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8주차 후기 - 군주론

덕영
2024-05-09 01:31
82

비가 내려 쌀쌀해 얼마 못 입을 줄 알았던 봄 점퍼를 입고 문탁 앞에 도착하였다. 

벌써 선생님들이 와계셨다. 

경호샘의 뒷모습과 정군샘의 머리가 조금 보인다.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문탁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다.

오늘도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1교시에는 정군샘의 강의가 있었다.

나는 당일 정군샘이 수업을 하시는 줄 몰라서 사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수업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크흡T_T  수업의 내용은 서양철학역사 세미나가 종료된 뒤 새로 시작할 근대성 세미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저번주 세미나에서 보았던 자연과학의 발흥과 관련된 16~17세기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는 세미나가 되겠다. 정군샘께서는 모던에서는 주체와 실체가 주이고, 포스트모던에서는 주체와 실체에 대한 반성이 주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할 시기에 생겨난 인쇄술 등의 기술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얘기해주셨는데, 마치 세미나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남은 서양철학사 세미나를 현대까지 잘 훑어보고 근대성과 만나야겠다~!

 

2교시에는 제 8장 르네상스와 레알폴리틱 세미나를 하였다.

그 내용 중 이 시대의 ‘개인’, 특히 마키아벨리의 이기적 개인이 무엇을 말하는 지에 대한 물음 있었기에 마키아벨리에 대해 더 알아보는 후기를 쓰게 되었다.

(글자 많음 주의....!)

 

- 마키아벨리 소개

마키아벨리(1469~1527)는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이다. 아버지가 변호사로, 대 귀족은 아니나 토스카나 귀족 가문의 먼 후손으로 피렌체에서도 어느 정도 비중이 있는 집안 출신이다. 피렌체 대학에 진학하여 인문학을 갈고 닦았다. 서른 살이 되지 않은 나이부터 약 14년 동안 피렌체의 고위공직자로 활동하였다. 그 중 10년간은 여러 곳에 대사로 다니며 외교에 주력했는데, 피사와의 전쟁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얻으려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루이 12세와 그의 신하들에게 비웃음만 샀다. 로마에 갔을 때는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키아벨리가 그에게서 이탈리아 통일을 이뤄낼 영웅의 모습을 보았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반면 프랑스에서 받은 냉대와 그 나라의 무시할 수 없는 힘은, 이탈리아도 빨리 하나의 정부 아래 힘을 합쳐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

 

- 마키아벨리 시대적 상황

1. 이탈리아의 중세 (11세기~13세기 말) / 교황권 약화, 교역로 확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주인 없는 땅이 된 이탈리아 반도는 동고트족, 롬바르드족, 프랑크 왕국 등의 지배를 거쳐 962년, 신성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들어간다. 11세기 이후부터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지방 영주가 통치하는 도시 국가들이 출현하는데, 이처럼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부터 르네상스 시작 전까지 교황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던 시기를 중세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발생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당시 이슬람의 세력 하에 있던 예루살렘을 얻기 위해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이어진 결과, 교황의 권력은 약화되고 로마는 황폐화되었으며 동로마 제국은 내분이 일어나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이 전쟁으로 이슬람의 미술 양식이 서유럽에 전해지는 등 다양한 문화의 전파와 함께 교역로가 확대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합리적인 의식이 성장하여 인간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2. 유럽의 봉건제와 농촌 경제의 위기 (14세기~15세기 말) / 기근과 흑사병, 자급자족에서 상업으로.

  중세까지의 주요 문명사회를 구축하는 정치적 근간은 봉건제도이다. 왕의 입김이 닿기 힘든 지방은 영주가 다스렸다. 봉건사회는 장원(유럽의 중세기에 귀족이나 사원에 딸린 넓은 토지. 봉건 제도에서의 토지 소유의 한 형태)으로 운영되었다. 영주는 토지를 소유하고, 영지에 귀속된 농노의 경작을 통해 자급자족의 경제 단위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14세기부터 위기가 닥친다. 첫 번째는 기근이다. 14세기 중세에서는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이 잦았다. 그리고 흑사병(1348~1350)이 찾아온다. 그래서 인구와 농업 생산물이 대폭 감소한다. 그런데 영주들은 영지를 확장하고 농노에게 더 많은 공물을 요구함으로써 수입을 늘리려고 했다.

