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입문 시즌1] 5주차 질문들입니다

정군
2024-03-21 15:48
102

자정까지 댓글 본문으로 올려주세요!

댓글 11
  • 2024-03-21 19:05

    p 261. '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그러므로 신적 지식의 이상은 무사 여신들의 앎, 모든 것을 보았던 여신들의 앎이 아니다. 또 크세노파네스의 신적 앎, 전적으로 경험 자체인 앎도 아니다.'
    앞글의 내용을 보면 크세노파네스는 신적 지혜가 사유에서 오며 근본적 인간지식은 인간탐구 결과라했고 헤카타이오스도 지식은 관찰 탐구 결과라 해서 이 세 사람은 비슷하게 주장한것 같은대 다르다하니 무엇이 다른가요?

  • 2024-03-21 19:05

    8장에서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여전히, 인간은 ‘신’을 의식해서 인간적 지식과 신적 지식으로 지혜의 양상을 구분하고자 시도 합니다. 심지어 기이학다고는 하지만 소크라테스 마저 자연과학의 문제를 신적인 것으로, 윤리학의 문제를 인간적인 것으로 구분하는데요, 왜 서양인들은 이토록 ‘신’을 의식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 2024-03-21 21:31

    232쪽 “그러나 이때 중요한 사실 하나는 간과하곤 하는바, 비극의 사회적 구속력과 종교적 기능이, 세계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가장행렬로부터, 원시 민족들에서도 보이는 종교적 민중 축제로부터 아티카 비극의 특징을, 시대와 시대적 구속을 넘어선 비극의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아직도 비극에서 손 떼지 못하게 하는 그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만든 것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비극 타락의 원리라고 본 그것,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적 앎과 반성이다. 이것이 만일 비극의 요람에 함께했다면, 이것이 비극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 함께했다고 해서 이것을 일방적으로 비극의 ‘살해자’라고 매도해선 안된다.”
    위의 나오는 ‘사회적 구속력과 종교적 기능’이 소크라테스의 비극을 초래한 원리, 즉 ‘앎과 반성’을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둘을 연결지어서 말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2024-03-21 22:22

    p.333
    사람은 스스로를 알아야 하며, ‘본분’을 실천해야 하며, 스스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모르는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p.335
    궁극적으로 그의 지혜는 다만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였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스스로를 알아 본분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때마다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천하되, 지금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본분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여야 한다는 것일까요?
    338쪽에 나오는,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절대적 믿음’이 ‘스스로를 알아 본분을 실천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데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이 옳다고 여기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되는데..그 기준은 소크라테스가 얘기하는 신적 목소리가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스스로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수많은 내면의 소리들이 있는데, 그 중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하는 정확한 기준이 될 만한 신적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선별해야 할까요? 이 것 역시 가장 명확한 답을 찾으려는 것에 뜻을 두기 보다는, 다만 앎에 전력하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할 뿐일까요?

  • 2024-03-21 22:30

    231쪽) 아리스토파네스는 에우리피데스, 지식교사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의 바른 도덕심을 타락시킨다고 합니다.(223) 이 때 도덕은 폴리스 시민으로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가치, 규범 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를 이어 슐레겔, 니체도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합니다.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비도덕주의자. 다만 니체는 에우리피데스를 비도덕주의자로 보지는 않습니다. 에우리피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다면 합리적이고 도덕주의자일테니까요. 니체는 에우리피데스의 도덕도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옛것, 살아있는 것, 신성한 것을 해체한 치명적 독이었다고 합니다. 니체는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몰락시켰다고 비판하는데 니체에게 있어서 도덕은 어떤 의미인가요? 왜냐하면 에우리피데스에 대해서 아리스토파네스와 플라톤, 슐레겔은 비도덕주의자라고 하고, 니체는 도덕주의자라고 하는데 비판하는 내용은 비슷한 것 같거든요. 그리고 희랍 비극이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열심히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했을까요? 246~247쪽에 설명이 있는데 좀 더 알고 싶네요.

  • 2024-03-21 22:41

    239p.
    이 시점에서 아프로디테가 심는 ‘사랑’이 개인의 내면적 충동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욕망, 욕망을 막는 억제 등 심리학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면, 그 전에는 어땠나요? 아프로디테가 심는 ‘사랑’은 정말 절대적인 ‘주문’에 가까웠던 건가요?

  • 2024-03-21 23:23

    247쪽> 근대정신의 타락을 조명하는 니체 후기작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아리스토파네스와 슈레겔이 드러낸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서 있다. (...) 니체는 소박한 건강과 힘의 동경, 참된 예술의 동경을 품었는바, 그가 보기에 참된 예술은 이미 슈레겔과 헤르더가 생각했던 것처럼 신화적 근원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신화를 갖고 있지 않을 때 모든 예술은 건강한 창조적 자연력을 상실한다"라고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말한다.

