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난잡한’ 아니 ‘난장판’ 가족 돌봄

먼불빛
2023-05-11 08:33
406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압축되어 있다.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인지... 라고 나는 말 할 자격이 없다. 그 고된 6년간을 오로지 동생 혼자서 돌덩이처럼 무거운 ‘엄마의 돌봄’을 감당해 왔다. 나는 언제든 그 복잡하고 힘든 현장을 떠날 구실(생계와 직장)을 갖고 있었다. 이제 엄마의 돌봄 7년 차에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엄마는 이전과 다른 의존적 몸으로 변했고, 우리의 손이 아닌 시설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엄마와 같이 살면서 사랑과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동생은 엄마 돌봄에서 나가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나는 작년 퇴직 후 7월경부터 엄마 돌봄에 합류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 각자에게 윤리적이든, 상황 논리적이든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해도 참담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이 돌봄의 난장판을 어떻게 통과할까.

 

 

여동생의 딜레마

 

 

동생이 엄마 돌봄에 슬슬 지쳐가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더 오래전이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건 2021년 정도부터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는 치명적이었다. 엄마는 센터를 나가지 못하면서 우울증이 심해졌고,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들이 자꾸 생기면서 한동안 엄마를 보러 가지 못했다. 동생은 세 남매의 단톡방에 ‘지쳤다’ ‘힘들다’ ‘엄마에게 자주 짜증 낸다’라는 문자를 올렸고 주말에 방문 당번을 정하고 벌금을 내자는 안까지 올렸다. 오빠는 언제나 짧게 ‘못가’라고 당당히 답하거나, 묵묵부답이었고, 나는 대체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은 했지만, 솔직히 엄마나 동생이 1순위가 되지는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해하거나 변명이라도 했다는 점이 오빠와 다르다면 달랐을까 동생 입장에서 야속하기는 마찬가지였었을 것이다.

 

퇴직한 나는 동생에게 ‘노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동생 입장에서 나는 언제든 엄마가 필요로 할 때 달려가야 하고 바쁘다느니, 일이 있다느니 따위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언니가 시간이 많으니, 엄마를 가장 많이 돌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항변하는 것 같았다. 동생은 이제 이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동생의 마음속을 훔쳐볼 수 있다면 분명 이렇게 일갈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산 6년 동안 독박을 제대로 썼다.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이란 몸도 영혼도 모두 뺏기는 일이다. 엄마의 부정적인 기운이 너무 싫고 답답해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집은 쉬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어디 갈 곳도 없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애탕 끌탕 하며 보살폈지만, 고맙다는 말보다는 늘 성에 차지 않아 했다. 물론 나도 엄마에게 잘해주지 못했다. 엄마에게 있는 대로 짜증을 냈는가 하면,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퍼부었고, 혼자 내버려 둘 때가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대체 얼마만큼 해야 효녀가 되는 걸까? 어디에 있든 늘 ‘엄마’라는 존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짓눌렀다. 일을 하고 있어도 집중이 안 된다. 언제 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늘 불안하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언니나 오빠는 그저 잠시 스쳐 가는 바람 같은 존재다. 결국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언니가 작년에 퇴직하고 집에 있을 때는 엄마를 많이 돌봐주었다.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언니가 쉬는 동안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책임을 더 가져 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일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 언니를 더 호출했다. 언니는 어떤 설명 없이도 뭘 해야 하는지 알아서 일을 해주었다. 정말 의지가 되었다. 그러나 언니는 취직해 버렸다. 끝났다.

 

작년에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계실 때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사경을 헤매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집이 집 같았다. 그런데 최근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조금 회복하는 듯 보이자 언니는 엄마를 다시 집으로 모셔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물론 나도 언니 말대로 엄마를 집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두가 안 난다. 나는 엄마가 다니던 주간보호센터 원장님과 상의해 보았다. 원장님은 대기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하기까지 센터에서 지내시도록 할 수는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센터로 모시자고 언니, 오빠에게 제안했다. 엄마도 원했고 낯선 요양원보다는 나은 선택 같았기 때문이다.

