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마포난지생명길에서 만난 숲

기린
2024-02-05 17:48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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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천변의 산책로에 대형 할인점까지 들어서서 예전을 짐작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코스를 따라 차도를 걸어가다가 하늘공원입구로 접어들었다. 길을 나서기 전에 책을 사서 훑어보고 왔기 때문에,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면에 저절로 눈이 갔다. 쓰레기 매립을 끝내고 공사를 시작할 때 침출수나 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쓰레기 산 위를 반영구 특수필름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 위로 꼭대기에는 120센티미터, 경사지에는 50센티미터의 흙을 쌓아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공사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경사지에 쌓았던 흙들이 빗물 등에 쓸려 내려가면서 썩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대로 드러난 곳에, 시민모임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1년이라고 했다.

 

 

 

2. 고맙다, 꾸지나무야

 

경사로를 오르다보니 나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마운 나무 숲’ 이라는 숲 표지목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표지목이라 반가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 숲 사이로 드문드문 비닐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했다. 공원의 경사면 중에서도 비닐 쓰레기가 가장 심한 곳에 꾸지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꾸지나무는 가장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선구식물로 알려진 아까시나무 조차도 자라지 못하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나무란다. 그래서 모임의 사람들은 이 나무를 ‘고마운 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무를 심던 초창기 닥나무를 주문했는데 실제로 공급받은 나무가 꾸지나무였다는 것을 여러해 심고 키운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 그루 섞여왔던 닥나무는 거의 죽었는데 꾸지나무는 꿋꿋하게 쓰레기더미의 흙에서 뿌리를 내려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간직한 나무다. 한 겨울이라 여름에 빨갛게 열린다는 열매를 보지는 못했지만, 쓰레기산을 터전으로 삼은 생명력을 떠올리니 표지목 근처에 오래 눈길이 갔다.

 

 

 

공원의 경사면에 자라는 어린 나무들을 살펴보며 걷다보니 하늘공원 정상에 이르렀다. 가을이면 잘 가꾸어진 억새밭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억새들은 모두 베어지고 둘러쳐진 밧줄과 버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로 난방공사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보였다. 특수 필름으로 덮여 있는 쓰레기산에서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분출되는 가스를 공원 곳곳에 연결된 난방공사의 가스관을 통해서 재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공원 정상에 서니 한강의 다리들이 보였고, 흐리긴 했지만 북한산과 관악산까지 보여서 시야가 탁 트이는 맛이 있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오니 노을공원으로 이어졌다. 노을공원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나무자람터까지 올라가니, 나무를 가꾸는 묘판이나 여러 도구들이 모여 있는 터가 보였다. 여기서 2011년부터 공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했나보다. 전체 공원의 절반 가까이의 경사면에 나무를 심고 빗물을 모아 물을 주면서 보살폈던 이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파란색 대형 물통에 써진 글씨나, 한쪽에 세워진 표지목 더미를 보니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가늘게 흩뿌리는 비는 여전했지만 텅 빈 장소 주변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계절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았다.

 

 

3.  생명의 씨앗을 싹 틔우는 이야기

 

 노을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와 마포난지생명길의 나머지 구간을 걸었다. 노을공원의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쓰레기와 함께 묻힌 흙속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을 보았다. 십 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이 척박한 곳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손길을 생각했다. 그 손길을 “이 땅의 생명이 품은 변화의 힘에 운 좋게 동승한 것”(위의 책 207쪽) 이라 여기는 마음도 떠올랐다. 저자가 책에서 거듭 밝혔던 자연의 순리, 공존을 지향하는 자연이 모든 존재를 살리는 방향을 향해 멈춤 없이 변화해가는 그 이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장(場)이 거기 있었다.

 

쓰레기산을 숲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시작한 후 첫 활동은 1만 그루의 백두산미인송 어린나무 심기였다. 백두산에서 받아온 씨앗으로 키운 나무로 다시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이곳으로 보내진 나무였다. 이 나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토양이 맞지 않았을 수도 또는 옮겨 심는 과정에서 어린 나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살리지 못했지만 심고 가꾸는 내내 드나들던 곳에서 어린나무들을 발견하면서, 이들의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위해식물이라고 터부시하는 식물들이 먼저 뿌리를 내리고 그것들이 죽어서 분해가 되면서 땅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러면 또 다른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는 사이 황무지는 점점 숲이 되어 갔다. 인간들이 위해식물이라고 분류했을 뿐, 자연에게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율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라니까지 깃들어 사는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가 쓰레기를 만들고 버릴 때 그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노을 공원에는 그 결과의 일부가 있다. 그 곳에서 자연과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협력하여 함께 살기를 바라는 노력이 이루어낸 숲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지나간 곳에 남겨진 폐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수 있다. 애나 칭이 『세계 끝의 버섯』에서 송이버섯의 이야기를 찾아 벌목으로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갔다면, 우리는 쓰레기산을 감싸고 있는 숲의 이야기를 찾아 노을공원으로 가보자. 공원을 걷다보면, 숲이 전하는 생명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함께 가요, 우리^^

 

댓글 5
  • 2024-02-05 21:08

    네!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 2024-02-06 09:20

    책을 읽고 싶네요

  • 2024-02-06 19:23

    책도 읽고 싶고 노을공원도 가보고 싶네요^^

  • 2024-02-08 10:30

    한동안 환경호르몬이 나온다고... 꺼려하기도 했었는데, 자연은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 2024-02-19 10:44

    애들 어려서 하늘공원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요. 억새를 보러 갔던 것 같은데...
    어마어마하던 난지도 쓰레기의 흔적은 없고 잘 관리되어진 공원에 놀라웠죠. 그 많던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간 거야? 라며. 밟고 선 줄도 모르고.

    꾸지나무(꾸지뽕) 열매는 과거의 쌤이 보고 드셨을 텐데요...ㅎㅎ
    담쟁이 작업장 시절에 밀양에서 꾸지뽕 열매를 선물로 주셔서
    그걸로 잼을 만들었던 추억이 방울방울~^^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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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4.06 | 조회 222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17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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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2.05 |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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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299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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