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08 공자씨, 그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글 : 김고은 (길드;다)        똑똑이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                               1. 정신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 중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한자로 된 책이 내 손에 쥐어져있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나있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지만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진 않다. 문탁 네트워크의 원문을 암송하는 세미나에서 『논어』로 한 페이지짜리 글을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을 가져가면 고전공부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하고,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은 꼰대 같은 문장을 들고 왔다며 눈총을 준다. 사실 내 친구들만 동양고전을 보고 ‘꼰대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건 아니다. 인터넷에 『논어』나 공자에 관련된 정보를...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08 공자씨, 그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글 : 김고은 (길드;다)        똑똑이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                               1. 정신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 중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한자로 된 책이 내 손에 쥐어져있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나있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지만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진 않다. 문탁 네트워크의 원문을 암송하는 세미나에서 『논어』로 한 페이지짜리 글을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을 가져가면 고전공부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하고,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은 꼰대 같은 문장을 들고 왔다며 눈총을 준다. 사실 내 친구들만 동양고전을 보고 ‘꼰대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건 아니다. 인터넷에 『논어』나 공자에 관련된 정보를...
김고은
2018.07.10 | 조회 980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또래 친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패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살이 더 빠져보인다,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이다.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다. 지금까지 이 말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타인이 나의 고생을 이런 식으로 위로해주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고됨’이나 ‘외로움’은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밀양 할매들과 대책위 식구들이라는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이자, 고됨을 견디는 동료가 있었다. 이들은 띠동갑, 두 띠동갑, 세 띠동갑도 넘는 나이에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그래서 나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듯이’ 살 수 있었다. 50대 농부가, 20살짜리에게 꼬박 꼬박 “쌤”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모두 이렇게 사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텐데)       할매들이 “젊은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여기에 계속 잡혀서 어쩌노.”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도 즐거운데,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어 놀기 시작한 지 세 달, 이제야 내게 없는...
또래 친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패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살이 더 빠져보인다,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이다.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다. 지금까지 이 말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타인이 나의 고생을 이런 식으로 위로해주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고됨’이나 ‘외로움’은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밀양 할매들과 대책위 식구들이라는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이자, 고됨을 견디는 동료가 있었다. 이들은 띠동갑, 두 띠동갑, 세 띠동갑도 넘는 나이에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그래서 나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듯이’ 살 수 있었다. 50대 농부가, 20살짜리에게 꼬박 꼬박 “쌤”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모두 이렇게 사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텐데)       할매들이 “젊은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여기에 계속 잡혀서 어쩌노.”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도 즐거운데,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어 놀기 시작한 지 세 달, 이제야 내게 없는...
밀양통신
2018.07.10 | 조회 1200
지난 연재 읽기 루쉰과 청년
너희는 어떻게 사랑할래? : 루쉰의 사랑에서 너희들의 사랑을 묻다         글 : 문탁 ​              루쉰의 스캔들    1906년 6월, 루쉰은 어머니가 정해준 정혼상대와 결혼한다. 루쉰은 스물여섯이었고 일본유학생이었고 센다이의전을 때려치우고 문예운동을 하겠다며 도쿄에서 암중모색 중이었다. 상대는 전족을 했고 읽고 쓸 줄 몰랐던 구식 여성, 스물아홉의 주안(朱安)이라는 인물이었다.    1925년 3월, 루쉰은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답장과 답장이 이어지면서 둘 사이에는 연애감정이 생긴다. 루쉰은 마흔 다섯이었고 대학교수였으며 이미 몇 편의 소설을 히트시킨 바 있는 명망가였다. 상대는 전족을 하지 않은 채로 베이징으로 유학 와있던 신여성, 스물여덟의 쉬광핑(許廣平)이라는 인물이었다.    1927년 10월, 마흔일곱의 루쉰과 서른의 쉬광핑은 함께 상하이에 도착하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공개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2년 후 1929년 9월, 둘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난다. 이후 루쉰은 1936년 쉰여섯으로 사망할 때까지 쉬광핑과 산다. 본부인은? 베이징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7년 독거사 한다. 일흔이었다. 쉬광핑은 루쉰이 죽은 후에도 마우저뚱의 완벽한 후원 하에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 숨진다. 일흔 하나였다.    자, 여기까지가 전기적 팩트이다. 루쉰은 본부인이 있는 상태로 무려 열일곱 살이나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살았고 아이까지 낳았다. 어떤가? 뻔하디뻔한 유부남의 불륜스토리인가? 아니면 시대의 통념과 맞장 뜬 위대한 러브스토리인가?                       주안(朱安)                 ...
