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전 중
  청사淸史 연구의 한 풍경 ; ‘인구’ 증가와 이동 『하버드중국사 청 : 중국 최후의 제국』(윌리엄 T 로, 너머북스)을 읽고     역사에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역사는 단순한 팩트 체크가 아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일은 역사를 읽는 데 기본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게 다가 아니다. 그 팩트를 배열하는 편집 기술, 즉 역사가의 사관과 방법론에 따라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여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버드중국사> 시리즈를 읽었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해석과 의미 부여를 보고 적잖은 재미를 느꼈다. 같은 사건인데도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개인적인 공부에서 보자면, 청사淸史는 ‘끼인’ 역사다. 현대문학과 관련해 주로 공부했기에 청사는 현대사 이전 시기이므로 뛰어넘기 일쑤였고, 고전을 공부하면서는 춘추전국시기부터 2천 년의 기나긴 시간을 지나서야 마주하게 되는, 그래서 때로는 도달하지도 못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중국 역사 공부에서 청은 신경이 좀 덜 갔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청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청은 중국사에서 보자면 영광의 시대이지만 지금 시대와 관련해서 보자면 치욕의 시대이기도 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청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격과 건국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버드중국사 청>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서 논의할 청 제국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이다. 청 제국의 본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청 제국이 장기간의 중국사에서 또는 광활한 유라시아 공간에서 유례없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언가를 어느 정도로 이루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하버드중국사 : 청』,...
  청사淸史 연구의 한 풍경 ; ‘인구’ 증가와 이동 『하버드중국사 청 : 중국 최후의 제국』(윌리엄 T 로, 너머북스)을 읽고     역사에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역사는 단순한 팩트 체크가 아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일은 역사를 읽는 데 기본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게 다가 아니다. 그 팩트를 배열하는 편집 기술, 즉 역사가의 사관과 방법론에 따라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여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버드중국사> 시리즈를 읽었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해석과 의미 부여를 보고 적잖은 재미를 느꼈다. 같은 사건인데도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개인적인 공부에서 보자면, 청사淸史는 ‘끼인’ 역사다. 현대문학과 관련해 주로 공부했기에 청사는 현대사 이전 시기이므로 뛰어넘기 일쑤였고, 고전을 공부하면서는 춘추전국시기부터 2천 년의 기나긴 시간을 지나서야 마주하게 되는, 그래서 때로는 도달하지도 못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중국 역사 공부에서 청은 신경이 좀 덜 갔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청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청은 중국사에서 보자면 영광의 시대이지만 지금 시대와 관련해서 보자면 치욕의 시대이기도 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청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격과 건국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버드중국사 청>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서 논의할 청 제국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이다. 청 제국의 본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청 제국이 장기간의 중국사에서 또는 광활한 유라시아 공간에서 유례없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언가를 어느 정도로 이루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하버드중국사 : 청』,...
자작나무
2025.05.05 | 조회 436
Socio-sociolgy
  유동하는 공포‧불안의 시대 지그문트 바우만,『불안의 기원』         0.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중심으로 올 한 해 동안 나는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와 그 작동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 더불어 포도밭 연재에서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만연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망할 계획이다. 이번 글에서는 바우만의 저서 『불안의 기원』을 중심 텍스트로 삼아 현대인이 겪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근원을 탐색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재생산되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 불안의 시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2023년 0.72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소폭 상승하여 0.75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도 OECD 평균 1.58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치이며, 한국은 38개국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 다음으로 낮은 스페인도 1.19를 기록하고 있어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의 출산율은 0.55를 기록했다. 기술 발달로 삶은 예전에 비해 풍요로워졌지만 출산율은 왜 늘어나지 않고 줄어드는 걸까? 최근 결혼한 지인은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19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가족 형태로 결혼은 하되 아이를 두지 않는 무자녀기혼 부부를 가리킨다.)를 선언하며 자신의 삶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데, 20년 이상 누군가의 삶을 책임진다는 건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고...
  유동하는 공포‧불안의 시대 지그문트 바우만,『불안의 기원』         0.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중심으로 올 한 해 동안 나는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와 그 작동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 더불어 포도밭 연재에서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만연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망할 계획이다. 이번 글에서는 바우만의 저서 『불안의 기원』을 중심 텍스트로 삼아 현대인이 겪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근원을 탐색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재생산되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 불안의 시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2023년 0.72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소폭 상승하여 0.75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도 OECD 평균 1.58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치이며, 한국은 38개국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 다음으로 낮은 스페인도 1.19를 기록하고 있어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의 출산율은 0.55를 기록했다. 기술 발달로 삶은 예전에 비해 풍요로워졌지만 출산율은 왜 늘어나지 않고 줄어드는 걸까? 최근 결혼한 지인은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19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가족 형태로 결혼은 하되 아이를 두지 않는 무자녀기혼 부부를 가리킨다.)를 선언하며 자신의 삶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데, 20년 이상 누군가의 삶을 책임진다는 건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고...
