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7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효주
2024-04-29 14:13
83

 

 

                                                                                                       ( 사진출처 : https://pxhere.com/ko/photo/1341085 )

 

 

벌써 7주차에 돌입했습니다.

중세를 넘어 자연과학의 발흥으로 넘어왔네요.

 

질문과 발제는 화요일(4.30) 오후 12시까지 올려주세요^^

 

댓글 8
  • 2024-04-29 14:27

    (질문1)
    (p.326~327) 우리는 중세 후기(14세기경)에 이루어진 개념실재론으로부터 유명론으로의 이행이 어느 정도는 구체적 사물들에 대한 관심으로의 전환이었고, 1453년 동로마제국 멸망으로 일단의 학자들이 서방으로 피신하면서 사변적인 그리스 이론들(예를 들어, 데모크리토스의 기계론적 원자론)이 유입되면서 실험과학의 발흥을 촉진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은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14~15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자연과학 발흥의 촉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나, 이 촉발 요인이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뭔가 비약이 크게 있어 보인다. 자연을 이해하고 제어하는 데 실천적 관심이 폭발하게 된 '17세기 과학혁명' 의 좀더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6세기 서유럽의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그 당시 이론과 실천적 관심의 결합을 촉발시킨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함께 얘기 나누고 싶다.

    (질문2)
    (p.331) 르네상스의 방법 논쟁에서는 탐구를 사실상 중세 스콜라 철학을 지배했던 연역법적 과학의 이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전략적으로 불가피하게 되었다. 순전히 논리적 연역으로는 새로운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은 이미 전제들 속에 내포되어 있다. 연역적 답들은 확실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찾는 이들에게는 별무소득인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제7장 자연과학의 발흥을 얘기하면서 1. 방법논쟁, 2. 천문학-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3. 물리학-갈릴레이와 뉴턴, 4. 생물학적 과학, 5. 수브-엑툼으로서의 인간 이렇게 5개 소제목으로 구분하고 있다. 왜 저자는 첫번째로 방법논쟁을 선택했을까? 방법 논쟁 대목에서 저자가 핵심으로 말하고 있는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의 '가설연역법'은 과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15~17세기 그들이 찾고자 했던 '새로운 지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질문3)
    (p.369)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의 지배적인 이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었다. 태양과 별들과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인간의 거주지인 지구가 창조의 중심이라는 신학적 그리고 철학적 견해와 결합되어 있었다. 이것이 '지구 중심적 세계관'이다. 이 견해에 반대하여 중심에 있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주장이 점차 거세게 제기되었다. 즉 지구는 별들과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이것이 태양 중심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우주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구 중심이냐, 태양 중심이냐를 논하는 게 오히려 편협한 세계관 아닐까? 현대 과학의 우주론에서 정설로 얘기되고 있는 것도 우주의 중심은 없다는 게 기정 사실화 되고 있는 듯 하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지구 중심적 세계관이냐, 태양 중심적 세계관이냐는 논쟁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관점의 차이이고, 수학적 서술의 복잡성이 크냐 작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2024-04-29 14:28

    제 7장 자연과학의 발흥 발제문 올립니다.

  • 2024-04-29 16:26

    1)
    새로운 학문은 국가 발전에 큰 몫을 합니다. 왜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탐내고 지식에 이름을 붙여 각 학문으로 분류하고 교육하는 걸까요? 이건 마치 다 같은 하나의 땅에 주인을 지정해 영토권을 주장하던 종교개혁시기와 오버랩 됩니다. 선 하나 차이로 내 구역 네 구역, 이 학문 저 학문으로 나눌 수 없는데 말입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국가 번영을 위한 인력통제는 아닐까요?
    [종횡무진 서양사]에서 교회에서 왕권으로, 왕권에서 의회로 정권이 넘어가 결국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지경에도 이르니 통제는 누가 하는 건가? 싶습니다.

    2)
    베이컨은 ‘연구 과정은 무한한 나선형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책에는 ‘모든 물리이론은 가설에 불과하며 언제든 새로운 관찰결과가 나오면 그 이론을 수정’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학은 신을 위해서,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직선적인 형태와 달리 과학은 왜?를 통해 끊임없이 나선형태를 보여줍니다. 왜? 가 있으려면 그 이전에 실체가 있는 것 같은 이성적인 답이 있어야 합니다. 왜는 그 답을 전복시키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이성은 동물과 인간의 우위를 만들어버리는 키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즉 과학은 자연스레 네 구역 시작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이번 파트에는 수친자(수학에 미친자)들이 많은 걸로 보아 수학은 신에 가까운 공식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봅니다. 그 수친자 중 갈릴레오는 ‘모든 사물이 자연적으로 제자리를 갖는 게’ 아니라고 말하며 ‘자연은 수학적 언어로 쓰여있다’ 고 합니다. 당시에는 교황권 몰락으로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각 나라의 질서가 생겨나면서 영토권을 주장하는 데, 이때의 전쟁들 속에서 자연에 의한 생존위험을 느끼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지식의 힘으로 정복하려는 자가 어째서 인간의 시선으로 발견한 것에만 비판했을까요? 정말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것이었다면 인간의 언어인 수학으로 판독하는 게 아니었어야 할 텐데, 그저 수학을 증명하기 위한 자연정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코오롱 스포츠 : 50이라는 팝업스토어에서는 실시간 날씨 데이터를 가져와서 팝업스토어 내부 날씨를 조성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느끼는 자연을 조성한 것이지 진짜 자연을 조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연을 정복한 게 아니라 자연을 데이터화 시키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닐까요?

