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전 중
<역전>, 점서를 철학화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주역周易>>을 읽고 있다. 중국의 사상사와 철학사적 맥락에서 읽어내려는 사람도 있지만, 명리학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주역>>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나아가 불안한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들이 <<주역>> 읽기를 통해서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주역>>을 다루는 방식은 철저하게 ‘철학사’적 입장에 있다. 철학사라고 하였으니 <<주역>>을 철학서로 본다는 의미일 텐데, 그러면 <<주역>>은 어떤 점에서 철학적이라는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철학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철학’이 무엇인지, 중국에 철학이 있었는가 등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주역>>이 철학서이기에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태생적으로 점서였던 것을 이후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철학서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의 어떤 책(<<상나라 정벌>>, 이숴, 글항아리)은 <<주역>>을 주나라의 ‘역사’로 읽어내기도 하는 걸 보면, 역대로 <<주역>>은 사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상이었다. 그것을 정치, 사회, 도덕 철학적으로 읽어내는 해석들의 역사가 바로 주역철학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종교적으로 혹은 예언서적이나 신선이 되기 위한 매뉴얼북처럼 읽는 해석들은 ‘주역철학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그래서 도교나 불교 경전에 있는 자료들은 다루지 않는다). 고전학교에서 다루는 것도 이렇게 <<주역>>을 철학적으로 읽어온 해석의 역사이다.     <<주역>>을 철학화하는 과정은 주역이 점서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주역 책의 편제 상에서의 문제로 풀...
<역전>, 점서를 철학화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주역周易>>을 읽고 있다. 중국의 사상사와 철학사적 맥락에서 읽어내려는 사람도 있지만, 명리학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주역>>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나아가 불안한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들이 <<주역>> 읽기를 통해서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주역>>을 다루는 방식은 철저하게 ‘철학사’적 입장에 있다. 철학사라고 하였으니 <<주역>>을 철학서로 본다는 의미일 텐데, 그러면 <<주역>>은 어떤 점에서 철학적이라는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철학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철학’이 무엇인지, 중국에 철학이 있었는가 등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주역>>이 철학서이기에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태생적으로 점서였던 것을 이후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철학서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의 어떤 책(<<상나라 정벌>>, 이숴, 글항아리)은 <<주역>>을 주나라의 ‘역사’로 읽어내기도 하는 걸 보면, 역대로 <<주역>>은 사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상이었다. 그것을 정치, 사회, 도덕 철학적으로 읽어내는 해석들의 역사가 바로 주역철학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종교적으로 혹은 예언서적이나 신선이 되기 위한 매뉴얼북처럼 읽는 해석들은 ‘주역철학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그래서 도교나 불교 경전에 있는 자료들은 다루지 않는다). 고전학교에서 다루는 것도 이렇게 <<주역>>을 철학적으로 읽어온 해석의 역사이다.     <<주역>>을 철학화하는 과정은 주역이 점서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주역 책의 편제 상에서의 문제로 풀...
자작나무
2025.08.04 | 조회 345
기학잡담
장재에게 계사전이란 주역공부를 시작한 이래 여러 학자들이 해석한 버전의 <계사전>을 읽어왔다. 왕필 같은 의리역학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대부분의 유학자들에게 계사전은 주역의 철학적 가치, 주역의 자연관, 세계관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로 여겨졌다. 그동안 정이천과 주희의 『주역전의(周易傳義』를 비롯해서 소식의 『동파역전(東坡易傳)』, 의리역의 왕필을 계승한 한강백의 계사주석, 왕부지의 『주역내전(周易內傳)』등을 읽었다. 올해초 개념탐구학교에서는 도올의 『도올 주역 계사전』강해를 공부했다. 여기에서 도올은 왕부지의 기학적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천지코스몰로지’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주역의 우주론을 펼쳤다. 이같은 과정에서 장재의 『횡거역설(橫渠易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장재는 왕부지가 소위 ‘건곤병건설’, 즉 기론(氣論)에 입각한 그의 주역관을 세우는데 스승 역할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리파 학자이면서도 그 계열 안에서 기(氣)를 중심으로 주역의 말들을 해석하면서 기학파(氣學派)라는 새로운 학문의 줄기를 세운 장재. 이번에 나는 횡거역설 중에서 계사전을 우선 읽기로 했다. 장재철학의 뿌리는 주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만큼 장재는 주역연구에 집중했다. 그의 최대 역작이라 할만한 『정몽(正蒙)』도 그의 주역서인 횡거역설과 많은 부분 겹칠 정도로 장재철학의 바탕에는 주역의 사유가 짙게 배어있다. 왕부지는 “장재의 학문은 역학(易學)이 아님이 없고 장재의 말 또한 역학이 아님이 없다”고 말해 장재의 철학이 역학적 세계관의 기초 위에 세워졌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장재의 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역학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장재는 <계사전>을 매우 중시했다고 한다. 장재는 그 이유에 대해 “<계사전>이 역도(易道)를 논하였고, 역도를 알면 역상(易象)은 그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장재의 관심은 역도를 탐구하는 것이었고 계사전이야말로...
