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스피노자 ] 모로, 스피노자 매뉴열 후기

가마솥
2023-05-14 00:08
444

   2학기에는 스피노자를 읽는다.

한 10년전 쯤에 문탁에서 고병권 샘으로부터 스피노자 강의를 들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멋진 ‘정리’들을 많이 만든 철학자라는 것과 이렇게 어려운 철학용어들을 속사포로 토해내는 고병권샘의 말솜씨이다. 내가 스스로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피노자에 들어가기 전에 몸풀기로 피에르-프랑수아 모로가 지은 ‘스피노자 매뉴얼’을 읽었다. 1장에서 그의 생애를 다룬다. 전체 분량의 1/3 쯤 된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사회환경에서 자신의 철학을 이루어 나갔는지를 밝히고 있어서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어떤 철학과 대립하고 있는 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생애이니 그 곳에서는 질문을 만들 수가 없다.

그 다음 장에서는 그의 저작과 요약된 내용, 논쟁점, 비판과 영향 등을 주욱 전개하는데, 본문을 읽지 않는 나로서는 10년전의 수강이 떠오르기는커녕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읽힌다. 그러니 또 질문이 없다.

 

   세미나는 만들어온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질문이 없으면 세미나가 안된다. 모두들 질문을 만들어 참여했다. 대단하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 질문(이라기 보다는 각오)은 아렘남이 말한 ‘정의와 공리에는 시비걸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싫으면 책을 덮어라. 시비를 걸거면 정리나 증명에서 찾을 일이다. 제게는 아주 고마운 충고입니다.’라는 문장이다.

연전에 문탁 제자백가(諸子百家) 세미나에서 법가(法家)인 ‘한비자’를 읽었다. 한비는 법가답게 유가(儒家, 공자가 대표선수)를 타깃으로 엄청나게 비판한다. 세미나 팀원 중에 스스로 유가(儒家)라고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법가인 한비의 유가에 대한 비판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사사건건 한비를 반대하였다. 세미나를 끝나고 에세이에서 ‘한비자’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당연하지. 일단 한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 일텐데, 항상 말도 안된다고 읽고 있으니 유가(儒家)로서 한 발짝도 나아 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 철학학교의 특징이 질문을 토대로 세미나를 진행해서 그런지, 철학자 당사자의 저서를 읽을 때 그를 그렇게도 비판하는데, 스피노자를 읽을 때에는 그의 정리, 공리는 믿고 가볼 생각이다.

 

    바로 전에 데카르트를 읽을 때에 어떤 부분은 말도 안된다며 실망스러워 했는데, 특히 사유를 끝까지 밀어 붙이지 못하고 신(神)을 불러와 봉합(?)할 때이었다. 이제 스피노자 매뉴얼에서 그를 다시 발견하였고 그가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종교재판을 피해서 네덜란드로 가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당시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상상이상 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이야기가 나왔으니, 스피노자에서 신은 무엇인가? 종교에서 말하는 신(神)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다른가? 정군샘은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전체, 세계전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무신론자라고 공격받았지만, 그것은 유신론/무신론으로 구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단 ‘전체’라고 치환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데카르트가 주체의 완성을 추구한 철학자이라면 스피노자는 삶의 완성을 추구하는 철학라고 한다. 기대가 된다. 거칠게 말하면, 철학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머리 싸매고 읽을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또한 그의 철학의 Key는 ‘역량의 존재론’이라고 하니 더욱......

 

    1학기 맴버들 중에 학교를 자퇴한 사람은 없고, 새로운 멤버 다섯 분이 들어오셨다. 공부할 때에는 ‘이 철학학교에 내가 왜 들어 왔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끝나면 또 수강하는 이상한 마력의 학교에 입학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그나저나 내가 무언가 정리하지(메모) 않으면 남는 게 없고, 그것을 모두 발표하자니 숫자가 많아서 시간 내에 못 끝낼 것은 뻔하고...... 정군샘! ‘역량의 존재론’을 믿고 고민하세요.

댓글 8
  • 2023-05-14 13:31

    출석은 못 했지만 녹화본을 본 것만으로도 새로 오신 선생님들을 직접 뵌 듯 반가웠습니다^^ 저도 지난 학기 이런저런 인연으로 합류하여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데 (나만 바보인 느낌!) 그런 정념에 휘둘리지 마시고 꾸준히 자기 공부를 하시면 얻어가는 것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불참하였는데도 질문을 다뤄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가려운 곳이 긁혀져서 너무도 시원했습니다. 가마솥샘의 꼼꼼한 후기를 보니 다시 생각케하는 부분이 있어 너무 좋네요. 다음주부터 읽을 에티카가 너무 기대됩니다!!!

