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1회차 질문올려주셔요

요요
2024-05-13 10:42
130

방학이 끝났습니다.

우리는 앎이란 무엇인가? 인식이란 무엇인가? 주체와 대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의 탐구로 돌아왔습니다.

정화스님은 기억정보를 지혜정보로 전환하는 지혜수행이 중요하다.

인지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지혜롭게 살 수 있다고 되풀이 하여 강조하는군요

 

요약 을립니다. 내용이 좀 많습니다만.. 복습하는 마음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앞에서는 샘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충천하여 힘을 좀 주었는데(!) 뒤로 갈수록 기운이 빠져서 요약이 간단해집니다.ㅎㅎㅎ 

간단히 요약한 부분은 삼성설과 관련한 내용(3장)과 수행계위에 관한 내용(4장)입니다.

삼성설은  시즌1에서 공부한 것보다 내용이 깊어졌으니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 주셔요.^^

 

복습이기도 하지만 심화되는 내용도 있으니 잘 읽어봅시다!

질문은 저녁 8시까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10
  • 2024-05-13 13:30

    앗, 일단 질문 먼저 올리고 읽어보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요...
    p. 47
    기억정보가 의식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 인연에 대한 설명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책에는 “사유와 수행은 인식의 토대인 아뢰야식에 함장된 기억정보가 심상을 만든 다음에야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우리 각자의 사유와 수행이 이미 우리 자신이 지닌 인지시스템을 기반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무튼 끊임없는 흐름 속에 시작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요. 앞서 의(意)는 오염되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오염된 의를 청정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아뢰야식의 인지시스템에서 의해서 ‘본질이 있다’는 사유가 상속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업식, 곧 무의식층에서 미세하게 작용하는 식이 함장하고 있는 종자를 조합해 전식이 심상을 만들고 나서야 의식적인 사유와 수행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 식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轉識은 심상을 만드는 공능으로, 이 식이 심상을 만들 때 어떤 종자를 조합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심상을 현식이라고 하는데 식이 상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고 무턱대고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알고서 전환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식에 의해 종자가, ‘인식될 수 있는 현식’으로 전환되어야만 감수된 세계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즐거움과 고통 등이 인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식이 수용된 감각자료를 기억정보와 대조해서 특정색깔로 분별해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뢰야식과 전식이 상호 원인과 결과가 되어 상속되는 것이 아뢰야식 연기입니다. 이 과정이 무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유와 수행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듫었습니다. 아뢰야식은 무기이므로 애착 강도와 빈도수, 경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죠.
    이어 “아뢰야식 연기를 아뢰야식과 전식이 상호 원인과 결과가 되어 상속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애착과 애착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인연으로 상속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는데 그에 대한 설명에서 의식적인 인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아뢰야식이 의와 심상(법: 현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때의 아뢰야식에 의해 만들어진 심상이 ‘사유와 수행’이 만들어낸 차이일까요? 또한 네 가지 인연과의 관계로 설명한 부분도 잘 모르겠습니다.

  • 2024-05-13 16:19

    70. 인식의 토대가 되는 종자식에는 생명체들끼리 공유하는 공통의 이미지와 각자의 독특한 신체상과 개별적 세계상이 종자화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자식이 상속된다는 뜻은 공통의 이미지조차 개별적 세계상과 사유의 방법에 의해서만 파악된 세계 이해가 상속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기 떄문에 개인의 인식이 전환됐다고 해서 다른 생명체들의 인식조차 전환될 수는 없습니다.

    >> 개인의 인식과 공통의 인식기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인식과 다른 생명체의 인식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수행을 통해 인식 기반이 전환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독자적인 세계 해석 기반이 바뀌는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계의 모든 역사가 중첩된 다세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첩된 자신의 다세계가 청정해졌다고는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인식과 공통의 인식기반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마뚜라나가 유기체와 환경을 설명할 때의 방식(구조접속에 의한 상호작용, 유발할 뿐 결정하지 않는다)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적 조건 속에서도 독자적인 인간의 인식, 개체의 인식으로 일체를 설명하는 것은 불교가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과 승가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일까요? 혹은 일체종자식의 근거를 세우는 유식사상에서 '인식'과 관련된 부분을 더 강조한 것일까요?

  • 2024-05-13 18:44

    92. 법화된 것들은 오직 인식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들이며, 시간을 사유하게 되면서 시간을 이어서도 변치않는 실체를 갖는 것으로 재이미지화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흐름은 인연화합에 따라 변하므로 두 찰나를 이어 동일한 사건 사물들이 유전되지 않지만 기억종자로부터 파생된 것들, 곧 법화된 것들은 언제나 같은 이미지로 파악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법화된 이미지를 통해 접속되는 세계는 오직 해석된 인식의 세계일 뿐, 실재하는 자아나 세계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화된 기억의 자모음 그 자체가 개념의 일관성을 담보하고 있으므로 법화된 인식 주체로서의 자아와 인식된 대상으로서의 세계가 불변의 실체를 갖는 존재처럼 알려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해석체계에 의해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각각 다른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식과 인식의 결과가 상호작용하면서 가열차게 자기와 세계를 구별하고 구별된 이미지를 정보화하여 기억하고 기억된 정보를 토대로 인식되는 이미지(법화된 이미지)를 다양하게 생산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기 때문에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기가 어렵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혼자만의 인식이 해석한 세계를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나의 기억정보에는 나만의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일깨우는 귀절을 옮겨보았습니다.