장재에게 계사전이란 주역공부를 시작한 이래 여러 학자들이 해석한 버전의 <계사전>을 읽어왔다. 왕필 같은 의리역학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대부분의 유학자들에게 계사전은 주역의 철학적 가치, 주역의 자연관, 세계관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로 여겨졌다. 그동안 정이천과 주희의 『주역전의(周易傳義』를 비롯해서 소식의 『동파역전(東坡易傳)』, 의리역의 왕필을 계승한 한강백의 계사주석, 왕부지의 『주역내전(周易內傳)』등을 읽었다. 올해초 개념탐구학교에서는 도올의 『도올 주역 계사전』강해를 공부했다. 여기에서 도올은 왕부지의 기학적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천지코스몰로지’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주역의 우주론을 펼쳤다. 이같은 과정에서 장재의 『횡거역설(橫渠易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장재는 왕부지가 소위 ‘건곤병건설’, 즉 기론(氣論)에 입각한 그의 주역관을 세우는데 스승 역할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리파 학자이면서도 그 계열 안에서 기(氣)를 중심으로 주역의 말들을 해석하면서 기학파(氣學派)라는 새로운 학문의 줄기를 세운 장재. 이번에 나는 횡거역설 중에서 계사전을 우선 읽기로 했다. 장재철학의 뿌리는 주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만큼 장재는 주역연구에 집중했다. 그의 최대 역작이라 할만한 『정몽(正蒙)』도 그의 주역서인 횡거역설과 많은 부분 겹칠 정도로 장재철학의 바탕에는 주역의 사유가 짙게 배어있다. 왕부지는 “장재의 학문은 역학(易學)이 아님이 없고 장재의 말 또한 역학이 아님이 없다”고 말해 장재의 철학이 역학적 세계관의 기초 위에 세워졌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장재의 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역학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장재는 <계사전>을 매우 중시했다고 한다. 장재는 그 이유에 대해 “<계사전>이 역도(易道)를 논하였고, 역도를 알면 역상(易象)은 그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장재의 관심은 역도를 탐구하는 것이었고 계사전이야말로...
봄날
2025.07.31 | 조회 508
Socio-sociolgy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 자유와 무기력 사이         지난 글에서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불안의 기원』을 중심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겪는 불안의 구조적·사회적 원인을 탐색하고, 이를 알랭 드 보통과 게오르그 짐멜 등의 사상과 비교해 살펴보았다. 바우만은 불안을 단지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대적 조건의 산물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공포와 불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상상력과 연대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바우만의 또 다른 핵심 저작인 『액체 현대』를 중심으로 그가 현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인 ‘액체성(liquidity)’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액체 현대’라 명명하며 이 시대의 본질을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한 ‘모든 견고한 것이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진다’는 통찰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액체성’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기존의 견고한 가치‧관계‧제도를 해체하고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액체성’의 조건 아래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확신과 확실성으로 행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성은 무지하다는 느낌, 그리고 회피적이고 산만하며 그 정체를 분간하기 어렵고 그 소재를 파악하기 힘든 공포를 낳는다. 정박할 닻이 없기에 절망적으로 그것을 찾는 그런 공포 말이다. (중략) 지구화된 이 세계에서 그 조건은 보편적이다. - 『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옮김, 필로소픽, 25쪽 -     해방과 자유 그리고 고립 ‘액체 현대’란 고정되고 안정된 질서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 자유와 무기력 사이         지난 글에서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불안의 기원』을 중심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겪는 불안의 구조적·사회적 원인을 탐색하고, 이를 알랭 드 보통과 게오르그 짐멜 등의 사상과 비교해 살펴보았다. 바우만은 불안을 단지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대적 조건의 산물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공포와 불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상상력과 연대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바우만의 또 다른 핵심 저작인 『액체 현대』를 중심으로 그가 현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인 ‘액체성(liquidity)’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액체 현대’라 명명하며 이 시대의 본질을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한 ‘모든 견고한 것이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진다’는 통찰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액체성’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기존의 견고한 가치‧관계‧제도를 해체하고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액체성’의 조건 아래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확신과 확실성으로 행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성은 무지하다는 느낌, 그리고 회피적이고 산만하며 그 정체를 분간하기 어렵고 그 소재를 파악하기 힘든 공포를 낳는다. 정박할 닻이 없기에 절망적으로 그것을 찾는 그런 공포 말이다. (중략) 지구화된 이 세계에서 그 조건은 보편적이다. - 『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옮김, 필로소픽, 25쪽 -     해방과 자유 그리고 고립 ‘액체 현대’란 고정되고 안정된 질서가...
