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36회차 후기 : 그 귀신이 아니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진달래
2024-03-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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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이런 문장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 지내야 할 귀신이 아닌데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子曰 :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위정, 24)

 

여기서  주자는 신분에 따라 각각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것, 예를 들면 천자의 제사를 제후나 대부가 지낸다거나 하는 일을 할 때 그것이 아첨이 된다고 풀어었다.  그러면 여기서 '그 귀신(其鬼)', 제사 지내야할 귀신은 신분에 맞는 제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희공 31년에 위(衛)나라 성공이 도읍을 제구(帝丘)로 옮기고, 하나라의 상(相/하나라 계의 손자)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이때 영무자가 이를 반대하면서 말한다. 

 

"귀신은  같은 종족(族類)이 아니면 그 제사를 흠향하지 않는 것인데, 기나라와 증나라는 무슨 일로 제사를 지내지 않겠습니까? 상이 이곳에서 제사를 받지 않은 지 오래이니 그것은 위나라의 죄가 아닙니다. 성왕과 주공의 명사(命祀)를 범할 수 없으니 상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명령을 고치십시오."  

 

희공 10년에도 비슷한 글이 있었다.  

진(晉)나라의 호돌이 "귀신은 동족이 지낸 제사가 아니면 흠향하지 않고, 백성은 동족이 아닌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논어>의 '그 귀신'은 같은 종족의 귀신이라는 뜻이 된다.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보니 여기에 대한 논증이 있었다. 

주자 이전의 정현은 자기의 조상이라는 의미로 풀었고, 청나라 학자인 모기령은 <좌전>의 이 부분을 들어 정현과 같이 같은 동족의 제사를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산은 

 

"영무자와 호돌의 말은 대개 공이 없고 덕이 없으면 제전(祭典)에 들지 못하고 친족이 아니거나 인연이 있는 유(類)가 아니면 신을 감응시켜 부르게 할 수 없으니, 이들을 제사 지낼 수 없다는 뜻이다. 어찌 '그 조고가 아니면 제사하지 않는다는 말을 정현의 뜻처럼 여겼겠는가? 총괄하건대, 왕, 공, 대부는 각각의 제정이 있으니, 제전에서 허락되어 있는 것이면 이것은 제가지내야 할 귀신이고, 제전에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제사 지내야할 귀신이 아니다 <논어집주>에서 주자가 풀이해 놓은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희공 31년에는 제사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여름에 노나라에서 교제사를 지내는데 점을 친 이야기이다.  

 

"여름 4월에 네 번 교제사에 대해 점을 쳤는데 모두 불길하다고 하여 희생을 놓아주었으니 예가 아니다."(夏四月 四卜郊 不從 乃免牲 非禮也)

 

예가 아닌 이유는 제사에 점을 치는 것은 날짜나, 희생에 대한 것이지 제사 자체를 지내고 안 지내고 하는 것이 아닌데, 이 때 노나라에서 교제사에 대한 점을 네 번이나 치고 불길하다고 하여 희생을 놓아주고 망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잘못이라고 한 것이다. 

이에 두예의 주석에는 제사의 순서상 점을 쳐서 날짜를 받고 길일을 얻으면 희생에 쓰일 소에게 희생(牲)이라는 명칭을 봍인다고 했다. 그러니 '희생을 풀어 주었다(免牲)'는 것은 이미 날짜도 얻은 상태에서 제사를 안 지냈다는 것을 뜻하는게 된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나, 네 번이나 점을 쳤다는 것은 꼭, 안 지내고 싶은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

댓글 1
  • 2024-03-12 09:58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는 공자 말에 따르면 신분에 맞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 귀신'을 그런 맥락에서 주자처럼 해석하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춘추 초기와 말기가 이렇게 또 다르네요.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부분을 보는 것도 좌전 읽는 재미예요^^
    짚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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