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봄날
2020.09.24 | 조회 1047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자누리
2020.09.22 | 조회 741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고은
2020.09.21 | 조회 678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달팽이
2020.09.21 | 조회 666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괴담이 가득한 세상에서     목공소 괴담   목공소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급한 주문이 있어 밤늦게까지 목공소에 남아있던 날. 목수님은 먼저 퇴근하셨고, 나도 퇴근을 위해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동네는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테이블 톱의 소음이 사라진 탓에 목공소는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기계들과 쌓여있는 나무들이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목공소 한쪽에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들려왔다.   “꽝!”   “으악!” 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팽겨 치고 일단 목공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무슨 소리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목공소에 들어섰다. 목공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불을 켜고 소리가 난 장소로 조심스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목공소에 온 손님들을 맞고 상담하기 위해 만들었던 테이블이 두 갈래로 쩍 하고 갈라져 있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불을 끄고 도망치듯 목공소를 나갔다. 목공소 괴담의 탄생 순간이다.   변화를 거듭한다   다음 날 목수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갈라진 나무 사이에 본드를 넣고 클램프로 양쪽을 걸어 당겨 고정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거실에 만들어놓은 테이블이 굉음을 내며 갈라졌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나무는 계절, 특히 습도의 영향을...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괴담이 가득한 세상에서     목공소 괴담   목공소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급한 주문이 있어 밤늦게까지 목공소에 남아있던 날. 목수님은 먼저 퇴근하셨고, 나도 퇴근을 위해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동네는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테이블 톱의 소음이 사라진 탓에 목공소는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기계들과 쌓여있는 나무들이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목공소 한쪽에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들려왔다.   “꽝!”   “으악!” 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팽겨 치고 일단 목공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무슨 소리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목공소에 들어섰다. 목공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불을 켜고 소리가 난 장소로 조심스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목공소에 온 손님들을 맞고 상담하기 위해 만들었던 테이블이 두 갈래로 쩍 하고 갈라져 있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불을 끄고 도망치듯 목공소를 나갔다. 목공소 괴담의 탄생 순간이다.   변화를 거듭한다   다음 날 목수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갈라진 나무 사이에 본드를 넣고 클램프로 양쪽을 걸어 당겨 고정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거실에 만들어놓은 테이블이 굉음을 내며 갈라졌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나무는 계절, 특히 습도의 영향을...
지원
2020.09.15 | 조회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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