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 입문] 1회차 후기

동화
2024-02-19 12:33
129

이번 주부터 철학 입문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샘들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현장 수업과 후기글로 인해 피곤한 주말을 보냈네요. 평소에 공부 안 한 티를 냅니다.ㅎㅎ

 

서양의 전통 철학은 ‘지중해 세계에서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바로 올 한 해 동안 공부하게 될 고대 그리스 철학이지요.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중점으로 배우게 될 텐데요. 당연한 말이지만 철학자들의 사유는 그들의 살았던 환경과 시대의 토대를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을 조건 짓는 세계’를 우선 살펴봐야 하겠지요. 그런 이유에서 정군샘이 그리스의 문명사에 초점을 맞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을 첫 번째 텍스트로 삼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첫 세미나에서는 ‘폴리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폴리스’는 ‘도시국가’라고 번역하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시, 국가와는 많이 다른 의미라고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만 명에서 삼만 명 정도의 씨족, 촌락 공동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요. 폴리스 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잘 아는 관계는 아니지만, 우리 폴리스 사람과 외부 사람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규모였기 때문에 폴리스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발생하고 발달할 수 있었겠지요.

 

정군샘은 플라톤의 텍스트를 읽을 때 ’폴리스’의 흥망성쇠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플라톤은 이념적 사람이기도 하지만 늘 현실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 당대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요. 플라톤의 이런 생각은 ‘국가’에서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국가’의 도입부에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로 ‘올라간다’라고 말하는데, 제자인 ‘폴레마르코스’가 그런 소크라테스를 붙잡습니다. ‘필레보스’로 내려와서 ‘정의’를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아테네’는 ‘이데아’를 의미하고, ‘필레보스’는 ‘이데아’의 정의가 펼쳐지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플라톤에게 철학자란 이념적 세계에 있으면서도 현세의 정치에도 발을 담그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스인들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다양한 기후나 척박한 환경, 이른바 생은 원래 ‘고’라는 관점에서는 그리스적인 ‘극적 비극’이 생기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스적인 ‘비극’은 온화한 기후의 지중해적 환경에서 오는 낙천성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삶에 대한 기쁨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안정된 상태를 모조리 뒤집어 놓는 사건을 만나야 합니다. 행복으로 충만했던 생이 돌연 뒤바뀌고 불행해지면서 지금의 삶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비극적 감정이 발생한다는 거지요. 그런 비극적 운명을 그리스인들이 표상할 때 신들이 질투하거나 장난한다고 해석하고요.

 

그리스의 비극은 소크라테스와도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대의 기준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전형적인 모난 돌이었습니다. 폴리스의 법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다이몬에 따라 행동했지요. 이런 행동은 오히려 우리의 감각에서 볼 때 근대적 시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소크라테스는 처형당합니다. 근소한 투표 차이로 죽게 되는 소크라테스의 운명도 비극적인데요. 그리스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유죄라는 판결은 소크라테스의 노력 부족의 결과, 또는 시민들의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닙니다. 신이 유죄라고 보고 그런 열정을 시민들에게 뿌렸다는 겁니다. 이런 ‘비극을 대하는 태도’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운명’이고 곧 ‘정의’라는 거지요.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정의‘와 당대의 그리스인들의 ’정의’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플라톤은 죽은 스승을 문학적으로 부활시켜 시민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게 만드니까요. 앞으로 배울 플라톤의 철학과 폴리스의 역사가 어떻게 연결되면서 펼쳐질지 궁금해집니다.

댓글 5
  • 2024-02-19 19:44

    세미나 때는 정말로, 아 그냥 확 일년 내내 그리스 문학작품만 읽었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그리스-아테네에 대한 키토샘의 과한 사랑 덕분에 쫙쫙 몰입되는 효과도 있었고요. 차후에 비극읽기 세미나 같은 거 진짜 만들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깔끔하고 핵심을 잘 살린 동화샘의 후기, 잘 봤습니다!! ^^

    • 2024-02-19 21:35

      내년 커리로 생각해보세요^^ 철학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세미나도 있으면 좋잖아요!

  • 2024-02-19 21:30

    혹시 동화샘 녹음하세요? ㅋㅋㅋ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읽었네요. 빨간 벽돌책만 보다가 머리가 정화되었어요^^
    전 폴리스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폴리스와 아레테와의 관계도 좀 더 명확해졌구요.

  • 2024-02-20 23:14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닌데 얼굴 봐서 같이 셈나해서 넘넘 좋았네요~ 이번주도 화이팅♡

  • 2024-02-22 02:31

    철학입문을 신청하지 못해 아쉬운 저에게 이런 상세하고 깔끔한 후기가 단비같아 반갑습니다^^
    폴리스 다시말해 도시국가라는 개념이 그렇게 작은 단위의 촌락 씨족 단위였군요, ‘도시’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좀 더 큰 단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이라는 책을 따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ㅋㅋㅋ
    후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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