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입문 시즌1] 4주차 질문들입니다

정군
2024-03-13 17:55
112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주만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자정까지 댓글 본문으로 질문 올려주세요!

댓글 10
  • 2024-03-14 19:27

    <신들의 전쟁> 제 6장 희랍비극에서 신화와 현실 요약 2024. 3. 15 최은주

    "역사가는 일어난 사건을 보고하고 시인은 있음직한 일을 이야기한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명제는 역사와 문학이 구분됨을 전제하고 있다. 이어 문학이 역사보다도 "좀더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문학은 보편적인 것을 목표하기 때문이며, 이런 보편성의 의식은 기원전 5세기에야 비로소 형성되었다.
    이때 신화는 재현을 통해 현재가 되는바 이것이 극의 시원 형태이고 제의적으로 재현되는 현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야기되는 일회적 사건, 찬가가 불리는 축제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 된다.
    신화와 현실의 관계를 보여 주는 본격적 형식은 트로이아인들이 헥토르의 혼례식에서 젊은 부부를 환영하여 부른 혼인노래로 끝나는 사포의 축혼가이다. 여기서 신화는 지상의 사건에 빛과 의미를 제공하고 지금 우리가 예전처럼 헥토르를 축하한다는 의식은 감정을 고조시킨다. 신화는 '현재적 현실'을 고양한다.
    비극의 시원은 디오뉘소스를 경배하는 합창대의 춤과 합창이었고, 합창대는 동물 분장을 통해 신적 존재로 화하여 디오뉘소스의 축복을 기원했다. 이때 신화 세계와 지상 현실이 합창대의 노래와 서사시의 신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비극은 변신을 포착했는바 서사시와 서정시에 다룬 이야기들의 풍부한 신화 세계가 비극 안으로 흘러 들어왔을때 신화와 현실의 연결 고리가 사라졌다. 신화서술을 통해 비록 긴밀하지 않으나 신화와 현실을 연결하던 서정시와 달리, 비극은 합창대 인물을 통한 재현, 신화의 실연에 집착함으로써 신화와 현실의 연결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렸다.
    그러나 신화의 서사시적 서술은 부활되지 않았다. 극은 단순히 현실성을 추구할 수 없었고 극장의 요구에 따라 사건을 고쳐야만 했다. 각각의 장면들로 극 전개가 구성되어야만 했고, 희랍 무대에 막이 없어서 각각의 장면들은 어떻든 같은 정경에서 끝까지 연출되어야만 했고, 극 전개는 대화로 진행되어야만 했다.
    극이 '현실성'의 요구들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극은 그만큼 더욱 강력하게 놀이의 규칙, 미적 법칙에 얽매이게 되었다. 현실파악은 학술적 산문이 담당하게 되었다.
    신화와 현실이 초기 희랍문학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는 다른 여러 문학류의 작품들을 통해 드러난다. 신화를 이야기하는 서사시는 신화를 현실로 받아들였고, 신화를 인간적 층위와 신적 층위로 나누어 구축한다. 여기서 신적 층위는 인간적 층위의 의미와 의의를 결정한다.
    신화적 범례가 신들 세계와 서사시적 영웅들 세계의 중간계로 우리를 데려갈때, 범례와 비유라는 '중간 층위'는 후에 경험적 사유에서 사용되는 유비 추론의 전 단계라 하겠다. 재현은 제현자들과 구경꾼에게 신화적 사건으로 '실재한다'.
    신화적 현실은 무엇인가? 현대적 감각에서 보면 신화적 현실은 거듭해서 현재화될 수 있는 '의의'를 지닌 사태이며,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신화는 현재를 해명하고 현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극은 신화에서 현실이라는 성격을 박탈한다. 극은 재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화는 극적 재현으로만 존재하는 독립된 세계로 변화된다.
    아티카에서 조형예술은 나름대로 독자적이고 특수한 세계로 간주했다. 예술은 현실이 아니었고 현실과 분리되었다.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고 묘사하고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 예술은 또 다른 고유의 현실이 된다. 비극처럼 현실로부터 해방되면서 조형예술은 마침내 모방 대상의 범위확대, 모방 대상의 자유변형, 예술의 자유 전개가 가능해졌다.
    '재현'에는 많은 옛 '진실'이 보존되며 재현은 현실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비극뿐만 아니라 조형예술도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현실적인 것'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현실' 개념이 생겨난다. 현실적인 것은 오로지 재현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할까?