  • 2024-05-13 19:42

    p.60 해탈된 몸이 되고 법의 몸이 된다는 것은 아뢰야식과 결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수행의 힘은 아뢰야식을 전환시키는 공능이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해탈신과 법신의 영역은 아뢰야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른 이해를 동반한 수행의 힘이 점점 커진다는 것은 신체화된 지혜의 강도도 커진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분별의 토대가 되는 이숙식이 지혜의 토대인 대원경지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61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무분별과 빈 마음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그와 같은 수행정보가 아뢰야식에 스며들게 되면 분별된 일반상(언어와 상응하는 이미지)을 중심으로 사건·사물을 파악하는 아뢰야식의 공능에 변화가 일어나다가, 분별이미지에 집착하는 공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아뢰야식의 공능 전체가 지혜작용으로 전환됐기 때문입니다.

    → 저는 저번 공부에서 우리의 마음에는 심층의식인 아뢰야식과 아뢰야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아뢰야식은 멈춤없이 계속 흐름속에 있는데 어떤 것을 붙잡고 고착화시키기 때문에 흐름이 방해되어 망상이 일어나고 그로인해 괴로움이 발생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알아차림을 하면 분별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아뢰야식의 흐름이 방해되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깨달음의 꽃이 피어나는 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해탈신과 법신의 영역은 아뢰야식의 영역이라 할 수 없고 결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분별이미지에 집착하는 공능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을 쓸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지혜작용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죠. 보니까 저는 아뢰야식에 대해 알게 되어 기쁘다 보니 ‘아뢰야식이 있다’에 꽂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p.85 아뢰야식의 종자들이 펼쳐 내는 세계라는 것에서는 일상의 의식이나 선정의식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만 선정의 경험이 체화된 것을 종자라고 하지 않고 선정의식 또는 지혜라고 하는 것은, 수행은 사건·사물을 존재로서 이해하게 하는 종자의 세력에 구멍을 뚫어 되어 가는 것으로서 사건·사물을 보게 하는 지혜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인식의 토대를 지혜가 작용하는 토대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선정의 경험이 체화된 것을 종자라기 보다 선정의식 또는 지혜라고 구분하며 수행이란 사건·사물을 존재로서 이해하게 하는 종자의 세력에 구멍을 뚫어 지혜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뢰야식이 어떻게 지혜작용으로 전환되는지 조금이나마 그려졌습니다.

  • 2024-05-13 20:26

    이번 책은 1학기에 읽은 책들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읽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약간 읽다보면 몽롱해지는 구석이 있어서.. 집중이 안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많은 표현의 부분에서 (색의 표현, 영상이나, 흘러가는 것들) 마뚜라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좀 단순한 질문일수도 있지만
    p29에서 무상정과 멸진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게 무상정이라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대략 멸진정 전의 단계? 인거 같은데, 무상정의 경험도 힘들것 같이 (뒤에 다섯째의 예) 표현되어 있어서 궁금합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자의 상속 부분이었습니다. 앞선 책에서는 상속 부분을 강조하진 않았던거 같은데, 이 책에는 여러 부분에 걸쳐서 강조하는 느낌인 거 같아요.
    p46 우리들의 기억정보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하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지만 생명활동의 근간이며 인식의 토대가 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종자자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 계속 내 안의 것들이 아뢰야식의 환상일 뿐이라면 나로 이어진다고 느끼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으로 마뚜라나는 언어를 들고, 이 책에서는 상속을 드는 건가? 우리의 아뢰야식 상속으로 우리가 인지하기 전부터 내제된 채로 태어난다고 설명해서, 이 궁금증을 좀 해결하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인지의 조건이 백지와 같은 생태가 아니다’

    3장에서 분별의 특징을 쪼개고 쪼개서 산란하고 유동하는 마음까지로 나누는 부분은 비슷한 것이 반복되어서 읽다가 정신이 헤롱헤롱 해지더라고요 ㅋㅋㅋ

  • 2024-05-13 21:16

    2장- p.60

    해탈신과 법신의 영역은 아뢰야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른 이해를 동반한 수행의 힘이 점점 커진다는 것은 신체화된 지혜의 강도도 커진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분별의 토대가 되는 이숙식이 지혜의 토대인 대원경지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뢰야식은 우리들의 모든 행위의 결과인 종자를 저장하는 심층마음이며, 아뢰야식은 무부무기여서 깨달음으로 나가는데 장애가 없다 라고 지난 시즌에 아뢰야식에 대해 이해를 했었다. 그런데 위에서 "해탈신과 법신의 영역은 아뢰야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적고 있다.

