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걷다보면
1.  진짜 가는구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 걷기, 오랫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삼십 대 중반부터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었다. 공동체에 온 후 같은 바람을 품은 친구를 만났고, 다른 친구까지 뭉쳐서 한 달에 5만원씩 여행경비를 모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여행 일정은 마냥 미루어졌다. 올해는 꼭 가자고 9월 출발을 계획하고, 5월에 일본 마쓰야마행 비행기티켓을 예약했다. 각자 일정에 치여 별다른 준비도 못했다. 그 사이 8월 태풍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갔다고 하고, 지진도 잦을 예정이라는 기사를 흘려들으며 가야 가는구나 했다. 9월인데 연일 34~5도를 찍는 온도계를 볼 때는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예정대로 9월 13일 마쓰야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제야 실감이 되었다. 진짜 가는구나.        시코쿠는 일본을 이루는 주요한 4개의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큐슈)중 하나로, 도쿠시마(德島)·고치(高知)·에히메(愛媛)·카가와(香川)의 네 현으로 나뉘어 있다. 네 개의 현에는 각각 발심의 도량(1-23번절, 도쿠시마), 수행의 도량(24-39번절, 고치), 보리의 도량(40번-65번절,에히메), 열반의 도량(66-88번절, 카가와)으로 알려진 88개의 절을 잇는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다. 시코쿠 섬을 일주하는 길로 총 1200키로 정도 되고, 걸어서 순례를 하면 40-50일 정도 소요되는 길이다. 우리의 일정은 에히메현의 현청 마쓰야마공항으로 입국해서 그 주변의 절을 순례하는 것으로 정했다. 5월에 일정을 짤 때 마쓰야마공항 티켓이 조금 더 저렴했기 때문에 이쪽에서 시작하기로 했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다.             걷기는...
1.  진짜 가는구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 걷기, 오랫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삼십 대 중반부터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었다. 공동체에 온 후 같은 바람을 품은 친구를 만났고, 다른 친구까지 뭉쳐서 한 달에 5만원씩 여행경비를 모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여행 일정은 마냥 미루어졌다. 올해는 꼭 가자고 9월 출발을 계획하고, 5월에 일본 마쓰야마행 비행기티켓을 예약했다. 각자 일정에 치여 별다른 준비도 못했다. 그 사이 8월 태풍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갔다고 하고, 지진도 잦을 예정이라는 기사를 흘려들으며 가야 가는구나 했다. 9월인데 연일 34~5도를 찍는 온도계를 볼 때는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예정대로 9월 13일 마쓰야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제야 실감이 되었다. 진짜 가는구나.        시코쿠는 일본을 이루는 주요한 4개의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큐슈)중 하나로, 도쿠시마(德島)·고치(高知)·에히메(愛媛)·카가와(香川)의 네 현으로 나뉘어 있다. 네 개의 현에는 각각 발심의 도량(1-23번절, 도쿠시마), 수행의 도량(24-39번절, 고치), 보리의 도량(40번-65번절,에히메), 열반의 도량(66-88번절, 카가와)으로 알려진 88개의 절을 잇는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다. 시코쿠 섬을 일주하는 길로 총 1200키로 정도 되고, 걸어서 순례를 하면 40-50일 정도 소요되는 길이다. 우리의 일정은 에히메현의 현청 마쓰야마공항으로 입국해서 그 주변의 절을 순례하는 것으로 정했다. 5월에 일정을 짤 때 마쓰야마공항 티켓이 조금 더 저렴했기 때문에 이쪽에서 시작하기로 했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다.             걷기는...