    초기 희랍 서정시에서 인간이 자기자신을 말했던 것처럼 비극에서도 인간은 자기 감정, 생각, 욕망을 표현했다.
    비극은 신화 사건들을 그대로 가져오지도 않으며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신화사건들을 역사적 진실로 여기지도 않는다. 비극은 사건의 동기를 인간행동에서 찾고, 아이스퀼로스는 인간행동을 내면적 변화의 결과로 파악한 최초인물로 내면적 변화의 본질을 강조했고, 비극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의 대등하게 양립하는 주장들 가운데 정의와 운명의 인식을 통해 고귀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다. 행위가 가장 명확한 형식으로 양식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현실이 오로지 사상과 관념 안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책임의 엄중함을 오로지 행위 직전에 감지한다. 정의는 목표일 때만 혹은 의지 안에서만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신들의 행위와 언어로 세계의 의미를 설명할 때 신들의 언어와 행위는 객관적으로 기술 가능한 사태였다. 호메로스 세계의 인간은 아직 흔들림 없는 세계에서 태어났고 세계는 분명하게 인간에게 말을 걸고 인간은 이에 명료하게 대답한다. 신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보다 위대하며 그런 의미에서 초월적이며 인간의 통찰과 독립적으로 확고하게 항상 존재한다.
    아이스퀼로스에서 인간은 자신을 의지함으로써 아직은 정의의 확고한 토대를 확보했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지워진 무게가 너무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은 아이스퀼로스의 인물들보다 고독한데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것들에 의식적으로 대립하며 자기 파멸로 이어진다.
    실재와 가상을 처음 구분할 줄 알게 된 것은 철학자들이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과 불변을 찾으려 했을 때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아이스퀼로스는 존재의 표상을 정의의 표상과 결합했다. 특정 인물의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이스퀼로스의 특징이라면 누더기는 에우리피데스의 특징이었다. 남루한 일상은 화려한 치장보다 현실적이다. 여기에 사회적 표상이 작용하는데 정의로운 행위의 문제들이 차츰 정당성의 사변을 규정하게 되었다.
    인간 정신이 살아있는 것으로 변모함에 따라 영혼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되었고 인간 실존의 현실성은 이제 정신에 있게 되었고 극은 정신적 동기를 더 많이 찾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욕망, 지식, 영혼의 활동에서 빚어지는 갈등에 의해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외의 모든 것들은 망상이며 가상이다. 인간에 관한 지식 혹은 자기인식은 철학의 과제가 되었다. 현실은 더 이상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유미한것은 더 이상 사태로서 직접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현상들의 의미는 이제 인간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는다. 다시 말하여 신화는 죽었다. 신화는 더는 현실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예술적 현실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상고기 서정시의 신화는 승리, 혼인, 제의적 축제에 따라 시공간적으로 규정된 반면 비극의 신화는 보편 상황을 만들어 냈다. 비극의 목표인 인간 행위의 문제가 인식의 문제가 된 것과 진배없었다. 소크라테스는 문제를 선의 인식을 통해 풀려고 했으며 현실을 완벽하게 추상적으로 목적론적으로 파악했고 의미부여와 수용의 층위를 보편과 특수의 관계로 환원되었다.

  • 2024-03-14 22:21

    143쪽. 감정적 갈등이라는 내적 긴장을 서사시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상태는 호메로스가 영혼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신체 영역과 그 기능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포는 "달콤씁쓸한"이란 대담한 신조어로 영혼 영역을 신체 영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 (...) 최초의 서정시인들은 이 새로운 감정을 신적이며 초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심급으로까지 생각했다.

