은 노이즈다. 망상은 대부분 생각의 찌꺼기, 감정의 찌꺼기로 구성된다. 마치 원숭이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쉼 없이 옮겨다니는 것처럼 맥락 없이 이어진다. 이런 생각들은 억지로 멈추려 한다고 멈추어지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다. 그것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알고 보면 사라진다. 명상할 때의 관건은 몸과 마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 안에는 호흡수행, 사념처수행, 몸에 대한 마음챙김 등 수행에 대한 경전이 들어 있다.

 

 

희열과 행복

 

희열을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쉬겠다고 훈련하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숨을 내쉬겠다고 훈련한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쉬겠다고 훈련하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숨을 내쉬겠다고 훈련한다.

 

망상이 사라지고 고요해져서 집중과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희열과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집중과 알아차림이 곧 희열과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희열과 행복을 경험할 때도 호흡을 관찰할 때처럼 일어난 현상 그대로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희열은 ‘좋다, 싫다’ 혹은 ‘기쁨, 슬픔’처럼 대립항을 갖는 감정이나 대상을 갖는 느낌이 아니다. 집중과 알아차림이 고양되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청정한 즐거움이고,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대상 없는 기쁨이다.

 

앉아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아직 초보 수행자에 불과한 나에게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 참 신비롭다. 알아차림을 통해 집중이 생기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또 알아차림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꿰뚫어 아는 통찰의 힘이 생겨난다. 명상이란 집중을 통해서 고요함을, 관찰을 통해서 통찰과 지혜를 얻는 수행이다. 집중과 통찰은 명상을 이끌고 가는 두 날개이면서, 또 우리를 고요와 평화로 안내하는 명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명상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명상의 맛이다. 직접 경험하는 것 말고는 명상하는 기쁨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명상의 또 다른 신비다.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댓글 8
  • 2024-04-14 09:20

    <바가와드기타 강의> 읽을 때 '희열' 이란 단어가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샘의 명상 글에서 힌트를 얻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 2024-04-15 08:16

    명상의 맛을 느껴보고 싶어지네요오 ~

  • 2024-04-15 08:46

    음... 저도....점점.....가부좌 명상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상동아리라도 들어가볼까, 싶은 마음도.
    아, 큰일났네...ㅋㅋㅋㅋ

  • 2024-04-15 11:55

    명상이 아니어도 좋은 수행법은 많을 것 같아요. 수행은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이니 무엇이라도 수행 삼아 '한다' 가 그 핵심이겠지요.
    명상의 맛은 오래 묵은 장맛과 같다고 하면 다들 웃겠지요?

  • 2024-04-15 12:30

    집중에서 오는 고요함이 참 좋다는걸 알게해주신 요요샘 감사합니다~~^^

  • 2024-04-15 13:18

    명상 방석에 앉는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앉는 생각만 하면 몸이 근질근질해져요.. 뭔가 요즘 저의 마음의 상태가 안정되지 않은 걸까요? 언젠가 저도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요!

  • 2024-04-17 09:17

    생각과 감정의 찌꺼기에 허덕이고있어서 ㅜㅜㅜ
    저도 명상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2024-05-02 16:09

    호흡이 매번 다르다는 말 다시금 새깁니다. 들숨과 날숨, 호흡의 출렁임을 알아차리기!
    (요즘은 마감이 잦아서 종종 호흡이 가쁘지만... 가쁘면 가쁘구나 알아차리기...)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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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00:32 | 조회 8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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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6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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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09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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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06 | 조회 14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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