기린
2024.10.07 | 조회 552
아스퍼거는 귀여워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여러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자 역시 아스퍼거를 진단받았지만, 그 진단명 밑에는 ADHD와 틱도 포함된다. 사회성뿐만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와 몸의 조절 부분에도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필요하다면 약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만 반복하던 중,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첫 번째 시도를 했다. 해보지도 않고 고민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자폐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고 알려진 아빌리파이. 부작용도 비교적 적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제일 작은 단위인 2mg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1mg도 나옴)이 약은 도파민을 조절해주는 약인데, 내 생각에도 감자는 도파민이 과다 분출되는 스타일이다. 한 번 흥분하면 멈추기가 어렵고, 오히려 너무 즐거울 때 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의사 선생님은 이 약이 뾰족한 부분들을 조금 둥글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자기 전에 1번 먹는 거로 시작했는데, 한 3일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이 든다 해도 중간 중간에 여러 번 깨어났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작용은 다행히도 3일 정도 지나자 사라졌는데, 대신에 이젠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드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내심 좋았다. 오히려 잠을 잘 자니 더 나은 느낌? 하지만 문제는 살이었다! 원래 키는 크지만 조금 마른 체형이었는데, 이 약을 먹고 한...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여러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자 역시 아스퍼거를 진단받았지만, 그 진단명 밑에는 ADHD와 틱도 포함된다. 사회성뿐만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와 몸의 조절 부분에도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필요하다면 약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만 반복하던 중,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첫 번째 시도를 했다. 해보지도 않고 고민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자폐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고 알려진 아빌리파이. 부작용도 비교적 적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제일 작은 단위인 2mg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1mg도 나옴)이 약은 도파민을 조절해주는 약인데, 내 생각에도 감자는 도파민이 과다 분출되는 스타일이다. 한 번 흥분하면 멈추기가 어렵고, 오히려 너무 즐거울 때 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의사 선생님은 이 약이 뾰족한 부분들을 조금 둥글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자기 전에 1번 먹는 거로 시작했는데, 한 3일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이 든다 해도 중간 중간에 여러 번 깨어났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작용은 다행히도 3일 정도 지나자 사라졌는데, 대신에 이젠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드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내심 좋았다. 오히려 잠을 잘 자니 더 나은 느낌? 하지만 문제는 살이었다! 원래 키는 크지만 조금 마른 체형이었는데, 이 약을 먹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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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 조회 1383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양성평등주간?     9월 첫째 주(1~7일)는 양성평등주간이다. 양성평등주간? 처음 들어봤다. 양성평등주간은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에 따른 것으로 양성평등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양성평등기본법? 이것도 처음 들어봤다. (^^;;;;) 1995년 베이징선언에 의거 문민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만들고, 여성발전기본법도 제정했다고 한다. 2014년에 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여성발전’이 ‘양성평등’으로 바뀌었다. 법에서 양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 금천구에서도 2024년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하여 행사를 개최했다. 내가 속한 마젠마는 홍보부스에 참여해 양성평등지수 체크리스트로 자신의 양성평등지수를 알아보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활동으로 양성평등 유공자 ‘단체상’도 받았다. 이 행사에는 금천구 여성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분들이 주로 참여하셨는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우리의 선배 여성분들 대부분은 ‘성별에 꽤 얽매여 있군요’라는 점수를 받았는데, 그중 어느 한 분이 “우린 나이가 많아 그렇지~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바꿔요.”라고 말씀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신다. 그 모습을 보니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셨을 선배 여성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천구는 예전에는 구로구였다. 산업화 시기에 공단으로 시작된 도시이다. 내가 어렸을 때 ‘구로공단’이 우리 동네를 지칭하는 말이라 나에게는 금천보다 구로공단이 더 익숙하다.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공포, 시행되면서 첫 사업으로 구로동에 제1단지를 조성했다. 그 후 섬유·봉제·가전 산업 위주의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수출을 책임지는 수출교두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장시간·저임금으로 일하는...
    양성평등주간?     9월 첫째 주(1~7일)는 양성평등주간이다. 양성평등주간? 처음 들어봤다. 양성평등주간은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에 따른 것으로 양성평등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양성평등기본법? 이것도 처음 들어봤다. (^^;;;;) 1995년 베이징선언에 의거 문민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만들고, 여성발전기본법도 제정했다고 한다. 2014년에 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여성발전’이 ‘양성평등’으로 바뀌었다. 법에서 양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 금천구에서도 2024년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하여 행사를 개최했다. 내가 속한 마젠마는 홍보부스에 참여해 양성평등지수 체크리스트로 자신의 양성평등지수를 알아보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활동으로 양성평등 유공자 ‘단체상’도 받았다. 이 행사에는 금천구 여성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분들이 주로 참여하셨는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우리의 선배 여성분들 대부분은 ‘성별에 꽤 얽매여 있군요’라는 점수를 받았는데, 그중 어느 한 분이 “우린 나이가 많아 그렇지~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바꿔요.”라고 말씀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신다. 그 모습을 보니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셨을 선배 여성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천구는 예전에는 구로구였다. 산업화 시기에 공단으로 시작된 도시이다. 내가 어렸을 때 ‘구로공단’이 우리 동네를 지칭하는 말이라 나에게는 금천보다 구로공단이 더 익숙하다.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공포, 시행되면서 첫 사업으로 구로동에 제1단지를 조성했다. 그 후 섬유·봉제·가전 산업 위주의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수출을 책임지는 수출교두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장시간·저임금으로 일하는...
김윤경~단순삶
2024.09.20 | 조회 749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엄마가 침대에서 누워 지낸지 석 달이 지났다. 꼬리뼈 쪽 욕창은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귓바퀴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친구 엄마가 욕창으로 수술까지 하는 것을 봤던 나는 욕창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가정간호서비스를 신청했고 간호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욕창치료를 해주었지만, 간호사들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욕창치료는 내 몫이었다. 다만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정도의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식사준비나 시중, 배변 문제 까지는 집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가 있지만, 엄마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서 그냥 처방약만 드시게 하면서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지 불안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를 위한 것인지 매일 매일 고민이 깊어갔다.   요양병원으로   가족회의를 했다. 새언니가 아는 요양보호사가 ‘00병원이 욕창 치료를 가장 잘 한다’고 했다며 요양병원을 한번 알아보면 어떠냐고 해서 남편과 함께 그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를 기다려서 상담을 했는데, 욕창에 대한 자신감은 컸지만 재활프로그램도 별로 없고, 간병인 한 명이 환자 4~6명을 돌본다고 했다. 엄마는 욕창도 문제지만 재활이 필요하고 간병인이 거의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집에서 차로 40여분 이상 걸리는 거리도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결정하면 입원은 가능했고 새언니는 욕창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길게 보면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평판이 좋은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신경과...
