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끝의 버섯> 3회 세미나 후기

요요
2024-01-05 12:19
268

여행가신 르꾸님과 감기로 고생하시는 티니맘님이 못오셔서 다섯이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두분의 빈자리가 느껴졌어요. 다음주엔 완전체가 되어 마지막 세미나를 할 수 있겠지요?^^

 

2부에서 구제축적의 구제와 자유를 탐구했던 것처럼 3부에서는 풍경과 교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자연생태계는 인간의 개입이 없는 것이 가장 온전하고 가장 완벽한 상태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개입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애나칭은 일본의 산림경영인과 작업하면서 그런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송이버섯과 관련해서 보면 송이버섯은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는 것이죠.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인간의 개입이 없는 것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포스트휴머니즘과 대비되는) '반휴머니즘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절멸만이 지구생태계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파괴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겠지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마라!'가 슬로건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니.. 이 슬로건은 사실 굉장히 관념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풍경은 언제나 교란된 풍경이라는 말이 그래서 더 실감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 중에 동은이가 그럼 우리는 어쩌라고, 라는 한탄을 내뱉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교란의 예로 들었는데요.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전에도 일본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에서는 꾸준히 핵 폐기물의 방류는 있었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바다 역시 교란된 숲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교란된 풍경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지, 단지 알아차리면 된다는 건가, 이런 의문도 함께 제기되었어요. 저는 애나 칭이 말하는 알아차림 자체가 '참된 인식을 하자' 이런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을 나누게 되고, 대상에 대해서도 순수한 본래적인 자연, 본래적인 바다, 본래적인 풍경 같은 것을 상정하곤 하는데 자연이든 뭐든 순수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맺으며 항상 새롭게 무언가를 창발하고 있다, 인간 역시 그 풍경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차린다면, 그로부터 지금과 다른 어떤 것을 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동은이는 <세계끝의 버섯>을 읽으며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교란, 오염, 불안정성, 불확정성, 이런 것들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나아가야만 하는 옳은 진보의 방향이 없다면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동은이의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세미나에서는 애나칭이 그 문제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애나칭이 과학 역시 '지식 패치'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패치가 장소적인 것으로 이야기되어 온 것과 달리3부 말미에서는 지식역시 패치를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패치가 단지 장소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아니, 어쩌면 장소를 공간적인 것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역시 지식패치 역시 장소적인 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중국에서 산림관리와 관련하여 일본의 사토야마 재생을 위한 접근이 아니라 미국식 접근법을 택했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일본의 송이버섯 과학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과학역시 맥락성과 지역성을 갖는다는 것은 과학을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에 균열을 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지요. 탈식민주의 이론도도 바로 그런 인식의 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애나칭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나칭이 앞에서 이 책의 각장들은 패치이고, 각 패치들은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3부에 와서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3부를 읽으며 '이 책은 버섯 책이야' 이런 생각을 했다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했는데요, 그것은 바로바로 '날아다니는 포자'라는는 챕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포자는 단지 버섯의 포자만은 아니겠지요. 버섯의 포자가 '퀴어'한 생식을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런 퀴어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앎이, 우리의 실천도 그러한가? 서로를 오염시키고, 풍경을 교란시키면서,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그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리건주, 사토야마, 중국 윈난성, 라플란드 4개의 패치를 하나 하나 살피면서 비인간이 참여하는 역사, 부활, 뜻밖의 기쁨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질성과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의 '국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풍경, 배치, 패치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함께 논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세계끝의 버섯> 번개세미나는  4부만 남겨두고 있네요. 4부 발제는 이미 르꾸샘이 예약하셔서 우리는 열심히 책을 읽고 여러 질문을 마음에 품고 다음 주에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세미나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까요? 기대가 됩니다. 

 

제 맘대로 쓴 후기에서 빠뜨린 중요한 부분들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반장인 동은이가 참석 못한 두분을 위해 자세히 써야 한다고 당부를 했는데.. 하하 그게 쉽지 않네요.^^) 발제문 첨부파일로 함께 올립니다. 모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댓글 4
  • 2024-01-05 20:55

    저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인간이 배제된 자연이 뭔가 가장 자연스러운 완벽한 자연(?)'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지만 자꾸 되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2024-01-08 16:29

    이것은 폭풍 같은 주말을 보내고 난 제게도 감사한 후기이네요. 요요샘의 후기를 다시 읽으며 지난 시간을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인간은, 나는, 언제나,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계속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2024-01-08 22:57

    잠시 신유물론 방이 아닌가 착각을 했습니다.

    • 2024-01-09 14:01

      이 책이 포스트휴머니즘 인류학 텍스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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