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세 번째 후기

이소영
2024-03-06 22:13
99

이 책의 마지막 장들은 프롤로그의 장면에 이어지고 있다. 저자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서 그가 근무하는 칼텍연구소로 향한 이유는 천문학계에서 역사적인 결정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왕성이 태양의 9번째 행성 지위를 잃게 될지 아니면 수많은 행성들이 편입이 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다. 기자들이 프라하에서 벌어지는 그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함께 지켜보며 그의 입장과 설명을 듣고자 한 이유는 그가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저자 마이크 브라운은 태양계에서 새로운 행성을 쫓는 사냥꾼이다. 명왕성 발견 이후 태양계 안에는 더 이상 발견 안 된  행성은 없을 것이라 추측하는 학계의 분위기는 너무나 당연했다. 고도로 발달한 천체망원경들이 계속해서 나왔음에도 21세기가 되기까지 한동안 새로운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 허튼짓일 수 있는 탐색 작업은 가히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매일 하늘을 사진 찍어서 비교하며 반짝이는 점들의 미세한 위치 변화를 찾아내는 작업은 생각만으로도 “난 그런 짓 못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기에 더 흥미로운 도전으로 여긴다. 성공해서 주목 받는 젊은 교수의 모습을 상상하며 친구와 행성 발견에 대한 내기를 하기도 한다.

 

그의 집념은 드디어 위대한 발견을 이뤄냈다. 그는 연달아 3개의 천체와 위성들을 발견하였으며 그 중 하나인 제나는 국제천문연맹의 위원회에서 10번째 행성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도 받는다. 그러면 그는 행성을 발견한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의 딸 릴라에게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행성을 발견한 아버지가 되는 엄청난 일이다. 이 책의 재미는 천문학계의 중요한 사건을 둘러싼 과학적 내용 뿐 아니라, 동시기에 일어난 저자에게 더 중요한 개인적인 사건들이 함께 묘사되면서 오히려 천문학계의 작업 장면과 상황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연구실에만 있어야 할 것 같은 그가 자주 데이트를 하고 장기 여행을 하며, 딸이 태어나면서 부인과 함께 육아를 하면서도 그의 행성 추적은 계속된다. 저자의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과 드넓은 우주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지닌 과학자의 사적 공적 일상을 재치 있는 필력으로 잘 엮었다. 그의 다정하고 낙천적인 여유를 지닌 인간적인 매력과 탐구와 발견을 향한 자연과학자의 집념과 욕심도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중엔 자신의 업적을 높게 평가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학자의 양심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지금까지의 잘 못된 상황을 제대로 돌려놓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모습이라니...좋은 가장으로, 학자와 교수로서의 능력과 직업윤리까지 골고루 다 갖춘 그 이기에 가히 칭송 받을 만 하나,  오히려 귀엽고 친근하게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비교적 큰 천체인 제나가 국제천문연맹 학회의 결의안에서 행성으로 인정될 상황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결과를 위해서 지금까지 해온 연구였지만, 오히려 자신의 발견을 태양계 구조에 대한 잘 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행성의 지위를 가진 명왕성,  그것은  ‘행성’이란 단어가 가지는 두루뭉술한 일반적인 생각 때문에 비롯했다. 이제는 과학적 정의가 필요해졌다. 정의가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명왕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행성의 개수가 9개 그대로 유지되느냐, 명왕성이 퇴출되고 8개가 되느냐, 또는 3개가 포함된 12개냐, 아니면 200개로 늘어나느냐가 결정된다. 저자는 오히려 행성이 몇 개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성의 과학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에 따라 태양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의가 내려진다면 앞으로 사람들에게 태양계를 바라보는 잘못된 관점을 갖게 만들며, 이는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하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는 태양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입니다. 단순한 의미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구분에 대한 질문입니다. 구분, 분류라는 것은 무언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분류란 셀 수 없이 많은 자연 세계의 다양성을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더 작은 덩어리로 나누고 그것을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태양계에 대해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알고 있는 태양계를 분류하는 가장 유일한 단어는 행성 뿐일 것입니다. 그들은 행성이 무엇이고,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각 행성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태양계란 무엇인지, 이 우주의 극히 좁은 이 지역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관해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그리는 모습은 바로 이 간단한 하나의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달려있게 됩니다. 따라서 행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가능한 한 하나의 단어로 태양계의 가장 심오한 묘사를 담아낼 수 있어야 좋은 정의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이크 브라운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개인적 이득이 달린 이해당사자이다. 1930년 이후로  우리가 알고 있던 태양계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며 그가 발견한 천체가 포함된 12개의 행성을 거느린 태양계의 그림들이  신문들의 일 면을 장식했다. 미리 알려진 바대로 결의안이 채택되면 유일하게 생존한 새로운 행성 발견자인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세계 언론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구체적 결정을 앞두자 그의 생각은 신체적 통증으로 반응한다.  상황 반전을 위해 그는 언론사들에 연락을 해서 그의 제나를 포함해 명왕성이 행성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이런 적극적 행동은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이런 상황이 학회에 참석한 천문학자들에게도 관심과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이끈다. 평소 학회에서 하는 투표에 관심도 참여도 없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정의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에 참여하며 결국은 압도적인 표로 명왕성이 퇴출 되는 안이  채택된다.  그의 제나가 행성이 되는 순간 벅차는 기쁨과 영광을 만인들 앞에서 표현 했었을 그가 오히려 “명왕성은 죽었습니다.”라고 선포한다. 명왕성을 논리에 따른 적합한 자리로 옮겨 놓은 것에 대한 안도감과 더불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 이후로 우리의 머릿속 태양계의 모습은 그가 바라는 좀 더 올바른 체계 속에서 그려진다.  개략적인 그림  속엔 태양이 중심에 놓여있고 그 주변을 멀찍이 떨어져서 일정한 궤도로 도는 8개의 커다란 행성들, 그리고 태양계의 가장자리 카이퍼 벨트에 있는 왜소행성들이 있다. 언제가 또다시 새로운 발견들에 의해 정의가 바뀌기까진 말이다.