    4)
    르네상스 시대에 자연과학의 발흥은 중세철학 내에서 그 개념이 발전을 이루고 수공업 및 농업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기나긴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수공업과 농업을 [종횡무진 서양사]에 나오는 향료와 연결해서 봐도 될까요?

  • 2024-04-30 09:04

    1.
    326p. 1453년 동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일단의 학자들이 서방으로 피신하였다 이들의 도래는 고대 그리스철학, 특히 플라톤의 재발견으로 이어졌는데, 그것은 마치 몇 세기 전 아랍인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전래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15세기에 이렇게 그리스 이론들이 서방으로 유입되어 실험과학의 기반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이 맥락에 따르면 이미 동로마제국에서도 고대 그리스철학을 이어가는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되는데, 왜 동로마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그리스 이론과 실험과학이 서방에서 가능했던 것일까?

    2.
    327p.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난 자연과학의 발흥은 중세철학 내에서 과학적 개념들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수공업 및 농업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기나긴 과정의 결과물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자연과학은 단지 이론만으로나 실천적 관심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에 발생한 일이었다.

    -> 중세철학 내에 있었던 과학적 개념들이란 어떤 것일까? 논리적인 추론을 중시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중세철학이 르네상스 시대에 비해 자연과학의 발전이 느렸던 이유가 과학적 개념들은 있었지만 실천적 실험들이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라는 이야기인가?

    3.
    349p. 1615년 갈릴레이는 자신의 망원경을 교황에게 보여주기 위해 로마로 갔다. … 갈릴레이는 성서의 문자적 메시지가 지구중심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갈릴레이는 성서의 과제는 어떻게 해야 천국에 이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지, 천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 갈릴레이는 1615년의 로마방문을 과학을 위한 성전으로 계획하였다. … 또한 이단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 갈릴레이는 과학 지식이 성서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결코 충돌할 수 없다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책에서 전제하고 있으며 이단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갈릴레이 또한 신앙심을 가지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과학적 실험을 지속하기 위하여 당시의 기독교 권력에 순응하였던 것일까?

  • 2024-04-30 11:54

    1.
    341쪽 태양중심설, 즉 지동설은 혁명적이었다. 이것은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 및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에 대해서만 혁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동설은 직접적인 생활 경험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 그의 이론은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세계와 인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했다.
    - 지구 중심적 세계관에 지동설이 제안되며 인간의 생활 경험에도 혁명적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은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이 변화한데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관점변화로 인하여 선생님들의 삶이 달라진 경험이 있으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2.
    371쪽 그렇다면 지구 중심적 세계관에서 태양 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이행 중에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패러다임 전환”이 있었다고, 즉 경쟁에서 진 이론의 오류가 입증되었다고 설명될 수는 없는, 시각과 전제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은 새로운 토대 이론을 만들어 낸 일단의 과학자들이 이전에 그 분야를 주도했던 학파를 대체한 경우에 발생한다.
    - 오류가 입증되지 않았는데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말이, 현대인으로서는 과학에 위배되는 말처럼 들립니다. 실험실과학이 대두되고 나서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칸트의 경우도 오직 사고실험만으로 인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만큼의 혁명을 이끌어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철학과 과학 등의 분야가 더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도 인간 인식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3.
    375쪽 그래서 과학의 대상은 순수한 대상, 즉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속성을 가지며 모든 주관성으로부터 정화된 대상이 되었다. 인식과 사유만 제거된 것이 아니라 소위 감각질이라 불리는 색깔, 냄새, 맛 등도 제거되었다. 이것들은 주체인 인간이 대상의 감각 인상에 부가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 정화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대상이 주관성으로부터 정화되었다는 말은 인간의 주관성이 오염되고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합니다. 이 때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명상 등을 할 때 마음을 정화한다는 말을 씁니다. 인간은 무엇을 정화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정화해야한다고 말하는 주관성이나 감각질들이 오염 물질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뭘까요?

