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이십여 년 전쯤 명상 수행에 입문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위기가 닥친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항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로 인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사태 모두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마음은 온통 원망, 자책, 분노, 부끄러움, 모욕감으로 가득찼다. 자의식 과잉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은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지켜 보라고 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전하러 온 스님이었다. 눈이 온천지를 새하얗게 뒤덮은 겨울, 혜가(慧可, 487년~593년)가 찾아왔다. 혜가는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제서야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를 찾아오기 전부터 혜가가 외팔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혜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가 그 정도로 결연했다는 메타포로 이해하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팔 하나쯤은 가볍게 여기는 선가(禪家)의 공부 가풍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자가 된 혜가가 달마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와 혜가의 대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명상을 배우러 달려갈 때의 내 마음과...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이십여 년 전쯤 명상 수행에 입문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위기가 닥친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항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로 인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사태 모두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마음은 온통 원망, 자책, 분노, 부끄러움, 모욕감으로 가득찼다. 자의식 과잉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은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지켜 보라고 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전하러 온 스님이었다. 눈이 온천지를 새하얗게 뒤덮은 겨울, 혜가(慧可, 487년~593년)가 찾아왔다. 혜가는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제서야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를 찾아오기 전부터 혜가가 외팔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혜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가 그 정도로 결연했다는 메타포로 이해하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팔 하나쯤은 가볍게 여기는 선가(禪家)의 공부 가풍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자가 된 혜가가 달마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와 혜가의 대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명상을 배우러 달려갈 때의 내 마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