 

새롭게 발견된 천체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질까? 이 궁금증도 이 책을 통해 해소되었다. 최초의 발견자에게 명명할 권한이 주어졌지만 국제천문연맹이 정한 일정 규정이 있고 그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절차가 있다고 한다. 태양계 천체에는 역사적 인물이나 문학가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그래서 목성의 위성들에는 제우스의 아내들 이름이, 수성의 크레이터들에는 시인과 예술가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왜소행성 제나에게 공식 명칭 ‘에리스’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 위성은 ‘다이스노미’라고 명명했는데, 그의 아내 이름 다이앤과 비슷한 음절이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을 아내에게 바치며 끝까지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제 유명한 ‘명왕성 킬러’로 불린다.  끈질긴 행성사냥꾼 이자 귀여운 사랑꾼인 그는 의도치 않은 무서운 하나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댓글 4
  • 2024-03-08 11:37

    언제 코스모스를 읽었나 싶을 정도로 혼미한 한 주를 보내다가 소영님의 후기를 읽으니 갑자기 다시 그 곳으로 순간이동하는 느낌이 드네요.
    지난 두 달간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우리 다음 겨울에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

  • 2024-03-08 13:37

    혼자 읽었으면 절대 완독하지 못했을 코스모스도 완독하고 명왕성책으로 천문학자가 하는 일들도 살펴 볼 수 있었어요. 마지막 날 본 영화 컨택트에서 함께 배운 내용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였습니다^^
    기회가 닿아 함께 했던 멤버들과 별 관측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샘들 덕분에 부쩍 과학에 대해 재미를 붙였어요.
    우리 또 뵈요!

  • 2024-03-08 23:43

    드라마며 영화며 왠만한 ‘킬러’ 없이는 스토리가 안되는 거 같은데, 우린 너무나 건전하게 명왕성 ‘킬러’의 매력에 빠져 좋아라~ 했지요! ㅋㅋ 우여곡절 끝에 영화도 끝까지 볼 수 있어 좋았구요 ㅋ 벌써 쌤들의 온화한 미소가 그리워요 🥹

    • 2024-03-11 13:00

      맞아 맞아~~ 그 온화한 미소.. ㅎㅎ 별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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