    144쪽. 초기 서정시인들은 사적 감정의 폭발조차 끊임없는 변전에 따라 인식했고 한번도 개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저자는 서정 시인들의 시구에서 '신체 영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영혼, 감정의 추상적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호메로스의 튀모스와 달리 서정시인들의 튀모스가 신적이고 초인간적이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적 감정의 표출이 개인 행위나 성취가 될 수 없고, 영원한 변전의 보편법칙을 따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 2024-03-14 22:22

    5장
    ‘무사 여신들’ 개념이 좀 독특하다고 느껴집니다. 제가 읽기엔 핀다로스에게 ‘찬양’은 지혜로운 시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을 투영했다고 할 수 있는 ‘무사 여신들’로 자신의 예술과 찬양을 ‘합리화’(177)할 필요가 있던 걸까요?

    199p.
    비극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200페이지에 나온 조각상의 예시처럼 “예술은 또 다른 고유의 현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현실과 제의로부터 해방되면서 비극만의 세계(현실)를 발명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6장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에 의한 '신화의 죽음'이 생각보다 빨리 일어난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인 듯한데, 호메로스 이전부터 내려져 오던 신화적 사고가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가 명확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비극의 발명과 함께 일어난 일이라고 봐야할까요? '신화의 죽음'이 일어난 시기의 맥락을 더 듣고 싶습니다.

  • 2024-03-14 22:25

    서정시나 극에서 나타내려는 바는 진정한 무엇이 가상이 아닌 진상을 발견 하는 것으로 호메로스 시대와 달리 신체와 영혼을 구별하며 외면보다 자기를 중시하는 내면을 표현하기시작했다고저자는 우리에게 알려 주는대 제가 궁금한것은 6장의 희랍비극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중 아이스킬로스 위주로 전개되는대 왜 그런가요? 우린 보통 소포크레스가 더 유명한것 같은대요? 단지 저자의 취향때문인가요?

  • 2024-03-14 22:58

    214) 현실성이라는 새 개념은 철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무엇보다 정신 영역이나 의미와 의의의 영역이 아니라, 인식 가능한 외부 세계와 연관되었다. 철학자들이 변화 속의 존재를, 즉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과 불변을 찾으려 했을 때, 감각되지 않고 사유될 뿐인 현실성, 감각 세계와 구분된 현실성이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에서 실재와 가상이 어떤식으로 작용되는지 궁금합니다.

  • 2024-03-14 23:07

    서정시인들이 발견하고자 한 '진정한 무엇', '가상이 아닌 진상'은 신적인 것이 아닌 현실 속의 인간,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현실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은 불확실성, 가혹함, 불행한 사랑, 무력감, 절망, 분노, 감정적 갈등 등, 부정적인 감정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영혼을 감정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감정이 신적인 것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적인 것과 인간을 분리하려고 했던 노력에 비해서는 말이죠. 호메로스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가운데 변화하고 있는 점을 설명하지만 그 차이점을 뚜렷하게 포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학 속의 사유라 당연한거겠지요? (제가 소설을 못 읽어서 그런가봐요. 하물며 시는 어떻겠어요. ㅋㅋ)

    130쪽 사랑의 감정은 신성때문인데 사랑을 잃고 절망하는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왜 절망의 감정은 신성이 안되는 것일까요? 133쪽 아르킬로코스의 시를 보면 신의 개입이 있는데요? 또 135쪽 사포의 시에서는 아프로디테가 여러 번 도와줬고 이번에도 도와줄 것을 알아 고뇌에서 벗어날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신성이 아닌걸까요?