효주
2025.04.29 | 조회 514
기학잡담
운명 앞에서 주역은 읽는 것은, 운명 앞에서 조짐을 읽는 것이다 -주역의 신유물론 입문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어 한밤중, 영국 작은 마을의 한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열세 살 어린 제이미가 살인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같은 학교 여학생 케이트를 칼로 찔러 살해했고 그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수사 과정에서 제이미는 평소에는 평범한 십대의 모습이지만 이따금 섬뜩한 말과 분위기를 낸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밝게 딸과 아들을 키워온 아버지는 아들의 살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는 텅빈 아들 방의 이불을 움켜쥐고 “내가 (제이미가 더 좋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더 노력했어야 했다”며 오열한다. 4부작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아버지의 오열 장면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나는 이상하게 이 장면에서 내가 <주역>을 읽을 이유를 발견한 것 같다. 우리는 후회를 달고 산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되짚어 보면서, 일이 벌어졌던 그때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거나 했어야 할 일과는 다른 일을 했던 것을 알아차린다. 그때 했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면, 그리고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의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주역의 64가지의 괘를 인간의 생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상황이라고 본다면, 제이미의 아버지는 최소한 무엇을 더 노력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무지, 막연한 후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버지의 노력이 부족해서 사건이 터졌다고 볼 수 없다. 아내의 말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키운 딸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딸과...
운명 앞에서 주역은 읽는 것은, 운명 앞에서 조짐을 읽는 것이다 -주역의 신유물론 입문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어 한밤중, 영국 작은 마을의 한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열세 살 어린 제이미가 살인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같은 학교 여학생 케이트를 칼로 찔러 살해했고 그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수사 과정에서 제이미는 평소에는 평범한 십대의 모습이지만 이따금 섬뜩한 말과 분위기를 낸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밝게 딸과 아들을 키워온 아버지는 아들의 살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는 텅빈 아들 방의 이불을 움켜쥐고 “내가 (제이미가 더 좋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더 노력했어야 했다”며 오열한다. 4부작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아버지의 오열 장면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나는 이상하게 이 장면에서 내가 <주역>을 읽을 이유를 발견한 것 같다. 우리는 후회를 달고 산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되짚어 보면서, 일이 벌어졌던 그때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거나 했어야 할 일과는 다른 일을 했던 것을 알아차린다. 그때 했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면, 그리고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의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주역의 64가지의 괘를 인간의 생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상황이라고 본다면, 제이미의 아버지는 최소한 무엇을 더 노력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무지, 막연한 후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버지의 노력이 부족해서 사건이 터졌다고 볼 수 없다. 아내의 말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키운 딸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딸과...
봄날
2025.04.23 | 조회 458
방과 후 고전 중
법가(法家)의 두 얼굴     단군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법에 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을 것 같다. 평생을 타인에게 법을 집행하며 살아 온 사람이, 자신의 법적용에 있어서는 위법과 탈법으로 점철되는 온갖 궤변과 찌질함으로 단기간에 파멸을 자초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궤변적 시간계산을 창조해 내는 판사, 수사와 기소권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검사들을 보며 이 시대의 법을 업(業)으로 하는 자들의 행태에 자괴감이 들어서 일 지도 모른다.   제자백가 시대에 법가(法家)들도 이랬을까? 상앙(商鞅)은 엄격한 법적용으로 유명한데, 춘추시대에 변방에 속했던 진(秦)나라가 시황제(BC246 ~ BC210) 때에 이르러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 15년 만에 망한 것을 보면 법가(法家)사상이 가지는 어떤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일까? 법가는 어떻게 해서 진나라를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었고 또 망하게 하였을까?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서주의 유왕 때 왕위를 둘러싼 다툼 끝에 수도를 낙읍으로 옮기는데,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고 부른다. 이 때의 봉건제도는 혈연적 종법관계와 결합된 서주의 결속력과는 차이를 보이고, 주 왕조의 권위가 떨어져서 주 왕을 중심으로 한 봉건적 질서는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이후 시작되는 춘추시대(BC.770~BC.476)에는 주나라의 봉건적 질서를 대신하여 힘에 기반한 패자(覇者)가 주도하는 회맹질서(會盟秩序)로 세상이 유지되었다. 다수의 국가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가간 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패권국가를 지향하였다. 관자(管子)는 이러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최초로 실현하였으며, 관자의 주군 제(濟)의 환공(桓公)은 최초의 패자가 되었다. 대표적인 패권국가는 춘추오패라 일컫는 제·진(晉)·오·월·초이었으며, 이...
