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전 중
중국의 역학사易學史 - 태동에서 위진수당 시기까지 -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음력 설날에는 반드시 토정비결을 보았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읽는 주역에도 “ㅇㅇ하면 허물이 없다”, “ㅇㅇ하면 길하다”라는 문장들이 낯설지 않다. 주역은 중국의 고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나는 문탁에서 가끔 산가지로 주역 점을 치는 것을 보아서 그런지 주역을 점치는 책, 점서占書로 알았다. 올해 고전학교에서 중국철학사를 공부한다. 그 출발점으로 먼저 중국 역학사易學史를 공부한다. 그 중심에 주역이 있다. 점서를 공부한다는 선입견에 ‘점서에 철학이 있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몇 년씩 주역을 읽은 세미나원들에게 물었다. 주역의 경문에 길흉회린吉凶悔吝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역은 점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점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 뭐지? 주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음양학陰陽學이란다. 『역전易傳』은 “한 번 음이고 한 번 양인 것을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는 명제를 철학의 기초로 삼고, 음과 양의 대립과 화합을 통해 중정中正·중용中庸을 추구하는 학문서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철학인데, 점서에서 어떻게 철학으로 변한 것이지?   『주역』, 『역경』, 『역전』 중국의 상고上古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방법으로 또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신’(상제上帝 또는 상천上天)의 뜻에서 구했다. 그 방법은 점占을 치는 것이었다(*). 점을 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불로 거북이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를 구워서 나타난 무늬 형상을 보고 신의 뜻을 판단하는 ‘복卜’의 방법과 시초蓍草로써 그 배열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數와 부호를 얻어서...
중국의 역학사易學史 - 태동에서 위진수당 시기까지 -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음력 설날에는 반드시 토정비결을 보았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읽는 주역에도 “ㅇㅇ하면 허물이 없다”, “ㅇㅇ하면 길하다”라는 문장들이 낯설지 않다. 주역은 중국의 고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나는 문탁에서 가끔 산가지로 주역 점을 치는 것을 보아서 그런지 주역을 점치는 책, 점서占書로 알았다. 올해 고전학교에서 중국철학사를 공부한다. 그 출발점으로 먼저 중국 역학사易學史를 공부한다. 그 중심에 주역이 있다. 점서를 공부한다는 선입견에 ‘점서에 철학이 있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몇 년씩 주역을 읽은 세미나원들에게 물었다. 주역의 경문에 길흉회린吉凶悔吝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역은 점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점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 뭐지? 주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음양학陰陽學이란다. 『역전易傳』은 “한 번 음이고 한 번 양인 것을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는 명제를 철학의 기초로 삼고, 음과 양의 대립과 화합을 통해 중정中正·중용中庸을 추구하는 학문서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철학인데, 점서에서 어떻게 철학으로 변한 것이지?   『주역』, 『역경』, 『역전』 중국의 상고上古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방법으로 또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신’(상제上帝 또는 상천上天)의 뜻에서 구했다. 그 방법은 점占을 치는 것이었다(*). 점을 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불로 거북이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를 구워서 나타난 무늬 형상을 보고 신의 뜻을 판단하는 ‘복卜’의 방법과 시초蓍草로써 그 배열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數와 부호를 얻어서...
가마솥
2025.07.08 | 조회 661
방과 후 고전 중
[동은의 음양탐구②] 주역의 음양, 위대하다 역이여 동은 동양고전은 세계의 경이와 아득함을 담고 있는 지혜다. 음양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는지 정리해보고 싶다.       1. 위대하다 역이여!     “태극은 본래 무극(太極 本無極也)”이라고 시작했던 <태극도설>의 끝은 <주역>에 대한 찬사로 끝난다. “大哉易也 위대하다 역이여!” 주렴계가 극찬했던 <주역>은 주나라 시대에 쓰여진 점서이지만 공자가 덕으로서 재해석하며 이후 다방면으로 중국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주역>의 본문에서는 ‘음양陰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진 않는다. <역전>의 <계사전>에서 음양으로 <주역>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주역>과 음양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때문에 음양에 대한 탐구는 <주역>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가 한나라다. <주역>이 설명하는 음양은 무엇이며, 한나라 학자들은 어떻게 <주역>과 음양을 이해했을까.      2. 음양이 개념이 되기 전까지      음양은 본래 그늘과 양지를 뜻하는 한자였다. 음양이 처음 사용된 <시경>과 <서경>에서는 음지와 양지, 어두움과 밝음, 뒷면과 정면같이 대립하는 성질로 사용되었다. 이런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는 음양이 기운과 함께 쓰인 것은 춘추시대부터였다. <좌전>에서는 비, 바람과 함께 음과 양이 기후의 요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는 날씨가 변하는 이유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차고 더운 성질을 의미하던 ‘음양’에 기운이 더해져 ‘음기’와 ‘양기’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관자>에서도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양기와 음기로 설명하고 있다. 음기와 양기는 날씨라는 하늘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이자 원인이 되어 하늘과 깊은 연관이 생겼다.   ...
