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윤회와 연기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기와 윤회라는 문제   요즘 불교학교에서는 『람림』을 읽고 있다. 『람림』은 티벳에서는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쫑까파 대사(1357~1419)가 지은 책이다. 『람림』이란 티벳어 ‘장춥람림’의 줄임말이다. 장춥은 보리(bodhi 菩提), 깨달음을, 람은 길을, 림은 단계를 뜻한다. 그러니 『람림』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단계를 설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교학교에서는 『니까야』를 읽으며 초기불교의 개념을 익히고, 『유식삼십송』을 읽으며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을 접했고,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통해 공성이 무엇인지 거칠게 나마 더듬어보았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전에서 하는 말에 대해 감을 잡으려면 반드시 공사상이 대결하고 있는 아비달마 불교에 대해서도 대략적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3년간 불교학교는 불교 초심자들과 함께 초기불교, 아비달마 불교, 유식학, 중관학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살펴본 셈이다.   이번에 『람림』을 커리큘럼으로 결정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함께 공부해온 벗들이 초기불교, 유식학, 공사상을 어느 정도는 익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람림』을 같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차근차근 공부와 실천을 쌓아가는 티벳불교의 공부법을 통해 내심 지적인 이해만을 추구하지 않는 실천적 공부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윤회와 연기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기와 윤회라는 문제   요즘 불교학교에서는 『람림』을 읽고 있다. 『람림』은 티벳에서는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쫑까파 대사(1357~1419)가 지은 책이다. 『람림』이란 티벳어 ‘장춥람림’의 줄임말이다. 장춥은 보리(bodhi 菩提), 깨달음을, 람은 길을, 림은 단계를 뜻한다. 그러니 『람림』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단계를 설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불교학교에서는 『니까야』를 읽으며 초기불교의 개념을 익히고, 『유식삼십송』을 읽으며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을 접했고,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통해 공성이 무엇인지 거칠게 나마 더듬어보았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전에서 하는 말에 대해 감을 잡으려면 반드시 공사상이 대결하고 있는 아비달마 불교에 대해서도 대략적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3년간 불교학교는 불교 초심자들과 함께 초기불교, 아비달마 불교, 유식학, 중관학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살펴본 셈이다.   이번에 『람림』을 커리큘럼으로 결정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함께 공부해온 벗들이 초기불교, 유식학, 공사상을 어느 정도는 익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람림』을 같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차근차근 공부와 실천을 쌓아가는 티벳불교의 공부법을 통해 내심 지적인 이해만을 추구하지 않는 실천적 공부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요요
2025.10.05 | 조회 271
방과 후 고전 중
  [동은의 음양탐구③] 기에서 만물로     동은 동양고전은 세계의 경이와 아득함을 담고 있는 지혜다. 음양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는지 정리해보고 싶다.         글쓰기 주제를 ‘음양陰陽’으로 정하면서 음과 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주역> 속에서 그 단서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시대마다, 학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다보니 오히려 음양의 ‘운동성’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시대가 흐르며 학자들은 ‘음양’ 그 자체를 연구하기보다 음양을 ‘기氣’ 그 자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는 고유의 본성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고전학교에서 읽고 있는 <주역철학사>가 송대에 접어들면서 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한 장재를 알게 되었다. 장재는 ‘기일원론자’라고 알려질 정도로 세계를 구성하는게 ‘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세계가 기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기로 구성된 세계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존재한다?    <주역철학사>에서는 장재를 ‘유물론적인 역학자’라고 소개한다. 그건 그가 왜 ’기일원론자‘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장재 이전까지는 무로부터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 세상에 음과 양이 생기고, 음과 양이 생긴 이후에 더 많은 작용이 일어나 오행이 일어나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태극도설>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한다. 없는 것으로부터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물질적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적인 어떤 이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재는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이 따로...