 

 

ⓒ이지영 그림 (<시사인>  2022.04.24 )

 

 

엄마는 지금 센터(공동생활가정)에 있으면서도 나에게 수시로 전화한다. 집에 오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 잠깐 엄마가 집으로 왔을 때도 벌써 세 번이나 넘어지셨다. 현관 비밀번호도 까먹고 멍하니 서 있는 엄마를 어떻게 집으로 모실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엄마가 있는 곳은 밤에도 돌봄을 받을 수 있어서 다른 시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시설이 다 똑같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여기가 차라리 나는 낫다고 생각한다. 24시간 요양보호사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구한다 해도 집도 좁고 엄마를 돌보는데 더 낫다는 보장을 못하겠다. 그런데도 정말 집으로 모시는 것만이 능사일까? 엄마를 집으로 모시는 순간 독박 돌봄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엄마가 거기 계시면 언니도, 오빠도 나도 비교적 공평하게 엄마를 돌볼 수 있다. 지금 그냥 엄마를 저대로 두면 나는 나쁜 자식일까? 그런데 왜 나만 나쁜년이 돼야 하는 거지? 왜, 왜? 억울하다.

 

 

나의 졸렬한 변명

 

 

엄마 돌봄이 막상 내게 닥치고 보니, 엄마도 엄마지만 동생이 더 심각해 보였다. 처음엔 동생에게 정말 진심으로 미안했고, 엄마보다는 동생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모든 행동이 다 이해가 됐고, 집에 들어오기 싫은 것, 엄마에 대해 끊임없이 욕을 하는 그 마음도 이해가 됐다. 그럴수록 빨리 엄마에게서 벗어나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를 돌보는 시간이 동생에게는 휴식이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내가 합류하자 동생의 태도는 점차 달라졌다.  일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엄마 돌봄에서  빠지려고 한다. 나를 돌려막기로 세워 놓고 엄마의 독박 돌봄에서 슬쩍 빠져나가자는 속셈이 아닐까? 엄마를 돌보는 일보다 동생과의 신경전이 나로서는 더 스트레스였다. 너무 화가 나는데 따지고 보면 엄마도 동생도 나도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다. 엄마의 돌봄은 내가 안 하면 동생이 해야 하고, 동생이 안 하면 내가 해야 하는 시소게임이다. 동생과 내가 엄마 돌봄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항상 찜찜하고 죄스럽고, 잘돼봐야 ‘찜찜한 홀가분함’ 밖에 남지 않았다.

 

오빠는 자기 일정에 어떤 피해도 볼 수 없다는 태도다. 거절도 너무 당당하고, 거침이 없어서 그 기세에 눌릴 판이다. 그도 마음 한구석에 우리처럼 ‘죄스러움’과 ‘찜찜한 홀가분함’이라는 게 있을까? 물론 오빠도 새언니 눈치 보랴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테지. 그러나 그런 것까지 내가 친절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나 동생이 오빠를 타박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몹시 불편해하며 우리 삼 형제가 합심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길 원했다. 저럴 땐 나도 엄마가 혼자 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싶다. 오빠는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한은 가져가려고 한다. 지난번 엄마를 병원에서 퇴원시키려고 할 때도 엄마를 자기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나는 엄마의 옷이라던가, 기저귀 등 물품이 많이 필요할 텐데 자주 왔다 갔다 하고 사소한 심부름을 오빠가 다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흥! 결국 동생이 그 먼 데까지 잔심부름으로 왔다 갔다 할 게 뻔하니까). 그러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그럼 엄마 집 근처로 모시자고 했다. 매사에 저런 식이다. 오빠를 저렇게 만든 건 다 엄마, 아빠 잘못이다. 1남 2녀의 그 잘난 K-장남으로 키워진 탓이다. 동생이나 나나 오빠와 싸우자니 지치고, 그냥 넘어가자니 속이 끓는다. 결과적으로 오빠 몫까지 땜빵하고 있는 꼴을 보면 내 뼛속엔 가부장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몸서리쳐진다. 엄마 돌아가시면 안 보고 살 거다. 얼어 죽을 놈의 가족 따위는 해체야. The end라구.

