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보다(觀), 맛보다(味), 깨닫다(悟)를 통해서 살펴본 중국미학사 『중국미학사』(장파 지음, 백승도 번역, 푸른숲)     중국에 미학사가 부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미에 관한 학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중국에서는 ‘미에 대한 탐구는 있었지만 학문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오늘날 중국의 학문이 전통에서 현대로 나아가는 과정과 목표는 바로 세계적인 학문 체계를 본보기로 하여 중국 문화를 재건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학문 체계 속에 미학이 있으면 중국에도 있어야 한다.(『중국미학사』, 「들어가는 말」, 5)   1990년대와 2000년도 초반 중국의 지식계는 개혁개방에 발맞춰 서구(세계)를 ‘향해(走向)’ ‘궤도를 같이 하려는(同軌)’ 움직임으로 분주했다.『중국미학사』는 인문학에서 서구의 학문 체계를 따라 잡으려고 했던 심리에서 나온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막무가내 비교작업을 행하지는 않는다. “미학 영역과 관련된 중국 특유의 이론적 접근 방식”을 나름으로 찾아낸다. 그 결과가 심미 방식으로 설명하는 觀, 味, 悟 세 글자다. 이 글자들은 몇 마디 단어로 品과 格을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중국적 심미 방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 세 글자를 통해 중국 심미 방식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고개지, <女史箴圖(부분)>, 동진, 비단에 채색, 대영박물관 *당대의 모본   살펴보다   고대 미학의 ... 그 주요 뼈대는 건축과 복식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심미 세계이고, 올려보기와 내려보기를 심미 주체의 관조 방식으로 하며, 보고, 듣기, 맛보기가 결합한 정합적인 성격의 미적 체험이다.(27)   위의 언급은 하-상-주 삼대三代 시기의 미학을...
  살펴보다(觀), 맛보다(味), 깨닫다(悟)를 통해서 살펴본 중국미학사 『중국미학사』(장파 지음, 백승도 번역, 푸른숲)     중국에 미학사가 부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미에 관한 학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중국에서는 ‘미에 대한 탐구는 있었지만 학문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오늘날 중국의 학문이 전통에서 현대로 나아가는 과정과 목표는 바로 세계적인 학문 체계를 본보기로 하여 중국 문화를 재건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학문 체계 속에 미학이 있으면 중국에도 있어야 한다.(『중국미학사』, 「들어가는 말」, 5)   1990년대와 2000년도 초반 중국의 지식계는 개혁개방에 발맞춰 서구(세계)를 ‘향해(走向)’ ‘궤도를 같이 하려는(同軌)’ 움직임으로 분주했다.『중국미학사』는 인문학에서 서구의 학문 체계를 따라 잡으려고 했던 심리에서 나온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막무가내 비교작업을 행하지는 않는다. “미학 영역과 관련된 중국 특유의 이론적 접근 방식”을 나름으로 찾아낸다. 그 결과가 심미 방식으로 설명하는 觀, 味, 悟 세 글자다. 이 글자들은 몇 마디 단어로 品과 格을 나누어 등급을 매기는 중국적 심미 방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 세 글자를 통해 중국 심미 방식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고개지, <女史箴圖(부분)>, 동진, 비단에 채색, 대영박물관 *당대의 모본   살펴보다   고대 미학의 ... 그 주요 뼈대는 건축과 복식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심미 세계이고, 올려보기와 내려보기를 심미 주체의 관조 방식으로 하며, 보고, 듣기, 맛보기가 결합한 정합적인 성격의 미적 체험이다.(27)   위의 언급은 하-상-주 삼대三代 시기의 미학을...
자작나무
2025.02.19 | 조회 27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신유학은 어떻게 중국의 역사를 다시 썼나 『역사 속의 성리학』, Peter K. Bol, 예문서원   중국이 오늘날의 모습이 된 원인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막론하고, 대부분 송나라 사람들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왕수조, 『송대문학통론』 인용, 166p)   청말 중화민국 초기 사상가이자 베이징대학 초기 교장인 엄복(옌푸)의 말이다. 이 말뜻은 그 만큼 송대 신유학이 오늘날 중국에 미친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 속의 성리학』의 저자 피터 볼은 당송변혁기에 등장한 신유학이 이후로 천 년 동안 중국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으로 “전근대” 혹은 “전통” 이라는 한 마디 말로 묘사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신유학자들의 철학적 정치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신유학은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 세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선택에 심오한 영향을 준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신유학이 사(士)계급, 지방사회, 제국 국가와 어떻게 교섭했는지에 대한 해석적이고 논쟁적인 탐구이다.(25p) 내가 보기에 저자는 이렇게 탐구된 신유학자들의 운동(신유학사)이야말로 당시의 중국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나는 여기서 신유학의 이론이나 신유학자의 인물됨이 아니라 신유학의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신유학과 도통론   신유학의 내부적 역사는 상실과 회복의 내러티브였다. 주희의 내러티브에 따르면, 도(道)는 맹자 이후에 상실되었다가 주돈이와 정호·정이 형제에 의해 11세기에 회복되었다. 왕수인의 내러티브에 따르면, 도에는 다시 두 번째의 상실과 회복이 있었다. 주희가 주지적 학에 초점을...