  그 후 15세기 말에는 인클로저(enclosure)가 나타난다. 인클로저는 중세 유럽의 공동이용이 인정되었던 토지에 울타리나 담을 둘러쳐서 사유지임을 명시하던 일을 말한다. 이것에는 제 1,2차가 있는데 이때가 제 1차 인클로저이다. 15세기 말∼17세기 중엽에 일어난 제 1차 인클로저는 두 가지 형태를 보였다.

  하나는 농민들이 공동체적 규제에서 해방되어 개인주의적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 분산된 보유지를 상호 합의에 의해 교환하여 규모가 큰 농지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주가 양을 방목하는 목양지(牧羊地)로 이용하기 위해 농민의 이해를 무시하고 폭력으로써 경지나 공동지에 울타리를 친 것이다.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모직물 공업에 필요한 양모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농경지를 대단위 목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큰 사회 문제를 일으켜  T. 모어의 저서《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먹는다.”고 하는 표현으로 인용되었다. 결국 삶의 터전을 잃은 농부들이 도시로 몰려들자 큰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리하여 봉건적인 장원제 및 농촌 경제는 몰락하였다.

 

3. 두 얼굴의 이탈리아 / 부흥과 분열

  1320년에 시작된, 이탈리아 피렌체 양모 산업의 대변동은 모직물 수출에 있어 이탈리아 최대 중요 산업이 이뤄지도록 하였다. 14세기 후반에 피렌체는 심지어 저지대의 플랑드르, 브라반트 지역과 경쟁을 벌였고 지중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였다. 현재 벨기에에 속해있는 플랑드르는 10세기경부터 모직 공업이 일어나 13세기경에 전성기를 맞이한, 당시 유럽 모직물 생산의 중심지였다. 추가로 영국-프랑스 백년전쟁 때 영국이 이 지역의 모직 수출을 금지해서 기술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이동하여 모직 공업의 중심지가 영국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도시 국가들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피렌체 등은 상공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학문과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 중 피렌체는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종종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면 이탈리아는 이 당시에 분열과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는 비록 강력하지는 못해도 어엿한 왕이 있었다. 갈수록 왕을 중심으로 나라 전체가 결속하며 국민국가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그런 구심점이 없었다.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지배권을 주장하다가 13세기 이후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 등 여러 도시들이 할거하는 상황이 되었고, 중부는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앞서는 가운데 피렌체, 시에나 등이 분립했으며, 남부는 비잔티움, 노르만, 이슬람 등에게 계속 정복되던 끝에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잘게 갈라진 이탈리아는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치체제도 군주국, 공화국, 신정정치체제 등 다양하여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체제를 갖춘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4. 이탈리아 전쟁(1494~1559)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집필:1513년, 출판:1532년)이 집필될 당시, 이탈리아는 위에서 알아보았듯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뭉쳐 있지 못하고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어 힘이 약했다. 반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은 저마다 중앙 집권 체제를 완비한 뒤, 군사력은 보잘것없지만 경제 문화적으로는 풍부한 땅인 이탈리아를 노리게 된다. 이로써 벌어진 전쟁이 이탈리아 전쟁이다.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스페인 등은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놓고 1494년에서 1559년까지 8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이 밖에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등 이탈리아의 5대 도시국가들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도 참전한 국제 전쟁이었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아예 종교도 다른 오스만 제국까지도 참전하는 등, 실제로 당시 지중해권-유럽 세계의 관점에서는 세계 대전이라 부를 만한 대규모 장기전이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과거 백년 전쟁 이후 1454년에 맺었던 이탈리아 동맹도 이 전쟁과 함께 무산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맞아 마키아벨리는 하루빨리 이탈리아가 야만인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를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 마키아벨리의 개인

