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차이와 반복> 마지막 세미나 후기

호수
2022-12-04 14:03
576

올 한 해 <차이와 반복>을 읽으며 후기를 세 번째 쓰나봅니다. 인원이 많으니 후기 순서가 천천히 돌아와서 좋습니다. ㅎㅎ 후기가 좀 부담스러운 면은 있지만 올해만큼 후기가 부담스러운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다른 분들이 쓴 후기를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어요. 아, 그 괴롭지만 그래서 오히려 즐거웠던 철학 공부가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나... 하고 심각한 고민을 5초 동안 빠져들기를 되풀이한 요상한 한 해였습니다. 아마, 확신하건대, 저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ㅎㅎ 요 며칠은 지난 시간에 다룬 부분을 재차 읽고 틈틈이 비는 시간을 <차이와 반복>을 떠올리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제 질문은 영원회귀가 동일자가 되는 역설에 관해서였는데요, 돌아보면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멈추고 무언가 깨닫고 넘어가게 되는 고개들이 역설적 표현들을 만날 때의 당혹감이었던 것 같아요. ‘이념’이 가장 크게 떠오르고 그 다음은 지난 시간의 ‘반복’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최근에는 ‘차이’라는 말에 담긴 역설을 생각했습니다.

 

정군샘은 이따금 우리의 말과 글은 어째서 언제나 미끄러지는가라고 말하지만 저는 정군샘의 말은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저렇게 재깍재깍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얄미울 정도로 ㅋ) 정확히 담아내나 싶거든요. 이따금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지난번 족구대회에서 악어떼팀과 백두팀이 붙고 자룡샘이 심판을 봤거든요. 정군샘은 끝에서 부심을 보고 있었어요. 자룡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뭔가 허둥대는 듯하더니 논란이 있을 만한 판정을 몇 차례 냈는데 갑자기 정군샘이 부심 자리에서 나와버리더니 부심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며 ‘자룡샘은 우리 편도 아니고 남의 편도 아니야. 자룡샘은 자룡샘 편이야.’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절묘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그 말이 웃기긴 웃긴데 왜 그렇게 웃겼지? 생각해보면 대답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아요. 심판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 편파성에만 있지는 않음을 편파성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절묘했던 것 같고, 편파성이 없는 사태이되 공정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오묘한 사태를 적절히 묘사한 것 같기도 하고요.

 

바로 그러한 절묘함과 오묘함, 그 ‘묘함’이 <차이와 반복>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들뢰즈의 철학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재차 힘주어 선언하는 정군샘은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익살스럽고자 하는 것인가요?) 세션샘은 빨리 끝내고 치워버리고 싶다 하시지만 저는 휙 지나가버린 것만 같은 시간이 아쉬워서 아직 에너지가 남는지 한 달 전부터 성기현 선생님이 그린비 출판사를 통해 하시는 <차이와 반복> 강독을 듣고 있어요. 시간이 우리 세미나와 겹쳐서 실시간 참여는 못하고 녹화본을 듣습니다. 그래서 앞부분을 다시 보는데 ‘차이 그 자체’를 이제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차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에 매여 저는 ‘차이’를 항상 무엇과 무엇의 차이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바탕에서 구별되려고 하는 차이도 바탕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들뢰즈는 분명히 차이 그 자체, 즉자적 차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상한 말을 이제야 곰곰 생각해봤어요.

 

‘만드는 어떤 것, 만들어지고 있는 어떤 것’(84),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그저 발생하는 힘 그 자체가 있다는 말로 읽으니, 그리하여 ‘극단적인 형상들’이라고 생각하니 '차이'라는 말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차이’는 ‘차이’만이 아니구나. 이건 들뢰즈의 ‘차이’구나. <차이와 반복>은 언뜻 밋밋한 제목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대단한 기획과 야심이 들어 있는 제목이었구나 싶습니다.  매번 극단적인 형상이 있을 뿐인 것을 왜 ‘돌아온다’고 표현하는가, 모든 것이 와해되는 세 번째 ‘반복’을 왜 굳이 ‘반복’이라고 하는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칸트의 이념과 그토록 다른 이 ‘이념’을 왜 굳이 ‘이념’이라고 하는가, 빗대어져야 할 그 어떠한 대상도 필요하지 않은 ‘차이’를 왜 ‘차이’라고 하는가, 라는 질문들이 제게는 혼란의 고개들이었는데, 이러한 역설적 개념들 안에 들뢰즈의 철학의 대결점이, 그리고 어떤 것의 안에서 어떤 것의 바깥을 상상해야 하는 우리의 모순적 조건이 그대로 담겨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번도 똑같지 않았던 봄들, 그저 일어나는 각각의 차이로서의 그 사태들, 그리하여 언제고 갑자기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봄을 우리가 ‘봄’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가 담고 있는 의미에 관해서요.

