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학잡담
나는 어떻게 주자파가 되었나   문탁에서 공부하다보니 사서(四書)를 다 읽게 되었다. 그것도 원문강독으로 말이다. 보통 처음에 원문으로 사서를 읽는다고 하면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읽는다. 사서집주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사서에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주석을 붙인 책이다. 주희는 사서의 주석 집필 작업에 40년 동안 몰두했고, 죽기 사흘 전까지도 『대학』의 주석을 다듬었다. 처음 사서를 읽을 땐 주희의 주석이 굉장히 유용하다. 원문만 읽어서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어떤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 어디서 보충설명을 찾아봐야 하는지 난감한데 주희의 주석이 그런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주희의 주석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서의 주석은 주희의 성리학 사상을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희의 사상을 알려면 우선 사서의 주석을 꼼꼼히 잘 읽어야 한다. 난 주희의 사상에 관한 그 어떤 해설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만 말해도 내가 왜 주자파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난 사서를 주자의 주석을 통해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희의 말빨에 빠져들었다. 주자의 논리는 굉장히 치밀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 딱히 반박의 여지가 없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유학이 윤리적인 실천문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하는 『대학』에서 평천하의 시작은 수신이다. 수신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태어나 어떻게 해야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준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유가에서는 군자라고 한다. 『논어』에는 군자란 누구이며 어떤...
나는 어떻게 주자파가 되었나   문탁에서 공부하다보니 사서(四書)를 다 읽게 되었다. 그것도 원문강독으로 말이다. 보통 처음에 원문으로 사서를 읽는다고 하면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읽는다. 사서집주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사서에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주석을 붙인 책이다. 주희는 사서의 주석 집필 작업에 40년 동안 몰두했고, 죽기 사흘 전까지도 『대학』의 주석을 다듬었다. 처음 사서를 읽을 땐 주희의 주석이 굉장히 유용하다. 원문만 읽어서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어떤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 어디서 보충설명을 찾아봐야 하는지 난감한데 주희의 주석이 그런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주희의 주석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서의 주석은 주희의 성리학 사상을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희의 사상을 알려면 우선 사서의 주석을 꼼꼼히 잘 읽어야 한다. 난 주희의 사상에 관한 그 어떤 해설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만 말해도 내가 왜 주자파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난 사서를 주자의 주석을 통해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희의 말빨에 빠져들었다. 주자의 논리는 굉장히 치밀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 딱히 반박의 여지가 없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유학이 윤리적인 실천문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하는 『대학』에서 평천하의 시작은 수신이다. 수신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태어나 어떻게 해야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준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유가에서는 군자라고 한다. 『논어』에는 군자란 누구이며 어떤...
토용
2025.06.03 | 조회 463
방과 후 고전 중
춘추시대, 주역 읽기     내가 『주역(周易)』을 공부한다고 했더니 누군가 그거 미신 아니냐고 물었다. 주역이라고 하면 점이 떠오르고, 점을 친다는 것은 미신을 믿는 것이라는 공식이 바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에 하나로 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텍스트 중에 하나다. 또 『주역』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점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점을 칠 수는 있다. 하지만 점괘를 가지고 그걸 풀이하는 것은 『주역』을 읽었다고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역』에서 볼 수 있는 괘상(卦象), 괘사(卦辭), 그리고 효사(爻辭) 등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 의미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주역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바탕으로 올해 [고전학교]에서는 주역을 ‘철학사’로 공부하고 있다. 점서였던 『주역』이 어떻게 유학의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시대마다 주역은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등등을 알아본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 『춘추좌전(春秋左傳)』에서 봤던 주역에 관한 글들이 생각났다. 좌전에서 점을 치고 괘를 얻어서 풀이하는 내용이 가끔 나오는데, 대부분 그 괘를 ‘0지(之)0’의 형태로 그러니까 예를 들면 ‘대유지규(大有之睽)’, 혹은 ‘사지림(師之臨)’ 등으로 말한다. 해석하는 데 급급하여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고 말았던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주역철학사』를 읽으면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럼, 춘추시대 사람들은 주역을 어떻게 풀고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중 노(魯) 희공(僖公) 15년에 등장하는 백희(伯姬)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살짝 들여다보자.   두려울 정도로 불길한 점괘...