  위에서 말했듯, 세미나 시간에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기적 개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의 저서인 『군주론』을 기준으로 이기적 개인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여기서 개인은 인민으로 표현된다. 아래에서 한번 더 볼 것이지만 마키아벨리는 책에서 인민을 두 가지 유형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표현할 때와 귀족 외의 사람들(중산층, 중하층)을 표현할 때이다. 이 시대에는 아직 적게라도 노예가 있었다고 알고있는데 노예까지 그 인민에 포함되는 지, 이탈리아에도 존재했는지는 모르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나라를 안정되고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의 토대가, 지도자나 군주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보다는 공동체 구성원인 ‘인민’, 그리고 공동체의 다수를 차지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민의 지지와 그들로 구성된 ‘자기 군대’라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에 인민과 대비되는 개념은 귀족이다. 당시의 귀족들은 은행가, 대 상인 등으로 단체를 이루어 정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당시 피렌체는 금융, 은행 명문가로 알려진 메디치 가문이 다스렸다. 이 귀족들은 일반 시민들(인민)을 믿지 못해서 자신들이 가진 부를 통해 용병을 고용하였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용병은 자신의 나라, 자기가 지킬 조국이 없는 돈을 위해서만 싸우는 군대로 보였다. 피렌체 공화국이 용병을 고용했었을 때 이 용병들은 피렌체를 위해 싸웠던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위해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렌체가 다른 나라에 침입을 받았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이런 용병의 폐혜를 보고 자기 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군대라는 것은 인민으로부터 모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이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인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전체이고, 다른 하나는 귀족과 대비되는 중산층, 중하층 인민을 말한다. 그는 정치를 할 때 귀족의 지지를 받는 것과 인민의 지지를 받는 것 중 후자가 더 좋다고 얘기한다. 인민은 귀족보다 숫자가 많다. 그리고 귀족은 자원이나 권력을 많이 가진 자들이라 항상 음모와 반란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민들의 목표는 귀족들의 목표보다 더 명예롭습니다. 귀족들은 단지 억압하고자 하는 데에 반해서 인민들은 단지 억압당하는 데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 군주론 제 9장

 

그런데 그는 인민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인간 자체를 냉소적으로 보는 듯하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 군주론 17장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해관계에 예민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인민의 모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시기에는 군주를 지지하다가 자기 마음에 조금 맞지 않으면 확 변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과연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마키아벨리의 고민이었다. 이런고로 지도자라 함은 쉽게 변할 수 있는 인민의 기호에 맞춰주는 것보다는, 단호하게 인민을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이해관계에 따라 약하게 움직이는 존재라고 할 때, 그런 나약한 존재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지를 모아서 권력을 만들어 나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지금에 와서는 과하게 들릴 수 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죽고 32년 뒤인 1559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개신교도 이에 동참했다. 이 책이 금서가 된 이유를 말하자면 글이 더 길어지지만(ㅠ) 짧게 말하자면, 영국 헨리8세가 이 책을 읽고 통치기술을 배워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영국교회는 독립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1534년). 거기다 1539년에는 영국 내 로마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의 재산마저 몰수했다고 한다. 교황청은 다른 나라들도 영국에 물들어 교회 독립을 선언할까봐 걱정을 하였고 숙고 끝에 ‘사악한 책(evil book)’이라는 이유로 군주론을 금지도서 목록에 올렸다. 추가로 루소는 이 책을 ‘독재자들의 술수를 공개시켜 서민들이 대비케 한 책’이라는 맥락의 좋은 평가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히틀러나 무솔리니같은 독재자들이 군주론을 오남용하여 인민의 참다운 지지라기 보다는 폭력으로 오히려 인민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이 500년이 지난 지금도 추천도서로 남아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음주에는 인쇄술의 발전으로 독학으로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는 데카르트가 나온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댓글 3
  • 2024-05-09 03:05

    덕영샘, 발제문보다 훨씬 더 상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또는 그 이전의 시대적 배경을 상세히 추가해 주셨네요...^^ 마키아벨리와 레알 폴리틱스 출현 이유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세미나 시간에 질문하고, 토론했던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개인(인민)의 의미에 대해 군주론 책 내용을 소개하며 정리한 내용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빠른 후기 작성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 2024-05-09 12:51

    정군샘 강의를 들으면서 한 차례 정리가 된 것 같아 좋았어요 ~ ! 세미나를 하면서 각자의 질문들이 조금씩 겹치는 걸 보면서 더 풍부한 얘기가 오갈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

  • 2024-05-12 23:15

    문탁의 늦은 저녁 풍경이 귀엽군요~~
    그나저나 덕영샘~~ 정성스런 후기 감사합니다. 세미나가 세미나를 하는 시간보다 세미나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 배로 더 들지요? 이 후기를 쓰느라 또 얼마나 시간을 들이셨을지!!!
    덕분에 마키아밸리에 대한 정리와 당시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공부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사뭇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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