신유학은 어떻게 중국의 역사를 다시 썼나 『역사 속의 성리학』, Peter K. Bol, 예문서원   중국이 오늘날의 모습이 된 원인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막론하고, 대부분 송나라 사람들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왕수조, 『송대문학통론』 인용, 166p)   청말 중화민국 초기 사상가이자 베이징대학 초기 교장인 엄복(옌푸)의 말이다. 이 말뜻은 그 만큼 송대 신유학이 오늘날 중국에 미친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 속의 성리학』의 저자 피터 볼은 당송변혁기에 등장한 신유학이 이후로 천 년 동안 중국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으로 “전근대” 혹은 “전통” 이라는 한 마디 말로 묘사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신유학자들의 철학적 정치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신유학은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 세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선택에 심오한 영향을 준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신유학이 사(士)계급, 지방사회, 제국 국가와 어떻게 교섭했는지에 대한 해석적이고 논쟁적인 탐구이다.(25p) 내가 보기에 저자는 이렇게 탐구된 신유학자들의 운동(신유학사)이야말로 당시의 중국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나는 여기서 신유학의 이론이나 신유학자의 인물됨이 아니라 신유학의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신유학과 도통론   신유학의 내부적 역사는 상실과 회복의 내러티브였다. 주희의 내러티브에 따르면, 도(道)는 맹자 이후에 상실되었다가 주돈이와 정호·정이 형제에 의해 11세기에 회복되었다. 왕수인의 내러티브에 따르면, 도에는 다시 두 번째의 상실과 회복이 있었다. 주희가 주지적 학에 초점을...
두루미
2025.02.17 | 조회 473
  근대 철학 너머의 이야기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그린비(2005)     굴뚝 청소부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이 각각 굴뚝 청소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굴뚝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더러웠기 때문인지, 한 명의 얼굴은 까맣고 다른 한 명의 얼굴은 하얗습니다. 자, 그러면 누가 얼굴을 씻으러 갈까요? 다 아시겠지만, 더럽고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아니라 깨끗하고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얼굴을 씻으러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상대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철학과 굴뚝 청소부》 이진경 59p -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를 마주하고 자신의 얼굴도 검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을 씻으러 간다. 이처럼 인식하는 주체(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와 인식되는 대상(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이 서로 다르다면,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는 이러한 굴뚝 청소부의 딜레마를 통해 근대 철학의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딜레마를 재조명한다. 재조명의 방법으로 철학자의 사상이나 철학적 흐름 등을 파악할 개념적 도구로 ‘문제 설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문제설정이라는 도구를 통해 철학의 역사 안에 그어진 경계선을 찾아내고 경계선 마다에 새겨진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 것이다.     중세철학의 기반이자 근대철학의 출발점, 코기토(cogito) 중세철학은 ‘신의 작용’과 ‘신의 말씀’과 같은 신학에 대해서 제기되는 질문을 이성을 통해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기능했다. 신앙을 위해 이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철학은 신학의 허용...
  근대 철학 너머의 이야기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그린비(2005)     굴뚝 청소부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이 각각 굴뚝 청소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굴뚝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더러웠기 때문인지, 한 명의 얼굴은 까맣고 다른 한 명의 얼굴은 하얗습니다. 자, 그러면 누가 얼굴을 씻으러 갈까요? 다 아시겠지만, 더럽고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아니라 깨끗하고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얼굴을 씻으러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상대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철학과 굴뚝 청소부》 이진경 59p -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를 마주하고 자신의 얼굴도 검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을 씻으러 간다. 이처럼 인식하는 주체(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와 인식되는 대상(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이 서로 다르다면,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는 이러한 굴뚝 청소부의 딜레마를 통해 근대 철학의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딜레마를 재조명한다. 재조명의 방법으로 철학자의 사상이나 철학적 흐름 등을 파악할 개념적 도구로 ‘문제 설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문제설정이라는 도구를 통해 철학의 역사 안에 그어진 경계선을 찾아내고 경계선 마다에 새겨진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 것이다.     중세철학의 기반이자 근대철학의 출발점, 코기토(cogito) 중세철학은 ‘신의 작용’과 ‘신의 말씀’과 같은 신학에 대해서 제기되는 질문을 이성을 통해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기능했다. 신앙을 위해 이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철학은 신학의 허용...
