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두번째이자 마지막 강의 후기

요요
2024-02-16 15:15
172

우와!! 드디어 <신유물론> 세미나+강의가 끝났습니다!! 네번의 세미나와 두번의 강의, 6회 동안의 신유물론 공부는 박준영샘의 두번째 강의로 마무리되었어요.

 

강의가 시작되자 줌 채팅창으로 (우리가 만든) 질문지에 대한 박준영샘의 답변 파일이 올라왔고, 강의는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변 메모를 꼼꼼하게 보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1회차 질문이 주로 신유물론 일반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2회차 질문은 철학자들 사이의 같고 다른점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낯선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함께 책을 읽지 않고 강의에만 참가한 분들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저는 어려운 내용도 내용이지만, 낯선 철학적 개념들이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박준영샘의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더라고요.^^)

 

저의 경우 <신유물론>을 읽고난 뒤 가장 큰 성과는 신유물론 철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들뢰즈의 강한 영향력 하에서 철학을 전개했지만 스스로를 불충실한 제자라고 호명했다는 로지 브라이도티와 마뉴엘 데란다가 있고요. 로지 브라이도티의 <유목적 주체>나 <포스트 휴먼>은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직접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번에 공부를 통해 접한 새로운 철학자로는 제인베넷이 있는데요. 사실 박준영샘은 자신의 책에서 제인베넷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지만, 저는 제인베넷에 대해 설명한 글을 읽으면서 박준영샘의 비판에 썩 동의가 가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비판의 요지는 제인베넷의 생기론적 유물론의 경우, 물질의 능동성을 말하면서도 물질의 바깥에 '생명'이나 '생기'를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베르그송도 한때는(아마도 지금도) 생기론자로 비판받곤 하는데, 그 경우에도 생기라는 특별한 무언가를 설정한다는 비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생기론'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조심해서 봐야한다고 생각하는지라 정말 제인베넷의 철학이 그런걸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인 베넷이 쓴 <생동하는 물질>을 조금 읽어봤는데, 여전히 박준영샘의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더라고요. 제가 읽은 부분에 제인 베넷은 물질이 수동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박준영샘은 계속해서 제인베넷처럼 생각하면 생명만 중시하고 죽음을 경시하게 된다. 물질은 생명 뿐 아니라 죽음도 포함한다 등의 지적을 했는데.. 앞으로 좀 더 살펴봐야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얽힘이나 간행, 회절적 독해 등의 참신한 개념을 말한 카렌 바라드도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바라드의 경우 물리학자로 출발하여 철학을 공부했다는 점이 특이한데요. 양자물리학의 개념을 자신의 철학에 도입한 것 중 하나가 얽힘이었습니다. 바라드를 통해 신유물론이 현대과학의 성과와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라드는 물질과 담론, 존재와 인식에 대한 이분법을 뛰어넘기 위해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물질-담론, 존재-인식의 얽힘과 간행을 중시합니다.

 

존재론과 인식론을 구별하고, 물질과 담론을 구별하는 것이야 말로 근대적 이분법이며, 신유물론은 이런 이분법과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는 것은 2회의 강의 동안 박준영샘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물질과 담론을 구별하지 않는 사유방법은 고대의 스토아 철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스토아 철학은 금욕적인 철학, 자기 수련의 철학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또 그런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스토아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토아 철학의 원자론과 존재론을 눈여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신유물론이 말하는 물질은 물질/정신 이분법을 전제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 강의 내내 강조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신유물론은 말하자면 그동안 물질/정신 이분법 속에서 위치 지워져 온 틀을 벗어나 물질을 재개념화하는 철학이라는 것이겠지요. 물질/정신 이분법이 얼마나 완고하게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이 문제설정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유물론이 말하는 물질은 물질덩어리가 아니라 물질화라는 이야기입니다. 물질화라는 것을 철학사적으로 이해하자면 베르그송, 들뢰즈로 이어지는 계열과 기술철학에서는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등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몇년전에 문탁에서 줌으로 황수영샘을 모시고 시몽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서 시몽동의 결정화, 개체화 같은 개념이 신유물론과 어떻게 만나는지 이번에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 아닌가 싶습니다.

