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1주차 질문 모음 & 공지

정군
2023-12-29 22:45
486

 

드디어 다음주부터 [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세미나가 시작됩니다.

아마 텍스트를 읽으시면서 어려움과 당혹스러움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런데 동시에 최전선의 사유가 주는 신박함도 느끼시지 않으셨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강의 모집 공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첫 주에는 텍스트의 1부1장에 해당하는 '신유물론의 배경과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페이지로는 143쪽까지고요. 해당 진도 안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좋겠다 싶은 것,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는 것을 질문으로 정리해서 이 게시물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세미나는 텍스트 순서에 따라 질문들을 정리해서 질문을 하나씩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따라서 '질문'을 올려주실 때 해당 질문이 나온 텍스트의 쪽수를 명기해 주셔야 합니다. 특정 부분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면 '[전체]'라고 달아주시면 되고요. 아래에 예시에 따라 올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예시1) [42쪽] "신유물론의 입장에서 이러한 관계항의 실체화는 곧장 관계 자체의 실체화로 나아가게 된다"고 할 때, '관계항의 실체화'와 '관계의 실체화'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예시2) [전체] 박준영 선생님이 설명하는 맥락을 보면 '유물론'은 비단 현대에 이르러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대 철학부터 이어져온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neo)'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야만 하는 이유는 명시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신유물론'이라는 특정한 사상이 생겨난 것이라기 보다는 '유물론' 자체가 변화를 겪어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올려주시면 됩니다. 질문은 세미나 당일 정오까지 꼭 시간을 지켜서 올려주세요. 시간을 지켜주셔야 진행자가 질문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댓글 15
  • 2024-01-02 23:00

    1부, 1장, 3절, (1) 이분법의 종언과 긍정의 유물론(P.101-P.114)

    신유물론은 이원론을 끊임없이 회피하려 시도하는데, 그 중요한 방법은 횡단성이다.
    일단, 이원론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이유로 ‘부정성’을 지목한다. 두 개의 대립항은 언제나 서로에 소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정은 “연속하는 부정성과 진보의 서사”를 그리며 끊임없이 이원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원론의 '포획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신유물론자들은 이분법과 부정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멀리 던져 놓기(p.111) 위해서 ‘이항 대립의 관계성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이원론을 횡단하거나 돌파하려 한다.
    이러한 긍정의 신유물론이 우발성과 함께 생성의 철학으로 전개됨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많은 철학자들이 논의하는 규범, 법(자연법), 윤리 등으로 표현되는 윤리학은 신유물론에서는 어떻게 정립하는지 궁금해진다. 근대적 인간중심적 이성적 사유를 벗어나는 다른 방법일텐데 어떻게? 신유물론의 횡단성과 긍정성으로도 윤리학이 논의 될 수 있나? 간단하게 질문하면, 신유물론에도 윤리학이 정립되나요?

  • 2024-01-02 23:55

    [42쪽] 원자들이 클리나멘이라는 우발성이 있어도 영원불변하는 본체로서의 그 원자 자체는 남아 있다는 점에서 '원자-물질의 수동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동성을 원자가 능동적 행위자가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발성은 원자의 능동적 행위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필연적 법칙을 수동성으로 보고 있는데 필연적 법칙에서 벗어난 우발성은 능동적이라고 할 수 없을까요?
    [59쪽] "우연의 긍정이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지면, 우발성의 긍정이 된다"고 하는데, 우연과 우발의 차이점을 알고싶습니다.
    [79쪽] "생기적 신유물론은 유물론의 구체적인 죽음의 역사성을 미리 기각함으로써, 물질에 관한 비수행적 관점으로 이끌리게 된다"고 할 때, 물질에 관한 비수행적 관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2024-01-03 00:45

    일단은 책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철학을 현재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군샘 말마따라 신박합니다. 아울러 신유물론의 지도제작이라는 저자의 목표는 적어도 제게는 아주 훌륭하게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물질의 능동성이 생기론으로 기우는 것에는 일종의 경계감이 자리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제인 베넷을 생기론적 유물론자로 갈음하겠다고(P11)하거나 물질에 역량을 넘어 힘을 부여하자마자 얼룩처럼 기이해 보인다(77)거나 합니다. 역량은 괜찮은데 힘은 좀 아쉽다는 이 경지에 대해서 논의를 해 보았으면 합니다.

  • 2024-01-03 00:51

    [전체] 신유물론의 물질에 대한 새로운 사유구도(물질적 전회)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면서 정신과 물질의 서로 뒤얽힘을 강조한다는 관점에서는 자연스레 ' 애니미즘'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현대 과학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는 사유라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신유물론은 이미 우리에게 어쩌면 오래된 익숙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애니미즘과 신유물론의 상호 공통의 지평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112] 신유물론은 물질이나 생명같은 차이나는 행위소들의 '환원불가능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사유함으로써 변증법적 대립을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의 유물이라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것으로서의 '부정성'이 강조되며 '시체를 먹고 사는 철학자들'이라는 표현이 소개되고는데, 신유물론이 이렇게 분개하는 대상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나요?