  • 2023-05-14 15:05

    가마솥샘 후기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에 다소 느슨하지만 또 한편 긴장된 어떤 줄다리기가 몇 차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앞으로의 팽팽함을 예고하는!) 일단 한 번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방법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요. 흐흐. 두 문제 다 생각할수록 저는 아직은 자꾸만 황희정승 같은 스탠스를 취하게 되네요 ㅎㅎ (방법의 문제는 또 다시 생각해보면 일단 정의와 공리를 깔끔하게 깔고 정리를 펼쳐 나가는 기하학적 접근 방식 자체가 나름의 확실한 토대에서 확실성을 확장해나가는 방법론을 공유하니 결국 같은 ‘류’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고, 윤리학의 문제도 스피노자는 주저의 제목에 윤리학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적지 않은 독자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과연 개체의 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나 하는 측면에서요 ㅎ) 나중에 갖게 될 새로운 답 역시 스피노자 자체에 귀를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통찰일 테니 앞으로 차근차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새로 합류하신 선생님들 무척 반갑습니다.

  • 2023-05-14 18:54

    세미나가 끝난 뒤 기록을 보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군요!! 참관자가 되는 느낌이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없어서 편안하기도 하고..ㅎㅎㅎ
    기록을 보면서 중간중간 자기도 모르게 혼자서 끼어들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기도 하더라고요.^^
    모로의 책을 읽긴 했지만 여행 중에 조각조각 읽다 보니 뭘 읽었나 싶기도 했는데, 샘들 세미나 기록을 보면서 <에티카> 워밍업을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고 세미나 말미에 메모를 둘러싼 의견들이 활발발했군요.(ㅎㅎ 샘들이 톡에서 전한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야 알았습니다.)
    <에티카> 읽으면서 원문에 물음표도 써넣고 어쩌구 저쩌구 메모를 달아가며 각자 자신만의 주석을 만들어가게 될텐데..
    정군샘이 제안한 메모는 아마 그런 걸 공유하자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세미나의 방법이 고민되긴 하네요.
    아무튼 강독도 아니고, 또 보조 텍스트 없이 <에티카> 원문에 집중하는 세미나가 어떻게 진행될지 저도 몹시 궁금해집니다.
    가마솥님 말처럼 '역량의 존재론'을 믿어보아요.ㅎㅎ
    철학학교 세미나에 새로 합류하신 선생님들도 반갑습니다. 저는 녹화본을 보고나니 마치 이미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만.. 다음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 2023-05-14 20:36

      네, 무거운 발제 대신 가벼운 메모를 자주 공유하자는 말씀 같습니다. 메모라도 생각을 일단락 지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라 매주 쓴다는 것이 부담 되기도 하고 열몇 편씩 올라오는 메모를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지만… 네 뭐 어떤 식으로 한들 덜 고생스럽지는 않겠지요 ㅎ

  • 2023-05-14 22:14

    "거칠게 말하면, 철학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머리 싸매고 읽을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또한 그의 철학의 Key는 ‘역량의 존재론’이라고 하니 더욱......" 저는 요즘 책을 읽는 것과 현실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하는 느낌을 받아서요.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철학, 역량을 화두로 스피노자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그의 글쓰기 방식이 정말 독특하네요~ 내용도 방대하고 문득 그의 뇌구조가 궁금해집니다.

  • 2023-05-16 03:09

    저도 기대가 되면서, 동시에 걱정도 됩니다 ㅎㅎㅎ
    그리고 요요샘이 말씀하신 그거 하자는 거 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딱히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은데... 뭐 어쩔 수 없죠. 일단, 1, 2부는 이 악물고 버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 지금 생각입니다. 그것만 넘어가면 생각지 못한 전경이 펼쳐지니까요! 그나저나, 철학학교가 고인물화 되는 걸 막아주신 여러 선생님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즐겁게 공부해 보아요. 여기 생각보다 재미난 곳입니다! ^^

  • 2023-05-17 11:48

    촉박한 시간(?)때문이었는지, 데카르트주의와 신쯤 어디서 길을 잃느라고 그랬는지...세미나 시간에 어느 분이 말씀하신 것 같은데, 모로가 P34 에서 이르기를 스피노자가 네덜란드인이자, 포르투갈계 유대인이자, 데카르트주의자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로가 이야기한 앞의 두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 둘은 철학이 미처 다 담지 못해서 역사로 보충해야 할 부분인데...언제 가지신 것들을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3-05-17 14:45

    철학학교에 새롭게 합류했는데,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우선 정군샘의 열혈 팬으로서 친절한 설명을 들어 좋았고, 쟁쟁한 고수분들을 만나게 된 것도 반가웠습니다.
    세미나 질문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고, 데카르트와 연관된 샘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스피노자에 재접속한 것만으로 위안을 찾는 중입니다.
    첫 시간에 읽은 모로의 <스피노자매뉴얼>은 스피노자 철학 전체를 개괄하는 안내서여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가마솥샘의 후기도 첫 시간의 풍경을 스케치해놓은 듯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제 소개 때 말씀드린 것처럼 스피노자 철학을 삶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부족하지만 공부로 좋은 인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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