 

신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은 발생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으로, 준안정적인 것으로, 변조되는 것으로, 가소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은 물질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존재와 인식의 이분법을 넘고, 물질과 담론의 이분법을 넘는 것처럼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횡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데, 이 경우 문화는 물질적인 것의 사건이자 효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담론 역시 비물질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과의 얽힘 속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던진 질문 중에는 바라드의 얽힘,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메이야수의 사변적 유물론의 차이 역시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메이야수와 하먼의 차이를 묻는 질문도 있었고요. 박준영샘은 라투르와 관련해서는 '순환하는 지시체'라는 라투르의 인식론적 개념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듯보였습니다. <신유물론> 책에서도 라투르를 말할 때 중시한 것이 진리대응설이나 반영론을 벗어난 진리관이었는데, 아마 그 점과 관련된 이야기 아닌가 싶더군요. 메이야수의 <유한성 이후>를 조금 들여다 보면서 뭐 이렇게 어려운 책이 있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하먼과 메이야수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갈라서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메이야수의 상관주의 비판이 신유물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된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강의 말미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된 '물질적인 것의 정치'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는데..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박준영샘의 답변지에는 메이야수가 엄청 길게 인용되어 있는데, 메이야수의 정치의 폐절을 박준영샘은 이른바 정치적인 것의 대안으로 보고 있지 않나 싶었는데.. 언젠가 다시 이야기 나누어볼 기회가 있겠지요. 저는 메이야수가 바디유의 제자라는 점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렇게 후기를 쓰다가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저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신유물론 세미나+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물질은 물질화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재현을 통해 비재현적인 것에 가 닿는 사유'의 발견을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중심주의 혹은 인간예외주의를 극복하고자 할 때 물질/정신 이분법을 횡단하면서 원리나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리나 법칙을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지도 모릅니다. 현행화된 사건만이 아니라 가소적이고, 변조되고, 준안정적인 변화의 세계, 잠재성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난망한 일인지요? 그리고 표상과 재현을 통해 비재현의 물질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사유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요?  

 

<신유물론>을 읽고 강의를 듣고 마지막 후기를 쓰는 지금,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여름에 다시 모여, 우리가 알게 된 여러 철학자 중 한사람을 골라 그의 책 한 권을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신유물론 2탄으로요.ㅎㅎ 이번에 함께 공부한 선생님들 모두 다음 세미나+강의에서 만나뵙기를 기대하며 중간에 뚝! 끊기는 느낌의 용두사미 후기를 마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여름에 다시 만나요~~

 

 

댓글 2
  • 2024-02-17 11:17

    저는 이번에 들뢰지언 박준영샘이 그리는 신유물론의 지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왜 그 지도에 제인 베넷은 빠졌어? 브라이도티는 들어가고 그로츠는 빠진 이유가 뭘까? 왜 해러웨이는 넣지 않는거야? 스테이시 엘러이모는?" , 라는 질문도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따라 신유물론의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이야말로, 여성의 '몸', 즉 물질에 기반해서, 관념론의 남성중심성 -보편적, 객관적 인식- 을 문제삼은 집단이니까요)

    보브아르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3th wave 페미니스트들이 섹스와 젠더를 떼었다가 붙였다가 다시 떼었다고 또 다시 붙이고 있는지(브라이도티의 <유목적 주체>는 바로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와 브라이도티, 캐런 바라드, 해러웨이를 넘나드는 페미니즘의 신유물론적, 포스트휴먼적 계보학을 그려보는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급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브라이도티만 들뢰즈-신유물론의 계보학에 기입시키는 건, ㅎㅎ,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쫌 거시기합니다^^

  • 2024-02-17 21:11

    이번 겨울에 <신유물론> 공부하느라 소설도 못읽고, 게임도 못하고, 아이고 아이고 억울해라 내 방학...이라는 그 심정은 여전하지만, 진짜 알찬 방학이었습니다.
    공부할 게 또 잔뜩 생겼으니까요. '들뢰즈'를 중심으로 신유물론의 흐름을 그리는 박준영샘의 말씀들에는 충분히 공감하기는 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신유물론자들'과 '들뢰즈'의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게 변별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들뢰즈, 들뢰즈-가타리의 사유 안에서 모두 말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물론 데란다나 브라이도티에 의해 '들뢰즈, 들뢰즈-가타리'의 생각이 더 확대되었다는 점에는 충분히 공감하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러면, '신유물론'은 단지 '확장-연구'일 뿐 어떤 패러다임을 새로 제시하는 것은 아닌 것 아닌가 싶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 분석'이라는 '응용' 분야에는 훨씬 더 잘 달라붙을 수 있지만, 애써 공부해야 하는 고전적 담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고요. 어차피 시간은 한정적인데, 신유물론 철학을 열심히 읽느니, 들뢰즈, 들뢰즈-가타리를 더 충실히 공부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들뢰즈 이후의 흐름'으로 '신유물론'을 규정한다면, '신유물론' 보다가 결국엔 '들뢰즈, 들뢰즈-가타리'를 다시 봐야 할테니까요 ㅎㅎㅎ. 뭐... 그래서 결론은 이러나 저러나 공부할 게 또 이렇게 쌓여갑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하먼을 좀 어떻게 살려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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