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최근에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꽂혀서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책에는 알래스카의 사계에서 깨달은 것들이나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과 조우하는 이야기와 사진들이 가득했다. 바다로 나가 보트 가까이에서 공중으로 로켓처럼 솟아오르는 혹등고래의 비상에 감탄하고, 알래스카에 서식하는 카리브 순록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에 압도되어 그 발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가 보았다는 장면을 읽다가 「소요유」편에서 장자가 북쪽과 남쪽까지 횡단하면서 그려냈던 자연의 세계가 겹쳤다. 장자가 상상했던 자연과 알래스카에서 호시노 미치오가 마주했던 자연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가 보자.     1.장자의 사고실험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몽땅에 살면서 칠원(옻나무밭)에서 말단의 관리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칠원의 숲을 산책하는 장자를 상상해 보면, 그 숲에 깃들인 온갖 생명과 교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에 나오는 나무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런 상상을 더 부추긴다. 「소요유」편에도 자연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매미와 새끼 비둘기, 버섯, 메추라기, 뱁새, 두더지 등이 나오고, 겨자씨와 박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실제로는 없을 것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북쪽 메마른 땅에 깊은 바다가 있는데 이를 천지(天池)라 합니다. 그곳에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넓이가 수천 리이고 길이는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또 그곳에 새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붕이라 합니다.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최근에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꽂혀서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책에는 알래스카의 사계에서 깨달은 것들이나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과 조우하는 이야기와 사진들이 가득했다. 바다로 나가 보트 가까이에서 공중으로 로켓처럼 솟아오르는 혹등고래의 비상에 감탄하고, 알래스카에 서식하는 카리브 순록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에 압도되어 그 발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가 보았다는 장면을 읽다가 「소요유」편에서 장자가 북쪽과 남쪽까지 횡단하면서 그려냈던 자연의 세계가 겹쳤다. 장자가 상상했던 자연과 알래스카에서 호시노 미치오가 마주했던 자연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가 보자.     1.장자의 사고실험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몽땅에 살면서 칠원(옻나무밭)에서 말단의 관리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칠원의 숲을 산책하는 장자를 상상해 보면, 그 숲에 깃들인 온갖 생명과 교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에 나오는 나무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런 상상을 더 부추긴다. 「소요유」편에도 자연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매미와 새끼 비둘기, 버섯, 메추라기, 뱁새, 두더지 등이 나오고, 겨자씨와 박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실제로는 없을 것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북쪽 메마른 땅에 깊은 바다가 있는데 이를 천지(天池)라 합니다. 그곳에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넓이가 수천 리이고 길이는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또 그곳에 새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붕이라 합니다.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기린
2024.12.16 | 조회 590
뇌과학에서 본 자유의지       인간의 인식능력은 뇌의 활동이며 외부 자극에 대한 신경활동의 패턴이 신경구조에서 지도화되고, 그에 따라서 정보를 생성/처리한다(인지)는 것이 뇌과학의 기본 골격이다. 인간이 그런 지도화된 신경구조에 따라서 사고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인간의 삶은 그 신경구조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러한 신경지도는 주변 환경과 대응하면서 만들어 지고 변화되기는 하지만, 신경은 기본적으로 이미 프로그램된 DNA의 분화이다. 이러한 시각을 확장해서 일부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이게 뭐지? 내가 ‘앎’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앎’을 통해서 내 삶을 성찰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고, 신경 혹은 ‘신경물질의 결정’이라고? (*) 저자는 ‘뻥 튀기 뇌과학자’라고 평가한다.       한나 크리츨로우가 쓴 『운명의 과학』의 부제가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혈색소증(*)의 진단을 받은 뒤 자신도 검사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진단 결과가 양성일 경우에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에 대해 두려운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며, 내 몸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이 되는 지식이라고 믿는 자신(그렇게 강의하였으니까)을 상기시켰음에도 검사를 미룬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위험과 함께 아들의 잠재적 위험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건소를 향한다. (*)혈색소증은 철분이 몸속에 천천히 축적되어 심장질환, 당뇨병, 간경변 등을 일으키는 유전병.   저자는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 일이 자신의 일이 되는 순간,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연구 주제를 만든다. 즉, ‘우리는...