  • 2024-01-03 01:22

    정군쌤이 <예시2>로 제기한 문제가 저도 궁금했어요. 원어는 모두 'materialism'인데 '신'을 붙이고 있고, 또 누군가의 썰에는 '부정적'이니 '실패한' 이니 하는 단어를 쓰고 있더라구요. 그중에서도 24쪽에 나오는 하먼에 대해서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OOO를 '반유물론'이라고 했는데, 그를 비판하는 이른바 '수행적 신유물론'자들은 '부정적 신유물론'이라고 하면서 '관념론'에 속한다고 비판하더라구요. 왜 하먼은 이런 비판을 듣고 있는지, 그의 OOO를 알면 알 수 있을까요? 뒤에 그에 대한 소개가 나오나요?

    43쪽)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과 우발성을 끝까지 밀어 올린 혹은 재독해를 통해서 알튀세르는 에피쿠로스 유물론을 '과정의 유물론'이라고 말한다. 과정에 촛점이 주어지므로, 이때는 주체라고 불릴만한 것은 없고, 더 이상 클리나멘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그것의 지반을 떠났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에피쿠로스를 재독해하면서 자신의 유물론을 정립한 알튀세르인데, 우연성을 말하면서 필연성으로 귀결되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우발성을 필연성의 양상 또는 그것에 대한 하나의 예외로 사고하는 대신, 필연성을 우발적인 것의 마주침의 필연-되기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설명해주세요. 그리고 67쪽) 또 알튀세르의 '반인간주의'가 나오는데, 그것과 '포스트휴머니즘'과 비교하는 각주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지형을 그리기가 힘드네요.

    53쪽)시간성에 관한 논의에서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는 시간으로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아이온의 사건의 시간과 뭐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은데...어디가 다른지?

  • 2024-01-03 08:20

    오홋!!!!!!! 책을 읽으면서, 수동성과 우연성에 대해서 만날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제가 신유물론 책을 읽고 있는 것 자체가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신청하고 입금하고 책을 사러 알라딘에 가는 것, 알라딘 서울대입구점에 '신유물론' 책이 있을 확률, 그 책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따.그.고.그!!!

    [p.53] (이 부분은 자작나무샘과 겹치네요~) 셋째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의지가 개입되는 시간이다.
    >>> 사건의 우발성에서 인간적인 의지가 개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오히려 ‘아이온’의 시간에서 ‘사건의 강도가 달라진다’라는 의미를 인간적인 경험이나 의지의 개입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p.88]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딱딱한 물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기초 입자는, 실제로 비장소적인 양자장 요동의 생산물인 것이다.
    >>> ‘비장소적인 양자장’이라는 말은 ‘역전 앞’이라는 말처럼 의미가 중복되는 것은 아닌지요? ‘양자장’이라는 것, 혹은 ‘장’이라는 것 자체에 이미 ‘비장소적’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딱딱한 물체’가 ‘요동의 생산물’이라는 이론물리학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직관적으로 다가오진 않네요.

    [p.94] 보통 우연이란 확률을 의미하는데, 이 ‘조작적 우연’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우연은 “완전히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인과 계열이 서로 교차하여 일어나게 되는 사건”이다.
    >>> 이 표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연을 조작적 우연과 본질적 우연,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p.95] 미시적 차원의 우연이 발생하게 되면, 이제 거시적 차원에서 필연성의 장이 펼쳐지는데, 이를 ‘진화’라고 한다. 라는 구절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보이듯이, ‘장’이라는 것이 이미 비장소적인 뜻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 2024-01-03 08:21

    [53쪽] 저도 자작샘의 질문처럼 카이로스의 시간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나선형의 시간의 의미를 좀 더 알고 싶습니다.

  • 2024-01-03 09:18

    (45쪽) 상관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해보았으면 합니다.

  • 2024-01-03 11:07

    [120쪽] 이것은 사실 근대도 탈근대도 아닌 라투르가 말하는 바, '비근대'의 지대에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유물론의 '신' 새로움은 긍정의 유물론과 비근대의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말하면서 '탈근대'가 아니라 '비근대'를 말하는데 이 비근대가 라투르의 개념인가요?
    굳이 탈근대가 아니라 비근대라고 하는 걸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서요
    탈근대로는 이분법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건가요? 근대적 이분법을 벗어나자는 것이 탈근대 아닌가요?
    제가 모르는 라투르의 '비근대'가 있는 건지요?

  • 2024-01-03 11:35

    70쪽: 접근불가능성의 신유물론들
    :74쪽-버틀러는 물질성의 부재를 통해 물질을 촉지한다고 생각한다. 즉 언설 불가능성이라는 불가지적인 힘 앞에서, 재현 불가능성 앞에서, 실패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의 은폐라는 그 과정에서 물질성을 구성하고 알게 된다. 이것은 어떤 능동성으로서의 물질이 아니다.