[동은의 음양탐구②] 주역의 음양, 위대하다 역이여 동은 동양고전은 세계의 경이와 아득함을 담고 있는 지혜다. 음양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는지 정리해보고 싶다.       1. 위대하다 역이여!     “태극은 본래 무극(太極 本無極也)”이라고 시작했던 <태극도설>의 끝은 <주역>에 대한 찬사로 끝난다. “大哉易也 위대하다 역이여!” 주렴계가 극찬했던 <주역>은 주나라 시대에 쓰여진 점서이지만 공자가 덕으로서 재해석하며 이후 다방면으로 중국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주역>의 본문에서는 ‘음양陰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진 않는다. <역전>의 <계사전>에서 음양으로 <주역>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주역>과 음양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때문에 음양에 대한 탐구는 <주역>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가 한나라다. <주역>이 설명하는 음양은 무엇이며, 한나라 학자들은 어떻게 <주역>과 음양을 이해했을까.      2. 음양이 개념이 되기 전까지      음양은 본래 그늘과 양지를 뜻하는 한자였다. 음양이 처음 사용된 <시경>과 <서경>에서는 음지와 양지, 어두움과 밝음, 뒷면과 정면같이 대립하는 성질로 사용되었다. 이런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는 음양이 기운과 함께 쓰인 것은 춘추시대부터였다. <좌전>에서는 비, 바람과 함께 음과 양이 기후의 요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는 날씨가 변하는 이유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차고 더운 성질을 의미하던 ‘음양’에 기운이 더해져 ‘음기’와 ‘양기’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관자>에서도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양기와 음기로 설명하고 있다. 음기와 양기는 날씨라는 하늘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이자 원인이 되어 하늘과 깊은 연관이 생겼다.   ...
동은
2025.07.01 | 조회 568
Socio-sociolgy
하비 콕스, 『세속 도시』 도시의 술래잡기 : 세속화인가 재주술화인가     세속화에서 재주술화로 하비 콕스는 『세속 도시』에서 현대 문명이 다다른 ‘세속화’의 물결 아래에서 종교가, 기독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때 ‘세속화’는 사실상 도시화의 결과다. 이를테면, 농업 경제를 중심으로 조직된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역사회나 마을 공동체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조직해 왔다. 그러한 세계에서 종교는 삶 전반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누가 아프거나 죽어도,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위반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일의 중심에 ‘신’이 있었다. 다시 말해 내재적 삶을 구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외재하는 해석의 중심을 가질 수 있었던 셈이다.     콕스는 그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해체되어 버린 시대로, 자신의 당대(1960년대)를 인식한다. 이미 강력한 세속화가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와 접촉하는 기독교의 태도와 교리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는 그러한 교리 변화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창세기에서 야훼는 혼자 있길 싫어하는, 자신을 닮은 창조물인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들을 이름을 짓게 한다. 이 구절을 통해 콕스는 성경적 의미에서도 이 세계는 타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세계라고 해석한다. 이뿐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기독교가 헬레니즘과 결합될 때, 근대사회와 결합될 때 마다 유연하게 교리를 변화시켜왔고, 각 시대에 적합한 양식으로 갱신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기독교 역시 전 사회적인 세속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세속 도시’에 걸맞는...
하비 콕스, 『세속 도시』 도시의 술래잡기 : 세속화인가 재주술화인가     세속화에서 재주술화로 하비 콕스는 『세속 도시』에서 현대 문명이 다다른 ‘세속화’의 물결 아래에서 종교가, 기독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때 ‘세속화’는 사실상 도시화의 결과다. 이를테면, 농업 경제를 중심으로 조직된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역사회나 마을 공동체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조직해 왔다. 그러한 세계에서 종교는 삶 전반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누가 아프거나 죽어도,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위반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일의 중심에 ‘신’이 있었다. 다시 말해 내재적 삶을 구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외재하는 해석의 중심을 가질 수 있었던 셈이다.     콕스는 그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해체되어 버린 시대로, 자신의 당대(1960년대)를 인식한다. 이미 강력한 세속화가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와 접촉하는 기독교의 태도와 교리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는 그러한 교리 변화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창세기에서 야훼는 혼자 있길 싫어하는, 자신을 닮은 창조물인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들을 이름을 짓게 한다. 이 구절을 통해 콕스는 성경적 의미에서도 이 세계는 타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세계라고 해석한다. 이뿐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기독교가 헬레니즘과 결합될 때, 근대사회와 결합될 때 마다 유연하게 교리를 변화시켜왔고, 각 시대에 적합한 양식으로 갱신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기독교 역시 전 사회적인 세속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세속 도시’에 걸맞는...