효주
2025.02.14 | 조회 27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육후이,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 ― 존재론의 갱신과 공생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문제설정 – 세 가지 논점들 육후이의 『디지털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는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재귀성과 우연성』 같은 일련의 테크놀로지에 관한 저작들보다 앞서 출간되었다. 요컨대 이 작품 안에서 펼쳐진 주요한 테마들은 이후에 이어지는 육후이의 작업들에서 정교화 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테마들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첫째, 육후이의 주요 논점은 이른바 ‘자연’ 또는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주체 바깥의 것, 그 중에서도 ‘기술적 환경’을 정신의 결과물로 보거나 반대로 정신을 기술의 결과로 보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기술적인 대상과 자연은 ‘기술’을 통해 재귀하면서 ‘자연-환경’ 자체를 갱신해 간다. 육후이는 이렇게 갱신되고 구축되어가는 환경을 ‘코스모테크닉스’라는 특유의 용어로 개념화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기술’은 자연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기 스스로 자연이 되어간다. 이로부터 두 번째 논점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유물론과 관념론의 구분을 넘어선 관계론적 사유의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물질은 정신의 객체가 아니고, 정신은 대상에 대립하는 주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보’란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물질 세계 자체를 생산하고, 생산된 물질 세계 속에 스며있는 핵심 물질이다. 이 ‘정보’야 말로 재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우발성을 갖는다. 정보의 이와 같은 물질성은 대상과 주체의 이분법을 허무는 핵심 개념이 된다. 육후이는 시몽동의 ‘연합 환경’ 개념과 하이데거의 ‘손 안의 것(용재자)’ 개념으로부터 이와 같은...
육후이,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 ― 존재론의 갱신과 공생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문제설정 – 세 가지 논점들 육후이의 『디지털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는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재귀성과 우연성』 같은 일련의 테크놀로지에 관한 저작들보다 앞서 출간되었다. 요컨대 이 작품 안에서 펼쳐진 주요한 테마들은 이후에 이어지는 육후이의 작업들에서 정교화 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테마들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첫째, 육후이의 주요 논점은 이른바 ‘자연’ 또는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주체 바깥의 것, 그 중에서도 ‘기술적 환경’을 정신의 결과물로 보거나 반대로 정신을 기술의 결과로 보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기술적인 대상과 자연은 ‘기술’을 통해 재귀하면서 ‘자연-환경’ 자체를 갱신해 간다. 육후이는 이렇게 갱신되고 구축되어가는 환경을 ‘코스모테크닉스’라는 특유의 용어로 개념화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기술’은 자연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기 스스로 자연이 되어간다. 이로부터 두 번째 논점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유물론과 관념론의 구분을 넘어선 관계론적 사유의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물질은 정신의 객체가 아니고, 정신은 대상에 대립하는 주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보’란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물질 세계 자체를 생산하고, 생산된 물질 세계 속에 스며있는 핵심 물질이다. 이 ‘정보’야 말로 재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우발성을 갖는다. 정보의 이와 같은 물질성은 대상과 주체의 이분법을 허무는 핵심 개념이 된다. 육후이는 시몽동의 ‘연합 환경’ 개념과 하이데거의 ‘손 안의 것(용재자)’ 개념으로부터 이와 같은...
정군
2025.02.11 | 조회 37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응제왕」편은 내편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편명의 뜻을 직역하면 제왕에게 응답한다는 뜻이다. 제왕이라고 하지만 묻고 답하는 이들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은둔하는 무명인들이다. 이들에게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물으면, 천하는 한 사람의 솔선수범이나 밝은 도리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사사롭게 개입하기보다는 만물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인간이 나서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기획 자체를 부정한다. 한편, 무당을 만나고 나서 스승 호자의 도를 폄하하는 제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라는 다른 이야기의 결말과 달리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천하를 논하던 규모에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좁혀지는 사이에서 어떤 간극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간 열자, 그가 터득한 깨달음이 궁금해졌다.         1.무당에 빠진 열자    정나라에 신통하다고 이름난 계함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그의 신통력은 이러했다.   죽고 사는 것, 얻고 잃는 것, 재앙과 행운, 오래 살지 일찍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연월일까지 맞추는 것이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갖고 있던 것도 모두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낭송장자> 221쪽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길흉화복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명예와 부는 충분히 얻으면서도 재앙은 멀리하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계함의 신통력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까지 맞추었다. 죽는 날까지 알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계함을 만나기가 점점 두려워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그런데 열자는 그런 계함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응제왕」편은 내편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편명의 뜻을 직역하면 제왕에게 응답한다는 뜻이다. 제왕이라고 하지만 묻고 답하는 이들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은둔하는 무명인들이다. 이들에게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물으면, 천하는 한 사람의 솔선수범이나 밝은 도리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사사롭게 개입하기보다는 만물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인간이 나서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기획 자체를 부정한다. 한편, 무당을 만나고 나서 스승 호자의 도를 폄하하는 제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라는 다른 이야기의 결말과 달리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천하를 논하던 규모에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좁혀지는 사이에서 어떤 간극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간 열자, 그가 터득한 깨달음이 궁금해졌다.         1.무당에 빠진 열자    정나라에 신통하다고 이름난 계함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그의 신통력은 이러했다.   죽고 사는 것, 얻고 잃는 것, 재앙과 행운, 오래 살지 일찍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연월일까지 맞추는 것이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갖고 있던 것도 모두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낭송장자> 221쪽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길흉화복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명예와 부는 충분히 얻으면서도 재앙은 멀리하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계함의 신통력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까지 맞추었다. 죽는 날까지 알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계함을 만나기가 점점 두려워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그런데 열자는 그런 계함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기린
2025.02.09 | 조회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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