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향연』으로 그리스 철학 엿보기

토용
2023-03-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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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으로 그리스 철학 엿보기

『향연』, 플라톤

 

 

사랑으로 미덕을

그리스 철학 원전을 처음 읽었다.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이 저자인데, 2500년의 간극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연극 대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공자와 불과 100여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글쓰기 스타일이 이렇게 다르다니... 일단 동양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한 권 읽고 설레발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향연』은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아가톤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에로스에 대한 여러 견해를 대화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야말로 6명이 돌아가면서 에로스를 찬미하는 말의 향연이었다.

이들이 에로스를 찬미하기로 한 것은 파이드로스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는 에로스가 오래된 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다른 신들에게 하는 것처럼 찬가를 바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은 지 하도 오래 되어서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 기억속의 에로스는 아름다운 엄마를 둔, 볼 빨갛고 엉덩이가 통통하고 등에 작은 날개가 달린 천사 같은 모습의 아기였다. 거기다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큐피트의 화살을 가끔 엉뚱한데다 쏴서 말썽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참 신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존재감도 없었는데, 『향연』에서 찬미하는 에로스는 내가 상상하던 그 에로스가 아니었다.

 

 

에로스를 찬미하는 내용은 주로 에로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가 가진 미덕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것들이다. 에로스는 정의, 절제, 용기, 지혜 등과 같은 미덕을 가지고 있고, 인간이 이러한 미덕을 자신의 내면에 갖추고 구현할 때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직업에 걸맞게 찬사의 말을 늘어놓는데, 그 중 에뤽시마코스는 의사답게 몸으로 에로스를 설명한다. 몸 안의 적대적인 요소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바로 에로스가 한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건강한 몸을!’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음악처럼 의술에서의 에로스도 조화롭게 하기 위한 매개, 수단이 된다.

 

에로스에 대해 가장 재미있는 견해를 내놓은 사람은 아리스토파네스였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갖춘 남녀추니를 등장시키더니, 제우스가 이 남녀추니의 강한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해 두 쪽으로 나누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신에 의해 잘린 반쪽을 찾기 위해 모든 인간은 잃어버린 부절을 찾듯이 온전한 사랑을 이루려는 마음이 생겼고, 인간에게 내재하는 이 사랑이 둘을 하나로 만들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발언자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그는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하지만 결국 이것은 에로스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고 욕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좋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진다. 사랑은 그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하고 출산을 하는 것이다. 필멸의 존재에게는 생식이 영속적이고 불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임신은 몸 보다는 혼, 즉 정신적인 임신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바로 지혜와 미덕이다. 사랑을 통해 공동체의 질서유지에 필요한 미덕과 법률 등을 출산한다.

 

아름다운 몸에서 아름다운 활동들로, 아름다운 활동들에서 아름다운 지식들로, 아름다운 지식들에서 아름다운 것 자체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돕는 것이 바로 에로스이다. 에로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련된 신이고, 그런 에로스를 찬미함으로써 나의 마음이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덕목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보다 인격적,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조력자가 바로 에로스인 것이다.

 

대화법 맛보기

사실 『향연』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로스에 대해서가 아니라 대화법에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의 짧은 대화와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와의 대화를 통해 대화법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 알 수 있었다. 다른 책을 더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디오티마의 질문 방식은 아마도 생전의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 방식이었을 것 같다. 언뜻보면 말꼬투리를 잡으면서 잘못을 인정하게끔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계속되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고, 상대방과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인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개념을 명료화’했다고 한다.(『서양철학사』 p.75)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와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에로스라는 개념을 분석하고 명료화시키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연인과 연동, 그것이 알고 싶다

『향연』에서 많이 언급된 연인-연동은 생소한 말이었다. 단지 동성애라고만 하기에는 육체적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관계인 것 같다. 파이드로스는 연인-연동의 수치와 용기에 영향을 끼치는 에로스에 대해 말했다. 그는 연인-연동이 서로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행동할 것이고, 그 바탕에는 에로스가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에로스가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인다.

 

파우사니아스가 말하는 에로스의 두 종류 중 우라니아 에로스는 소년들에 대한 사랑이고, 남성적이고 지성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이 에로스는 연인-연동의 우정과 연대감의 바탕이 된다. 이 에로스의 미덕으로 인해 연인은 연동을 더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고, 연동은 배워서 지식을 더 쌓아갈 수 있다. 이 반대편에 만백성의 에로스가 있다. 만백성의 에로스는 여성적, 비지성적 사랑으로서 목표 달성이 중요하지 아름답게 달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스 사회가 남성중심의 시민사회라고 했을 때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에 관한 사고방식이 우라니아 에로스로 표현된 것 같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장에 따르면 연인-연동은 본래 완전한 전체였지만 신의 노여움으로 갈라진 반쪽들이다. 사랑은 바로 완전한 전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연동을 만나게 해주는 신이 에로스이기 때문에 에로스를 찬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로스를 찬미하다보니 아름다운 사랑, 사랑으로 완성되는 행복을 말하다보니 연인-연동의 예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관계가 그저 감정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연인은 연동을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스승처럼. 시민사회를 이끌어나갈 한 사람의 완성된 인격체를 키워내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에 대한 알키비아데스의 찬양은 그의 지혜를 사랑하여 그를 닮고자 하는 알키비아데스의 사랑이다. 읽는 내내 그리스 사회에서 어떤 맥락으로, 어떤 문화적인 요인으로 연인-연동이라는 것이 생겨났는지 궁금했다.

댓글 6
  • 2023-03-13 11:04

    토용님의 <향연>읽기 반갑네요~ <알카비아데스> <파이드로스> <편지>.... 시간날 때 하나씩 읽어보세요. 더 재미있을 거예요^^

  • 2023-03-13 11:12

    겸목님의 댓글을 보니 저는 <변명>을 일순위로 추천하고 싶군요.ㅎㅎㅎ
    아무튼 토용님의 서양철학 원전읽기를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에티카> 같이 읽고 싶어요~~

  • 2023-03-13 13:54

    토용샘의 글을 보면서 철학입문 세미나를 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 2023-03-14 01:25

    저도 변론 추천합니다! 더불어서 크리톤도 좋은 것 같아요. ㅎㅎㅎ 특히나 크리톤은 분량도 짧으면서 글로 써볼만한 주제 한가득이라 더 추천입니다!

  • 2023-03-14 07:04

    연극적인 대본 같다는 건 어떤 구성이길래 그럴까? 대화법도 직접 한 번 보고 싶다... 토용샘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ㅎㅎ

  • 2023-03-15 09:34

    다들 <변명/변론>을 추천하시는 군요..!? 그 이유가 넘 궁금하네요. 다음 토용쌤 글에서 알 수 있게 되려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