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전 중
올해 고전학교에서 읽고 있는 『주역철학사』에서 ‘횡거철피橫渠撤皮’라는 고사성어를 보았다. 주희朱熹의 이정어록二程語錄의 설명에 따르면, “장재는 학문이 높고 강의도 잘해 그의 집은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어느 날 정호·정이 형제가 그를 찾아 주역에 관한 가르침을 청하면서 도道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장재는 사람들을 향해 ‘지금까지 나의 강의는 잘못되었으니 모두 잊어버려라. 대신 정씨 형제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호피를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고향인 섬서성으로 돌아갔다. 그는 후대 학자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재(張載,1020~1077)의 자字는 자후子厚이고 대대로 대량大樑에 거주해온 벼슬집안 출신으로, 오랫동안 섬서성陝西省 미현堳縣 횡거진橫渠鎭에 머물면서 강학講學했기 때문에 ‘횡거선생’이라 불렸다. 송명 리학의 기초를 닦은 한 사람으로 리학 4대 학파 가운데 관학파關學派의 개창자이다. 이정二程과 장재, 셋은 1056년, 북송의 수도인 개봉開封에서 만난다. 36세의 장재가 12~13세의 외종질(外從姪: 외사촌의 아들)인 정호(程顥, 1032-1085)ㆍ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만나 주역에 대하여 논論하고 나서 그 들의 도道에 대하여 밝고 깊다고 칭찬하며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는 것인데, 나이 차이와 관계(조카)에서 오는 ‘정말 그랬을까? 후배 리학자들의 과도한 설정이지 않을까?’하는 미심쩍은 의혹부터 든다. 동시에 호기심이 뒤따라온다. 철피撤皮했다, 낙향落鄕했다는 것을 빼고 나면, ‘그의 도가 밝다’고 칭찬한 점이 남기 때문이다. 장재가 공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중국 고전이 존재론(본체론·우주론·생성론), 인성론(심성론), 지식론(인식론), 윤리학 등의 주제가 뒤섞여 있지만, 마지막 윤리학으로 가는 출발점은 존재론이므로 이에 대한 그들의 의견들을 정리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정二程의 존재론 형인 정호는 천리天理는...
올해 고전학교에서 읽고 있는 『주역철학사』에서 ‘횡거철피橫渠撤皮’라는 고사성어를 보았다. 주희朱熹의 이정어록二程語錄의 설명에 따르면, “장재는 학문이 높고 강의도 잘해 그의 집은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어느 날 정호·정이 형제가 그를 찾아 주역에 관한 가르침을 청하면서 도道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장재는 사람들을 향해 ‘지금까지 나의 강의는 잘못되었으니 모두 잊어버려라. 대신 정씨 형제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호피를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고향인 섬서성으로 돌아갔다. 그는 후대 학자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재(張載,1020~1077)의 자字는 자후子厚이고 대대로 대량大樑에 거주해온 벼슬집안 출신으로, 오랫동안 섬서성陝西省 미현堳縣 횡거진橫渠鎭에 머물면서 강학講學했기 때문에 ‘횡거선생’이라 불렸다. 송명 리학의 기초를 닦은 한 사람으로 리학 4대 학파 가운데 관학파關學派의 개창자이다. 이정二程과 장재, 셋은 1056년, 북송의 수도인 개봉開封에서 만난다. 36세의 장재가 12~13세의 외종질(外從姪: 외사촌의 아들)인 정호(程顥, 1032-1085)ㆍ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만나 주역에 대하여 논論하고 나서 그 들의 도道에 대하여 밝고 깊다고 칭찬하며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는 것인데, 나이 차이와 관계(조카)에서 오는 ‘정말 그랬을까? 후배 리학자들의 과도한 설정이지 않을까?’하는 미심쩍은 의혹부터 든다. 동시에 호기심이 뒤따라온다. 철피撤皮했다, 낙향落鄕했다는 것을 빼고 나면, ‘그의 도가 밝다’고 칭찬한 점이 남기 때문이다. 장재가 공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중국 고전이 존재론(본체론·우주론·생성론), 인성론(심성론), 지식론(인식론), 윤리학 등의 주제가 뒤섞여 있지만, 마지막 윤리학으로 가는 출발점은 존재론이므로 이에 대한 그들의 의견들을 정리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정二程의 존재론 형인 정호는 천리天理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윤회와 연기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기와 윤회라는 문제 요즘 불교학교에서는 『람림』을 읽고 있다. 『람림』은 티벳에서는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쫑까파 대사(1357~1419)가 지은 책이다. 『람림』이란 티벳어 ‘장춥람림’의 줄임말이다. 장춥은 보리(bodhi 菩提), 깨달음을, 람은 길을, 림은 단계를 뜻한다. 그러니 『람림』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단계를 설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교학교에서는 『니까야』를 읽으며 초기불교의 개념을 익히고, 『유식삼십송』을 읽으며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을 접했고,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통해 공성이 무엇인지 거칠게 나마 더듬어보았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전에서 하는 말에 대해 감을 잡으려면 반드시 공사상이 대결하고 있는 아비달마 불교에 대해서도 대략적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3년간 불교학교는 불교 초심자들과 함께 초기불교, 아비달마 불교, 유식학, 중관학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살펴본 셈이다. 이번에 『람림』을 커리큘럼으로 결정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함께 공부해온 벗들이 초기불교, 유식학, 공사상을 어느 정도는 익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람림』을 같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차근차근 공부와 실천을 쌓아가는 티벳불교의 공부법을 통해 내심 지적인 이해만을 추구하지 않는 실천적 공부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윤회와 연기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기와 윤회라는 문제 요즘 불교학교에서는 『람림』을 읽고 있다. 『람림』은 티벳에서는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쫑까파 대사(1357~1419)가 지은 책이다. 『람림』이란 티벳어 ‘장춥람림’의 줄임말이다. 장춥은 보리(bodhi 菩提), 깨달음을, 람은 길을, 림은 단계를 뜻한다. 그러니 『람림』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단계를 설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교학교에서는 『니까야』를 읽으며 초기불교의 개념을 익히고, 『유식삼십송』을 읽으며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을 접했고,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통해 공성이 무엇인지 거칠게 나마 더듬어보았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전에서 하는 말에 대해 감을 잡으려면 반드시 공사상이 대결하고 있는 아비달마 불교에 대해서도 대략적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3년간 불교학교는 불교 초심자들과 함께 초기불교, 아비달마 불교, 유식학, 중관학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살펴본 셈이다. 