  [동은의 음양탐구③] 기에서 만물로     동은 동양고전은 세계의 경이와 아득함을 담고 있는 지혜다. 음양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는지 정리해보고 싶다.         글쓰기 주제를 ‘음양陰陽’으로 정하면서 음과 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주역> 속에서 그 단서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시대마다, 학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다보니 오히려 음양의 ‘운동성’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시대가 흐르며 학자들은 ‘음양’ 그 자체를 연구하기보다 음양을 ‘기氣’ 그 자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는 고유의 본성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고전학교에서 읽고 있는 <주역철학사>가 송대에 접어들면서 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한 장재를 알게 되었다. 장재는 ‘기일원론자’라고 알려질 정도로 세계를 구성하는게 ‘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세계가 기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기로 구성된 세계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존재한다?    <주역철학사>에서는 장재를 ‘유물론적인 역학자’라고 소개한다. 그건 그가 왜 ’기일원론자‘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장재 이전까지는 무로부터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 세상에 음과 양이 생기고, 음과 양이 생긴 이후에 더 많은 작용이 일어나 오행이 일어나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태극도설>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한다. 없는 것으로부터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물질적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적인 어떤 이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재는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이 따로...
동은
2025.09.28 | 조회 283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화살로부터의 자유 「화살경」으로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   공중무색 무수상행식(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가운데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형색이 없고, 느끼는 마음이 없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조작하는 마음이 없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 『반야심경』 中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몸의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고, 온종일 희로애락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내 몸이 여기에 있는데, 왜 몸이 없다고 말할까? 왜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없다고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의 「화살경」에서 찾았다. 「화살경」의 두 번째 화살은 나처럼 불경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비유이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을 말하며,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그 느낌을 ‘나의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로 만드는 우리의 마음 작용에 있다. 결국 ‘느낌이 없다(無受)’는 통찰은, 그 느낌의 주인이 ‘나’가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지혜이다. 이 글은 『반야심경』의 눈으로 「화살경」을 다시 읽고, 느낌이라는 현상에 덧씌워진 ‘나’라는 착각이 벗겨질 때 어떻게 괴로움이 소멸해 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첫...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화살로부터의 자유 「화살경」으로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   공중무색 무수상행식(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가운데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형색이 없고, 느끼는 마음이 없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조작하는 마음이 없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 『반야심경』 中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몸의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고, 온종일 희로애락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내 몸이 여기에 있는데, 왜 몸이 없다고 말할까? 왜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없다고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의 「화살경」에서 찾았다. 「화살경」의 두 번째 화살은 나처럼 불경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비유이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을 말하며,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그 느낌을 ‘나의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로 만드는 우리의 마음 작용에 있다. 결국 ‘느낌이 없다(無受)’는 통찰은, 그 느낌의 주인이 ‘나’가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지혜이다. 이 글은 『반야심경』의 눈으로 「화살경」을 다시 읽고, 느낌이라는 현상에 덧씌워진 ‘나’라는 착각이 벗겨질 때 어떻게 괴로움이 소멸해 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첫...
두루미
2025.09.16 | 조회 436
Socio-sociolgy
    전쟁 무기로서의 디자인 마쓰다 유키마사 – 『전쟁과 디자인』       『전쟁과 디자인』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편집자 겸 저술가이다. 디자인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저술로 주목 받아왔으며, 그의 글은 단순한 디자인론을 넘어서 시각적 기호가 어떻게 사회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마쓰다 유키마사의 『전쟁과 디자인』은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헤치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기호와 상징, 색채의 이면을 되짚어본다.  저자는 디자인은 죄가 없지만 쓰임에 따라 죄를 지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동하는 힘을 가지고 그릇되게 사용된, 죄를 지은 디자인을 ‘그릇된 디자인’이라고 칭한다. 『전쟁과 디자인』에서 그는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 ‘그릇된 디자인’에 대해 철저히 파헤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릇된 디자인’의 이면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가해자에게는 평생의 죄를 짊어지게 만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상태가 아닐지라도 전쟁에서 사용된 ‘그릇된 디자인’이 여전히 일상에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저자는 ‘그릇된 디자인’을 파헤쳐 가는 이 여정을 ‘다크(그릇된) 디자인 투어리즘’이라 부르며 독자들을 초대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 가지로 설명하는 이유가 적혀있지는 않지만 예상해 보자면 그러한 것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2차세계대전과 19~20세기의 전쟁 상황 속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선전 활동을 강화했다. 일정한 의도로 여론을 조작하여 민중의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전쟁 무기로서의 디자인 마쓰다 유키마사 – 『전쟁과 디자인』       『전쟁과 디자인』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편집자 겸 저술가이다. 디자인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저술로 주목 받아왔으며, 그의 글은 단순한 디자인론을 넘어서 시각적 기호가 어떻게 사회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마쓰다 유키마사의 『전쟁과 디자인』은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헤치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기호와 상징, 색채의 이면을 되짚어본다.  저자는 디자인은 죄가 없지만 쓰임에 따라 죄를 지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동하는 힘을 가지고 그릇되게 사용된, 죄를 지은 디자인을 ‘그릇된 디자인’이라고 칭한다. 『전쟁과 디자인』에서 그는 전쟁과 선전, 이데올로기 속 ‘그릇된 디자인’에 대해 철저히 파헤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릇된 디자인’의 이면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가해자에게는 평생의 죄를 짊어지게 만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상태가 아닐지라도 전쟁에서 사용된 ‘그릇된 디자인’이 여전히 일상에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저자는 ‘그릇된 디자인’을 파헤쳐 가는 이 여정을 ‘다크(그릇된) 디자인 투어리즘’이라 부르며 독자들을 초대한다.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말’ 이 세 가지로 설명하는 이유가 적혀있지는 않지만 예상해 보자면 그러한 것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2차세계대전과 19~20세기의 전쟁 상황 속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선전 활동을 강화했다. 일정한 의도로 여론을 조작하여 민중의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색상’, ‘상징’, ‘표어로서의...
