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세미나] <니체강의> 읽기 세 번째 시간, 후기

김선영
2023-09-08 09:16
167

<니체 강의> 읽기 게릴라 세미나 세번째 시간 (2023.09.05) 후기

 

지난 화요일 세미나에서는 니체를 읽는 키워드 중 4번째 “거짓”과, 5번째 “사유”를 다루었다. 내게는 대략 아래 정리한 3가지 정도가 세미나의 주된 논의 주제로 기억에 남았다. 그날 참가자들이 나눈 구체적 대화 내용을 복기하기는 어려워서 (다행히 이 글은 회의록이 아니기에), 세미나에서 다룬 질문과 논점을 나의 개인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재정리해 보았다.

 

첫째, 니체가 사용하는 “생리적”이라는 언어 표현

  • “생리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우리 몸의 장기와 신경활동을 포함하는 대사작용과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
  • 책에는 “생리적 조절체계가 무너진 사람은 몸에 좋지 않은 일도 서슴지 않고 해버린다”(p.220)라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자는 먹고 마시는 풍습과 문화를 언급하면서, “본성(생리적)의 타락이 진행되면 그 결과로 악습이 생긴다”고 하면서 인과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즉, 악습이나 퇴폐적 문화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말한다. 즉, 생리적 상태(퇴락한 본성, 무절제한 욕망)가 도덕(참된 세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 니체가 말하려는 요점은, “생리적 상태” 혹은 “생리적 요구”에 따라, 선과 진리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즉, “특정한 종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요구”에 따라 어떤 것은 진리로, 어떤 것은 거짓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근거로 가능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가치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진리가 되는 것이다.” (p.227) 4장의 핵심은 이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니체가 이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생리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짚어 본 것은 무척 유용했다.
  • 다시 말해서, 니체가 사용하는 “생리적”이란 언어는 신체성, 본능, 본성, 욕망과 연결된 개념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생리적”이라는 표현은 니체에게 건강과 질병의 이미지와도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염세주의”란 무엇인가. 니체가 취한 ‘낭만적 염세주의’에 대한 입장은?

  • 염세주의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은 ‘거짓’과 ‘사유’라는 키워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염세주의에 대해 취한 니체의 태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혼선을 더한 것은 이 책의 인트로에 소개된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다. à “생명력이 가장 떨어졌던 그해는 바로 내가 염세주의자인 것을 그만두었던 때였다.” (p.31)
  • 우리가 닿은 결론은 니체는 염세주의를 거부하고 극복하려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병들고 지칠 때 삶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복구 본능”을 작동시켜, “유해한 것에 대한 치유책”을 찾아냈다. 따라서, 아주 나쁜 상황에서도 “자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 (p.31~32)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건강이 가장 악화되었던 상황에서도 염세주의를 버릴 수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 책에서 니체가 비판하는 것은 특히 “낭만적 염세주의”다 (vs 그리스 인들의 ‘강함의 염세주의) 모든 종류의 염세주의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고통과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데, ‘낭만적’ 염세주의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영원하고 안정된 형이상학적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고 나는 이해했다. “진리와 거짓, 신과 영원성, 존재와 주체, 사물의 동일성과 모순적 대립에 대한 개념들” (p.242)이 그것이고, 이는 종교, 철학, 도덕, 예술의 형태로 드러난다. 즉, 이는 모두 현실과 관련이 없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즉 ‘낭만적’인 것들이다.

 

세 번째, 니체가 말하는 “필연성”의 개념으로 범죄자를 ‘병자’로 보는 관점에 공감하는가?

  • 니체는 책임과 죄 대신 ‘필연성’을 내세우는데,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사악한 의도가 아니라 그 존재의 필연성에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필연성’을 설명하기 위해 대비하고 있는 개념이 ‘자유 의지’다. 저자는 “자유 의지라는 허구는 정말 무시무시한 개념이다…인간은 늘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허영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앞 장에서 무척 헷갈리던, 자유의지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확고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대목!)
  • 세미나에서 범죄자를 하나의 병자(혹은 어리석은 자)로 보는 시각에 공감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죄라는 개념을 제거했으니 벌이라는 개념도 세계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 “범죄자에게서 죄를 빼내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이 가지는 과격성과 비현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니체의 통찰에 공감하지만,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 바로 이 지점에서 5장의 제목이 “사유: 무죄와 필연성을 향한 슬픈 통찰”인데, 이 책의 전신인 <명랑 철학>(2011년)에서와 달리 “슬픈”이라는 표현이 이번 개정판 책에서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죄와 필연성을 향한 통찰은 왜 슬픈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필연성에 대한 슬픈 통찰 때문이 아닌가.” (p.282); 책에서는 진리라는 척도,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사라지면,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죄와 필연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경험은 “척도가 무너지는 아픔”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우리가 필연성을 인식하고, 필연성으로 세계를 보는, “슬픔의 능력”을 지닐 수 있을 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p.277)      