뇌과학에서 본 자유의지       인간의 인식능력은 뇌의 활동이며 외부 자극에 대한 신경활동의 패턴이 신경구조에서 지도화되고, 그에 따라서 정보를 생성/처리한다(인지)는 것이 뇌과학의 기본 골격이다. 인간이 그런 지도화된 신경구조에 따라서 사고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인간의 삶은 그 신경구조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러한 신경지도는 주변 환경과 대응하면서 만들어 지고 변화되기는 하지만, 신경은 기본적으로 이미 프로그램된 DNA의 분화이다. 이러한 시각을 확장해서 일부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이게 뭐지? 내가 ‘앎’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앎’을 통해서 내 삶을 성찰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고, 신경 혹은 ‘신경물질의 결정’이라고? (*) 저자는 ‘뻥 튀기 뇌과학자’라고 평가한다.       한나 크리츨로우가 쓴 『운명의 과학』의 부제가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혈색소증(*)의 진단을 받은 뒤 자신도 검사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진단 결과가 양성일 경우에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에 대해 두려운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며, 내 몸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이 되는 지식이라고 믿는 자신(그렇게 강의하였으니까)을 상기시켰음에도 검사를 미룬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위험과 함께 아들의 잠재적 위험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건소를 향한다. (*)혈색소증은 철분이 몸속에 천천히 축적되어 심장질환, 당뇨병, 간경변 등을 일으키는 유전병.   저자는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 일이 자신의 일이 되는 순간,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연구 주제를 만든다. 즉, ‘우리는...
가마솥
2024.12.16 | 조회 40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이 글은 2024년 3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덕치는 어떻게 한나라의 통치이념이 되었는가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     중국철학사 속에서 유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였던 때는 고작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대의 경학과 송대 이후의 성리학이 그것이다. 이 책은 사상사적 맥락에서 공자로부터 시작된 선진 유학사를 결과적으로 “제국적 질서와의 성공적인 만남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추적기(追跡記)이다. 여기서는 덕치(德治)를 중심으로 유학이 어떻게 한나라의 통치이념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왜 법치가 아니라 덕치였을까   한초(漢初) 당시 유행하던 황로학의 광풍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학은 제국의 통치 이념이 될 수 있었을까? 『한서』에는 23살의 청년 황제 무제가 대표적인 유학자 동중서와 세 차례에 걸쳐 대책(對策)을 주고받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학은 한제국의 공식적인 통치 이념으로 확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무제의 질문에 대한 동중서의 대책이 공자로부터 시작된 선진 유학이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는 방식의 연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육가(陸賈), 가의(賈誼)와 같은 한초 유학자들의 선행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반영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
이 글은 2024년 3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덕치는 어떻게 한나라의 통치이념이 되었는가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     중국철학사 속에서 유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였던 때는 고작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대의 경학과 송대 이후의 성리학이 그것이다. 이 책은 사상사적 맥락에서 공자로부터 시작된 선진 유학사를 결과적으로 “제국적 질서와의 성공적인 만남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추적기(追跡記)이다. 여기서는 덕치(德治)를 중심으로 유학이 어떻게 한나라의 통치이념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왜 법치가 아니라 덕치였을까   한초(漢初) 당시 유행하던 황로학의 광풍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학은 제국의 통치 이념이 될 수 있었을까? 『한서』에는 23살의 청년 황제 무제가 대표적인 유학자 동중서와 세 차례에 걸쳐 대책(對策)을 주고받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학은 한제국의 공식적인 통치 이념으로 확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무제의 질문에 대한 동중서의 대책이 공자로부터 시작된 선진 유학이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는 방식의 연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육가(陸賈), 가의(賈誼)와 같은 한초 유학자들의 선행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반영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
두루미
2024.12.10 | 조회 446
이 글은 2024년 3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위진 시기의 제자백가 『위진현학사魏晉玄學史, A History of Neo-Taoism in Wei-Jin Dynasties』, (쉬캉셩, 리중화, 전전궈, 나웨이, 세창출판사)   현학이란 무엇인가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은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도덕경』 1장)     ‘현학玄學’의 ‘玄’은 위 『도덕경』에서 가져왔다. 그 속을 그 깊이를 알지 못하기에 ‘도’를 지칭하는 단어로 ‘현’자를 쓴다. ‘현묘하고 현묘한 도’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당시 『도덕경道德經』, 『장자莊子』, 『주역周易』(이 세 책을 ‘三玄’으로 지칭)을 다룬 학문을 ‘현학’이라고 했다.   도를 다루기에 현학은 어쩔 수 없이 『도덕경』에 대한 주석 달기, 혹은 해석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도에...
