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가 진나라의 기틀을 다졌다구요??

여울아
2023-06-07 15:14
249

<묵자가 필요한 시간>의 저자 천웨이런은 마지막으로 질문합니다. 한비자, 순자가 "세상의 현학"이라고 했던 묵가는 왜 자취를 감추었는가? 

 

<묵학원류>의 저자이자 고증학자인 팡서우추는 묵가의 소멸 원인 중 하나로 "진나라 옹호 혐의"를 둔다. 묵가가 진나라랑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의 주장인 즉 이렇다. 

 

묵자의 수령을 거자라 한다. 묵자는 최초의 거자였을 것이고, 맹승, 전양자, 복돈이 뒤를 이었다. 이들 중 맹승은 초나라 양성군과 부절을 나눠가질 정도로 스승이자 벗이자 신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양성군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는데, 맹승은 다음 거자를 전양자로 지명하고 자신과 그를 따르는 무리 180여명은 끝까지 양성군의 성을 지키며 죽어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회남자>에는 "묵자를 따르는 자 180명은 모둔 불속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게 하더라도 절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이러한 용맹함은 당시 전국을 통일하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현자를 구하는 데 목말랐던 진나라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변방의 작은 나라 진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점차로 강성해지면서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려 했지만, 번번이 막강한 진(

晉)나라에 저지당하는 처지였다. <사기> 진본기에는 "제후들이 진나라를 비하하니 수치스러움이 이보다 더 클 수 없다"는 진효공의 탄식이 남아있다. 그는 이후 전국 각지에서 현자를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2010년 이에 관한 연구로 저명한 원로 사학자 허빙디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중략... 지난 수십 년간 동서양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묵가와 통일 이전의 진나라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정론이 되었다. 묵자는 장년기에 성 방어 및 무기 발명과 제조로 열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묵자와 그의 숙련된 기술자들은 고대 서양보다 훨씬 앞서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해했다. 중략...

헌공은  다년간의 망명 생활에서 겪은 고초와 즉위 후 4년 뒤 묵가의 집단 순직에서 받은 감화로 인해 처음부터 묵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묵가를 흡사 진나라 군대의 전능한 간부나 기율이 엄격한 집행자로 여긴 것이다. 중략... 묵가는 진나라 중앙집권에 방행가 되는 세력을 제거하는 데 의심의 여지없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밖에 진나라 당국은 처음부터 묵가의 군사 공정 및 무기 제조 방면의 전문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했다."

 

진나라 제도 건립은 묵자의 상동(尙同) 사상이 실현된 것으로 평가하지만 그 제도 배후의 윤리이념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점이 문제였다. 이 평가를 좀더 들여다보자.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상동의 실현이다. 묵자는 각자의 의리(의로움)를 다투기 때문에 천하가 혼한해졌다고 보았고,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현자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진시황이 상동으로서의 윤리적 기준을 갖추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에 반쪽짜리 성공인 셈이다. 

 

그리고 묵가의 거자로서의 맹승의 선택은 과연 어떠한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180여 명을 집단 자결하게 하였는데, 양성군과 맹승과의 관계가 사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것은 애초 묵자가 한 나라 혹은 한 군주가 아니라 천하를 위해 진력하겠다던 약속과도 기풍이 다른 것이다. 이는 묵자의 구성원이 서민이 대부분인데 비해, 당시 맹승과 같은 거자가 기득권층과 친밀해지면서 묵가 구성원들의 반발 또한 있었을 것이고, 이로 인한 이탈이 증가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결국 묵가는 반귀족 정신에서 출발했지만 맹승과 같이 군왕의 사적 도구가 되었던 점이 묵가의 분열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근검 절약하는 묵가의 기풍은 진나라 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진나라는 전국 시대 후기 묵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묵학의 상동, 상현, 절용, 비유 등은 실리를 추구하고 실제 혜택을 중시하는 진나라의 공리주의적 가치관과 부합했다. 이밖에도 진나라는 소수민족의 침략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묵가의 뛰어난 수성 기술과 군사적 재능 및 희생정신은 자연히 진나라 통치 계층의 환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묵가의 이상 사회 모델과 전국시대 법가 사상과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이 같은 법도(法)가 있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방책(術)을 알지 못하면 일은 성공할 수 없다"고 <묵자> <상현>에서 말한다. 이는 법을 중시하고 술을 밝히며 군주를 높이고 신하를 낮추는 법가의 정치 사상에 효시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들, 상앙, 한비자, 여불위, 이사 등의 법술세 주장은 모두 묵자 사상으로부터 발전돼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나라가 강성해진 이후 토사구팽이 될 수밖에 없던 운명은 이들의 학설이 철두철미한 반역과 반항의 특성으로 인해 정해진 바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단행할 때 이들 묵가가 그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필연이었다는 것. 

 

오늘 원문은 묵경 경상/경설상까지 읽었고, 다음 주는 나머지 경하/경설하까지 마저 읽기로 했다.  

 

댓글 1
  • 2023-06-09 15:04

    보통 상앙의 변법으로 진나라가 국가 체질을 확 바꿔서 통일로 가는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묵가와 진나라와 연관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흥미롭네요.
    그런데 상동을 법가적 입장에서 보면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상동의 실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상동이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 오히려 유가적 입장에서 유덕자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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