    이숙식이 대원경지로 전환되는 것은 아뢰야식이 청정한 종자로 전환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뢰야식과의 완전한 결별을 뜻하는 것인가? 해탈은 연기법과 어긋나는 인지체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번뇌종자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로 이렇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뢰야식의 영역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
    '아뢰야'가 기억종자의 창고이고, '식'이 지성이라는 공능을 뜻하기 때문에 수행도 가능하고 종자식의 전환도 일어나게 되는 것일텐데 선도 악도 아닌 기억된 정보의 총합인 아뢰야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3장-p.96
    보살수행자들이 지혜의 몸을 이루게 됨으로써 성취하는 세 가지 능력 중에 : 이미지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는 의식현상이 원성실성인데, 이미지를 조율하는 능력이란 무엇을 말함일까?

  • 2024-05-14 00:00

    저도 비슷한 질문입니다

    60쪽 해탈된 몸이 되고 법의 몸이 된다는 것은 아뢰야식과 결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분별의 토대가 되는 이숙식이 지혜의 토대인 대원경지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원경지는 아뢰야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일까요?
    73쪽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됐다는 것은 자리이타의 인지체계를 완성한 것으로 '본질적인 인식체계'에서 '연기적인 인식체계'로 인지의 습관이 변했다는 것이며, 본질주의적인 이해에 따라 발생했던 번뇌, 곧 아집 등에 의해서 형성됐던 번뇌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합니다...종자식의 경향성이 변해가는 정도가 수행의 단계와 의식활동의 내용이 변해가는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의식활동이 있으려면 인식의 토대인 아뢰야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요?
    123쪽 이분들은 인식이 발생할 때마다 장애가 없는 인식을 하며, 생성된 심상마다 여러 인연이 융합하여 발생한 것인 줄 자각했으므로, 심상과 상응하는 실재가 내외부에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줄 압니다. 이와 같은 지혜가 있기에 내부영상을 통해 사건, 사물을 이해하면서도 집착없는 사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아뢰야식과 결별하신 것일까요?
    141쪽 온전히 인식의 토대가 바뀌게 되면 기억정보의 의지처인 아뢰야식이 지혜정보의 의지처인 대원경지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인식의 근거인 기억정보가 지혜정보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뢰야식과 결별했다는 것일까요?

  • 2024-05-14 01:04

    p63 멸진정을 경험했다는것은 마음조차 상주하지 않는다는것을 체험했다는 것이며 빈 마음상태에서 인연따라 모든 현상이 펼쳐지는 것을 체험한 것과 같습니다. 인식의 장은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현상하지만 실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p64 멸진정상태에서는 식의 작용이 멈춘것과 같아 거친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미세한 의식도 있을수 없습니다.이것은 지성의 특징입니다.지성 그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기에 청정한 인지와 오염된 인지가 발생할수도 있고 선정체험에 의해 오염된 기억종자를 소멸할수도 있으며 선한 마음을 쓰는 습관의 강도가 증장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p 65 멸진정상태에서 작용하는 미세한 의식이 상속되는 마음이므로 이 마음에 악한 마음이 자리잡았다면 선심등은 상속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멸진정은 청정한 마음상태로 식의 작용이 멈춘상태라고 하며 선도 악도 아닌 상태라고 하는데 이를 무기라고 할수 있는건가요?그리고 위에 다시 미세한 의식이 상속된다라고 하며 악한마음이 자리잡았다면 선심은 상속될수 없다라고 하는데 이부분이 좀 헷갈립니다.

    p80 삶의 순간마다 펼쳐지는 인연으로 보면 결코 기억된 이미지로 해석할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지의 편의성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기억된 종자를 활용하게 되면서 사건 사물이연기의 공생 관계에서 되어가는 사건 사물인줄 모르고 실체를 갖는 존재라고 여기는것 변계소집상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기억한 이미지로 사건 사물을 해석하는데 사건 사물은 그 순간마다 변해가므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 기억이란 순간의 이미지로만 남아 실체가 있는것처럼 의식한다는 의미인가요?
    우리의 기억은 모두 왜곡되고 실체가 없다는 뜻인가요?

    p81 우리들의 인지시스템은 아뢰야식에 함장된 기억종자를 바탕으로 알아차리는 활동을 하게되어 있기 때문에 착오된 인식,허망한 분별을 하게된다고 했습니다.
    아뢰야식이 함장하고 있는 기억정보들에 의지해어 발현되는 이미지가 자신이 만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p87 옛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금 만들어진 영상이 옛 기억을 회상케 하는것과 같다

    =>내가 의식하는 세계가 내 기억종자에 의해 만들어낸 세계라는건 세계는 존재하지만 내가 이해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요?
    내가 의식하는 세계는 가상현실 혹은 꿈과같다는 의미인가요?

  • 2024-05-14 07:08

    32p. 수행은 생명의 연기법을 학습한 연후, 일어나고 사라지는 심상을 알아차리거나 특정한 심상을 의도적으로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의식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특정한 심상을 의도적으로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의식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의식’이라함은 28p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용되고 해석된 정보를 자아와 같은 하나의 이미지로 일반화하는 작용 ‘의’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인지하는 ‘식’의 합성어일까요? 그렇다면 ‘의식을 조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 2024-05-1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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