    : 저자는 이런 설명 끝에 ‘실패의 유물론’ 이라고 명명하는데요, 물질성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실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가요? 172쪽 “물질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실체 전환’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에서 실체 전환에 대해 라투르의 ‘비환원적 물질’ 과 같다고도 하고요. 그렇다면, 위의 주장으로 보면, 버틀러가 주장하는 물질성과 관련한 논의는 결국 무엇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의미일까요? 다시 75쪽으로 오면, 물질성을 “일종의 사물-자체나 인식의 궁극적인 원자적 요소”로 본다고 했는데, 물질성을 이렇게 보는 인식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 2024-01-03 11:48

    [98쪽] “그로츠는 다윈의 진화론이 가진 자연과 사회 간의 기초적인 연속성 그리고 완결성을 긍정한다. 그것은 단지 사회의 요청들과 함께 가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의 질서와 조직화를 지배하는 선별적 과정들과 함께 가는 사회적인 것이다. 이로써 ‘자연-문화’로부터 하이픈을 뺀 자연문화 결연체를 신유물론적 페미니즘이 사유하도록 만든다. ”
    이 외에도 99쪽에서 그로츠는 다윈의 진화론을 재해독하면서 신유물론을 이야기하는데요. 둘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 2024-01-03 12:14

    p45 상관주의에서 신유물론으로 확장된 지점이 뚜렷이 잡히지 않아 설명 부탁드립니다.
    p62 '우발성을 필연성의 양상으로 사고하는 대신 필연성을 우발적인 것들의 필연-되기'로 생각해야 한다고 맺으면서, 위에서는 '세계는 필연성의 체계'라고 명시해 놓았어요. 이 부분에서 연결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12시가 넘었네요.ㅠㅠ

  • 2024-01-03 12:14

    오랜만에 서문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철학인가 에세이인가.. ㅎㅎ 제 관심사나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는데다, 철학을 외국인의 해설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미덕을 갖추었더군요.

    <83p> 현대물리학은 이러한 지속적인 요동과 운동 과정의 핵심을 '양자'라고 명명한다. 이때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서 그 양자는 원자 아래 단계, 즉 아원자 단계의 입자다. 이러한 단위의 입자들은 양화가 가능하지 않지만,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다.

    저자는 아원자 단위의 입자는 양화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아원자(글루온)는 질량이 0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자는 모래 알갱이가 아니라 에너지이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결정될 수 없는 상태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영어로 quantum(양자)은 우리말로 하자면 "양화"라는 의미이고, 이들 양자(전자 등)의 위치는 확률로 표기한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는 아원자 단계의 입자는 그 양자를 더 쪼개었을 때 만나는 글루온 같은 더 작은 단위의 입자를 의미하는 것 같긴한데, 이들은 양화되지도 않고 확률로 결정될 수도 없다는 표현이 애매한 것 같다.

    <103p> <114p> 이전 문화 이론에서는 양극단의 균열에 존재하는 심연에서 창발이 가능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자는 이런 문화이론을 "이원론적 초월성"이라고 비판하며 "일원론적 생성의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긍정의 유물론을 강조한다. 이것이 신유물론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며, 행위소들간의 관계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114p에서 저자는 "관계성의 증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개별체로 접근할 때 자본에 쉽게 포획되는 점에 비해 "관계성"은 인간중심성을 벗어난 포스트휴먼의 윤리-정치학이라고 설명하며,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처럼 "관계성" 개념을 이어나가고 있다. 과연 관계성은 개별체보다 새로운 가치를 좇으며 쉽게 자본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령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관계성은 물리학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창발"와 닮아 있다. 불특정 다수들이 이용하는 전철노선도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개별 이용자들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전체적으로 이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면 어떤 관계성이 보인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복잡계 이론은 벌써 자본화되어 다양한 산업분야에 쓰이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신유물론은 관계성에 지나친 낙관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개별체보다 포획이 쉽지 않을지 몰라도(이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 관계성을 기반으로 파급효과는 더 빠를 수 있지 않을까...

  • 2024-01-03 13:29

    오늘 질문들입니다. 늦게 올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세미나 전까지 업데이트하겠습니다.

  • 2024-01-03 13:56

    에피쿠로스 원자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감각 지각, 문화적 관습, 언어의 선입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재 존재(원자와 허공)에 접근할 능력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도 무한 속도로 움직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고와 지각을 통한 접근(앎)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의 앎이 직접적 감각이나 지각 과정으로 충분치 않기 때문에 과학적 실험과 같은 간접적 방식을 경유하여 '감응'(affect)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유물론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비재현성'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40-41쪽)

    그럼 "인간이 실재 존재에 접근한다는 것=최소 입자 파악=인식론적 범주를 초과하는 앎=감응"이렇게 봐도 되는 걸까요? 최소 입자를 파악하기 위해 간접적 방식(과학, 실험)에 의존해야 한다면, 신유물론에서 말하는 '감응'과 '비재현적 앎'은 과학적 이론을 전제하고 있는 게 맞나요? 신유물론의 '실험적 행위자'가 객관적 관찰자의 지위를 벗어나 실험 자체의 불확실성 안에 스스로를 산입하고, 실험적 발산과 재귀적 수렴을 반복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시적으로? 이론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까요?(89쪽)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 실험적 행위자로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신유물론이라는 이론적 맥락과의 마주침으로 요동치며 변화하는 나-사회-역사에 대한 '앎'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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