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해파랑길 24코스를 걷다보면(with 땡볕)

기린
2023-08-06 06:27
326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중에서 24코스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도에서는 직선으로 단조롭게 그어진 해안선으로 보이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바닷가 파도는 거셌고 바다 위로 융기한 삐죽 삐죽한 바위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기억의 바다는 위험하고 한 여름에도 깊은 수심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유난한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집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든가, 해수욕을 하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갔다는 누구 집 자식의 이야기도 가끔 들려오는 그런 곳이었다.

 

 

 

변한 것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바다의 주변은 점점 변해갔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개통되고 항구에 배가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바다 가운데 방파제가 건설되었다. 파도가 치면서 실어 나르는 모래들로 예전에는 없었던 모래사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해수욕장이 개장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해수욕장과 관련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여름 한 철 피서객들이 제법 북적였다. 등대가 있던 등기산이 정비되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최근에는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가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생겼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바다 주변을 메우고 깎고 뭔가 짓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후포항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까지 만선으로 돌아온 어선들이 부근에 팔고 남은 생선들이 많아 누구라도 가져가게 할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거기서 후포(厚浦)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날로 어획량이 줄어 경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가 하면, 뱃일을 하겠다는 사람도 계속 줄어서 몇 년 사이 이주 노동자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24코스를 따라 거일-직산-구산-기성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옹기종기 형성된 마을에 집들이 많이 낡아 보였다. 빈집도 많았다. 도시 집중화와 맞물려 쇠락해가는 지방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것들

 

 

   24코스는 내내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다. 바다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주변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동해의 푸른 빛 바다와 파도 소리, 갈매기들이 드나드는 터전은 그대로였다. 그늘 한 점 들지 않는 길을 걷자니 땀방울이 맺혔지만 주르륵 흘러내리기 전에 말랐다. 햇빛으로 뜨거워진 몸을 동해의 푸른 바람에 말려가며 걷는 맛이었다. 팔토시로 가린 손목을 경계로 해서 손등이 점점 구리빛으로 달구어졌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한결 같았을 태양과 바다와 내가 합체가 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사라질 나와 달리 늘 뜨겁게 빛나고 늘 푸르게 파도치며 살아가는 존재의 위엄이 흘러 넘쳤다.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24코스의 삼분의 일 지점 무렵에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 세워진 것을, 조선 중기에 정자로 중건된 곳이라고 한다. 월송정 주변은 푸른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정자에 올라 보면 앞으로 흰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풍광이 시야에 들어왔다. 월송정에서 내려오는데 다정히 손을 잡고 오르는 연인을 지나쳤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월송정은 울진에 있는 남고와 후포고 여학생들의 미팅장소였다. 미팅이 있던 일요일을 보낸 월요일 아침이면, 누구와 누가 사귀게 되었다는 소문이 교실에 퍼지곤 했다. 정자 주변 소나무 숲에서 한 쌍씩 짝을 지어 제법 숙덕거렸겠다. 졸업 때까지 나에게는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반짝 떠올랐다.

 

 

 

 

걷다가 마주친 즐거움

 

 

  24코스의 삼분의 이 지점을 통과할 즈음에는 바다에서 떨어진 산중턱으로 길이 나 있었다. 산에 가려서 바람도 불지 않는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내내 쌩쌩 달리는 자동차만 나를 지나쳤는데, 이 땡볕에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는 경사진 도로를 함께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 짧은 스침임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하마터면 소리칠 뻔 했다. 반가워요! 그 기분을 살려 저만치 멀어지는 뒤통수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날렸다.

 

 

 

 

   해안선을 따라 융기한 암석 주변에서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잡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 따다가 말리려고 널어놓은 청각도 보였다. 몇 년 사이 동해안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오징어 서너 마리를 바다 바람에 널어놓은 건조대도 지났다. 그 풍경들을 지나가면서 파도와 모래만이 아니라 뭔가 잡을 수 있는 그래서 오랜 동안 우리를 먹여 살린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고향집 근처에 바다에서도 여름이면 백합을 캐서 삶고 부치고 구워서 먹곤 했다. 24코스의 종점 기성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이미 바다 속에 들어가 조개를 캐고 있었다. 3만보에 다섯 시간 내내 땡볕을 걷고 난 참이었는데도 바다로 들어갈 마음이라니, 바다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로 나를 부르는 곳이다. 

 

댓글 6
  • 2023-08-07 09:47

    바다 가고 싶다!!!

  • 2023-08-07 14:16

    오징어가 잡히긴 하나보네요. 줄지어 널려있는 모습이 정겹군요. ^^ 근데 뙤약볕 아래 5시간 걷기는 좀 걱정됩니다! 이제 몸도 생각해 가면서~

  • 2023-08-07 22:32

    잔잔한 남해바다만 보고 자란 저에게 동해바다는 처음 봤을 때 참 무섭게 느껴졌는데,
    기린의 바다에는 짭조롬한 이야기가 함께 있네요.

  • 2023-08-11 09:52

    7월 초 속초와 고성으로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고성의 송지호 주변에도 해파랑길이 있더라고요. 포레스트 기린샘께 몇번 들었던 길이어서 나름 친근했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길을 소개해주시며 같이 걷자 이야기를 건네실지 궁금하네요^^

  • 2023-08-12 07:25

    처음 나타난 지도를 보고 저 길을 다 걸었어?하고 놀랄뻔~ㅋㅋ
    바닷가 나란히 서있는 갈매기(맞죠?) 사진 너무 신기해서 다운받았어요.

    해파랑길 걸어보고 싶어요. 저도 반가워요 소리치는 마음 갖고 싶어요 ㅎㅎ
    언제 같이 걷는 기회를 주세요^^

  • 2023-08-15 08:57

    기린샘은 지금도 귀엽지만 중고딩시절엔 더 귀여웠을것 같지 말입니다.ㅎㅎ

    귀여움 플러스....
    땡볕을 걷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패기와 호기가 넘치는군요. ㅎㅎ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22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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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3.05 | 조회 31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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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2.05 | 조회 290
기린의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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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299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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