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대신 'SF' 클래식, 일곱 번째 시간

유하
2023-04-26 02:18
207

 수업에 들어가기 전, 메모를 올리지 못한 나의 머릿속은 온통 불안에 찌들어 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들어간후, 불안에 떨던 나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메아리 치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또 하나의 생각도 함께 메아리 쳤다. '메모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많은 분들이 불건전한 동질성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일단 많은 분들이 오버로드의 모습이 악마의 형상으로 드러난것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인간 사회에서의 악의 상징인 악마의 모습이 사실은 오버로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이 꽤나 그럴듯했고, 기발했다. 그밖에도 게임 스타크래프트 에서의 오버로드, 성경의 요나와 책에서의 젠이 가지는 유사성 등등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마침내 인간의 아이들이 오버마인드의 하나의 거대한 정신으로 통합된다는 개념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정신으로 통합된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각각의 개체성이 모조리 사라지고 그냥 단 하나의 자아로만 존재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개체성은 유지되지만 각자의 생각을 완전히 공유하게 되는것일까(그런데 이 경우 과연 이것을 개체성이 유지된다고 볼 수가 있는것일까? 모든 생각이 공유되는 가운데 과연 어떤것이 각각의 개체를 구별해주는 것일까?). 또한 이렇게 개체성을 잃어버릴 경우,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것인가. 사랑, 외로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우리는 계속 가져갈수 있는것일까. 우리가 서로 이해하기 힘든 개인으로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별들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오' 이 문장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메세지인것 같다는 의견도 누군가 말해 주셨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문장인것 같다. 한편으로는 약간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이 우주에서 지금 우리와 함께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존재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니. 나는 단 한번도 그런 존재들이 인간들보다 고등한 생명체일수 있다는 생각은 의외로 해보지 않은것 같았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하등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충분히 우리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질수 있다. 그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들의 머릿속에(그들에게 '머리'라 불릴만한 것이 있다면) 오버로드들과 같은 착한(?)생각이 있지는 않을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를 언제든지 찾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인류가 이룩한 모든것을 무너트릴 힘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무력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차원에서, 그들이 그 정도의 힘과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벌써 우리에게 와서 마음껏 우리를 난도질 했을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일러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 안심되었다.

 이제 다음수업에는 필립.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라는 책을 가지고 수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 책을 마지막으로 첫 학기가 마무리 된다. 이 SF세미나를 처음으로 문탁이라는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혼자서라면 읽어보지 않았을 SF책들을 벌써 3권이나 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책'유년기의 끝'에서 인류는 유년기의 끝에 다다른다. 나는 아직 유년기의 끝에 대대르지 못했다. 그 끝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그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남은 유년기를 보내고 싶다.

댓글 2
  • 2023-04-26 22:51

    결말(인류의 의식 통합)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일단...
    외계인들도 '효율성'의 측면에서 '진화'를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싸우고 시간 낭비하고 답을 찾아 헤매고 이런 거 다 뛰어넘고 모든 정신이 하나가 되면 이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물론 좋긴하겠지만(?) 이게 좋은 발전인가 싶습니다. 이것도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가 생각한 이상적인 모습이고, 우주 더 멀리멀리 나가면 다르게 믿는 존재가 존재할 수도 있을 지도요?!
    ....라고 결론을 내며 이 요상했던 소설을 마무리 합니다 ㅎㅎ

  • 2023-05-02 17:17

    개체가 아닌 우리, 폭압적인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통합된 우리를 상상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나'라는 개인이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우리가 항상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이야말로 미덕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 그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혹은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영성의 영역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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