법가(法家)의 두 얼굴     단군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법에 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을 것 같다. 평생을 타인에게 법을 집행하며 살아 온 사람이, 자신의 법적용에 있어서는 위법과 탈법으로 점철되는 온갖 궤변과 찌질함으로 단기간에 파멸을 자초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궤변적 시간계산을 창조해 내는 판사, 수사와 기소권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검사들을 보며 이 시대의 법을 업(業)으로 하는 자들의 행태에 자괴감이 들어서 일 지도 모른다.   제자백가 시대에 법가(法家)들도 이랬을까? 상앙(商鞅)은 엄격한 법적용으로 유명한데, 춘추시대에 변방에 속했던 진(秦)나라가 시황제(BC246 ~ BC210) 때에 이르러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 15년 만에 망한 것을 보면 법가(法家)사상이 가지는 어떤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일까? 법가는 어떻게 해서 진나라를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었고 또 망하게 하였을까?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서주의 유왕 때 왕위를 둘러싼 다툼 끝에 수도를 낙읍으로 옮기는데,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고 부른다. 이 때의 봉건제도는 혈연적 종법관계와 결합된 서주의 결속력과는 차이를 보이고, 주 왕조의 권위가 떨어져서 주 왕을 중심으로 한 봉건적 질서는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이후 시작되는 춘추시대(BC.770~BC.476)에는 주나라의 봉건적 질서를 대신하여 힘에 기반한 패자(覇者)가 주도하는 회맹질서(會盟秩序)로 세상이 유지되었다. 다수의 국가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가간 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패권국가를 지향하였다. 관자(管子)는 이러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최초로 실현하였으며, 관자의 주군 제(濟)의 환공(桓公)은 최초의 패자가 되었다. 대표적인 패권국가는 춘추오패라 일컫는 제·진(晉)·오·월·초이었으며, 이...
가마솥
2025.04.14 | 조회 412
Socio-sociolgy
  우리는 두 세계의 아이들이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feat.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     올해 사회학 세미나의 주제는 ‘현대 소비주의의 탐구’다. 소비사회를 주제삼아 여러 권의 책들을 읽을 예정인데 나는 감정과 소비의 관계를 한 축으로 삼아 소비사회를 이해해보려 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을 소모하는 단순한 경제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소비하는 주체의 정체성과 감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캠벨에 따르면 이와 같은 소비의 ‘자기 환상적 성격’은 ‘낭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러한 출발지점에서 선택한 책이 바로 낭만주의의 기원과 사상을 분석한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낭만주의의 뿌리』이다.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그저 잠시 스쳐지나갔던 개념이었을 수 있지만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 특히 우리의 소비문화에서도 여전히 그 정신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해질 때의 그 ‘낭만주의’는 어떤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탁월한 사상가 벌린을 안내삼아 낭만주의라는 그 거대하고 오래된 미로 속 ‘뿌리들’을 살짝 더듬어보았다.         폴리페모스의 동굴 누군가는 말했다. “아직도 낭만이라는 말을 쓰냐?” 이 말은 너무 오래된 말이기도 하고, 오래된 만큼 흔해져버린 말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시각각 하이테크놀러지가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이 말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렇게 흔하고, 오래되고, 낡아버린 ‘낭만’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걸까? 그러나 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이 ‘낭만浪漫’이라는 단어자체도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낭만’은...
  우리는 두 세계의 아이들이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feat.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     올해 사회학 세미나의 주제는 ‘현대 소비주의의 탐구’다. 소비사회를 주제삼아 여러 권의 책들을 읽을 예정인데 나는 감정과 소비의 관계를 한 축으로 삼아 소비사회를 이해해보려 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을 소모하는 단순한 경제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소비하는 주체의 정체성과 감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캠벨에 따르면 이와 같은 소비의 ‘자기 환상적 성격’은 ‘낭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러한 출발지점에서 선택한 책이 바로 낭만주의의 기원과 사상을 분석한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낭만주의의 뿌리』이다.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그저 잠시 스쳐지나갔던 개념이었을 수 있지만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 특히 우리의 소비문화에서도 여전히 그 정신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해질 때의 그 ‘낭만주의’는 어떤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탁월한 사상가 벌린을 안내삼아 낭만주의라는 그 거대하고 오래된 미로 속 ‘뿌리들’을 살짝 더듬어보았다.         폴리페모스의 동굴 누군가는 말했다. “아직도 낭만이라는 말을 쓰냐?” 이 말은 너무 오래된 말이기도 하고, 오래된 만큼 흔해져버린 말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시각각 하이테크놀러지가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이 말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렇게 흔하고, 오래되고, 낡아버린 ‘낭만’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걸까? 그러나 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이 ‘낭만浪漫’이라는 단어자체도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낭만’은...
라겸
2025.04.07 | 조회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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