이 글은 2024년 3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위진 시기의 제자백가 『위진현학사魏晉玄學史, A History of Neo-Taoism in Wei-Jin Dynasties』, (쉬캉셩, 리중화, 전전궈, 나웨이, 세창출판사)   현학이란 무엇인가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이름은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는 모든 만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도덕경』 1장)     ‘현학玄學’의 ‘玄’은 위 『도덕경』에서 가져왔다. 그 속을 그 깊이를 알지 못하기에 ‘도’를 지칭하는 단어로 ‘현’자를 쓴다. ‘현묘하고 현묘한 도’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당시 『도덕경道德經』, 『장자莊子』, 『주역周易』(이 세 책을 ‘三玄’으로 지칭)을 다룬 학문을 ‘현학’이라고 했다.   도를 다루기에 현학은 어쩔 수 없이 『도덕경』에 대한 주석 달기, 혹은 해석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도에...
자작나무
2024.12.07 | 조회 347
토용의 서경리뷰
선양과 방벌 - 왕조교체의 두 가지 형식   보통 하夏・상商・주周를 중국의 고대왕조라 한다. 하는 문자기록이 없어 실제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기원전 1900~1600년경 유적으로 추정되는 얼리터우 문화를 하의 유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문자기록으로 증명하지 못해 중국 최초 왕조라는 전승으로만 남아 있는 하와는 달리 상은 갑골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탕湯은 기원전 1554년 하를 정벌하고 박亳땅에 상을 건국한다. 이후 여러 왕들이 자연환경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다섯 번이나 천도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천도한 곳이 은殷이다. 그래서 상 또는 은이라고 불린다.   주의 시조는 후직后稷으로 이름이 기棄다. 순임금의 신하로 농업을 관장했다. 주는 상의 서쪽 지역에 터를 잡고 살면서 점차 세력이 커졌다. 문왕 때 위수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서백西伯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주는 자신의 조상은 물론이고 상의 선조까지 숭배할 만큼 제후국으로서 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1045년 문왕의 아들 무왕은 서부지역의 세력을 결집하여 상을 정벌한다. 이 전쟁(목야전투)을 기록한 명문에 의하면 아침에 시작한 전투는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으며 사흘째 아침에 주의 승리로 끝났다. 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중국 서부의 산맥과 계곡에 살던 부족 및 공동체의 연합세력과 그에 대항한 동부 평원의 상 및 상에 우호적인 집단 간에 이루어진 중대한 결전’이었다고 말한다.   유가에서는 바람직한 정권교체의 두 가지 경우로 선양禪讓과 방벌放伐을 든다. 선양은 혈연세습이 아닌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요에서 순, 순에서 우로 단 두 번 있었다. 유가의 왕도정치에서...
선양과 방벌 - 왕조교체의 두 가지 형식   보통 하夏・상商・주周를 중국의 고대왕조라 한다. 하는 문자기록이 없어 실제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기원전 1900~1600년경 유적으로 추정되는 얼리터우 문화를 하의 유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문자기록으로 증명하지 못해 중국 최초 왕조라는 전승으로만 남아 있는 하와는 달리 상은 갑골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탕湯은 기원전 1554년 하를 정벌하고 박亳땅에 상을 건국한다. 이후 여러 왕들이 자연환경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다섯 번이나 천도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천도한 곳이 은殷이다. 그래서 상 또는 은이라고 불린다.   주의 시조는 후직后稷으로 이름이 기棄다. 순임금의 신하로 농업을 관장했다. 주는 상의 서쪽 지역에 터를 잡고 살면서 점차 세력이 커졌다. 문왕 때 위수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서백西伯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주는 자신의 조상은 물론이고 상의 선조까지 숭배할 만큼 제후국으로서 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1045년 문왕의 아들 무왕은 서부지역의 세력을 결집하여 상을 정벌한다. 이 전쟁(목야전투)을 기록한 명문에 의하면 아침에 시작한 전투는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으며 사흘째 아침에 주의 승리로 끝났다. 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중국 서부의 산맥과 계곡에 살던 부족 및 공동체의 연합세력과 그에 대항한 동부 평원의 상 및 상에 우호적인 집단 간에 이루어진 중대한 결전’이었다고 말한다.   유가에서는 바람직한 정권교체의 두 가지 경우로 선양禪讓과 방벌放伐을 든다. 선양은 혈연세습이 아닌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요에서 순, 순에서 우로 단 두 번 있었다. 유가의 왕도정치에서...
토용
2024.12.04 | 조회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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