 

지난 시간에 마지막에는 들뢰즈의 철학에서 우리가 어떤 윤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관해 다시 한 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들뢰즈의 철학이 과연 윤리를 이야기하는가, 들뢰즈는 이에 관해 역시나 헷갈리는 말들을 군데군데 남겼지만 이것은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힘을 보태게 되지는 않는 것인가, 집단의 윤리는 고사하고 개인의 윤리를 끌어낸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 사실 차라투스트라가 죽어야 한다의 의미가 생물학적인 것인가, 해탈인가라는 논의 또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 것도 같아요. 저는 그 와중에 들뢰즈의 이후 행보나 뒤의 책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차이와 반복>에서 말하는 비인격적 개체성과 전-개체적 독특성의 일반 존재론에서 정치 철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능하냐라고도 말하고 (이 철학의 개방성이나 일종의 무관심함을 고려하면 이후 들뢰즈가 처한 현실에 따라) 어떠한 종류의 정치 철학이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철학 따로 행동 따로라는 말과 아슬아슬한 차이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혼자서 지난 시간 후기가 아니라 올해 세미나 후기를 써버렸네요. 그리하여 제 에세이는 이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다음 시간에 개요를 준비해오셔야 합니다. 내키면 다 써오셔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완성된 에세이를 가져오고 그주 일요일에는 에세이데이가 있습니다. 장소는 미정입니다. 세션샘이 알려주실 것 같아요. 그럼 이따가 강독에서도 뵙고 돌아오는 목요일에도 뵙겠습니다.

댓글 8
  • 2022-12-04 22:20

    무식+무지한 제가 '갈음'이 무슨뜻인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함'이네요? 그럼, 그럼, 호수샘은 지금 에세이에 관해 폭탄선언을 하신 거?
    근데 그 신박한 선택을 아릿따우신 호수쌤은 대체 왜! 혼자 하신거죠??? 불쌍한 저를 놔두고ㅠㅠ 엉엉!! 장기간 셈나를 쉰 후 겨우 돌아와 공부폼이 형펀없이 떨어진 가엾은 영혼의 회원에겐 에세이를 면제해주는 문탁의 자비로운 규칙은 없나요??

    • 2022-12-05 12:29

      만들어 가시면 됩니다. 선언하세요...

  • 2022-12-05 11:32

    호수샘! 그렇게 바쁜 와중에 성기현샘 강독도 챙겨서 신청하시고.. 대단하셔요!!
    후기를 에세이로 갈음한다는 건.. 에세이 개요를 후기로 갈음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지요?
    지난주 세션샘 후기에서의 작별인사 같은 분위기인지라 화들짝 놀라기 전에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ㅋㅋㅋ
    지난 시간에 읽은 바에 의하면 이전, 사이, 이후의 시간의 형식에서 이전은 행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와 상관없다고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아직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정군샘 빼고) 우리는 모두 이전을 살고 있는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글고 에세이를 면제하는 것이 자비인지, 쓰게 하는 것이 자비인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어느 쪽에 걸어야 할까요?(세션샘이 어디에 걸지는 정해졌네요.^^)
    어제 일요일 강독 마친 뒤 저녁 같이 먹으면서 에세이 데이에 11시~12시는 정군님과 세션님의 에세이를 듣고 질문하는 시간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드려요.
    세션 대 정군의 매치를 관전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였어요.ㅎㅎ

  • 2022-12-05 11:46

    세션샘.. 어우 민망한 형용사에 '실상은 많이 달랐다...'라는 누구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근데요 세션샘.. 제가 전에도 이런 거 비슷하게 시도해봤는데 어림없어요.. 하지만 한 번 더 해봤어요 ㅎ
    근데 또.... 요요샘께서 이렇게 받아주시네요. 것도 좋아요 ㅎ

  • 2022-12-05 12:28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 2022-12-05 14:21

    에세이를 쓴다... 이게 참... 지난 일 년 간 세미나라는 밖-주름운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토론을 하면서 무수한 겹-주름운동도 있었고요. 말인즉 그와 동시적으로 각자의 잠재적 장 안에서 막-주름운동도 막 일어났고, 메모 쓰고 질문하고 하면서 안-주름도 잡혔을테고... 에세이란 무엇이냐...그 동안 안으로 잡은 주름들을 다시 밖으로 펼치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죠. 쉽군요. 그리하여 결론은 '갈음'은 없다, 이 말입니다. ㅋㅋㅋ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잔혹한 자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2022-12-05 15:04

      호수샘께 그 용감한 시도를 결과와 상관없이 응원한다 뭐 이런 댓글을 달려고 들어왔는데, 정군쌤의 댓글을 보니 호수샘 말씀이 완전 실감나네요. 와 정군샘 정말 얄미운데요? ㅋㅋㅋ

    • 2022-12-06 21:20

      너무 설명하려들면 죽는다던 들뢰즈 문장이 있지 않았나요?? 가물가물.. 암튼 너무 펼치면 안되는데... 우리 적당히만 펼치는 걸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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