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이런 조합 처음이야!

기린
2023-07-06 05:49
463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정말 갈 수 있을까

 

 올해 2월 정월대보름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 모임이 있었다. 공동체에 인문학 공부를 하러 와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중에서 비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모임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주제가 있거나 하는 건 아니고, 시간이 되면 모여서 밥 먹고 수다나 떠는 취지로 모였다. 작년 8월에 총 일곱 명이 모였는데, 하는 공부도 다르고 했던 시기도 제 각각이라 그 날 처음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 그 후 두 번 정도 만났으니 아직은 조금은 서먹한 사이들이었다. 이 날 저녁은 보름에 어울리는 음식들을 각자 조금씩 챙겨 와서 한 상 차려놓고 맛있게 먹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와중에, 20년 근속을 끝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가 제주 한 달 살기 여행 계획을 밝혔다. 자신이 여행하는 기간에 시간이 되면 제주에 놀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다들 좋다며 그 자리에서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6월 현충일을 끼고 3박 4일의 일정의 제주 여행이 잡혔다.

 

 모임 다음 날 날짜에 맞춰 일단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정말 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연 초부터 제주를 두 번이나 다녀오는 다른 일정도 있었다. 여행 날짜 앞뒤로 인문약방의 구체적 일정들이 잡혔고,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어서 4월 어느 날은 티켓을 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꺼내자니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제주 올레길에 대한 궁금증도 여전했다. 결국 다시 티켓을 예매했고, 본격적으로 여행준비를 했다. 최종으로 다섯 명이 함께 여행하게 되었고, 다들 출발과 돌아오는 시간이 제각각이이서 딱 하루 전원이 모여서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1일차- 제주 올레길 7코스

 

 토요일 근무 후 마지막 비행기로 내가 제일 먼저 제주에 도착했다. 한 달 살이로 먼저 가 있던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다음 날 친구와 나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출발하는 7코스를 걸었다. 올레길의 슈퍼스타라는 별명답게 걷는 내내 제주 해안의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 동해안의 단조로운 해안선에 익숙한 내가 바다에서 20미터 높이로 솟아난 돌기둥 외돌개를 마주하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다 풍경 좀 안다는 말이 쏙 들어갈 만한 비경이었다.

 

 

 

 서귀포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마을길까지 접어들었는데, 스피커에서 음악소리에 구령까지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요일 오전에 마을에 이렇게 큰 소리가 나도 사람들이 항의를 안 하나 보다며 신기해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걷다가 길가에 걸린 플랜카드를 발견했다. 서귀포 여고의 총동문회 체육대회였다. 함성의 실체를 알고 나니 언니들의 운동회를 구경하고 싶기도 했지만, 오후에 도착하는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곳에 천막집이었다. 멍게와 소라 등이 안주로 나오는 그곳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느라, 숙소에 먼저 도착한 친구를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덕분에 바다를 바라보며 쌉싸름한 멍게 한 점 제대로 맛보았다.

 

 

 

2일차 –새별오름과 방주교회, 약천사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완전체로 뭉친 우리가 함께 간 곳은 애월읍에 있는 새별오름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름 유명하다는 오름들의 매력을 얘기할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 눈 앞에서 떡 하니 솟아오른 오름과 마주하니 이번 생에 처음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는 제주들불축제가 열린다는 새별오름, 가을에는 억새가 일품이라는 이 오름을 초여름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우산을 쓰고 올랐다. 꼭대기에 올라 사방으로 트인 풍광은 어느 계절에 와도 아쉽지 않을 만큼 흡족했다.

 

 

 

  오름에서 내려온 후 이타미 준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방주교회로 이동했다.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교회는 인공 수조를 조성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계속 비가 오락가락해서 수조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 친구가 그 모습을 포착하며 찍는 영상의 모델이 되어 수조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오락가락했다. 나중에 확인한 영상을 보니 뒤뚱이며 움직이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교회를 봤으니 절도 가보자며 근처에 있다는 약천사까지 둘러보았다. 대웅전인 대적광전은 아파트 십 층 가량 되는 높이로 삼층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웅전 앞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였다. 약수가 있다는 말에 찾으러 나선 친구들을 기다리며 대웅전 앞에 있는 의자에서 멍 때리는 시간도 좋았다.