    > 저자는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하는 니체를 "그의 시대적 고뇌를, 인류의 젊은 날을 향한 동경을, 자연 만물이 가진 시간성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어떤 증오로도 병들지 않은" 괴테와 함께 에우리피데스를 적극 옹호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니체의 비판을 시대적 고뇌로 인한 증오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니체의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비판을 또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니체와 같은 학자들이 에우리피데스 비판을 통해 본의 아니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저자도 에우리피데스 옹호를 통해 본의 아니게 무엇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 2024-03-21 23:24

    10장 (경)덕의 권고 요약발제입니다!

  • 2024-03-21 23:57

    219쪽) "이제 비극은 죽었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죽자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한 것으로, 예술이 철학 때문에 사라졌음을 말한다. 그런데 비극의 죽음은 사실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이뤄진 '자살골'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극에서 신화는, 신은 인간의 배후로 물러섰다. 파이드라가 휘폴립투스를 사랑하는 것이 여신에 의한 비합리적 힘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영혼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신화는 세속화되었고, 주인공은 더 이상 신에 의한 운명에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기대지 않는다. 즉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의 갈등 즉 인간 영혼의 갈등을 무대로 올리고 있다." 그의 극에서 보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는 호메로스 때와는 달리, 처음으로 자신을 자기 결단의 담지자(233)로 자각하고 자율적인 행위와 자유의식(234)의 담지자로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극이 다룬 것과 소크라테스의 등장은, 질문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같은 선상의 문제인 것은 아닐까.

    282쪽)책을 읽다 보면 그리스의 지성사적 '단절'을 보여주는 예로 소크라테스를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앞서의 비극의 죽음 운운할 때, 즉 여기서의 비극은 예술로 지성사를 리드하던 예술 대신 철학이 등장한 예로 소크라테스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지성사는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런데 또 다른 곳을 보면 솔론이 나온다. 서정시를 말하는 부분에서도 뜬금없이 솔론이 거론되더니 역사의식을 이야기하는 9장에서도 그가 거론된다. 왜 솔론인지? 솔론이 그리스 지성사에서는 무엇을 보여주는지 궁금하다.

    308쪽)책은 덕이 도덕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덕의 권고를 추동하는 힘이 비도덕적이며 도덕적 동기가 드물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에서 도덕의 기원을 찾으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덕=도덕이라는 식의 언어적 착각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읽고 있자면, 덕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혹은 그 용법에 대해서 저자는 말하고 있으니 이른바 도덕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초기 희랍 사회에서 도덕적 행위라거나 도덕적 의식 혹은 도덕이라는 것 자체가 주변적이거나 그다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사고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진선미 중에서 도덕은 선에 해당하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라면, 그 물음이 의식적이게 된 게 소크라테스를 전후로 하여 점차적으로 부각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호메로스나 비극의 시기에는 신=운명에 따르는 삶이 다였지 않았을까. 나의 튀모스를 따르면 그만인 삶. 그런데 인간 정신의 영역이 발견-발명되면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생기면서 도덕이 마침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도덕적 압박' 같은 것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에 나오는 도덕적 압박? 이것은 무엇일까? 폴리스 국가 이전 공동체의 어떤 금기나 금기 같은 것, 그렇지만 "단순 개인적인 것 이상의 무엇을 고려하라"는 희미한 정신 같은 것? 그런 걸까?

  • 2024-03-21 23:57

    p233 호메로스적 신과 인간의 소박함은, 문학에서 형성된 신화가 디오뉘소스 합창대의 공연에 도입됨으로써 아테네 합창대석에 등장했다. 한 가지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비극이 인간과 신의 관계를 점차 호메로스 서사시와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이때 처음으로 자신을 자기 결단의 담지자로 자각한다.
    호메로스의 인간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자기 생각에 따라 사유하거나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 '생각난 것'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눈에 띄는 외적인 동기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이것은 신이 옆에 서서 도움을 주거나 해를 입히기 위해 인간에게 조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호메로스의 인간은 의심 없이 확신하고 행동하며, 의심도 의혹도, 정의와 불의에 대한 개인적 책임도 그를 괴롭히지 못한다. 신들 안에 숨은 은폐, 이 소박한 행동에 비극은 종말을 고한 셈이다.
    p234 두 신성이 한 인간에게 다른 요구를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자기 행위의 분명한 결과 앞에 멈추어 서서, 정의가 무엇이며 불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숙고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의 새로운 경지가 자연스럽게 깨치고 나오는데 이것이 자율적 행위와 자유 의식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사회적 옛 제약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
    ===》위 부분들을 읽으며 비극이 어떻게 사회적 구속력과 종교적 기능을 하게되는지를 비롯해서 비극의 역사가 궁금해졌습니다.

  • 2024-03-2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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