 

3회차 세미나를 마치며, 전체적인 소감:

<니체 강의> 책을 꼼꼼히 정독하려 애쓰고 있는데, 낯선 언어, 생경한 개념, 비범한 사유가 이끄는 논리구조를 가진 니체 사상의 얼개를 얼추 헤아려 보기에도 벅차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장을 펼칠 때마다 깊게 몰입하며 읽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거대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세찬 물줄기 세례를 맞는 느낌에 비할까? 통증을 느끼면서도 시원하고, 슬픔의 분위기와 용기가 뒤섞이는 묘한 경험이다. 지금까지의 독서는 다음주 마지막 세미나에서 만나게 될, 위버멘쉬, 아모르파티, 영원회귀와 같은 개념에 이르기 위한 디딤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기대가 된다.

 

4, 5장을 읽는 중, 때때로 뜬금없이 중국 철학자들이 연상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이기주의, 이타주의, 공리주의, 인간의 본성, 고통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윤리적 측면은 중국철학의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니체의 사상을 읽을수록 “불교”의 그것과 통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분이 계셨다. 또한, 니체가 ‘서양의 장자’에 비유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니체가 가상과 꿈을 언급하는 대목(p.235)에서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떠올랐다. 니체가 신체성, 생리적 상태를 중시하고 그것을 척도로 삼고자 한다는 점에서 노자가 귀하게 여기는 신체와 ‘몸’에 대한 사상이, 또한 니체가 인간의 행위적 동기를 이기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배움을 언급할 때(p.275), 내게는 순자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나의 지극히 자의적이고 표피적인 연상 작용에 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동양철학을 접했을지, 그랬다면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또한,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니체를 본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니체가 종종 오역되고 오해받는 이유, 니체의 사상이 독일 나치에 의해 왜곡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읽고 있다. 아울러 니체가 던진 도발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에 감탄과 경이를 보내며 읽고 있다. 특별히 그가 물었던 질문들과 질문하는 방식, 그 자체만으로 작금의 현실을 조금 더 의연하게 통찰하는 법을 배우고 위로를 받는 중이다. 그래서 21세기 오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게 니체가 묻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떠올려보고, 작금의 시대적 병폐를 관통하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위대한 질문은 우리에게 도래하고 있는지, 희망하며 읽고 있다.

댓글 6
  • 2023-09-08 09:45

    아마 염세주의는 쇼펜하우어와의 관계에서 보아야 할 듯^^

  • 2023-09-08 12:11

    와! 세미나 내용을 엄청 꼼꼼히 잘 정리해주셨네요.
    덕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 한 번 더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다음 내용을 기대하며 읽고 있어요ㅎㅎ

  • 2023-09-08 13:12

    와~~~일단 지난 시간 나눈 이야기도 꼼꼼하게 보입니다. 저녁에 찬찬히 볼께요. 고맙습니다^^

  • 2023-09-08 18:40

    와~ 정말 4장과 5장을 총정리 하셨네요. 한 눈에 쫙 너무 잘 들어와요.
    저도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가 전혀 전파되지 않았던 중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왜 죄의식과 자책이 생겨나 오히려 서양보다 더욱 강한 가족주의라는 진리가 탄생했을까 궁금하네요. 니체가 제시하는 강자로 살아가는 법이 6장 7장에서 나올 거 같아 저도 기대됩니다.

  • 2023-09-11 13:45

    선영샘의 성향이 드러나는 후기같네요ㅎㅎㅎ 저는 깔끔하게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인데 덕분에 잘 정리하고 갑니다~
    계속해서 니체와 동양철학이나 불교를 연결짓는 느낌으로 흘러가는 듯 하네요ㅎ.. 저는 불교도 동양도 잘 모르니 다른 분들의 연구를 기대해봅니다 흐흐..

  • 2023-09-12 17:50

    후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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