 

 

 

 

3일차- 한라산 영실코스와 윗세오름(ft. 달리책방)

 

 

 3월에 북콘서트를 했던 달리책방에서 화요일에 한라산의 한 코스를 오르는 걷기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제주에 와서 알게 되었다. 화요일 오전에 제주에서 떠나는 일정을 잡았던 나는 망설임 끝에 수요일 출근 시간을 늦추고 한라산 걷기 일정을 신청했다. 그래서 여행 일정이 하루 더 늘어났다. 오래 걷기가 힘든 친구와 다른 친구들은 오일장 구경을 가기로 하고, 나와 한 친구를 영실코스 입구에 내려 주었다. 거기서 달리책방 스텝 두 분과 다시 만났다. 전날 밤새 비가 와서 걷기가 취소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아침에는 서서히 개여서 비옷을 입고 출발하기로 했다. 영실코스로 올라 윗세오름까지 가기로 했다. 빗물이 여전한 산길이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스텝들의 안내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쯤 오르니 영실기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저절로 만들어진 폭포도 보았다. 비가 와서 못 갈까 걱정했는데, 비가 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경관 앞에서 예기치 않은 행운이 주는 즐거움을 누렸다.

 

 

 

위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자욱해져서 더 이상의 절경은 볼 수 없었지만, 윗세오름까지 이르는 능선 옆으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찍은 분을 따라가며 작은 꽃들을 보았다. 달리책방 스텝분들이 우리 여행의 계기를 듣더니, 본인들이 속해서 활동했던 비혼모임 이야기도 해 주었다. 육지에서 들어와 제주 살이의 연륜이 쌓이기까지 모였다 흩어지는 시간들이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걷기는 책방에서 정기적으로 기획하는 모임인데, 참여하는 분들이 적더라도 꾸준히 지속하기에 의미를 둔다고 했다. 윗세오름에서 싸간 간식들을 나눠 먹고 다시 내려오던 중간 틈에 쉴 터에 앉아 책방에서 준비해온 시도 한 편 읽었다. 행사의 루틴이란다. 나에게 주어진 시 구절은 “쥘게 없는 손으로 주먹을 쥐는 나날입니다.” 였다. 한라산이 처음인 나에게는 아는 게 없어서 쥘 것도 없는 처음이 주는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한 걸음 더 내딛어

 

 

 수요일 첫 비행기로 제주를 떠났던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다음 숙소였던 세화해변 근처까지 두루 둘러보고 각자 돌아오는 것으로 이번 여행은 끝났다.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올랐으며 한라산까지 등반하는 나름 알찬 시간이었다. 올해만 제주를 두 번이나 갔으면서 제주의 풍광을 느낄 기회를 못 잡았는데, 세 번째에 가서야 제대로 제주를 즐긴 셈이다. 이런 조합으로 삼일 내내 걸었더니, 둘레길을 완주한다던 이들이 몸으로 겪을 것들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한 편으로 서먹한 사이로 조금은 충동적이었던 여행이었는데, 내내 별다른 불편은 없었다. 그 흔한 음식 사진은 물론 단체 사진도 거의 없는 여행이었다. 그저 간간이 찍은 풍경 사진과 기록을 위해 찍은 몇 컷의 사진에서 떠오르는 소소한 추억이 남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볼 만한 것은 다 둘러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여행 전체를 매니징한 친구 덕분이다. 여행 전부터 각자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고 참고해서 일정을 짜고, 여행 내내 운전을 도맡아서 허리에 무리가 가기까지 했다. 생색내지 않고 서로의 불편을 보살폈던 다른 친구들도 한 몫을 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다 보면 이 모임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갈지도 모르겠다. 여행 이후 오십 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친구를 축하하려고 다시 모였다. 비건인 친구라 케익 대신 수수팥떡을 나눠 먹으며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우리는 이렇게 생일도 챙기는 사이로 한 걸음 더 내딛었다.

 

댓글 5
  • 2023-07-06 08:31

    어디로 데려갈까? 요런 호기심이 사는 재미 같네! 잘 읽었습니다^^

  • 2023-07-06 13:56

    읽다가 루틴나와서 솔깃했네요~ㅎㅎ

  • 2023-07-06 14:20

    한 걸음 더 내딛는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어 마냥 좋습니다^^(인생 뭐 있어!!)

  • 2023-07-06 16:08

    우째 이 걸음에 별별 이유로 함께 못한 1인은 많이 아쉽네요~^^

  • 2023-07-06 16:52

    와! 우리 이야기네요. 기린님 걸음 걸음 만남도 관계도 튼실해지겠지요! 함께한 우리를 축하합니다.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22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1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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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2.05 | 조회 290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300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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