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가 백이 숙제의 자손이란 말인가?(후기)

여울아
2023-04-24 17:35
233

<묵자가 필요한 시간>의 저자 천웨이런은 지난 시간 묵자와 주루문화의 연관성에 대해 다룬 것에 이어, 이들이 백이숙제의 자손이라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인 즉, <원화성찬>이라는 당나라 당시 책에서 "묵씨는 고죽군의 후예"라는 기록이 있다는 것.  본래는 묵태씨인데 묵씨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남북조 시대까지 묵태씨 성이 있었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사기>에는 목이씨가 은의 후대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목이는 묵이로 쓰며, 묵적은 목이의 별칭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 주장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주장을 편 사람과 그 시대에 관심갔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 인물은 1920년 베이징 대학에서 후스와 천두슈의 제자였던 구제강이라는 역사학자이다. 그는 의고의 시대를 열어젖힌 장본인으로서 삼황오제와 하은주 등의 중국 고대역사를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1950년대 출토 문헌과  유적지 발굴이 본격화 되기 전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며 수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고대역사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자랑하던 구제강은 엄밀한 고증을 거쳐 묵자의 조상이 "백이와 숙제"라는 추론을 펼친 것이다. 백이와 숙제라면 선진제자의 칭송을 넘어 수많은 문인들이 이들의 절개를 앞다퉈 칭송했던 인물들이 아닌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라도 구제강이 묵자의 뿌리를 자랑할 만한 "가계와 조상"으로 의도하는 것 아닌가 의심도 들긴 했다. 그러나 지금 내 관심사는 그의 주장의 진위가 아니라 "그가 왜 묵자에 주목했는가" 이다. 1920년대와 30년대 중국은 자신들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근원으로서 "당당한 혈통"을 원했던 것 아닐까? 

 

내가 아는 묵자는 천민 출신이다. 유가를 공부했다고 하나, <묵자>라는 책이 그렇게 명문이라고 평가받지는 못한다는 정도다. 묵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 기억할 만한 내용들은 이 정도이다. 그런데, 묵자를 연구한 학자들은 "묵자식 S형"으로 이들 사상의 변천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유자와 교유하며 천민에서 사(계릅)로 상승하는 과도기를 거쳤고, 유자와 논쟁을 통해 유가를 벗어나 묵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첫 시간 <묵자>의 차례가 "친민"이 아니라 "친사", 즉 선비와 친하다로 시작하는 데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두 번째 차례는 "수신"이어서 더욱이 유가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유가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유가와 달리 묵자는 우임금의 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치수사업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우임금이라면 유가에서의 공경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유가에서 우왕의 예법을 강조한데 비해, 묵가는 "천하를 이롭게 하는 현실주의", "발꿈치가 닳도록 삶에 열중하며, 고통을 즐기는 이상주의", 세상을 위해 물러나지 않는 "희생정신"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저자 천쉐이런은 설명한다.  글쎄 유가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유가가 요순우탕문무주공을 내세운데 비해 "우임금"만 방점을 뒀나? 살펴보니, 지금까지 읽은 <묵자>에는 "요순우탕문무의 도"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그렇다면 이렇게 읽고 싶은 후대의 의도가 담긴 해석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학자 가운데 "첸무" 또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구제강이 베이징 대학 교수직을 제안 받았을 때 자신 보다 더 뛰어난 학자로 추천받은 이가 바로 첸무이다. 그는 <선진제자계년>이라는 책을 쓴 제자학의 대가이다. 그런 그가 <묵자전략>을 통해 주나라를 따른 유가와 하나라를 본받은 묵자를 대비시킴으로써, 묵자가 하나라 우임금의 실천 정신과 인격적 역량을 발굴하고 선양했다고 평가한다. 

 

이 당시 묵자에게 우임금의 이미지를 매칭하는데 앞장 선 이 중에는 루쉰도 있다. 루쉰의 글 <중국인은 자신감을 상실했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인을 논하기 위해서는 겉에 바른 자기기만의 분칠에 좌우돼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의 근골과 등뼈를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억척스레 일하는 사람, 필사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 백성을 위해 자신을 바친 사람, 자신을 버리고 법을 추구한 사람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등뼈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실천이지 말이 아니다.  말은 유자이며, 실천은 묵자다."

 

이번 주 <묵자>는 사과부터 상현까지 읽었다. 현자를 높인다는 상현은 대부분 유가의 말과 비슷한데 중간중간 낯선 표현이 보인다. 가령 "비록 농업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천한 사람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그들을 등용했다... 관리라해서 언제까지나 귀한 것이 아니고 백성이라 해서 언제까지나 천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유가의 말에 묵가의 말을 한 숟가락 얹은 정도이다. 

 

차라리 내 관심을 끄는 점은 이들 편명과 더불어 구성이다. 제자백가세미나에서 그동안 <한비자>, <순자> 등 전국시대 말엽 책들까지 보아서인지 이들의 유사점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묵자> 중 <묵경>만 묵자가 직접 지었고 나머지는 후대의 작업이라고들 한다. <순자>의 첫 시작에서 청출어람과 <묵자>의 첫 시작에서 염색실은 당시의 "염색문화"가 화두였던 것이 아닐런지. 

 

이 책에서 묵자는 공자와 백년 정도 차이로 나온다. 그렇다면 맹자보다는 몇 십년 정도 앞선 정도이다. 맹자는 양주와 묵적이 천하를 가득하다고 했다. 과연 묵자는 어떻게 시대를 풍미했던 걸까? 이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당시는 고죽국의 후예라는 가계도를 내세운 흔적도 없다. 이미지를 덧입힌 것은 당나라 이후 후대의 작업들이다. 다행히 다음엔 묵자의 뽀인트 사상이라 불리는 "겸애"편까지 읽는다. 루쉰까지 사로잡았던 묵자의 매력과 만나고 싶다.. 간질히. ㅠㅠ

 

 

댓글 1
  • 2023-04-25 17:46

    당시 사람들에겐 말로만 이상사회를 외치는 유가보다는 몸소 실천을 보여주는 묵가에 더 끌리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염색에는 왜 꽂히신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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