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묵자와 공리주의

토용
2023-06-17 23:39
235

 

『중국철학사』를 지은 풍우란은 묵가를 ‘묵자와 전기 묵가’와 ‘『묵경』과 후기 묵가’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묵자』에 있는 「경(經)」과 「경설(經說)」은 전국시대 말 묵자의 추종자들의 저작인데, 당시 각 학파마다 학습용으로 암기하기 쉽게 만든 것이 ‘경’이라고 한다. 실제 『묵경』을 보면 짧은 문장으로 개념이 정의되어 있는데 학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어째서 그런 식으로 썼는지 이해가 된다. 죽간이라는 한계도 있었을테고. 또 초기 저술의 형태는 『논어』에서 보듯 대화체인데, 이후 제목을 달고 논술하는 형식으로 바뀐다. 『묵자』의 「대취」, 「소취」가 바로 제목을 달고 논술한 형식으로 전국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본다. 이런 이유로 풍우란은 묵가를 전기 묵가와 후기 묵가로 나눈 것이다.

 

풍우란은 묵자 철학을 공리주의로 본다. 오로지 이(利 이익)와 공(功 성과)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벤담은 도덕이나 법률의 목적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여겼는데, 묵자 역시 그랬다.”라고 말한다. 묵자의 가치 평가 기준은 “국가와 모든 인민의 이익”에 있었다. 이익은 바로 인민의 ‘부(富)’와 ‘인구증가’를 말한다. 인민을 부유하게 하고 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면 모두 유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부 무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반대했다. “인민의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재화의 소비”를 금했고, 유가의 후장(厚葬 후한 장례)과 구상(久喪 오랜 상례)에 맞서 절장(節葬)과 단상(短喪)을 주장했다. 같은 이유로 음악도 반대한다. 묵자의 극단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정감을 표현한 것은 쓸모없을뿐더러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반대한 것도 이롭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고, 겸애도 타인에게 이로울뿐더러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공리주의적 측면을 강조한다.

 

『서양철학사』에서 공리주의를 찾아보니, “공리주의는 우선적으로 결과주의 윤리학이다. 좋은/바람직한 행위의 판단 기준은 그 결과가 어느 정도나 ‘유용한’것인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고 나온다. 무엇이 백성을 위해 가장 이로운가를 생각했던 묵자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는 공리주의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세미나를 하면서 어째서 묵가는 현학이 되었을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묵자의 철학이 위정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이고, 내용이 소박하고 단순하게 보여 실천하기에 쉬워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을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장자의 생각은 좀 달랐다. 장자는 묵가에 대해서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실천했고, 너무 고지식하게 추구했다.....그의 도는 너무나 각박하여 사람을 근심하고 슬프게 했고, 정말로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묵자 자신은 감내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 세상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거자를 중심으로 하는 묵가 집단의 결사체의 생활이 어땠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고, 풍우란은 이 점이 묵학이 후세에 행해지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라고 했다.

댓글 1
  • 2023-06-20 08:37

    오랜 만에 풍우란 표현법에 "공리주의냐 아니냐"를 두고 우리끼리도 설전을 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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