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이 글은 2024년 2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렁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요즘 나의 하루는 명상으로 시작한다. 길지 않지만 몸의 감각도 느끼고 마음의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 짧은 순간이나마 고요하고 평안함에서 오는 기쁨과 충만함을 느껴보기도 한다. 명상하며 가장 자주 생각하는 것은 평등한 마음이다. 나만의 평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나아가 모든 존재들의 평안함을 기원한다. 그러면서도 그 마음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막연하기만 하다.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들 사이에서도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늘 나와 다른 구별하는 마음이 작동하고 때로는 차별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인간을 넘어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는 마음? 멀고멀게만 느껴진다. 『의식의 강』은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기획한 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에는 진화론, 식물학, 화학, 의학, 신경과학 등의 과학적 이슈와 자신이 체험한 에피소드들로 열편의 에세이가 펼쳐져 있는데, 한편 한편이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목련나무는 ‘벌과 나비가 없고, 꽃의 향기와 색깔이 없었던’ 저...
이 글은 2024년 2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렁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요즘 나의 하루는 명상으로 시작한다. 길지 않지만 몸의 감각도 느끼고 마음의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 짧은 순간이나마 고요하고 평안함에서 오는 기쁨과 충만함을 느껴보기도 한다. 명상하며 가장 자주 생각하는 것은 평등한 마음이다. 나만의 평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나아가 모든 존재들의 평안함을 기원한다. 그러면서도 그 마음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막연하기만 하다.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들 사이에서도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늘 나와 다른 구별하는 마음이 작동하고 때로는 차별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인간을 넘어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는 마음? 멀고멀게만 느껴진다. 『의식의 강』은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기획한 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에는 진화론, 식물학, 화학, 의학, 신경과학 등의 과학적 이슈와 자신이 체험한 에피소드들로 열편의 에세이가 펼쳐져 있는데, 한편 한편이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목련나무는 ‘벌과 나비가 없고, 꽃의 향기와 색깔이 없었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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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2014)』, 샹탈 자케, 류희철 옮김, 그린비(2024) 어쩌면 특이한 샹탈 자케라는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면, ‘1956년생의 파리 1대학 판테온-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피노자를 기반으로 몸의 기술적, 예술적 역량을 구체화하는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다’는 소개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소개되는 몇 권의 저작을 보면 근대철학 쪽을 전공한 전형적인 프랑스 여성 지식인일 거라는 정보가 자동 연상된다. 그러나 조금 더 열심히 검색을 해보면 예상치 못한 이력이 눈에 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정도가 아닌, 기초적인 의식주가 아예 부족했던 성장 환경. 집에서 온수로 목욕을 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이었고, 가족 모두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12살에 이미 170센티가 되어버린 키를 30kg의 몸무게가 지탱하느라 등이 굽고 다리를 절었다. 경제적 빈곤만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빈곤했기에 집안에 책이라곤 미사 책과 사전 한 권이 전부였다’ 기성의 이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이력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는 ‘개천 용’이 틀림없다.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했다고 칭송받는 입지전적인 어떤 인물 말이다. 어느 날 친척이 두고 간 교과서에서 발견한 스피노자 윤리학 4부 정리 67(“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 이 말 한마디에 의문을 품고, 왜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는지를 해결하고자 하는 앎의 욕망이 출신 계급과는 다른 세계, 즉 소르본 철학 교수로의 삶으로 자케를 이끌었다니 말이다.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2014)』, 샹탈 자케, 류희철 옮김, 그린비(2024) 어쩌면 특이한 샹탈 자케라는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면, ‘1956년생의 파리 1대학 판테온-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피노자를 기반으로 몸의 기술적, 예술적 역량을 구체화하는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다’는 소개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소개되는 몇 권의 저작을 보면 근대철학 쪽을 전공한 전형적인 프랑스 여성 지식인일 거라는 정보가 자동 연상된다. 그러나 조금 더 열심히 검색을 해보면 예상치 못한 이력이 눈에 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정도가 아닌, 기초적인 의식주가 아예 부족했던 성장 환경. 집에서 온수로 목욕을 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이었고, 가족 모두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12살에 이미 170센티가 되어버린 키를 30kg의 몸무게가 지탱하느라 등이 굽고 다리를 절었다. 경제적 빈곤만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빈곤했기에 집안에 책이라곤 미사 책과 사전 한 권이 전부였다’ 기성의 이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이력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는 ‘개천 용’이 틀림없다.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했다고 칭송받는 입지전적인 어떤 인물 말이다. 어느 날 친척이 두고 간 교과서에서 발견한 스피노자 윤리학 4부 정리 67(“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 이 말 한마디에 의문을 품고, 왜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는지를 해결하고자 하는 앎의 욕망이 출신 계급과는 다른 세계, 즉 소르본 철학 교수로의 삶으로 자케를 이끌었다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