춘추시대, 주역 읽기     내가 『주역(周易)』을 공부한다고 했더니 누군가 그거 미신 아니냐고 물었다. 주역이라고 하면 점이 떠오르고, 점을 친다는 것은 미신을 믿는 것이라는 공식이 바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에 하나로 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텍스트 중에 하나다. 또 『주역』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점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점을 칠 수는 있다. 하지만 점괘를 가지고 그걸 풀이하는 것은 『주역』을 읽었다고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역』에서 볼 수 있는 괘상(卦象), 괘사(卦辭), 그리고 효사(爻辭) 등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 의미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주역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바탕으로 올해 [고전학교]에서는 주역을 ‘철학사’로 공부하고 있다. 점서였던 『주역』이 어떻게 유학의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시대마다 주역은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등등을 알아본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 『춘추좌전(春秋左傳)』에서 봤던 주역에 관한 글들이 생각났다. 좌전에서 점을 치고 괘를 얻어서 풀이하는 내용이 가끔 나오는데, 대부분 그 괘를 ‘0지(之)0’의 형태로 그러니까 예를 들면 ‘대유지규(大有之睽)’, 혹은 ‘사지림(師之臨)’ 등으로 말한다. 해석하는 데 급급하여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고 말았던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주역철학사』를 읽으면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럼, 춘추시대 사람들은 주역을 어떻게 풀고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중 노(魯) 희공(僖公) 15년에 등장하는 백희(伯姬)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살짝 들여다보자.   두려울 정도로 불길한 점괘...
진달래
2025.05.27 | 조회 460
한문이예술
      돌아오는 시간과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동은         1. 봄은 왜 다시 돌아올까?라는 당연한 질문       코 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운 어느 날, 목련나무 가지 끝에 도톰하게 올라온 꽃눈을 보고 곧 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절을 지날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계절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봄에는 습한 쥐똥나무 꽃내가,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는 바람이, 가을에는 발에 채이는 낙엽이... 그리고 다시 땅에서 솟아나는 새싹으로 봄을 알아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의 꽃눈을 보고 감탄에 가까운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수 있는 걸까?’ 그동안 겨울에는 날이 따뜻해지기를, 여름에는 시원해지기를 기다려보기만 했지,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질 일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 데에는 한자를 공부한 영향이 컸다. 봄 춘春이 지금까지 변화된 자형을 보면 해日와 풀을 가리키는 풀 초艸와 새싹을 본뜬 둔屯자가 합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가 풀을 비추지 않고 땅 밑에 있는 이유는 고대 사람들이 해를 사물 그 자체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기운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자를 통해 그들이 땅으로부터 강직하고, 활발하고, 뻗어나가는 기운과 새싹이 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봄은 ‘성장의 시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봄이 시작이라면 가을은 ‘성장의 완결’이다. 가을 절기인 처서處暑는 여름의 절정을 달리던 양의 기운이...
      돌아오는 시간과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동은         1. 봄은 왜 다시 돌아올까?라는 당연한 질문       코 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운 어느 날, 목련나무 가지 끝에 도톰하게 올라온 꽃눈을 보고 곧 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절을 지날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계절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봄에는 습한 쥐똥나무 꽃내가,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는 바람이, 가을에는 발에 채이는 낙엽이... 그리고 다시 땅에서 솟아나는 새싹으로 봄을 알아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의 꽃눈을 보고 감탄에 가까운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수 있는 걸까?’ 그동안 겨울에는 날이 따뜻해지기를, 여름에는 시원해지기를 기다려보기만 했지,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질 일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 데에는 한자를 공부한 영향이 컸다. 봄 춘春이 지금까지 변화된 자형을 보면 해日와 풀을 가리키는 풀 초艸와 새싹을 본뜬 둔屯자가 합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가 풀을 비추지 않고 땅 밑에 있는 이유는 고대 사람들이 해를 사물 그 자체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기운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자를 통해 그들이 땅으로부터 강직하고, 활발하고, 뻗어나가는 기운과 새싹이 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봄은 ‘성장의 시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봄이 시작이라면 가을은 ‘성장의 완결’이다. 가을 절기인 처서處暑는 여름의 절정을 달리던 양의 기운이...