 

 

 

 

 

엄마를 요양병원에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6년 전에 입소했던 요양병원은 모든 시설이 개방되어 있었고,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다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내부 통제가 철저해 대체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엄마의 말만으로 모든 상황을 짐작할 뿐이다. 엄마를 당장 집에 모실 수 없다면 적어도 병원보다는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센터(공동생활가정)가 훨씬 낫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대기 기간이 꽤 길 텐데 일시적이라면 모르지만, 계속 있게 된다면 엄마에게 괜찮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집’으로 모시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런데 오빠는 단칼에 ‘엄마가 괜찮다는 데 무슨 소리냐’고 했고, 동생은 내 말에 수긍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자신 없다며 피했다.

 

그래, 내가 엄마를 집으로 모시자고 얘기하는 건 주제넘은 소리다. 그건 또 동생에게 엄마에 대한 전적인 부담을 지우는 일이니까. 아무리 내 몫만큼 감당해 준다 한들 24시간 함께 사는 동생의 하중에 비할 수 있을까? 요양보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엄마도 엄마지만 동생도 살려야 한다. 오죽하면 동생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너무 마음이 가벼웠다고 했다. 그 맘을 내가 어찌 모를까. 엄마가 집으로 못 갈 바에야 지금 있는 곳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라도 집에 모시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세 남매에게 최선이 엄마에게도 최선일까?

 

답답하고 미치겠다던 엄마가 며칠 전 오빠를 만나고는 다시 거기 그냥 있겠다고 했다. 오빠 말 한마디가 엄마를 움직이는 꼴이라니. 그러나 안다 나는. 엄마는 우리가 힘들까 봐 참는 것이라는 것을. 엄마의 안전과 평안을 중심에 놓고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일이 돌봄일 텐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 돌봄에 동생과 내가 진 몫은 2분의 1이 아니라, 3분의 1이다. 나머지 1은 엄마의 셀프다. 자식들을 위해 불편해도, 집에 가고 싶어도 시설에서 지내며 견뎌보고자 하는 엄마 자신의 노력 말이다. 돌봄에 공평한 몫의 나눔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엄마가 스스로 견디는 그 몫 덕분에 동생과 나는 그 더럽고 치사스러운 시소게임을 멈출 수 있다.

 

 

내가 빨리 죽어야 느그가 편할낀데..

 

 

결국 이 와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엄마다. 그런데도 엄마는 ‘엄마 거기 어때? 지낼만해?’하고 물으면 ‘마, 그저 글타.. 그냥 그렇게 지내는 거지’ 한다. 엄마는 혹시 아수라 백작인가? 센터에 있을 땐 답답하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전화해서 마음을 들쑤셔 놓고, 만나서 얼굴 맞대고 물으면 대답이 달라진다. 늙고 병든 엄마의 의사는 믿을 만한 것인지, 그저 우리가 도리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식 된 도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 상황에서 맞게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쏭달쏭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얼른 죽어야 느그들이 편할낀데...’ 하는 엄마의 그 말만은 진심일 것이다. 엄마 돌봄의 문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누구에게도 흡족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데 그 누군가가 돌봄을 받아야 할 당사자가 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엄마를 시설에 모시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시설이 좋다, 나쁘다도 아니다. 엄마를 놓고 우리 세 남매의 각기 다른 입장들과 어려움, ‘죄책감’과 이 ‘찜찜한 홀가분함’ 사이에서 결국 엄마의 희생을 담보로 얻어지는 각자의 평화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난잡한 돌봄’은 커녕 난장판처럼 혼란스럽고 진퇴양난인 이 사태 앞에서 나는 과연 ‘웰컴투 60’이라 말해도 되는 것일까? 이것은 그대로 곧 내게 닥쳐올 미래일 것인데….

 

 

댓글 7
  • 2023-05-11 10:27

    저 역시 모친 돌봄을 준비 중(우선 현재는 마음가짐만요.)인 1인입니다. 저는 혼자여서 형제끼리의 시소게임을 안해도 되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23-05-11 10:32

    주간보호센터, 공동생활가정......요양병원 말고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네요. 난장판에서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지만 이렇게 써주셔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알아야 할 것,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네요!!

  • 2023-05-11 12:17

    저는 이미 난장판 비스무리하게 스쳐간 1인입니다.
    글을 읽으니 저랑 오빠만이 돌봄을 한게 아니고 요양병원에 입소했던 엄마도 함께 돌봄의 몫을 나눈거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친 돌봄의 현장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예전의 일들이 다시 구성되네요.

