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김현지
2021.12.06 | 조회 36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정진우
2021.12.06 | 조회 24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인디언
2021.12.06 | 조회 292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고은
2021.11.25 | 조회 342
논어 카메오 열전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진달래
2021.11.24 | 조회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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