    150쪽 아르킬로스는 정의로운 행위로서의 정의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고, 사포와 아나크레온은 전혀 정의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정의는 도대체 어떻게 마련된 것일까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151쪽)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도 경덕샘 질문과 같은 의문이 있습니다.
    신체와 분리된 영혼, "이 새로운 감정을 신적이며 초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심급으로까지 생각했다." 이것을 공통 신념과 사상으로 정신적 결속을 꾀했다고 봐도 될까요? 법, 제도 같은? 그러데 사실 시인들의 영혼관과 공통신념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정신적 결속 사이의 상관관계를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145쪽의 사포의 생각은, 행위는 개인 행위가 아니지만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 2024-03-14 23:23

    198~200쪽에 걸쳐 저자는 ‘서사시’와 ‘합창시’ 그리고 ‘희랍비극’이 출현하기까지 각각의 문학 안에서 ‘신화와 현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는데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200쪽에서 “비극뿐만이 아니라, 조형에술도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현실적인 것’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결정적 전회로부터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에서 현실주의에로의 길이 일직선으로 열리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현실’ 개념이 생겨난다”는 문장에서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현실적인 것’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와 이런 결정적 전회로부터 새로운 ‘현실’ 개념이 생겨난다라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 2024-03-14 23:25

    179)핀다로스가 자신의 작품 활동을 '화관을 짜는 일'이나 '조각 그림' 방식에 비유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세상을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낸다. 물론 그의 전개 방식은 모든 개별적인 것들이 전체를 구성하는 느낌, 레고를 맞추는 듯한 느낌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에게 시인은 현자다. 현자는 통일과 대립의 관계 다양성 속에서 세계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 세계의 본질이 부분들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을 뿐(178)이다. 이것은 유기적 전체에 종속된 하위 단위가 아니며, 비극이 보여주는 목표에 과정이 종속되는 경우와 다르다고 한다. 쇠라의 점묘법 같은 느낌인가. 그렇지만 178쪽을 보면, 핀다로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상호작용을 말하면서 타자와 연결된다고 말하는데, 유기체적 관계도 아닌 다른 어떤 식의 상호작용이 있을까? 그리고 그가 초기 서정시인들과 이후의 비극 작가들을 잇는 중간자적인 존재로 말해지는데, 그에게서 정신적인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저 세상을 조각 그림으로 제시하는 현자의 '관조', 그가 찾은 정신은 바로 그것인가?

    211)비극에서의 행위의 문제에 대해서. 4장에서 사포 등의 상고기 서정시인은 사적 감정의 폭발을 끊임없는 변전에 따라 인식했지만, 그것을 한 번도 개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144)고 저자는 쓰고 있다. 이럴 때, 도대체 개인 행위, 이건 뭐지? 사포 등은 그저 내면적으로 갖는 사랑이나 분노니 추억이니 하는 것들이 개인적인 무엇으로 보았지, 그것에서 기인해서 인간이 '행동'으로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즉 죽을만큼 괴로와서 자살을 한다거나 하는 행동. 그것은 비극에서의 행위에서 말할 것이니, 아직 사포 시기에는 있지 않는 것이라고. 아니면 거기까지는 아직 나아가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211쪽의 비극에서의 행위에 대해서 저자는 "행위가 가장 명확한 형식으로 양식화되었다"고 말하고, 또한 그것은 이미 현실이 오로지 사상과 관념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쓰고 있다. 으흠, 뭔 말인가. 양식화되었다는 것은,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식으로 전형화되었다는 말처럼 보이는데, 그거 사상과 관념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2024-03-14 23:45

    위대한 업적과 세계의 아름다움은 이를 찬미할 노래가 필요하다...노래는 영원하니, 아름다움은 ‘현자’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178p)고 서술했지만, (174p)에서는 세계질서와 아름다움의 불멸은 노래가 아니라, 그 의미를 밝혀 줄 현명한 시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노래보다 시를 칭송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보다 노래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다소 내용이 헷갈린다. 특히 이 글에서는 노래와 시를 ‘분명하게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고, 현자와 현명한 시인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둘은 혼용되어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더불어 텍스트로 된 기록물만을 가지고 어떻게 시와 노래를 구분할 수 있었을까?

  • 2024-03-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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