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습록]120조목-126조목 후기: 소혜야, 힘내!

자작나무
2024-04-0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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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다 보면 이런 저런 이상한 데서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가령 근엄한 공자가 아닌 조금은 까탈스런 공자를 만나기도 한다. 음식에 맞춰 소스를 준비한다거나 깔맞춤을 한다는 등의. 털어 한 톨의 먼지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안자뿐만 아니라 괄괄한 자로나 게으름뱅이 재여까지도 만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공자스쿨의 수업 모습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 읽는 맛이 난다고 할까. 

 

그러면 <전습록>은 어떠한가. 제자의 질문에 대한 선생의 답이라는 방식의 '대화'를 정리한 책이라고 하니, 으흠, 그런데 질문과 답이 과연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드네. 어쨌든 <전습록>은 지금까지 읽은 것을 가지고 본다면, <논어>처럼 선생과 제자 간의 티키타카를 아주 강렬히 바랄 수는 없겠다. 즉 낮은 빈도지만 간혹 웃긴 장면이 나온다. 이번 주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소혜다. 

 

양명에게도 많은 제자가 있었겠지만, 읽다 보면 <전습록 권상>의 주된 질문 제자 '왈인'은 점차 수제자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선생이 다른 제자와 문답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 바로 그때 그 옆에 앉아 있다가 선생의 말을 이해 못한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 설명해준다. <전습록>이 시간 순으로 되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양명의 초기 제자나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왠만큼의 성과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중간 중간에 왈인이 툭툭 끼어드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제자들이 '선유'=주자와 그의 선생인 이정이 남긴 언급을 가지고 와서 본격 질문을 하는데, 사실 <전습록>은 제자들의 캐릭터보다는 양명의 모든 것을 '마음' 깔데기로 몰아가는 그 시원한 사상이 가장 눈에 띤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소혜도 다른 제자들처럼 질문을 하는데, 122조목에서는 자기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에게 물었다. 안연이 물었다는 그 유명한 '극기복례'를 가지고 온 것이다. 삶과 앎의 일치를 말하는 양명학인지라, 어떻게 수양할 것인가를 열라 고민했던 소혜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이어서 124조목에 가면, 소혜가 신선과 부처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온다. 무슨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련에 힘썼던 그가 도가면 어떻고 불가면 어떻겠는가, 깨달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양명도 도가와 불가에 기댄 적이 있었던 지라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제자에게 말해주면서 성학聖學에 마음을 둘 것을 당부했다. 양명이 말하길, 

 

"... 대저 두 사람의 학문은 그 묘함이 성인과 조금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네가 배운 것은 바로 그것의 쓰레기더미인데, 이처럼 스스로 믿고 스스로 좋아하니, 진실로 올빼미가 썩은 쥐를 훔치고 있는 것일 따름이다."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냥 가만히 있기도 거시기 하니 질문을 다시 한다면, 아니 왜 제가 배운 도가와 불가의 가르침이 쓰레기란 말씀입니까? 올빼미가 썩은 쥐를 훔치고 있다니 이건 뭔 말입니까? 뭐 이런 질문들.... 그런데 소혜의 의심은 되려, 선생은 두 학문과 유학은 조금의 차이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런 즉 선생님은 그 학문들의 묘함을 아시고 계시겠네요, 그러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세미나 시간에 예심쌤도 나라도 그거 묻겠다고 말했으니까ㅎㅎ 그런데 이걸 어쩌랴! 양명의 가르침은 그게 아니었다. 소혜가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으니, 양명이 말하길.

 

"너에게 성인의 학문은 간이하고 넓다고 했는데, 너는 도리어 내가 깨달은 것은 묻지 않고 내가 후회하는 것을 묻고 있구나."

 

그나마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소혜는 부끄러워 하면서 사죄하며 다시 성인의 학문을 물었다. 그런데 이게 더 가관인게, 양명이 말하길, 

 

"너는 지금 인사치레로 물을 뿐이구나. 네가 진정으로 성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추기를 기다려서 너에게 말해 주겠다."

 

헐, 인사치레로, 눈치껏 질문했다는 건데 ... 사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소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재삼 성인의 학문을 물었다. 사실 소혜가 좀 똑똑(?)했다면 양명의 답들에서 알아챘어야 했다.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양명의 말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어찌하랴, 소혜는 안연과도 다르고 자공과도 다르니 선생으로부터 구박받으면서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물을 수밖에. 어쨌든 소혜의 질문에 양명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너에게 한 마디로 다 말했건만, 너는 아직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124조목은 이렇게 끝난다. 자, 여러분은 그래서 이 조목의 주제랄까, 양명의 가르침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성인의 학문은 뭐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갖는 것, 그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이미 성학의 앎이자 실천이다. 

 

양명이 원하는 만큼(?)의 제자는 되지 못할지라도 여기서 소혜는 왠지 선생에게 혼나고 있지만, 그래도 소혜처럼 구박받으면서도 모르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날릴 수 있는 대담함과 찌그러지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요즘 철학입문 셈나 등등에서 질문을 만들지 못해서 정말 괴롭고도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런 나에게 이번 주에는 소혜가 나에게 힘을 줬다고도 하겠다. 소혜, 땡큐.

 

 

댓글 2
  • 2024-04-02 07:42

    ㅋㅋㅋ 자의식 없는 소혜 같은 사람이 오래 공부할 수 있을듯요.
    자로랑 좀 비슷하려나요? 스승 어려워하지 않고 궁금한거 다 물어보는?
    어쨌든 재밌었어요. 엄근진 제자들 말고 이런 캐릭터가 자주 나왔으면 좋겠어요^^

  • 2024-04-02 16:17

    음.. 소혜가 누군가하여 읽어보았습니다.ㅎㅎ
    소혜가 양명선생에게 사사로운 마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자 그 마음을 가져오라고 하는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선종사에서 유명한 장면, 혜가가 달마에게 한 물음과, 달마가 혜가에게 한 대답과 구조가 똑 같아서요.^^
    결석하면, 모르고 넘어가는 게 쌓이는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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