너희는 어떻게 사랑할래? : 루쉰의 사랑에서 너희들의 사랑을 묻다         글 : 문탁 ​              루쉰의 스캔들    1906년 6월, 루쉰은 어머니가 정해준 정혼상대와 결혼한다. 루쉰은 스물여섯이었고 일본유학생이었고 센다이의전을 때려치우고 문예운동을 하겠다며 도쿄에서 암중모색 중이었다. 상대는 전족을 했고 읽고 쓸 줄 몰랐던 구식 여성, 스물아홉의 주안(朱安)이라는 인물이었다.    1925년 3월, 루쉰은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답장과 답장이 이어지면서 둘 사이에는 연애감정이 생긴다. 루쉰은 마흔 다섯이었고 대학교수였으며 이미 몇 편의 소설을 히트시킨 바 있는 명망가였다. 상대는 전족을 하지 않은 채로 베이징으로 유학 와있던 신여성, 스물여덟의 쉬광핑(許廣平)이라는 인물이었다.    1927년 10월, 마흔일곱의 루쉰과 서른의 쉬광핑은 함께 상하이에 도착하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공개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2년 후 1929년 9월, 둘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난다. 이후 루쉰은 1936년 쉰여섯으로 사망할 때까지 쉬광핑과 산다. 본부인은? 베이징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7년 독거사 한다. 일흔이었다. 쉬광핑은 루쉰이 죽은 후에도 마우저뚱의 완벽한 후원 하에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 숨진다. 일흔 하나였다.    자, 여기까지가 전기적 팩트이다. 루쉰은 본부인이 있는 상태로 무려 열일곱 살이나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살았고 아이까지 낳았다. 어떤가? 뻔하디뻔한 유부남의 불륜스토리인가? 아니면 시대의 통념과 맞장 뜬 위대한 러브스토리인가?                       주안(朱安)                 ...
문탁
2018.07.03 | 조회 1600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⑤ 봄을 마치며 : 무지라는 ‘평등’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학교’를 다루었던 봄 시즌을 마칠 즈음 나는 그간 던진 질문들을 되돌아보았다. “선생은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아이들은 학교를 왜 가는가.” 새삼 아이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싶었다. 분명 밑도 끝도 없는 물음으로 느껴졌으리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질문들은 대개 그러하다. 당혹스러움과 곤란함,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다. 그것은 앞선 질문들을 모두 아우르는 질문이며 그럼으로써 교육에 있어 가장 ‘극단적’인 담론들을 만들어낸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스승을 주장했다.     그 질문이란 이것이다 - “배우려는 자는, 의존적이어야 하는가?”    ...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⑤ 봄을 마치며 : 무지라는 ‘평등’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학교’를 다루었던 봄 시즌을 마칠 즈음 나는 그간 던진 질문들을 되돌아보았다. “선생은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아이들은 학교를 왜 가는가.” 새삼 아이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싶었다. 분명 밑도 끝도 없는 물음으로 느껴졌으리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질문들은 대개 그러하다. 당혹스러움과 곤란함,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다. 그것은 앞선 질문들을 모두 아우르는 질문이며 그럼으로써 교육에 있어 가장 ‘극단적’인 담론들을 만들어낸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스승을 주장했다.     그 질문이란 이것이다 - “배우려는 자는, 의존적이어야 하는가?”    ...
차명식
2018.07.03 | 조회 971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07 문탁에 처음 오는 친구들에게            글 : 이동은(길드; 다)   문탁에 온 뒤 살아가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씩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순간을 늘려가고 싶다.           1. 백수는 좋지만... 동천동으로 이사를 온 건 고등학교 졸업을 한 직후였다. 그 때의 내 상황은 오지 한 가운데 뚝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 동네엔 내 친구도, 학교도, 친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황스럽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원래 돌아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는 그 즈음부터 집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은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을 보다 어느새 구름과 함께 날아가곤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백수는 좋구나...’ 당연하게도 엄마는 집에서만 지내려고 하는 나를 견디기 힘들어하셨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했다. 하나, 입사시험을 계속 보고...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07 문탁에 처음 오는 친구들에게            글 : 이동은(길드; 다)   문탁에 온 뒤 살아가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씩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순간을 늘려가고 싶다.           1. 백수는 좋지만... 동천동으로 이사를 온 건 고등학교 졸업을 한 직후였다. 그 때의 내 상황은 오지 한 가운데 뚝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 동네엔 내 친구도, 학교도, 친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황스럽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원래 돌아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는 그 즈음부터 집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은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을 보다 어느새 구름과 함께 날아가곤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백수는 좋구나...’ 당연하게도 엄마는 집에서만 지내려고 하는 나를 견디기 힘들어하셨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했다. 하나, 입사시험을 계속 보고...
이동은
2018.06.26 | 조회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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