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지능 첫 시간 후기] 인간에 의한 ‘인위선택’은 만연해 있었다

효주
2024-05-13 00:14
128

반려견 레오를 만나면서 리트리버에 관한 검색을 종종하곤 한다. 아무래도 리트리버라는 종이 외래종이다 보니 가끔 국외사이트가 나오기도 하는데 한번은 호주에 있는 강아지 사육사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검색된 적이 있었다. 서투른 영어로 읽어도 강아지를 전문적으로 번식시키는 상업적 번식업체였는데 육종(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통해 희귀품종을 번식시키는 일을 주로 하는 업체였다.

 

자연적이지 않은 인위적인 방법을 통한 품종개량이 강아지를 대상으로도 이뤄진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고 검색된 호주업체가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다윈의 <종의기원>에서도 최재천 교수의 <다윈지능>에서도 육종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었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뿐 ‘육종’, '품종개량', '인위선택', '브리딩((Breeding)' 등으로 불리는 개량사업은 다윈이 살던 1800년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아주 일반적인 일일뿐더러 강아지와 같은 애완동물의 품종개량은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반려견 레오 또한 그렇게 개량된 강아지다. 골든리트리버는 19세기 중엽 스코틀랜드 고원에서 트위드머스경에 의해서 사냥감을 물어오기 위해서 개량된 품종으로 1908년 영국의 도그쇼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호주 한 사이트에서 봤던 그 낯설기만 했던 품종개량은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이미 다양한 동식물에게서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었던 다윈지능에서는 닭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닭은 원래 동남아시아 열대림에 서식하는 붉은멧닭을 가축화한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저 알 낳는 기계일 뿐이다. 알이란 닭들이 우리 식탁에 올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아리, 즉 자식을 얻기 위해 낳는 것이다. ‘도대체 자식을 하루에 하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라며 최재천 교수는 탄식한다. 그러면서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표현하신다. 그 괴물이 이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을 공격하던 바이러스가 언제부터인가 인간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人獸) 공통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철새들의 분변에서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철새뿐만 아니라 텃새들까지 수천, 수만 년 동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하게 한다. 다만 야생상태의 새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엄청난 규모의 집단 죽음이 일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닭장 속 상황은 다르다. 우리는 닭 한마리만 비실거리기 시작해도 순식간에 닭장 안의 모든 닭이 감염 될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멀쩡해 보이는 닭들까지 몽땅 끌어다 묻는 것이다.

 

야생 조류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들 중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좀처럼 전체로 번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르는 닭은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 선택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비록 유전자 복제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진 않았어도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적 다양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 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이 감염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뉴스에서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 살아 있는 닭들을 땅속에 생매장하는 장면을 보는 게 연례 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인간에 의한 ‘인위선택’은 만연해 있었다. 이후 마트에서 달걀을 사지 않고 있다. 레오를 대할 때마다 괜한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작금의 상황이 언어적인 개념으로가 아닌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앞으로 <다윈지능>에서 관련 이야기가 또 언급될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부분이 계속 마음에 쓰일것 같다.

 

 

 

댓글 2
  • 2024-05-13 07:51

    흐음 오늘도 계란을 삶았는데... 왜 매일 알낳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생물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인줄 몰랐습니다...

  • 2024-05-13 09:43

    효주샘의 이번 후기는 우리가 왜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 육종, 품종개량, 인위선택과 매일 알낳는 닭의 슬픔까지... 내용 자체는 다소 무겁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더 넓히고, 자연을 바라보는 '심미적 감수성'(도올선생님의 仁에 대한 표현)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스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72
N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첫번째 후기 (1)
라오니 | 2024.07.26 | 조회 28
라오니 2024.07.26 28
371
N <이기적 유전자> 마지막이야기 - 왜 유전자는 긴 팔일까? (2)
두루미 | 2024.07.25 | 조회 32
두루미 2024.07.25 32
370
<이기적 유전자> 세번째 후기: 피붙이가 특별한 이유 (4)
곰곰 | 2024.07.17 | 조회 66
곰곰 2024.07.17 66
369
<이기적 유전자> 누가 진화의 승자일까? (4)
두루미 | 2024.07.06 | 조회 105
두루미 2024.07.06 105
368
과학 세미나 첫 시간 후기: 바보야, 문제는 유전자야 (2)
최현민 | 2024.07.03 | 조회 111
최현민 2024.07.03 111
367
6월28일(금) 과학세미나 시즌2 시작합니다~
두루미 | 2024.06.22 | 조회 129
두루미 2024.06.22 129
366
[2024 과학세미나] 시즌2 – 유전자냐 경험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14)
두루미 | 2024.06.07 | 조회 611
두루미 2024.06.07 611
365
<종의 기원> 에세이데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6)
두루미 | 2024.05.31 | 조회 183
두루미 2024.05.31 183
364
8주차 후기. 이타적인 행동은 어떻게 진화와 연결될까? (3)
효주 | 2024.05.30 | 조회 87
효주 2024.05.30 87
363
왜 엄마아빠가 있을까? (3)
soo7206 | 2024.05.17 | 조회 172
soo7206 2024.05.17 172
362
[다윈지능 첫 시간 후기] 인간에 의한 ‘인위선택’은 만연해 있었다 (2)
효주 | 2024.05.13 | 조회 128
효주 2024.05.13 128
361
자연선택에는 진화가 없다 (10)
두루미 | 2024.05.05 | 조회 184
두루미 2024.05.05 18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