정군
2025.06.22 | 조회 449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붓다의 마음,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일반적으로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해석된다. 풀어서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마음이라는 것인지 내게는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니까야』를 필사하다가 「성스러운 구함 경」에서 붓다의 마음,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보았다.   무관심으로 기울다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 과연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다. 흐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하여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 있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 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니까야』「성스러운 구함 경」   이 이야기는 붓다가 비구들에게 자신의 성도과정을 설법하는 중에 나온 자기고백이다. 그는 자신이 “증득한 법이 심오하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에 현자들만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그가 기껏 법을 가르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설법하느라 고생만 되고 성가신 일이 될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급기야 그는 중생을 대상으로 법을 설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붓다가 이토록 자신의 설법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얼까. 그는 출가한 직후 두...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붓다의 마음,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일반적으로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해석된다. 풀어서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마음이라는 것인지 내게는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니까야』를 필사하다가 「성스러운 구함 경」에서 붓다의 마음,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보았다.   무관심으로 기울다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 과연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다. 흐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하여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 있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 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니까야』「성스러운 구함 경」   이 이야기는 붓다가 비구들에게 자신의 성도과정을 설법하는 중에 나온 자기고백이다. 그는 자신이 “증득한 법이 심오하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에 현자들만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그가 기껏 법을 가르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설법하느라 고생만 되고 성가신 일이 될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급기야 그는 중생을 대상으로 법을 설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붓다가 이토록 자신의 설법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얼까. 그는 출가한 직후 두...
두루미
2025.06.16 | 조회 527
Socio-sociolgy
      '정치적 올바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극단주의' 르네 피스터, 『잘못된 단어』         극단과 추방 『잘못된 단어』의 저자 르네 피스터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자이다. 『잘못된 단어』에서 피스터는 미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취재한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는 극단주의 문제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자유민주주의적 다양성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잘못된 단어』는 피스터가 미국 특파원으로서 지낼 곳을 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피스터는 미국 워싱턴의 교외인 체비 체이스 구역에 집을 마련한다. 이곳에 집을 마련한 이유는 세 집 건너 걸린 무지개 깃발 때문이다. 동성애 운동을 상징하는 이 무지개 깃발은 2016년에 처음 걸렸다. 당시 체비 체이스에서 지낸 사람들은 펜스 공화당 부통령 당선인이 임시 거주하게 되는 것을 반대했다. 깃발은 반대를 표현하는 ‘침묵의 항의’였고, 이는 당선인이 떠난 후부터 피스터가 집을 구하러 온 2019년까지도 걸려있었다. 피스터는 이를 보고 체비 체이스가 마냥 ‘가식과 위선이 넘치는 중산층의 지옥’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정착했다. 피스터는 체비 체이스에서의 생활에 만족해 했다. 반면, 취재현장에서 그가 마주친 미국은 체비 체이스와는 달랐다. 취재현장에는 그가 체비 체이스에서 경험한 배려와 존중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깊이 퍼진 분노와 증오가 있었다. 트럼프는 그러한 분노와 증오를 이용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언론을 조롱하고 위협했다....
      '정치적 올바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극단주의' 르네 피스터, 『잘못된 단어』         극단과 추방 『잘못된 단어』의 저자 르네 피스터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자이다. 『잘못된 단어』에서 피스터는 미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취재한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는 극단주의 문제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자유민주주의적 다양성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잘못된 단어』는 피스터가 미국 특파원으로서 지낼 곳을 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피스터는 미국 워싱턴의 교외인 체비 체이스 구역에 집을 마련한다. 이곳에 집을 마련한 이유는 세 집 건너 걸린 무지개 깃발 때문이다. 동성애 운동을 상징하는 이 무지개 깃발은 2016년에 처음 걸렸다. 당시 체비 체이스에서 지낸 사람들은 펜스 공화당 부통령 당선인이 임시 거주하게 되는 것을 반대했다. 깃발은 반대를 표현하는 ‘침묵의 항의’였고, 이는 당선인이 떠난 후부터 피스터가 집을 구하러 온 2019년까지도 걸려있었다. 피스터는 이를 보고 체비 체이스가 마냥 ‘가식과 위선이 넘치는 중산층의 지옥’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정착했다. 피스터는 체비 체이스에서의 생활에 만족해 했다. 반면, 취재현장에서 그가 마주친 미국은 체비 체이스와는 달랐다. 취재현장에는 그가 체비 체이스에서 경험한 배려와 존중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깊이 퍼진 분노와 증오가 있었다. 트럼프는 그러한 분노와 증오를 이용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언론을 조롱하고 위협했다....
후유
2025.06.10 | 조회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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