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1.       살아가면서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도대체 왜 등산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등산에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풍경 때문이다. 똑같은 산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 때문에 지겹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피어나는 봄, 강렬하게 푸르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는 여름,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을,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는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그 풍경을 거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산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다. 가까운 친구는 날씨와 계절이 일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그저 사계절의 단점이 모두 모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큼 계절의 변화를 재미있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정적으로...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1.       살아가면서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도대체 왜 등산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등산에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풍경 때문이다. 똑같은 산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 때문에 지겹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피어나는 봄, 강렬하게 푸르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는 여름,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을,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는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그 풍경을 거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산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다. 가까운 친구는 날씨와 계절이 일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그저 사계절의 단점이 모두 모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큼 계절의 변화를 재미있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정적으로...
동은
2022.09.16 | 조회 987
요요와 불교산책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이십여 년 전쯤 명상 수행에 입문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위기가 닥친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항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로 인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사태 모두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마음은 온통 원망, 자책, 분노, 부끄러움, 모욕감으로 가득찼다. 자의식 과잉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은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지켜 보라고 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전하러 온 스님이었다. 눈이 온천지를 새하얗게 뒤덮은 겨울, 혜가(慧可, 487년~593년)가 찾아왔다. 혜가는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제서야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를 찾아오기 전부터 혜가가 외팔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혜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가 그 정도로 결연했다는 메타포로 이해하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팔 하나쯤은 가볍게 여기는 선가(禪家)의 공부 가풍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자가 된 혜가가 달마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와 혜가의 대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명상을 배우러 달려갈 때의 내 마음과...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이십여 년 전쯤 명상 수행에 입문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위기가 닥친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항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로 인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사태 모두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마음은 온통 원망, 자책, 분노, 부끄러움, 모욕감으로 가득찼다. 자의식 과잉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은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지켜 보라고 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전하러 온 스님이었다. 눈이 온천지를 새하얗게 뒤덮은 겨울, 혜가(慧可, 487년~593년)가 찾아왔다. 혜가는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제서야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를 찾아오기 전부터 혜가가 외팔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혜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가 그 정도로 결연했다는 메타포로 이해하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팔 하나쯤은 가볍게 여기는 선가(禪家)의 공부 가풍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자가 된 혜가가 달마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와 혜가의 대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명상을 배우러 달려갈 때의 내 마음과...
요요
2022.09.13 | 조회 925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고은은 <열녀전>을 읽고, 여성들의 팝박 받는 삶이 고대부터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이 글은 고대 여성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오늘날 시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리즈물입니다.       1. 바리스타 혹은 스파이 듀오      초등학생들과 <열녀전>으로 수업을 하던 첫날, 친구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열녀전>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삽화였다. 산 길에 두 여자가 찻주전자를 들고 한 남자가 잔을 기울인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 세 사람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떤 관계일까?”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낯선 것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대답한다. “나는 이 두 여자가 바리스타인 것 같아. 새로운 커피가 나와서 지나가는 손님에게 마셔보라고 한 잔 주는 거지.” 친구들이 꺄르륵 웃으며 되묻는다. “바리스타요?” “커피요?” 과거에 바리스타는 없었을 테지만, 음료를 판매하는 누군가는 있었을 테니까.            친구들은 비로소 긴장을 풀고 그림을 지긋이 쳐다보다 한 마디씩 보탠다. 어떤 친구가 두 여자가 건네는 찻주전자에 독이 들어있을 것이라 말한다. 뒤이어 찻잔을 기울이는 남자는 왕자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붙는다. 한 나라의 왕자를 독살하기 위해 스파이 둘이 출동했을 거란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은비(가명)가 이야기를 한번 더 뒤집는다. 은비는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혼자 책을 읽다가 부모님을 깨우는, 동화작가가 꿈인 친구다. “여자...
*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고은은 <열녀전>을 읽고, 여성들의 팝박 받는 삶이 고대부터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이 글은 고대 여성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오늘날 시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리즈물입니다.       1. 바리스타 혹은 스파이 듀오      초등학생들과 <열녀전>으로 수업을 하던 첫날, 친구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열녀전>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삽화였다. 산 길에 두 여자가 찻주전자를 들고 한 남자가 잔을 기울인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 세 사람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떤 관계일까?”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낯선 것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대답한다. “나는 이 두 여자가 바리스타인 것 같아. 새로운 커피가 나와서 지나가는 손님에게 마셔보라고 한 잔 주는 거지.” 친구들이 꺄르륵 웃으며 되묻는다. “바리스타요?” “커피요?” 과거에 바리스타는 없었을 테지만, 음료를 판매하는 누군가는 있었을 테니까.            친구들은 비로소 긴장을 풀고 그림을 지긋이 쳐다보다 한 마디씩 보탠다. 어떤 친구가 두 여자가 건네는 찻주전자에 독이 들어있을 것이라 말한다. 뒤이어 찻잔을 기울이는 남자는 왕자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붙는다. 한 나라의 왕자를 독살하기 위해 스파이 둘이 출동했을 거란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은비(가명)가 이야기를 한번 더 뒤집는다. 은비는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혼자 책을 읽다가 부모님을 깨우는, 동화작가가 꿈인 친구다. “여자...
