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세미나〕『언어와 상징권력』4회차 후기- 정치에서 '말하기'는 '행하기'다

라겸
2024-04-24 23:22
46

이번 주 분량을 읽다가 부르디외와 ‘마르크스’의 관계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거기서 자신은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었다는 자신감(?) 넘치는 부르디외의 인터뷰를 만났다.

 

이에 정군샘은 물(?) 만난 고기처럼, 볼세비키, 레닌, 그리고 막스적이지 않은 방법론으로 사회를 분석코자 하는 부르디외 탄생 비화(?)에서부터, 막스주의적 페미니즘, 막스주의적 생태주의 탄생까지, 공산당과 사회당이 어떻게 다른지 깨알 토막상식, 나치 탄생으로 이어졌던 독일의 정당 이야기와 그람시,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이야기까지(이건 3의 1에 불과, 3분의 2는 야무지게 무의식 속으로) 알차게 ‘종횡무진’ 사회 맥락사 강의를 해주셨다. 정말 둘이 듣기에 아깝다고 할 수밖에... (재미있는 사회학 세미나에 오셔요들^^)

 

이번 주는 드디어 부르디외가 ‘기존’ 상징연구의 전반적 상태를 검토/종합하며 자신의 ‘상징권력’ 개념을 보여준다. 그런데 카시러, 파놉스키, 훔볼트, 사피어, 워프, 뒤르켐, 헤겔, 소쉬르, 모스, 레비스트로스, 마르크스, 베버, 그리고 칸트(신칸트주의)까지 연루되는 이 거대한 ‘종합적 개념(칸트의 ’종합‘을 패러디한 것이라는)’의 초반부는 좀, 아니 많이 어찔했다.

 

한마디로, 상징권력은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사실상 자신들이 이런 권력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권력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모 속에서만 진행되는 일종의 주술적 권력이다. 물리적/강제적 영향력과 대등한 것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마술적인 힘이자, ‘말’만이 아닌 ‘믿음과 신념’의 생산 구조와 관련되는 것, 하여 서로 다른 형식의 권력과 자본들을 상징 자본으로 탈바꿈시키는 ‘권력’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구조화되어 있기에 구조화하는 지배 도구이며, 전문가들의 생산독점 투쟁 속에서 그 투쟁을 위한 이데올로기 체계이기도 한 ‘상징권력’은 ‘보통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형식, 즉 세력관계가 의미관계라는 오해 아래서 기성 질서를 재생산하는데 이바지 한다. 상징권력은 은폐와 변형이라는 완곡화 작업의 ‘지배 법칙’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징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정치 장'을 분석하는 2장은 부르디외만의 치밀한 분석과 논리적 설명 때문에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지만, 선거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평소에 가끔씩 정치가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기에 재미있었다.

 

부르디외는 먼저 정치적 의향, 즉 정치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실은 정치적 게임이 제공하는 특정한 상황(습속/제도) 때문이라 단언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체스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체스를 하려는 의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즉 우리는 정치 게임이 제공하는 행위와 표현 기술 속에서 정치와 의도적인 만남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가 가지는 극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데, 이렇게 정치의 일종의 ‘극화된’ 성격은 정치 장이 왜 재현의 권력, 시위의 권력이 행사되는 특권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하여 왜 사회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하는 정치란 것이 언제나 최대다수의 동원이라는, 사실상 권력 획득의 논리 아래 종속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부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웠다.

 

부르디외는 베버를 재해석하며, ‘(정치인은) 정치를 위해 살아간다는 조건으로, 정치로 먹고 살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우리의 정치 전문인들은 ‘정치적 하비투스’를 전문 양성 기관에서 ‘훈련’받고, 복종과 배신의 줄타기를 하는 저널리스트와 ‘공모’하며, 지지자들의 위치와 자기들의 사회적 위치가 ‘일치할수록’ 지지자의 이익에 정확히 봉사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부르디외는 강조한다. 하여 정치적인 문화가 최대다수에게 접근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복잡해서라기보다는 대립과 구별의 게임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 정치 장의 관계가 ‘쓸데없이 의도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흔히 반의회적 극우 운동과 연결되기도 하는 ‘정치 거부 행위(예를 들어 희극배우의 대통령 출마에 표를 던져 주는 것)’가 정치 게임의 토대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동적인 판깨기’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란 것이 실은 서로의 위치(합리&비합리) 만을 수정하며 그 대립 구도를 영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하여 정치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책임감 있어 보이게(?) 호소하는 ‘말하는 행위’라는 점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막연하게 가졌던 믿음과 의심 그 어느 언저리를 정확하게 관통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웠다.

 

하여 부르디외가 정치 장에서의 상징권력을 이야기하며 강조하고자 하는 진실은, “관념과 이상을 위한 투쟁이자 권력을 위한 투쟁, 그리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특권을 위한 투쟁으로서 정치투쟁이 갖는 양면성은 기성질서의 전복을 목적으로 정비된 모든 정치적 사업을 괴롭히는 모순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상'과 '권력'과 '특권'을 향한 정치적 욕망들은 ‘표현’하고 ‘재현’하고 ‘대표’해야 하는 그들 정치적 본연의 기능을, 기계적인 논리를 불러일으키는 ‘동원’의 기능 속으로 기어이 평가절하시켜버리고야 만다는 것.

 

보통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말을 반쯤은 믿고 반쯤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부르디외를 경유하며 다시 생각해보자면, 이는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듯 하다. ‘위로부터의 혁명’/ ‘정치적 기구를 전제하면서 또 생산하는’ 이러한 제도적/사회적 기획 아래서는 정치/정당이 해내야 할 유기적인 지식인의 기능과 계급의 산파 역할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르디외가 제시하는 이러한 정치의 비판적 한계선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들의 제도화된 한계선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댓글 2
  • 2024-04-25 19:26

    부르디외도 부르디외였지만, 정군샘의 '종횡무진 혁명사'가 더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ㅎㅎ
    맑스주의를 벗어나고자했던 여러 철학자나 정치가들의 문제의식을 계속 상기시키며 공부해야한다고 느껴지네요~

  • 2024-04-29 23:00

    2-3주째, 그 시절(?)에 나온 철학 텍스트들에 비해서, 확실히 '사회학자'로서 부르디외는 '맑스주의'를 훨씬 더 많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대안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 해방이 결국엔 다시 봉쇄로 이어진다는 점을 통찰한 점에서 (훨씬 더 구조주의적이라는 점을 빼면) 들뢰즈와 매우 잘 붙는다는 것도 느껴지고요.
    확실히 '현재'로부터 가까운 시기에 있어서 그런지 읽는 재미, 적용해보는 재미가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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