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입문 시즌2] 2주차 후기

동화
2024-05-12 23:18
125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그리스 비극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는 현대적 상징성이 큰 신화라고 합니다. 우선 프로메테우스는 불과 기술을 인간들에게 줌으로써 그 대가로 천벌을 받습니다. 고난받는 영웅의 이미지, 즉 낭만주의적 이미지이지요. 반면 불은 계몽을 뜻하기 때문에 계몽주의적 영웅 이미지도 갖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된 은유는 오랫동안 중세에 묻혀있다가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던 때, 바로 고대 그리스 정신을 다시 되살리려고 애를 쓰던 때에 문학작품에서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시절 계몽의 이념은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표상하면서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고,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즉 사전에 아는 사람, 새 길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맑스도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서 상품의 운동역학을 알아낸다면 자본주의 전체의 동태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앞날을 미리 내다보는 사람이면서 노동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준다는 측면에서 맑스도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은 현대까지 억압받는 자에게 지식을 가져다주는 이미지로 계속 차용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도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는데요. 예수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이민족의 신이므로 불경합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제압 당해서 간을 쪼아 먹이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고 반면 예수는 결여가 없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스스로 묶인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은 고난을 받는 와중에도 주는 구조라는 거죠.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적 상징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넨 행위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 신이기 때문에 그저 자기 본성을 실현했을 뿐이라는 측면이 있을 수 있고요.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사랑해서 줬다면 이 또한 내적 원인에 따라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는 겁니다. 인간에게 뭔가를 바라고 준 것도 아니고,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욕망에서도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힘이 강하고 약한 것의 구분법이 더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역량들의 세계인 겁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내면과 외면이 분리되지 않은 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고난을 받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기의 본성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니체가 그토록 찬양한 그리스 신들의 ‘귀족성’입니다.
또한 프로메테우스를 교훈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불도 주고 기술도 주었는데도 저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슬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제우스의 커다란 힘을 인식하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필멸자인 인간이 신에게 대항하면 저렇게 된다는 교훈이지요.
프로메테우스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그는 제우스와 대립 구도를 보이지만 나머지 2,3부작에서는 도움을 줌으로써 제우스와 극적 화해를 합니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풀려나고 제우스는 그가 묶여있던 바위를 깎아 프로메테우스에게 반지를 끼워줍니다.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결박 상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으며, 결국 제우스 밑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도 ‘속박’의 상징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그리스 비극이 서구 문학의 상징체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렇게 다양한 각도의 해석과 여러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재밌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리스 비극에 이르러서 인간의 정신이 지금 우리의 정신과 흡사해졌다고 할 수 있겠죠. 다음 시간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오이디푸스’를 공부합니다. 그래서인지 정군샘이 할 이야기가 많다고 하네요. 아주 많이 기대가 됩니다~^^

댓글 3
  • 2024-05-13 14:48

    결석생을 위한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 2024-05-14 15:33

    동화쌤의 글 솜씨 부럽습니다

  • 2024-05-17 00:08

    동화샘 후기는 늘 꼼꼼하면서도 세심하네요. 후기만 읽어도 그날의 세미나 흐름이 그려집니다.
    덕분에 잠깐 지난 시간의 내용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하나하나 떠오르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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