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입문 시즌 1] 4회차 후기 : 달콤씁쓸한 희랍 문학

토용
2024-03-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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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발견』은 희랍 고전 문학과 그들이 사용한 언어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사유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호메로스와 사포와 비극을 읽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만 있다. 진짜 나처럼 문학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읽어야하는데 또 읽기가 싫기도 하다. 올림포스 신이 나에게 서정시인의 시를 던져주는 것은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시를 이해할 수 없어 무력감에 빠지는 것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런 내면의 감정을 가지게 된 이상 호메로스적 인간이 되기는 틀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저 텍스트나 열심히 읽자!

 

책 제목이 왜 ‘정신의 발견’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 세계에 대한 개입이 너무 자연스러워 어떤 매개도 없이 신과 인간이 직접 만난다. 이에 반해 서정시인들은 매개를 거쳐서 신과 만난다. 이 때 매개는 내면의 어떤 것, 정신, 영혼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매개를 거쳐 어떤 감정이 발현이 된다.

 

저자가 서정시인들을 “개성의 서정시”라고 명명할 때 이 개성은 어떤 행위의 결과 생겨나는 고유의 감정들을 말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사랑은 신의 개입으로 운명처럼 내게 왔지만 불행한 사랑으로 인한 절망의 감정은 오롯이 개인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는 개인 행위가 아니고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달콤씁쓸한 에로스”는 호메로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영혼의 영역을 사포가 ‘발견’한 것이다. 에휴 이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한참동안 책장을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 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신의 개입이 사건을 관통하고 있다면 서정시인들에게서는 신의 개입 이후 인간의 내면의 변화가 중요하다. 서정시인들이 발견하고자 했던 ‘진정한 무엇’, ‘가상이 아닌 진상’은 신적인 것이 아닌 현실의 삶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내면의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대체로 무력감, 절망, 분노 등이다. 신과의 거리두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내면의 공간이 점점 커지면서 공통 신념과 사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희랍사유의 전개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부족사회에서 폴리스로 진행해 가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저자는 “희랍 민족의 성과인 문학류들은 희랍 민족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다.”라고 했나보다. 이 부분을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세미나 시간에 깜박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해준다고 해도 몇백 년에 걸친 점진적인 변화를 명확한 구분선을 그어가며 이해할 수는 없다. 더욱이 문학작품으로는. 그럼에도 세미나를 통해 호메로스부터 비극까지 신적인 것의 변화를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과 더불어 살던 호메로스의 신을 서정시인들은 매개를 거쳐서 만난다. 핀다로스는 탁월함에 가치를 더해주는 원리로서 신을 가져오고 경건하게 관조하며 아름답게 칭찬한다. 점점 신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비극에 이르러 신은 더 이상 현실과 관계하지 않고 하나의 전형으로 존재한다.

 

책에 인용이 된 서정시를 읽다보니 원래 이 시들이 합창시라는데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시가 신 혹은 인간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축제에서 불렸던 축제노래라는데 그리스에서 지금도 이런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비극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지. 글이 아니라 보고 듣는다면 나의 감수성이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닐걸요! 하는 정군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ㅋㅋㅋ

 

 

댓글 6
  • 2024-03-16 10:23

    영혼으로 표현된 사유영역이 서정시나 비극을 통해 나타났다는걸 배웠습니다 정신이란것도 한 순간에 이루어진게 아닌 시간의 흐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4-03-16 13:07

    왜 책 제목이 <정신의 발견>인가... 조금 이해되는 시간이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이런 의식 감각을 그 당시 상황에서는 더디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어떤면에서는 의식도 발전하는건가 하는 질문도 생기더라고요. 빠른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책이 어려웠는데 토용샘 후기 읽고 다시 읽어보려고요^^

  • 2024-03-16 18:28

    저도 왜 기쁨이 아닌 절망에서 개인적인 것을 보았을까라는 점이 궁금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우리도 기쁠 때는 외부로 확장되는 느낌이지만 절망은 반대로 내면으로 들어가 바깥과 단절되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는 합니다. 하여튼 가장 인간다움으로 표상되는 정신이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항으로서 작용하고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4-03-18 14:32

    ㅎㅎㅎㅎ 세미나할 때는 사실 설명하면서 알게 모르게 미묘한 답답함이 있었는데요, 이게 뭐랄까,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작품 원문을 읽었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거리감'을 제가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후기와 댓글들을 보니 제가 딱히 잘 설명하지 않았어도 찰떡 같이들 알아들으셨군요!!

  • 2024-03-19 20:57

    저도 문학 감수성 없다고 자부해왔지만.. 토용샘을 보며 '이것이 재능이구나' 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읽어내는 것'으로 돌파하시려는 모습이 멋지세요~~

  • 2024-03-19 21:57

    이번에 얻은 하나의 글귀, "달콤씁쓸한 에로스"~ 시인은 언어를 만들어내는 자이자 감정을, 정신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포의 시가 읽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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