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두번째 후기

곰곰
2024-02-26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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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주로 어떤 일을 할까?

천문학자라고 하면 천체망원경으로 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관측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망원경을 통해 우주와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는 많지 않은가 보다. 천문 관측 날짜가 배정되면 오랫동안 기다려 짧은 시간동안 별을 관찰한다. 천문학자는 데이터를 받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처음 천체 X(공식명은 콰오아)를 발견하고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에 있는 켁 망원경으로 관측하러 간 저자 역시 천문학자가 굳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대신 와이메아에 있는 제어실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연결된 산꼭대기 망원경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관측 영상과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오퍼레이터)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그곳의 장비를 다루지만 실제로 망원경에 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망원경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몹시 답답하고 불안했다. 천문학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될까?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너무나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사람의 뇌는 해발 4300미터까지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잠도 부족한 상태에서 일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아주 어렵다. 사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천문대에 설치한 어안렌즈로 봐야 훨씬 더 제대로 하늘의 구름을 확인할 수 있다. 풍속계와 습도계도 잘 작동한다. 영상의 싱크도 아주 매끄러워서 영상 대화도 가능하다. 그가 할 일은 모든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천체 X를 찍는 것이다. 여기서 보낸 이틀 밤은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간 자세히 분석해야 할 방대한 데이터를 안겨주었다. 망원경 너머로 천체는 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연구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고치며 자잘한 오류를 손보는 것도 천문학자의 일이다. 때문에 이제는 천문학자들이 컴퓨터를 보는 모습을 떠올리는 편이 맞겠다.

 

더 멀리, 더 선명한 우주를 보고 싶다!

우리가 숨을 쉬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은 모두 지표면을 에워싸고 있는 두꺼운 대기층 덕분이다. 그러나 이런 대기는 정작 천문학자들에게는 큰 불청객이다. 지상에서 관측하는 모든 별빛은 무조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한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 빽빽한 대기 분자로 가득한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모든 별빛은 속도가 느려지고 방향이 굴절된다. 게다가 지구 대기는 균질하지도 않고 곳곳의 밀도가 계속 변화한다. 특히 희미한 별빛을 조금이라도 더 밝고 선명하게 담기 위해 망원경에서 필름에 해당하는 검출기를 오래 열어놓고 별빛을 쭉 받아내는 장노출 관측을 하게 되면 이러한 대기의 작용은 더 치명적이다. 검출기는 한번 들어온 빛을 잃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놓고, 별빛의 경로는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계속 미세하게 바뀐다. 그렇게 흔들리는 빛을 검출기에 하나씩 모으니 원래는 한자리에 모여야 할 별빛의 상이, 그 언저리에서 흔들리고 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망원경에 맺히는 별의 모습은 작은 점 하나가 아닌 펑퍼짐한 얼룩으로 보인다. 이처럼 뿌옇게 퍼진 정도를 시상이라고 하며, 시상을 기준으로 관측하기 좋은 날씨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우리가 천문대에 가기로 찜했던 그 날도 시상이 큰, 대기 상태가 좋지 않았으리라...쩝...)

 

천문학자들은 시상을 흐리게 하고 다양한 종류의 빛을 차단하는 지구 대기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원경을 아예 대기권 위로 올리는 우주망원경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허블 우주망원경은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까만 하늘 영역에서 숨어있던 수만 개의 은하들을 새롭게 확인했다. 우주에 올라간 직후 초반에는 여러 결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말끔히 수리되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우주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다. 이처럼 우주에서 관측을 하면 지구 대기권에 차단되지 않은 자외선, 적외선, 감마선과 엑스선까지 다양한 파장을 볼 수 있는 다중파장 관측이 가능하다. 

