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의 힘, 6~8장 후기

이스텔라
2022-08-26 18:12
234

개인적인 일이 생겨 세미나에 몇 주간 불참하는 동안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걸렸다. 바이러스를 회사에서 옮겨온 남편은 정작 힘들지 않게 이겨냈는데 나는 일주일의 격리기간이 지난 후로도 한참을 후유증을 앓았다.

 

여울아님에게 책 소개를 받자마자 반해버렸던 ‘미적분의 힘’을 결국 같이 읽지 못하고 나중에 혼자 봐야하냐…싶었지만 다행히도 지난 주부터 다시 세미나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 주만 더 늦게 합류했어도 후기를 안 쓸 수 있었을텐데…. 책이 재밌는 것과는 별도로 그건 좀 아쉽다. 좀 더 아픈 척 할걸.

 

하여간 여울아님의 무서운 닥달을 받으며 다시 후기를 남겨본다. 이 책은 껄끄러운 제목과는 달리 아주 아주 부드러운… 세상에서 미적분을 가장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소개하는 책이고, 정말이지 공식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일상의 언어로 미적분의 의미를 풀어쓰는 기적을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투덜거리며 계속 여울아님 옆에 붙어 있어야겠다. 나 혼자서라면 접하지 못했을 보석 같은 책들을 건질 수 있을테니까.

 

아프고 났더니 이 게시판에 다시 적응이 안된다. 글쓰기가 불편해서 쓰려던 말도 자꾸 까먹게 된다. 혹시 이러다 통으로 날려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 완성되지도 않은 글을 일단 버튼을 눌러 올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든다. 하여간 게시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노트 한 켠에 끄적였던 메모 한 개 고작 아래에 옮겨본다.

 

이 책은 수학적인 화두를 넘어서 아주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너무나 생각이 폭발해서 세미나 시간 내내 다들 이야기 나눌 시간이 짧다고 아쉬워하곤 한다. 그런 수많은 생각들 중 한 가지를 적어본다.

 

상수 부분을 무시하고 무한 멱급수를 간단한 형태로 표현해보자면, ∑Χ^n = Χ¹+Χ²+Χ³…대략 이런 꼴을 지닌다. 멱함수란 말은 정해진 숫자들의 거듭제곱이 아닌, 다른 값들로 변해갈 수 있는 변수인 Χ를 밑으로 하는 거듭제곱, 다시 말해 Χ¹, Χ², Χ³…이렇게 표현되는 함수를 어려운 말로 ‘멱함수’라고들 부른다. 그리고 이런 멱함수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숫자들(수열)의 합을 멱급수라고 부른다.

 

뉴턴이 찾아낸 것처럼 어떤 함수들은 이런 바로 이런 무한멱급수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한 멱급수의 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건 어쩌면 어떤 함수를 1차원, 2차원, 3차원….무한차원까지 펼쳐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 적당한 상수를 곱해주게 되면 0차원의 성분, 1차원의 성분, 2차원의 성분, 3차원의 성분…이렇게 무한차원에 이르기까지의 각 차원의 성분의 합으로서 함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또 곧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실은 함수 뿐 아니라 우리가 그냥 숫자로 알고 있는 것들…예를 들어 4/3 같은 숫자들도 사실은 무한소수로서 3+0.33333….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어떤 무한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숫자에도, 함수에도 종종 무한이 깃들어 있고…심지어 우리가 존재하는 물리계인 우주에서조차 무한으로 밖에 표현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현상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무수한 존재들마다 저마다의 숨겨진, 혹은 접혀진 차원 속에 무한의 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무한은 생각보다 우리 아주 가까이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궁극의 최종적인 입자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채 끝없이 쪼개지는 기본 입자들을 구경중이고,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는 어쩌면 경계가 없는 무한 그 자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한소와 무한대의 심연 가운데에 자리한 채 살아가는 존재인걸까? 무한의 블랙홀에 빨려들지 않고 버티고 사는 것이 이 자리에서의 삶일까?

하지만 더 멀고, 더 큰 궁극의 것을 바라보고 예측하기 위해 우리는 무한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우리가 디디고 선 지평선의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기에 그 너머를 발돋움해 보기 위해서는 무한의 마법을 빌려야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법칙을 헤아리는 것이 마치 하루살이가 억겁의 세월을 흐르는 우주를 감히 상상해보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렇게 한 개의 희미한 점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우주의 보잘 것 없는 한 구석에 살아가는 변변챦은 존재인 주제에 어쩌다가 이렇게 거대한 무한을 꿈꿀 수 있게 된 걸까?

댓글 4
  • 2022-08-26 19:33

    이스텔라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세미나의 즐거움이 더 업됐어요!!

    제가 인상적이었던 거 더 추가해보면, 미분소/무한소... 에서 의외였던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 무한히 작게 잘라놓구는 막상 면적을 구할 때는 작은 값은 무시한다는 것.

    - 라이프니츠의 방정식은 불연속적인 수로부터의 발상이라는 것.

     

     

    무한수, 무리수가 연속적인 수 개념이고 실수(정수)가 불연속적인 개념인데,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분방정식에서는 각각 다른 길을 갔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 2022-08-26 21:42

      저도 엄밀한 수학에서 미적분의 본질이 제가 좋아하는 후려치기 일줄이야…대반전!

      • 2022-08-26 22:02

        그쵸.. 미적분이 후려치기라니...

  • 2022-08-26 21:46

    스텔라님 또 뒷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먼저 하시네요.

    재능 있으신듯..책 써보셔요 ㅋㅋ

    우주변방의 이 작은 곳에서 이 조그만 것들이 10억년 전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듣을 수 있게 되었을까?

    그걸 가능하게 한것은 미분..이라고 나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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