효주
2025.07.30 | 조회 576
토용의 서경리뷰
주공의 등장   꽤 오래전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복 입고 찍은 청춘로맨스물이었는데, 그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금등지사金縢之詞’를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기 때문이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남긴 글로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영조가 바로 공개하지 않고 후세에 남길 것을 명하면서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정조는 이 문서를 공개하면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복권을 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정조와 관련된 책, 영화, 드라마에서는 픽션까지 더해져 금등지사가 자주 다뤄지고 있다.   금등지사는 억울한 일을 글로 남겨 후세에 진실을 알리고 오해를 푼다는 뜻을 가진다. 금등지사가 이러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서경』 <금등金縢>편에 등장하는 주공周公과 연관이 있다. 금등은 ‘금등지궤金縢之匱’를 말하는데, 쇠사슬로 묶어 봉함한 상자이다. 보통 주나라 왕실에서는 점을 친 후 그 축문을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쇠사슬로 묶어 보관했다. 그렇다면 <금등>에 등장하는 이 상자에는 어떤 문서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바로 주공의 기도문이다. 주공은 무슨 일로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드렸을까? 그리고 왜 상자에 넣어 봉인을 했을까? 어쨌든 드디어 <금등>에서 『서경』의 마지막 챕터인 「주서周書」의 주인공, 공자의 롤모델 주공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주공은 주나라 문물제도의 창시자로 중국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중국 문명은 그가 만든 기틀 위에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공은 요순우탕문무주공의 고대 성인 계보에서 성왕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성인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다....
주공의 등장   꽤 오래전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복 입고 찍은 청춘로맨스물이었는데, 그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금등지사金縢之詞’를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기 때문이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남긴 글로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영조가 바로 공개하지 않고 후세에 남길 것을 명하면서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정조는 이 문서를 공개하면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복권을 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정조와 관련된 책, 영화, 드라마에서는 픽션까지 더해져 금등지사가 자주 다뤄지고 있다.   금등지사는 억울한 일을 글로 남겨 후세에 진실을 알리고 오해를 푼다는 뜻을 가진다. 금등지사가 이러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서경』 <금등金縢>편에 등장하는 주공周公과 연관이 있다. 금등은 ‘금등지궤金縢之匱’를 말하는데, 쇠사슬로 묶어 봉함한 상자이다. 보통 주나라 왕실에서는 점을 친 후 그 축문을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쇠사슬로 묶어 보관했다. 그렇다면 <금등>에 등장하는 이 상자에는 어떤 문서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바로 주공의 기도문이다. 주공은 무슨 일로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드렸을까? 그리고 왜 상자에 넣어 봉인을 했을까? 어쨌든 드디어 <금등>에서 『서경』의 마지막 챕터인 「주서周書」의 주인공, 공자의 롤모델 주공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주공은 주나라 문물제도의 창시자로 중국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중국 문명은 그가 만든 기틀 위에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공은 요순우탕문무주공의 고대 성인 계보에서 성왕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성인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다....
토용
2025.07.25 | 조회 526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화살의 비유   ‘독화살의 비유’가 나오는 경전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말룽끼야붓따라는 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물었다. 1)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한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가. 2) 세상에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엾는가,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3) 몸과 마음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가. 4)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말룽끼야붓따는 이 문제에 답해주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제자 되기가 어렵겠다고 했다.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로 답했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다. 의사가 독을 치료하려 하자 그는 치료를 거부한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 화살의 재료는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독에 대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부처님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의사가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죽어버릴 것이다. 이 비유에서 독화살을 맞았는데도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기 전에는 치료받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말룽끼야붓따를 가리킨다. 의사는 부처님이다. 『니까야』를 읽어보면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한 사람은 비단 말룽끼야붓따만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문탁네트워크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화살의 비유   ‘독화살의 비유’가 나오는 경전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말룽끼야붓따라는 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물었다. 1)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한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가. 2) 세상에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엾는가,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3) 몸과 마음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가. 4)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말룽끼야붓따는 이 문제에 답해주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제자 되기가 어렵겠다고 했다.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로 답했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있다. 의사가 독을 치료하려 하자 그는 치료를 거부한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 화살의 재료는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독에 대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부처님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의사가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죽어버릴 것이다. 이 비유에서 독화살을 맞았는데도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기 전에는 치료받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말룽끼야붓따를 가리킨다. 의사는 부처님이다. 『니까야』를 읽어보면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한 사람은 비단 말룽끼야붓따만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을...
요요
2025.07.15 | 조회 61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