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 시즌2] 3주차 후기: 이율배반

세븐
2024-05-10 13:53
112

 

장미 꽃이 만발한 5월. '세미나로 만나는 칸트' [2024 철학학교 시즌2] 가 벌써 3주차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즌2를 앞두고 호수샘이 중도하차했습니다.
시즌1과 비교해 한 명이 줄었을 뿐인데 세미나실이 다소 썰렁해진 느낌입니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절감되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튜터인 정군샘을 포함해 8명이 2주 연속 전원 참석해 세미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선 칸트의 초월적 변증학 두 번째 주제인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의 초반부를 다뤘습니다.
이율배반은 순수 이성의 3가지 변증적 추리 중 오류 추리, (순수이성의) 이상보다 더 많은 분량(125쪽)이 할애돼 있습니다. 칸트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율배반은 직전 주제인 오류추리보다 '읽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아니, 이율배반 주석 왜 이리 어렵나요? 재밌다고 입방정 떨자마자...ㅜ 와, 어이없네요ㅋㅋㅋ 재미인지 뭔지 제가 떠든 말이 저주가 돼서 돌아올 줄이야. 그 말, 취소입니다"
지난 주말 카톡방에 세션샘이 올린 글에서 이율배반을 접한 첫 인상이 확인됩니다.
'철학학교 고수'인 아렘셈마저 지루한 논리 전개와 다소 모호한 표현 탓에 꾸역꾸역 세미나 분량을 소화했음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세미나 텍스트인 백종현샘의 책(아카넷판.2006년 1판)은 정립과 반정립의 주장을 눈에 보이는 양쪽 페이지 나란히 배치하는 바람에 정작 다음 글은 한 페이지 뒤쪽으로 넘어가 있어 독해의 불편을 가중합니다.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공부한' 1세대 철학자 최재희샘의 책(박영사.1972년 초판)이 읽기에 수월하다는 의견(정군샘)이 있었습니다.
최재희샘의 책은 정립-반정립 주장을 한 페이지에 나란히 배치했고, 정군샘은 실제로 대학 (철학과) 시절 지금보다 글씨 크기가 훨씬 작고 한자를 병기한 구판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율배반(Antinomien.영어 Antinomy)은 '서로 모순되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그 입장들에 대해 찬반을 정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주장간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상충되는 정립(thesis)과 반정립(antithesis)이 팽팽한 이론적 대결을 벌이는 구도를 취하고 두 개의 모순되는 명제에 대한 증명과 주석이 각각 길게 이어집니다.
'철학학교의 전교 1등' 가마솥샘은 질문 분량을 초과한 무려 5개의 질문을 올렸습니다.
질문들은 세미나 범위를 관통하고 전체를 요약하는 이슈들로 사실상 '종합판'입니다.
첫 질문부터 도발적입니다.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은 (칸트가) '이성의 뻘짓(아렘샘의 명언)'이라고 결론내고 시작하는 것인가?
다음으로 우주론적 관점에 대한 개념과 칸트가 이율배반(정립 VS. 반정립) 중 어느 쪽 입장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칸트는 4개의 이율배반의 정립과 반정립 명제에서 합리론자와 경험론자의 주장을 극명하게 대립시켜 '변증적 싸움터'를 엽니다.
칸트는 다만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채 격렬하게 싸우도록 응원합니다.
이에 따라 두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어 정립과 반정립 모두 논리상 '모순 없음'을 동시에 주장할수록 이율배반에 빠져들고, 어딘가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칸트의 말처럼 "싸움 자체를 유발하는 이 방법은 한 편이 다른 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싸움의 대상이 어떤 환영(幻影), 즉 각자가 그것을 헛되이 붙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로서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환영이 아닐까 어떨까를 탐구하기 위한 것"(638쪽)입니다.
정군샘도 "정립/반정립 사례를 제시하고, (전통적 형이상학의) 싸움터가 됐던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 주장이 공격하는 상대방의 핵심이 사실 가상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이성의 확실성을 확보하려는 전략(회의적 방법)인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은 잘못 생각된 우주론의 초월적 원칙들을 제시할 것이다. 이성의 '상충'이라는 명칭이 알려주듯 그 원칙들을 현상들과는 하나를 이룰 수 없는 이념으로 그것의 눈부신 그러나 거짓된 가상에서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저는 이율배반의 4가지 명제를 선정한 기준과 정립/반정립 구도가 노리는 효과, 모순에 빠진 이성이 확실성에 도달하는 방법, 회의적 방법의 적용 여부 등을 질문했습니다.
칸트는 이율배반의 명제들을 오류추리와 마찬가지로 4가지 범주상의 양. 질, 관계, 양상의 순서에 따라 배치하했고, 회의적 방법을 적용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립과 반정립에서 제시된 명제들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아우르려는 칸트의 '종합 강박'이 반영됐다는 아렘샘의 해석과 18세기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던 최신 철학의 흐름이 반영됐다는 정군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군샘은 다만, 칸트를 선잠에서 깨게 한 흄의 회의주의가 타격을 입자 이를 대륙적 합리론 체계로 흡수하려는 칸트의 기획이 숨어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봄날샘은 불쑥 튀어나온 '도덕'이라는 단어가 실천이성의 밑밥을 까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고, 세션샘은 명제들의 증명 방식으로 귀류법을 택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밖에 휴먼샘은 회의적 방법과 회의주의의 구별점, 진달래샘은 합성체인 실체적 전체와 공간과의 관계, 세션샘은 '실체의 상태'  '무한성이 주어진 단위의 관계에서만 성립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이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갔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실체가 아닌 '관념적 합성체'라는 것과 무한을 단위로 헤아릴 수 없고 순차적인 수와 달리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필연적 존재자(신)가 세계 밖에 있지만 안으로 넘나들고 스며들 여지가 칸트의 다른 책에서는 수용될 여지가 있느냐'는 휴먼샘의 마지막 질문은 다소 논쟁적이었습니다.
정군샘은 시즌3 텍스트인 <실천이성비판>에서 신(神)이 다소 노골적으로 다뤄진다면서도 칸트는 신의 실존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난 몰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를 넘어 "(신은) 있어야만 한다"의 신 존재의 요청(공준)은 기독교적인 신보다 (실천적 측면에서)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촐하지만 컴팩트했던 세미나는 '단시간 종료' 우려(?)를 깨고 밤 10시를 조금 넘겨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율배반 두번째 시간으로 711쪽까지 읽습니다.