이번에 『람림』을 커리큘럼으로 결정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함께 공부해온 벗들이 초기불교, 유식학, 공사상을 어느 정도는 익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람림』을 같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차근차근 공부와 실천을 쌓아가는 티벳불교의 공부법을 통해 내심 지적인 이해만을 추구하지 않는 실천적 공부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화살로부터의 자유 「화살경」으로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 공중무색 무수상행식(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가운데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형색이 없고, 느끼는 마음이 없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조작하는 마음이 없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 『반야심경』 中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몸의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고, 온종일 희로애락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내 몸이 여기에 있는데, 왜 몸이 없다고 말할까? 왜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없다고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의 「화살경」에서 찾았다. 「화살경」의 두 번째 화살은 나처럼 불경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비유이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을 말하며,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그 느낌을 ‘나의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로 만드는 우리의 마음 작용에 있다. 결국 ‘느낌이 없다(無受)’는 통찰은, 그 느낌의 주인이 ‘나’가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지혜이다. 이 글은 『반야심경』의 눈으로 「화살경」을 다시 읽고, 느낌이라는 현상에 덧씌워진 ‘나’라는 착각이 벗겨질 때 어떻게 괴로움이 소멸해 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첫...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화살로부터의 자유 「화살경」으로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 공중무색 무수상행식(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가운데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형색이 없고, 느끼는 마음이 없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조작하는 마음이 없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 『반야심경』 中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몸의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고, 온종일 희로애락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내 몸이 여기에 있는데, 왜 몸이 없다고 말할까? 왜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없다고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의 「화살경」에서 찾았다. 「화살경」의 두 번째 화살은 나처럼 불경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비유이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을 말하며,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그 느낌을 ‘나의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로 만드는 우리의 마음 작용에 있다. 결국 ‘느낌이 없다(無受)’는 통찰은, 그 느낌의 주인이 ‘나’가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지혜이다. 이 글은 『반야심경』의 눈으로 「화살경」을 다시 읽고, 느낌이라는 현상에 덧씌워진 ‘나’라는 착각이 벗겨질 때 어떻게 괴로움이 소멸해 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첫...
Socio-sociolgy
전쟁 무기로서의 디자인 마쓰다 유키마사 – 『전쟁과 디자인』 『전쟁과 디자인』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편집자 겸 저술가이다. 디자인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저술로 주목 받아왔으며, 그의 글은 단순한 디자인론을 넘어서 시각적 기호가 어떻게 사회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마쓰다 유키마사의 『전쟁과 디자인』은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헤치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기호와 상징, 색채의 이면을 되짚어본다. 저자는 디자인은 죄가 없지만 쓰임에 따라 죄를 지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동하는 힘을 가지고 그릇되게 사용된, 죄를 지은 디자인을 ‘그릇된 디자인’이라고 칭한다. 『전쟁과 디자인』에서 그는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 ‘그릇된 디자인’에 대해 철저히 파헤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릇된 디자인’의 이면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가해자에게는 평생의 죄를 짊어지게 만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상태가 아닐지라도 전쟁에서 사용된 ‘그릇된 디자인’이 여전히 일상에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저자는 ‘그릇된 디자인’을 파헤쳐 가는 이 여정을 ‘다크(그릇된) 디자인 투어리즘’이라 부르며 독자들을 초대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 가지로 설명하는 이유가 적혀있지는 않지만 예상해 보자면 그러한 것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2차세계대전과 19~20세기의 전쟁 상황 속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선전 활동을 강화했다. 일정한 의도로 여론을 조작하여 민중의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전쟁 무기로서의 디자인 마쓰다 유키마사 – 『전쟁과 디자인』 『전쟁과 디자인』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편집자 겸 저술가이다. 디자인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저술로 주목 받아왔으며, 그의 글은 단순한 디자인론을 넘어서 시각적 기호가 어떻게 사회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마쓰다 유키마사의 『전쟁과 디자인』은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헤치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기호와 상징, 색채의 이면을 되짚어본다. 저자는 디자인은 죄가 없지만 쓰임에 따라 죄를 지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동하는 힘을 가지고 그릇되게 사용된, 죄를 지은 디자인을 ‘그릇된 디자인’이라고 칭한다. 『전쟁과 디자인』에서 그는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 ‘그릇된 디자인’에 대해 철저히 파헤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릇된 디자인’의 이면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가해자에게는 평생의 죄를 짊어지게 만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상태가 아닐지라도 전쟁에서 사용된 ‘그릇된 디자인’이 여전히 일상에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저자는 ‘그릇된 디자인’을 파헤쳐 가는 이 여정을 ‘다크(그릇된) 디자인 투어리즘’이라 부르며 독자들을 초대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 가지로 설명하는 이유가 적혀있지는 않지만 예상해 보자면 그러한 것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2차세계대전과 19~20세기의 전쟁 상황 속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선전 활동을 강화했다. 일정한 의도로 여론을 조작하여 민중의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