  • 2024-04-30 11:54

    드디어 7장 근대시대에 접어들었네요. 이 챕터가 반가운 이유는 동시대와 비교적 가깝기도 하고, 앞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근대과학과 비교하며 설명하는 주석을 종종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 <4장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다시 살펴볼만한 부분을 발췌해보았습니다.

    139. 주4.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식은 감각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상이한 이론과학들을 일상 경험으로부터의 상이한 추상 수준들로 간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생활세계에서 우리는 물질적 사물들에 대한 즉각적 감각 경험을 갖는다. 물리학[자연학]은 개별적인 물질적 사물들의 판명하고 부수적인 속성들로부터 추상을 나타낸다. (...) 수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추상을 나타낸다. 즉 이번에는 사물의 질적 속성들로부터 사물은 오직 기하학적 형태들이나 수치들로 현상하는 것이다. 끝으로 한 단계 더 추상함으로써 우리는 형이상학에 이르는데, 형이상학은 전적으로 보편적인 원칙들과 속성들을 이룬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상을 통해 감각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위쪽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택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플라톤은 어떤 의미에서는 "위에서" 시작하여 김각 세계를 향해 "아래로 " 간다. 즉 이데아에 대한 변증법적 통찰은 (이 통찰이 일단 획득될 경우) 확실한 것이다.

    153. 주9. 사건들을 자연과학적 견지에서 해석했던, 르네상스 시기 처음 출현한 이론가들은 현실의 사회적 측면들을 거의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사회과학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사회과학적 근본 문제들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이 행위와 사건 간의 긴장과 함께 살게 되었다.

    153. 주11.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인간이 경험하는 자연을 이해하려는 그의 관심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자연을 통제하고자 하는 관심을 가진 근대과학자들과는 달랐다. 근대과학자들에게는 실험적인 가설연역적 방법과 추상적인 수학적 개념들이 올바른 것들이었다.

    154. 주12. 역학적, 기계론적 자연관은 감각적 특성과 가치 같은 질적 "잔여들leftovers"을 인간에게 잘못 귀속시키는 경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연현상을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는 경향도 함께 갖는다. 사유하는 실체(레스 코기탄스)와 연장을 갖는 실체9레스 엑스텐사)에 대한 데카르트의 구분은 모든 존재를 이윤을 계산하는 지도력과 원자재로 이분하는 사회관과 짝한다. 그 원자재가 동물이든 암석이든 인간의 신체든 간에 그것들은 모두 계산하는 주체의 대상이 되는데, 이 계산하는 주체는 지적 능력을 통해 이 대상들을 착취하고 통제할 수 있다.

    Q1) 근대과학의 '가설연역법'에서는 관찰 차원의 개념들로부터 추상 차원의 공식들로 표현된 개념들로의 도약이 일어난다고 합니다(332). 가설연역적 연구에서의 지식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은 아니고 미래의 관찰을 통해 그 이론이 부정되는 일이 항상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설연역법과 반증의 과정을 어떤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까요?

    Q2) 앞장에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이해하려 했고, 근대과학자들은 자연을 통제하고자 했다고 썼습니다. 저자는 관찰과 추상의 과정을 거쳐 형이상학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추상이라고 정리합니다. 반면 갈릴레이의 자연관과 수학관은 피타고라스학파와 플라톤의 전통 속에 있고, 자연에 대한 갈릴레이의 수학적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이고 질적인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358). 갈릴레이의 관찰과 추상 과정이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넘어 '통제'로 나아게게 한 요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Q) 귀납적 방법을 옹호한 계몽주의의 선구자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진보에 대한 근대적 신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근대에 들어서 인간의 위상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에 의해 재조정됩니다. 동시에 계몽과 진보,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 자율성 등의 신념이 18세기 계몽주의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런 근대의 이중적 의미에 대하여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추락, 그리고 세속적이고 과학에 근거한 긍정적 자기의식"이라고 논합니다. 반성과 오만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근대적 신념은 자연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착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계몽과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추락하고, 또 새롭게 갱신될 수 있을까요?

  • 2024-04-30 12:31

    질문 모음입니다!

  • 2024-04-30 15:39

    경호샘께서 올려주신 발제를 보다가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음악 책에 16세기 관련 이야기가 있어 덧붙여봅니다~!

    1. 경호샘 발제 일부

    “16세기에는 오히려 수공업 직인으로서 예술가나 기술자(직인, 외과의, 나아가 시장통의 산수교실 교사나 뱃사람들)에게 그 변혁의 헤게모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들이 없었다면 17세기 과학혁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까지 제시한다. 그들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소외당하던 학문 세계의 경계를 타 넘어 들어감으로써 그전까지 굳게 닫혀 있던 장벽을 와해시켰다. 또 속어(각각 그 나라의 민중들이 쓰던 언어. 영어, 독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로 책을 씀으로써 라틴어로 굳게 보호 받고 있던 대학 아카데미즘의 지적 독점에 바람구멍을 냈다. 이것은 종래의 스콜라 문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지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이 익힌 기술의 비밀을 문서로 만들어 공개했고, 종전까지 천시되던 수작업과 기계적 기예의 가치를 분명히 밝혔다.”

