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입문 3회차 후기

경덕
2024-03-10 12:15
118
브루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 부제는 '희랍에서 서구 사유의 탄생'입니다. 정신, 또는 사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5세기 희랍과 만날 수 있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호메로스 시대와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정신의 발견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호메로스로부터 시작된 희랍문학과 철학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호메로스의 인간 이해와 현대인의 인간 이해는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할까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저자는 '초기 희랍 문화의 증언들을 지나치게 우리의 근대적 상상에 따라 평가'한다면 희랍적 사유의 발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강조합니다. 희랍인의 '정신'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발전하고 체계를 갖추어 현대 서구 '정신'으로 이어진 것은 맞지만, 희랍인의 '정신' 또한 어떤 시기의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 개념으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언급한 '현대의 서구 사유'는, 비서구 사유와 어느 정도로 공유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자가 희랍 텍스트를 "우리 유럽인의 정신적 과거"라고 말할 때" 비유럽인은 유럽인과 같은 방식의 독법을 취할 수 있을까요? 제국주의 시대, 탈식민 시대를 거쳐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고 있는 비서구 동양인, 한국인이 희랍 정신과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직 분명히 답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제가 실감하는 것은 어떤 기원으로부터 발생한 '인간 이해'가 여러 시대를 거쳐 유유히 흘러왔고,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금 여기에서의 '인간 이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런 역사적 과정을 탐구할 때 '지금 여기에서의 인간 이해'도 가능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간 이해'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어떤 편견 없이, "후대의 용법을 배제하고" 과거 텍스트와 만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정신의 발견>은 희랍적인 것을 탐구하면서도 고전을 독해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낯선 것과 기원적인 것을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이라고 서문에 밝힙니다. 그리고 1장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어구들을 인용하며, 어구 그 자체로부터 희랍인의 정신을 추적합니다.
 
παπταινειν, λενσσειν, θεωρειν, σωμα, δεμαζ, γυια, μελεα, χρωζ, ρεθη(레테), νοειν, ιδειν
 
1장에 주요하게 나오는 희랍 용어들입니다. 요약문을 작성하느라 음차도 달려 있지 않은 그리스 원어를 타이핑해야 했어요. 토용 샘은 희랍어가 원어 그대로 적혀 있어 난감했다고 하셨고 우현은 한글이 없으니까 원어를 직접 들여다보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고 했죠. 희랍어에는 '보다'를 뜻하는 용어가 많다고 합니다. 초기의 동사들은 '봄'의 기능 자체를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요. 상대방에게 관찰되는 봄의 '태도', 혹은 어떤 '감정'과 관련된 봄을 표현했던 것이죠. 객관적 '봄'을 뜻하는 말도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죠. '봄' 뿐만 아니라, 육체, 정신, 영혼 등의 말들도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호메로스는 프쉬케, 누우스, 튀모스로 나누어 상호보충 개념으로 사용했고 그것들은 신체기관들과 원리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영혼과 신체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성질로 보았다고 합니다. 육체와 달리 무한한 영혼, 깊은 영혼의 관념이 생겨난 것이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이나 '내면 세계'를 '신의 개입'과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훌륭한 질서를 가진 올륌포스의 신들이 인간의 정신에 관여했기 때문에, 희랍인의 '인간 이해' 또한 올륌포스 신들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놀라움, 경의, 경탄을 불러 일으켰던 호메로스의 신들은, 신들의 계보와 최고 신을 세운 헤시오도스에 의해 변화를 겪고, '관조적 삶'이 중요해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또 변화를 겪습니다. 저자는 관조적 태도가 올림퓌스의 신들을 희생시켰지만, '관조'에도 호메로스적 경탄에서 유래하는 종교적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올림퓌스의 신들은 예술 창조의 주제로 계속 계속 살아 남습니다. 
 
40쪽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사람들은 아무래도 동물에게 어떤 프쉬케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동물에 대해 프쉬케 대신에 동물이 죽을 때 떠나가는 튀모스를 생각해 냈다." 이 부분에서 저는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이 생각났어요. 아메리카 식민화를 둘러싸고 스페인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인디언들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구의 영혼 개념과 '인간 이해'는 같은 신체를 가졌어도 어떤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반대로 인디언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신체'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세상 모든 존재에게 영혼이 있지만, 신체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영혼와 신체 개념, 인간과 동물, 서구와 비서구와 같은 개념과 구분이 어떤 역사정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원리적으로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문제의식 없이 읽어도 고대 희랍인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읽을 챕터 또한 '관조' 이전에 '경탄'의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댓글 6
  • 2024-03-10 20:16

    정성들인 후기 멋져요!
    다들 그리스인들의 사유를 이해하려 애쓰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아마 '관조'하려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비교적 좀 편했던 것 같아요ㅎ 처음으로 읽었던 책과 함께 보니 그리스인들의 사유가 생각보다 직관적이라고나 할까.. 단순하다고 할까... '경탄'과 비슷한 느낌으로 직관이 딱 오는 느낌이 있거든요ㅎ

  • 2024-03-10 21:22

    신들이 인간에 개입시엔 자기의 역할을 가지고 개입함이 재밋있었고 호메로스때는 정신과 육체가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 저도 경덕님처럼 관조보다 경탄의 자세로 읽고 싶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4-03-10 21:30

    서구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방식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신성에 계속 경탄해야 하는데 너무 짧게 끝나버린 것 같아요. 벌써 헤시오도스도 신성을 서열화시켜버리고, 다음 시간에는 초기 희랍으로 들어가니까요.
    이 경탄을 느껴보려면 호메로스 서사시를 읽어야 하는데....^^

  • 2024-03-10 22:14

    서구 유럽인의 사고와 호메로스인의 사고도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서구의 교육으로 근대화된 우리들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세미나였습니다~

  • 2024-03-12 12:50

    잘 읽었습니다! 다만 몇가지, ‘어떤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이해’와 같은 관념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까딱하면, 현재의 이해들을 ‘기원’으로 환원하는 형태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텍스트를 읽을 때에도 ‘00가 기원이다’ 같은 말이 나오면 의심을 좀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호메로스 이후 올림포스의 신들은 예술창조의 주제로 살아남았다’는 부분인데요. 사실 그리스 신들은 로마 시대까지 ‘예술적 소재’ 이상의 의미로 살아남습니다. 대화편들이나, 스토아 문헌들, 로마 역사서 등을 봐도 헬라스-로마인들의 생활 세계 속에 여전히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따라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역사 서술의 층위입니다. 담론사적 수준은 당대의 일상세계의 수준 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텍스트가 ‘담론사적 서술’이라는 점에서 어디부터 언제까지는 이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이랬다고 할 때, 그건 일상세계 수준의 서술과는 다른 시간대를 보낸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상세한 후기 잘 쓰셨습니다!!

  • 2024-03-13 10:11

    '봄'의 기능과 행위의 전달에 대한 차이를 좀 더 생각하게 되었고요. '호메로스는 인간을 단일자로 본다.'는 것을 통해서 호메로스의 인간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58쪽)호메로스 인간들은 자기 영혼 안에 힘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고, 그들은 힘들을 어떤 마법에 의해 끌어낸 것이 아닌, 신으로부터 얻은 아주 자연스러운 선물로 여겼다.
    경덕쌤 후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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