고은
2022.09.08 | 조회 1147
주역을 공부하면서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무심하게 주역괘를 뽑을 때가 있다. 문탁의 ‘생태공방’에서는 얼마 전부터 주역괘를 적은 작은 종이를 비누포장 속에 넣어 아예 ‘주역비누’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각자 공부하는 세미나팀이나 활동팀에서 주역비누 속의 괘를 집어든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뽑은 주역괘에 진심이다. 좋은 괘를 뽑으면 하루종일 기분 좋아하고 나쁜 괘를 뽑으면 의기소침하기도 하다. 어쨌든 자신에게 온 괘의 의미를 묻고 나름대로 자신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나는 올해 들어 이러저러한 모임에서 몇 번 주역괘를 뽑았다. 이때 풍화가인(風化家人)괘는 두 번이나 나에게 찾아들었고, 그렇게 ‘2022년 나의 인생괘’가 되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풍화가인의 가인(家人)은, 사전을 찾아보면 1)집안의 모든 사람 2)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낮춰 부를 때 쓰는 ‘집사람’을 가리킨다. 주역의 풍화가인은 첫 번째 설명, 즉 한 집안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킨다. 건괘나 곤괘를 비롯한 주역의 많은 괘들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로 삼는 이야기인 것에 비하면 가인괘는 그 스케일이 작다. 동요 중에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가사가 있는데, 풍화가인괘는 이 노래가사처럼 괘 전체가 집의 규모를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한 집안에 살고 있는 부부, 부모, 자식간의 지지고 볶는 소소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괘가 풍화가인괘이다. 스케일은 작지만 우리는 한 집안이 세상 속에서 겪는 일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복잡한지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실천적 삶의...
주역을 공부하면서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무심하게 주역괘를 뽑을 때가 있다. 문탁의 ‘생태공방’에서는 얼마 전부터 주역괘를 적은 작은 종이를 비누포장 속에 넣어 아예 ‘주역비누’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각자 공부하는 세미나팀이나 활동팀에서 주역비누 속의 괘를 집어든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뽑은 주역괘에 진심이다. 좋은 괘를 뽑으면 하루종일 기분 좋아하고 나쁜 괘를 뽑으면 의기소침하기도 하다. 어쨌든 자신에게 온 괘의 의미를 묻고 나름대로 자신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나는 올해 들어 이러저러한 모임에서 몇 번 주역괘를 뽑았다. 이때 풍화가인(風化家人)괘는 두 번이나 나에게 찾아들었고, 그렇게 ‘2022년 나의 인생괘’가 되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풍화가인의 가인(家人)은, 사전을 찾아보면 1)집안의 모든 사람 2)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낮춰 부를 때 쓰는 ‘집사람’을 가리킨다. 주역의 풍화가인은 첫 번째 설명, 즉 한 집안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킨다. 건괘나 곤괘를 비롯한 주역의 많은 괘들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로 삼는 이야기인 것에 비하면 가인괘는 그 스케일이 작다. 동요 중에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가사가 있는데, 풍화가인괘는 이 노래가사처럼 괘 전체가 집의 규모를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한 집안에 살고 있는 부부, 부모, 자식간의 지지고 볶는 소소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괘가 풍화가인괘이다. 스케일은 작지만 우리는 한 집안이 세상 속에서 겪는 일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복잡한지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실천적 삶의...
봄날
2022.09.07 | 조회 421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양생글쓰기 <나이듦과 자기서사> 시즌2에서는 리뷰글쓰기를 해봤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학인들의 리뷰 중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돌봄 초보의 ‘시민’ 되기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옥희살롱, 봄날의 책, 2021)   양해성     가족 또는 시설밖에 없을까?   나는 돌봄 초보이다. 우선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장기간 누군가를 돌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85세의 파트너 어머니가 우리가 사는 집으로 들어 오게 되면서 쇠약해진 몸으로 일상을 겪는 것,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2020년 후반, 가깝게 지내던 싱글 게이 친구가 기본적인 케어와 식사가 제공되는 노인돌봄 시설로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그는 몇 년 전부터 파킨슨병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경증의 치매 증상도 나타났다. 그 친구는 은퇴 후 낮엔 집수리와 조경, 요가와 산책, 저녁엔 친구들과 밥먹고 와인을 마시는 본인이 원하는 노년을 즐기고 있었다. 이러한 일상을 포기하고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권이 주어지지 않는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그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더 두려운 것은 시설 내에 동성애 혐오나 차별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거주자, 스태프, 혹은 의료진이 혹시라도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 명이라도 있다면 위축되어 조용히 죽어 지내거나 저항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생활이 될 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곳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양생글쓰기 <나이듦과 자기서사> 시즌2에서는 리뷰글쓰기를 해봤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학인들의 리뷰 중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돌봄 초보의 ‘시민’ 되기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옥희살롱, 봄날의 책, 2021)   양해성     가족 또는 시설밖에 없을까?   나는 돌봄 초보이다. 우선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장기간 누군가를 돌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85세의 파트너 어머니가 우리가 사는 집으로 들어 오게 되면서 쇠약해진 몸으로 일상을 겪는 것,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2020년 후반, 가깝게 지내던 싱글 게이 친구가 기본적인 케어와 식사가 제공되는 노인돌봄 시설로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그는 몇 년 전부터 파킨슨병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경증의 치매 증상도 나타났다. 그 친구는 은퇴 후 낮엔 집수리와 조경, 요가와 산책, 저녁엔 친구들과 밥먹고 와인을 마시는 본인이 원하는 노년을 즐기고 있었다. 이러한 일상을 포기하고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권이 주어지지 않는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그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더 두려운 것은 시설 내에 동성애 혐오나 차별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거주자, 스태프, 혹은 의료진이 혹시라도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 명이라도 있다면 위축되어 조용히 죽어 지내거나 저항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생활이 될 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곳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문탁
2022.08.30 | 조회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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