동은
2025.05.27 | 조회 450
Socio-sociolgy
    비트코인은 미래 화폐가 될 수 있을까? - 필레몬, 바우키스, 『비트코인 백서 해설』       비트코인의 두 얼굴  누구나 한 번쯤은 주변에서 비트코인이나 가상화폐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는 ‘코인 신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 ‘친구의 아는 형’이 코인 투자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미성년자라 가입할 수 없었다). 신화에는 비극도 있는 법, 2022년에는 ‘루나 코인’ 투자에 크게 실패하여 극단적 선택을 한 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런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극단적인 이야기들은 그것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투기를 목적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접근했을 때 이익의 고점은 굉장히 높지만, 저점도 매우 크다는 것. 그런 특성 때문에 여러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가상화폐를 통상적 화폐로 거래하는 시장은 활발해 보인다. 요컨대 비트코인은 투기의 대상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사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것이다.  한편, 비트코인은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적인 기술적 요소인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심화된 네트워크 보안을 실현함으로써 여러 국가와 기업에 다양하게 응용, 보급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국가 주도 가상화폐(CBDC)를 널리 보급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준비 중이다. 반면 아예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자국 통화 체계가 붕괴해 버린 엘살바도르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그런 경우다. 요컨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시스템은 한 쪽에선 투기의 대상이 되고 다른 한...
    비트코인은 미래 화폐가 될 수 있을까? - 필레몬, 바우키스, 『비트코인 백서 해설』       비트코인의 두 얼굴  누구나 한 번쯤은 주변에서 비트코인이나 가상화폐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는 ‘코인 신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 ‘친구의 아는 형’이 코인 투자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미성년자라 가입할 수 없었다). 신화에는 비극도 있는 법, 2022년에는 ‘루나 코인’ 투자에 크게 실패하여 극단적 선택을 한 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런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극단적인 이야기들은 그것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투기를 목적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접근했을 때 이익의 고점은 굉장히 높지만, 저점도 매우 크다는 것. 그런 특성 때문에 여러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가상화폐를 통상적 화폐로 거래하는 시장은 활발해 보인다. 요컨대 비트코인은 투기의 대상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사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것이다.  한편, 비트코인은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적인 기술적 요소인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심화된 네트워크 보안을 실현함으로써 여러 국가와 기업에 다양하게 응용, 보급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국가 주도 가상화폐(CBDC)를 널리 보급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준비 중이다. 반면 아예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자국 통화 체계가 붕괴해 버린 엘살바도르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그런 경우다. 요컨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시스템은 한 쪽에선 투기의 대상이 되고 다른 한...
우현
2025.05.22 | 조회 474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공성을 깨달으면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데...       문탁 2층 현관문이 고장 났다. 집주인에게 고쳐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못 고쳐주겠단다. 그 문은 우리가 단 것이니 알아서 고치든지 말든지 하라고 하면서 싫으면 나가라고까지 한다. 어이가 없었다. 일단 그 문은 우리가 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있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해도 집주인은 막무가내다. 그동안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우리가 해결하고 살았건만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거기다가 싫으면 나가라고? 이건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집주인의 횡포, 갑질이 아닌가? 사실이 아닌 것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모욕감을 주는 것, 이건 옳지 않다. 옳지 않은 일에 나는 분노했다. 번뇌가 일어났다. 그래, 나간다. 나가고 말겠다. 우리가 나가면 후회할걸? 원한과 복수의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명상을 하면서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일로 화를 내고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거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하는 갑질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참든가 정말 싫으면 다른 공간을 구하든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뭔가가 계속 걸린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불교학교에서 공부한 공(空)사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습관대로 살지 않으려면 작은 일에서도 뭔가 깨달을 수 있어야...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공성을 깨달으면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데...       문탁 2층 현관문이 고장 났다. 집주인에게 고쳐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못 고쳐주겠단다. 그 문은 우리가 단 것이니 알아서 고치든지 말든지 하라고 하면서 싫으면 나가라고까지 한다. 어이가 없었다. 일단 그 문은 우리가 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있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해도 집주인은 막무가내다. 그동안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우리가 해결하고 살았건만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거기다가 싫으면 나가라고? 이건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집주인의 횡포, 갑질이 아닌가? 사실이 아닌 것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모욕감을 주는 것, 이건 옳지 않다. 옳지 않은 일에 나는 분노했다. 번뇌가 일어났다. 그래, 나간다. 나가고 말겠다. 우리가 나가면 후회할걸? 원한과 복수의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명상을 하면서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일로 화를 내고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거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하는 갑질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참든가 정말 싫으면 다른 공간을 구하든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뭔가가 계속 걸린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불교학교에서 공부한 공(空)사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습관대로 살지 않으려면 작은 일에서도 뭔가 깨달을 수 있어야...
인디언
2025.05.12 | 조회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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