    2. 책『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중, 16세기와 관련한 음악 설명

    - 국가별 음악 양식의 발전
    15세기 작곡가들이 노래를 국제적인 언어로 표현했다면, 16세기 음악가들은 특별히 세속노래에 있어서 새로운 국가적 양식을 꽃피웠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지역의 시인과 음악가들은 자연히 서로 다른 장르와 형식을 개발했다. 16세기의 중요한 국가적 장르로는 스페인의 비얀시코, 이탈리아의 프로톨라, 프랑스의 샹송이 있다.

    - 악보의 공급으로 음악 대중화
    16세기 초에는 음악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악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 애호가들이 그들의 여흥을 위하여 악보를 구입하기 시작하자 작곡가들은 이들을 위해 기악음악이나 그 나라 말로 된 세속 노래들과 같이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새롭게 작곡하였다.
    인쇄된 악보의 새로운 공급은 아마추어들이 재미로 연주할 수 있는 악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꼭 들어맞았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음악을 자기 자신이나 친구들과의 오락으로 즐겨왔지만, 악보를 이용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기보법이 발명된 이래로, 그것은 교회음악과 귀족들의 세속음악을 위한 것이었지 일반적인 하층민의 음악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16세기에는 사회적으로, 처음에는 상류층 사이에서 그리고 뒤이어 교양 있는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악보를 읽을 줄 알고 그것을 보고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존경을 받았다.

    - 최초의 음악시장 형성
    음악 출판이 아마추어들이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요구가 맞물리면서 최초의 음악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엘리트적인 장르, 양식, 형식에서부터 보다 대중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었다. 물론 직업 음악가들도 자신이 사용하려고 출판된 악보를 샀지만 아마추어 연주가들에게 맞는 음악들이 특별히 잘 팔렸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곡을 작곡했다.

    - 기악의 발전
    16세기 이전의 음악은 대부분 성악이었다. 기악음악은 실용음악이었다. 사람들은 식사나 춤을 반주할 때는 기악음악을 환영했으나 그 자체만을 위해 기악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기악음악은 성악보다 낮게 평가되었다.
    악기에 대해 기술하고 그것의 연주법을 설명하는 서적이 16세기에 등장하였다는 것은 기악 음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부터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악 음악가들이 춤 리듬과 빌려온 선율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음악 유형들을 개발하였다. 기악음악을 위한 기악음악이 탄생하였다. 기악음악은 그 후로도 독립을 계속 쟁취하여 19세기에는 그 위상이 대부분의 성악음악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 이탈리아의 마그리갈
    이탈리아에는 14세기부터 마그리갈이라는 장르가 있었다. 그런데 16세기에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하였다. 그래서 14세기와 16세기의 마그리갈은 이름만 같고, 형식상 다른 음악이다. 16세기의 마그리갈은 가사를 중시하였고, 음악을 통해 가사를 극적으로 묘사하였다. 이것이 1600년경 오페라를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 극예술로서의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으로, 이 개념이 성악과 기악음악까지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덕분에 바로크 시대 내내 이탈리아 음악이 우위를 차지하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유럽 음악계의 선두주자로 만들어 주었다.
    16세기 다른 세속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마드리갈 그 자체에 대한 인기는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오페라, 발레, 교향시, 영화음악의 작곡가들이 주인공들의 분위기를 제시하거나 청중의 감정을 사로잡기 위해 사용한 기법들은, 현대까지도 그 개념과 종종 특별한 세부사항에 있어 16세기 작곡가들이 마드리갈에서 사용했던 방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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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 2024.04.01 | 조회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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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3주차 후기 - 플라톤의 이데아를 찾아서... (5)
경호 | 2024.03.29 | 조회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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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3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6)
효주 | 2024.03.25 | 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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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2주차 후기 - 불가식길 이섭대천 (3)
경덕 | 2024.03.23 | 조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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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2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6)
경덕 | 2024.03.17 | 조회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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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1주차 후기 (4)
효주 | 2024.03.16 | 조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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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1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모아주세요 (5)
효주 | 2024.03.11 | 조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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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공지] 3월 12일, 서양철학사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효주 | 2024.03.09 | 조회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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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현대 철학까지 (10)
경덕 | 2024.02.24 | 조회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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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5장 영화로서의 세계_이미지의 기호론 요약 (3)
봄날 | 2022.02.23 |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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