 

(안드로메다 은하를 가시광, 적외선, 엑스선으로 찍은 것과 전체를 합성한 사진이다. 파장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

 

이번 책에서도 마이크 브라운이 천체 X의 생생한 관측을 위해 허블 망원경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볼 것인지, 왜 관측해야 하는지 등의 아주 장황한 관측제안서를 제출하고 당시 기준으로 9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더욱이 공식 루트를 따르자니 새로운 천체를 발견했다는 기밀이 바깥으로 누설될까 염려되었다. 운좋게도 지인을 통해 비공식적인 루트로 요청한 결과 3주만 관측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주망원경은 천체 관측의 질을 비약적으로 높여주었지만, 망원경 하나를 우주에 올리기 위해서 드는 비용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굳이 우주에 올라가지 않고도, 좋은 관측을 할 수는 없을까? 1970년대 후반, 미군은 소련의 인공위성을 추적하기 위해 대기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관측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때 실시간 대기보정기술이 만들어졌다. 마치 디지털 카메라의 작은 센서로 미세한 흔들림을 계속 보정하는 손떨림방지 기능을 사용하는 것처럼, 대기의 영향을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아주 강력한 노란색 나트륨 레이저를 하늘에 쏴서 일종의 인공별을 만들 수 있다. 레이저는 대기권 상층부에 반사되고, 하늘을 스크린 삼아 상이 맺히면서 가짜 별처럼 보인다. 쏘아올린 나트륨 레이저의 편평한 빛의 성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빛이 대기권에 올라가 다시 반사되어 망원경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대기의 영향을 받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렇게 측정한 대기의 울림 정도에 맞추어 별빛을 받는 망원경의 거울면을 실시간으로 울퉁불퉁하게 만들면, 마지막에 검출기에 도달하는 별빛의 모습을 다시 편평하게 보정할 수 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100분의 1초 간격), 하늘에 딱 맞춰주는 것이 대기보정기술이다. 과녁을 향해 날아간 화살이 바람 때문에 경로가 휘어질 때, 과녁 자체를 조금씩 구부려서 명중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셈이다. 

 

(앞서 마이크 브라운이 관측하러 갔던 하와이의 쌍둥이 켁 망원경이 이러한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새로운 천체를 찾았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으니...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맨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보인다고 한다. 나는 본 적이 없지만 —;;),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밤하늘에서 별과 행성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뻔한 개념이었으므로, 행성 개념을 특별히 정의할 필요도 없었다. 태양 주위를 돌면 행성, 그 행성의 주위를 돌면 위성, 위성은 아니지만 행성보다 많이 작으면 소행성, 때때로 태양 주위로 다가와 먼지와 연기를 흩뿌리며 지나가면 혜성이었다. 그런데 관측기기도 기술도 발전하면서 행성이라는 대강의 분류에 속하지 않는 예외가 많이 발견되었다. 마이크 브라운은 콰오아를 찾은 것에 이어 2004-5년 사이에만 세드나(플라잉 더치맨), 하우메아(산타)와 그 위성(루돌프), 에리스(제나), 이스터버니(마케마케)을 발견했다. 

 

 

명왕성 근처에서 비슷한 천체가 여럿 나오자, 이들의 정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하자니 그 이웃들도 모두 비슷한데 그중 누구만 행성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기가 애매모호해졌다. 과학기술은 갈수록 더 발전해 더 많은 이웃들이 발견될 텐데..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기존에 있던 오래된 행성을 하나 죽이는 것보다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편이 천문학계에도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저자, 마이크 브라운의 고민은 깊어가는데...

댓글 2
  • 2024-02-27 15:34

    대기에 의해 왜곡되어 보이는 별을 제대로 관측하기 위한 보정 기술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너무 잘 설명해주셨어요.
    천문학자들의 업무와 근무환경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 2024-02-27 18:14

    지난 번 후기에서 저는 이들이 행성을 발견한 줄 알았습니다만!! 이어서 읽다 보니 이후 이런 모호한 것들이 한 두개가 아니었고 지금에는 이렇게 발견된 천체들이 500 여 개라고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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