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는 다스리지 않는다

토용
2022-11-25 00:08
25

소동파의 王者不治夷狄論(왕자는 오랑캐를 다스리지 않는다는 론)을 읽었다.

오랑캐는 중국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다스릴 필요가 없고, 다스리지 않는 것이 바로 깊이 다스리는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다.

 

소동파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춘추』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들고 있다.

<은공>2년(BC721년) 經에 “公會戎于潛”(은공이 잠땅에서 융과 회합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좌전』에도 같은 기록이 보이는데, 이미 은공 이전 혜공 때에 융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이번에는 융이 맹약을 원했으나 은공이 거절했다고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회합(會)했다고 반드시 맹약(盟)을 맺지는 않는다. 會와 盟은 별개의 일이다.

융족은 원래 서방지역에 살던 민족의 총칭인데 춘추시대에 그 일부가 중원으로 들어와 같이 섞여 살았다고 한다. 잠땅은 노나라 땅이었는데, 현재 산동성 제녕시 서남쪽에 있다. 그러니까 잠땅에서 만난 융족은 저 멀리 서쪽에 살던 융족이 아니라 중원으로 들어와서 노나라 근처에서 한 세력을 이루고 살던 이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소동파는 융과 만났다는 이 기록에 특별히 주목한 것일까. 바로 ‘會’라는 글자를 쓴 것에 있다. 소동파도 글에서 춘추필법의 엄정함을 거론하고 있는데, ‘會’는 두 나라가 會禮를 거쳐 만나는 것이다. 엄격한 외교적 절차에 따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제후국도 아니고 오랑캐라고 하는 융족을 회례를 통해 정식으로 만났으니,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대부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소동파가 글에서 춘추필법의 엄정함에 대해 쓰면서 춘추시대 대국이었던 진(秦)과 초(楚)도 순수 이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수 중국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에서는 진나라 군주를 진인(秦人)이라고 쓰고, 초나라는 국명이 아닌 형(荊)이라는 지역이름을 쓰고 있다.

 

소동파는 공자가 이러한 기록을 남긴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마친다.

“융은 교화하여 가르쳐 회유하고 복종시킬 수 없는 자들이고, 우리와 전쟁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런데 저들이 회합을 하고자 하니 그 뜻이 가상하다. 만약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저들은 노여움을 폭발시킬 것이니 그렇게 되면 큰 화를 당한다. 그래서 공자가 회합하였다고 써서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깊이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공자가 관중이 없었더라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몄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면, 춘추시대 중원에서 같이 섞여 살던 이민족들의 세력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다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스리지 못한 상황이었을 수도. 소동파의 론은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댓글 1
  • 2022-11-25 09:03

    다스린다는 것은 통치시스템의 일부로 고려한다는 것일진대
    다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시스템 안으로 들일 수 없는 상황이 전제된 것 같군요.
    오랑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 이들이 오랑캐라 불리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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