  • 2023-05-11 16:37

    남의 일 같지 않게 읽히는 1인, 음... 생각이 더더더 많아지는군요 ㅋㅋ

  • 2023-05-14 22:00

    저에게도 곧 닥칠 일들이겠죠…동생들과 부디 잘 헤쳐나가길 바라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참..어려운 문제입니다..

  • 2023-05-22 11:53

    무사님 진정 혼자가 오히려 다행이랍니다 ㅎㅎㅎ
    근데 그게 혼자는 아니라는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다름 아닌 엄마가 계시죠
    돌봄은 일방적 서비스가 아닌 상호관계맺기라는 .....

    그나저나 모두들 화이팅!!! 입니다^^

  • 2023-06-04 07:39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이 시대의 난제. 노인돌봄.
    현재의 부모 돌봄은 가부장적 문화 아래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군요. 그렇게 키워진 건지, 환경이 그러한 건지, 아님 남자들이 원래 싸가지가 없는 건지. 언니도 없고 여동생도 없는 나는 그래도 울 오빠 정도면 괜찮지 하고 지냅니다. 수시로 집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ㅎㅎㅎ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나는 원래 체구가 작고 동그란 얼굴 덕에 어려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작년 정년퇴직을 한 이후 일정하게 반복되던 루틴이 사라지자 나는 부쩍 더 늙어보였다. 나름 운동도 하고 바삐 지낸다고 했지만 일 할 때보다 활동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일 할때만 해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언닌 아직 너무 젊어 보여, 더 일해야지...” 했는데, 늙음은 마치 나의 정년퇴직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속적으로 덮쳐 왔다 온 몸으로. 온 몸에서 노화의 징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 거울을 보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었다.           머리카락이 늙었다     그 중에서 얼굴의 팔자 주름도, 탄력 떨어진 팔뚝과 뱃살도 아닌 단연코 가슴 아픈 나의 나이듦의 징후는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양치할 때마다 하얀 세면기에는 3초에 하나씩 머리카락이 뚝뚝 떨어진다. 샴푸하면서 샤워기 물 따라 빠져나가 수북히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제 내 머리에 붙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세보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집은 엄마, 오빠와 그리고 나, 동생까지 숱이 많고 윤기 있는 머리로 늘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있는 숱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데 그 와중에 새로 자라나는 잔머리까지 많아 늘 삐죽삐죽 삐져나와 곱게 땋아지지 않을 정도로 넘치던 숱. “와! 너 지~인~짜...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나는 원래 체구가 작고 동그란 얼굴 덕에 어려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작년 정년퇴직을 한 이후 일정하게 반복되던 루틴이 사라지자 나는 부쩍 더 늙어보였다. 나름 운동도 하고 바삐 지낸다고 했지만 일 할 때보다 활동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일 할때만 해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언닌 아직 너무 젊어 보여, 더 일해야지...” 했는데, 늙음은 마치 나의 정년퇴직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속적으로 덮쳐 왔다 온 몸으로. 온 몸에서 노화의 징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 거울을 보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었다.           머리카락이 늙었다     그 중에서 얼굴의 팔자 주름도, 탄력 떨어진 팔뚝과 뱃살도 아닌 단연코 가슴 아픈 나의 나이듦의 징후는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양치할 때마다 하얀 세면기에는 3초에 하나씩 머리카락이 뚝뚝 떨어진다. 샴푸하면서 샤워기 물 따라 빠져나가 수북히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제 내 머리에 붙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세보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집은 엄마, 오빠와 그리고 나, 동생까지 숱이 많고 윤기 있는 머리로 늘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있는 숱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데 그 와중에 새로 자라나는 잔머리까지 많아 늘 삐죽삐죽 삐져나와 곱게 땋아지지 않을 정도로 넘치던 숱. “와! 너 지~인~짜...
먼불빛
2023.10.14 | 조회 357
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먼불빛
2023.08.24 | 조회 300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먼불빛
2023.06.20 | 조회 403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 조회 406
먼불빛의 웰컴 투 60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먼불빛
2023.03.27 | 조회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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