새은
2025.09.08 | 조회 369
기학잡담
리(理) 말고 기(氣)로 생각하기   올해 내가 공부하고 있는 개념탐구학교에서는 새로운 존재론을 탐색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책을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서양 쪽은 신유물론 관련 책을, 동양 쪽은 기학(氣學)에 대한 책을 읽는다. 지난 번 『주역』 「계사전」에 이어 이번 텍스트는 장재의 『정몽』이다. 장재는 북송시대 유학자이다. 정호, 정이, 주돈이, 소옹 등과 함께 북송오자로 거명될 정도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정호는 그를 맹자에 비견했고,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도 장재의 사상에 많은 빚을 졌다.   북송시대는 사상적으로 활발한 시대였다. 이 시기 유학자들이 급선무로 생각했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불교와 도교에 빼앗긴 사상적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었다. 정치·제도적 차원에서는 유가적인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사상적·종교적 차원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특히 불교는 심오한 사상과 수양법으로 지식인들 사이에도 깊이 침투되었다. 유학자들은 모든 것이 허(虛)라던가 공(空)이라고 하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이 유교적 사회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병폐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유학자들은 저마다의 학설을 피력하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 시기 유학자들이 『주역』 연구에 몰두했던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유교적 사회질서가 우주자연의 질서에 상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유교도 불교, 도교에 맞먹는 우주론과 존재론이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장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주역』 해설서인 『횡거역설』을 지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만년의 저서 『정몽』에 담았다. 장재는 젊은 시절 여러 해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공부했으나 결국 유학으로 돌아왔다. 이 때문이었을까? 장재는 자신의 학설에 도교적인 것을...
리(理) 말고 기(氣)로 생각하기   올해 내가 공부하고 있는 개념탐구학교에서는 새로운 존재론을 탐색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책을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서양 쪽은 신유물론 관련 책을, 동양 쪽은 기학(氣學)에 대한 책을 읽는다. 지난 번 『주역』 「계사전」에 이어 이번 텍스트는 장재의 『정몽』이다. 장재는 북송시대 유학자이다. 정호, 정이, 주돈이, 소옹 등과 함께 북송오자로 거명될 정도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정호는 그를 맹자에 비견했고,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도 장재의 사상에 많은 빚을 졌다.   북송시대는 사상적으로 활발한 시대였다. 이 시기 유학자들이 급선무로 생각했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불교와 도교에 빼앗긴 사상적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었다. 정치·제도적 차원에서는 유가적인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사상적·종교적 차원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특히 불교는 심오한 사상과 수양법으로 지식인들 사이에도 깊이 침투되었다. 유학자들은 모든 것이 허(虛)라던가 공(空)이라고 하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이 유교적 사회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병폐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유학자들은 저마다의 학설을 피력하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 시기 유학자들이 『주역』 연구에 몰두했던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유교적 사회질서가 우주자연의 질서에 상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유교도 불교, 도교에 맞먹는 우주론과 존재론이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장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주역』 해설서인 『횡거역설』을 지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만년의 저서 『정몽』에 담았다. 장재는 젊은 시절 여러 해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공부했으나 결국 유학으로 돌아왔다. 이 때문이었을까? 장재는 자신의 학설에 도교적인 것을...
토용
2025.09.01 | 조회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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