댓글 7
  • 2024-05-11 07:29

    그리고 아렘샘이 세미나 중 제기했던 B470(652쪽) 주석 154(내용상 오히려 ‘정립’으로 고쳐 읽어야 할 것 같다. AA는 아예 ‘정립’으로 수정) 내용 중 ‘AA’는 백종현샘이 번역에 참고한 칸트원전의 ‘베를린학술원판’입니다.(2권 초반 ‘책을 내면서’ 참고). 그리고 최재희샘의 책(박영사)에는 관련 부분에 주석없이 아예 ‘정립’으로 쓰여 있습니다.

    • 2024-05-11 22:40

      감사합니다 세븐샘.

  • 2024-05-11 16:40

    아 역시 세븐샘! 정갈하게 정리한 후기 잘 보았습니다! ^^ 이미지도 넘나 인상적이로군요. 회화와 사진이 절묘하게 섞여서 이미지 만으로도 이율배반이 만들어지내요 ㅎㅎㅎ

  • 2024-05-11 19:48

    안그래도 사진인지 그림인지 묻고 싶었지요. 사진이면 혹 세븐샘이 찍으신 건가? 싶기도... 오늘 보니 여기 저기 장미가 확실하게 많이 피었더라고요. 이리 완벽하게 성실한 후기라니. 전 죽었다 깨나도 될 수 없는 경지의 성실함이네요.ㅋㅋ 처음엔 이율배반을 시간에 쫓기며 읽어서인지 어, 뭐지? 했는데 그래도 읽다 보니 도식 다음으로 증명이 재밌는 챕터였던 것 같아요. 물론 다 이해하거나 잘 이해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잘못 이해하거나 이해를 못해도 사실 별 상관이 없어서요)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쓸데없는 생각이 날 때가 가끔 있는데, 귀류법이 좀 그런 쪽이었어요. 말도 안되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엉뚱한 생각이 마구 튀는 그 때가 가장 재밌더라고요. 제대로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욕 먹겠지만.... 이율배반의 가장 핫한 지점이 지나고 나니 다시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졸리고 싱겁고.. 제가 그렇죠 뭐^^

  • 2024-05-11 22:39

    세븐샘의 글을 대할땨마다 성실함으로는 다 표현 못하는 단정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세미나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도 하상 중심을 잡아주시는 세븐샘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5-11 23:51

    심도 깊은 장미사진처럼 깔끔한 이율배반 정리에..... 꾸벅.
    사진처럼 예쁜 장미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마당에 아치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꾸벅
    오랫만에 하루종일 일했더니...... 꾸벅. ㅎㅎㅎ

  • 2024-05-16 16:29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토론 때마다 깊이 있는 설명과 준비해주시는 빵도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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