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스승에 대한 에세이 <사설(師說)>

요요
2022-03-12 11:07
483

한유의 도통(道統)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는 자신이 공자와 맹자를 잇는 적자라고 자부했다.

 

한유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若世無孔子, 僕不當在弟子之列,’(만약 세상에 공자가 없었더라면, 나는 마땅히 제자의 반열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말인가? 공자를 높이는 말일까, 자신을 높이는 말일까. 우리는 예심샘의 해석에 따라 한유가 자신을 높이는 말로 읽었다.^^ 그러니 이 말은 공자가 없었다면 나는 제자가 아니라 스승의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래야 한유답다는 생각이 든다.ㅋ 

 

12세기에 주자가 만든 도통라인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불경하다고 펄쩍 뛸 이야기이다. 주자가 만든 도통계열은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맹자에 이어 바로 북송오자(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로 건너뛰기 때문이다. 송대의 성리학자들은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운동을 벌인 한유, 유종원등을 도통라인에 끼워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유는 송대 성리학의 위대함에 비해 그저 고문운동의 한 주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유 스스로는 공자를 잇는 진정한 적자이자, 도를 전하는 스승을 자임하였으나, 주자와 그의 제자들은 한유는 단지 공자의 글과 문장을 가르치는 선생에 불과했다고 폄하했다.  정말로 귀신이 있다면, 한유의 혼령이 무덤에서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한유가 스승에 대한 에세이, <사설(師說)>을 썼다. 스승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표명한 글이다. 요점은 이렇다.

 

"옛날 배우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고 의혹을 풀어준다. 생이지지자가 아닌 한 의혹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누구에게나 스승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승이란 도를 전해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니 반드시 스승이 제자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제자가 스승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먼저 도를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스승인 것이다. 성인들은 세상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누구에게나 묻고 배웠는데, 성인보다 못한 사람들은 배우는 것을 부끄럽다 여긴다. 자식을 키울 때는 스승을 구해 글 읽는 것을 배우게 하면서, 자기자신에게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작은 것(국어, 수학..)을 배우고, 큰 것(도)을 버리는 것과 같다.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은 남에게 배우기를 꺼려하지 않는데 소위 사대부라는 자들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나는 도를 스승삼는 사람이다."

 

자식교육에 열을 올리고 자기 자신은 배우는 것을 멀리한 것은 당나라때 사대부나 우리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혹시 우리도 작은 것을 배우고 큰 것을 버려두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유는 8~9세기를 살았다. 그는 공맹의 도를 좇아 살고자 했다. 도를 전하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뭐가 문제냐, 이런 글을 쓴 그의 나이는 34세. 그의 글에도 젊음의 기백이 넘친다. 주자의 제자들이 한유를 도를 전하는 스승이 아니라 사장의 스승(詞章之師)이라 폄하했든 어쨌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도를 스승삼아서 배우는 사람의 도를 돌아보게 하는 상쾌하고 통쾌한 글이다. <사설>에는 어려운 글자도 거의 없고, 문장도 쉽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자신의 주장이 명료하게 쏙쏙 들어온다. 메시지가 확실하고 가독성이 좋은 글, 이런 글을 읽을 때 즐겁고 기쁘다.ㅎㅎ

 

댓글 3
  • 2022-03-14 09:56

    샘의 글을 읽으니 한유가 정말 멋지게 다가오네요.

    저도 언젠가 한유의 글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 2022-03-14 12:06

    아흑. 아쉽네요. 청출어람을 쓰기 전에 한유의 스승과 제자에 관한 글을 읽었더라면... 

  • 2022-03-14 22:18

    명쾌,  유쾌, 통쾌한 한유답게 스승론도 임팩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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