    엄마가 침대에서 누워 지낸지 석 달이 지났다. 꼬리뼈 쪽 욕창은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귓바퀴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친구 엄마가 욕창으로 수술까지 하는 것을 봤던 나는 욕창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가정간호서비스를 신청했고 간호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욕창치료를 해주었지만, 간호사들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욕창치료는 내 몫이었다. 다만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정도의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식사준비나 시중, 배변 문제 까지는 집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가 있지만, 엄마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서 그냥 처방약만 드시게 하면서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지 불안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를 위한 것인지 매일 매일 고민이 깊어갔다.   요양병원으로   가족회의를 했다. 새언니가 아는 요양보호사가 ‘00병원이 욕창 치료를 가장 잘 한다’고 했다며 요양병원을 한번 알아보면 어떠냐고 해서 남편과 함께 그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를 기다려서 상담을 했는데, 욕창에 대한 자신감은 컸지만 재활프로그램도 별로 없고, 간병인 한 명이 환자 4~6명을 돌본다고 했다. 엄마는 욕창도 문제지만 재활이 필요하고 간병인이 거의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집에서 차로 40여분 이상 걸리는 거리도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결정하면 입원은 가능했고 새언니는 욕창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길게 보면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평판이 좋은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신경과...
인디언
2024.09.14 | 조회 778
일상명상
  농부되기의 어려움     남편은 눈 뜨자마자 텃밭을 둘러보러 나간다. 들어오는 남편 손엔 아침에 먹을 빨간 토마토가 들려 있지만 그새 모기도 남편의 피로 아침을 드신 모양이다. 남편이 온몸을 긁적긁적한다. 그러니까 긴팔에 긴바지 입고 밭에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수시로 밭일, 마당일 하러 나가는 남편은 더운 날씨에 여러 번 옷 챙겨 입는 걸 귀찮아한다. 반면 바깥 일하러 나가려면 벌레와 자외선이 두려워 중무장하는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밭에 나가질 않는다. 갑옷 같은 작업복을 입고 벗고, 입고 벗고. 그건 못 할 일이라 여름 텃밭은 꼭 할 일이 있지 않는 한 최대한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락이 궁금해야 진짜 농부라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3도 4촌(일주일에 3일은 도시, 4일은 시골)의 생활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양양 골짜기에서 텃밭 농사 거들며 사는 건 여간 이상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시어머님은 나에게 물으신다. “니는 거 가서 뭐하노?”, 친오빠도 물었었다. “풀 이름은 알어?” 알다마다! 이제 어지간한 밭작물은 떡잎만 봐도 이름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화분에 담긴 흙이 아닌 지구의 표면, 그것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경작지의 흙은 각종 벌레의 유충에서부터 설치류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는 동물들은 알아서 싫었고, 모르는 동물들은 몰라서 무서웠다. 지금은 동물들과 적당히 안면 튼 지 오래라 호미질 끝에 지렁이를 건드리면 미안해서 촉촉한 흙으로 덮어주고, 두더지의 흔적을...
  농부되기의 어려움     남편은 눈 뜨자마자 텃밭을 둘러보러 나간다. 들어오는 남편 손엔 아침에 먹을 빨간 토마토가 들려 있지만 그새 모기도 남편의 피로 아침을 드신 모양이다. 남편이 온몸을 긁적긁적한다. 그러니까 긴팔에 긴바지 입고 밭에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수시로 밭일, 마당일 하러 나가는 남편은 더운 날씨에 여러 번 옷 챙겨 입는 걸 귀찮아한다. 반면 바깥 일하러 나가려면 벌레와 자외선이 두려워 중무장하는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밭에 나가질 않는다. 갑옷 같은 작업복을 입고 벗고, 입고 벗고. 그건 못 할 일이라 여름 텃밭은 꼭 할 일이 있지 않는 한 최대한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락이 궁금해야 진짜 농부라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3도 4촌(일주일에 3일은 도시, 4일은 시골)의 생활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양양 골짜기에서 텃밭 농사 거들며 사는 건 여간 이상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시어머님은 나에게 물으신다. “니는 거 가서 뭐하노?”, 친오빠도 물었었다. “풀 이름은 알어?” 알다마다! 이제 어지간한 밭작물은 떡잎만 봐도 이름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화분에 담긴 흙이 아닌 지구의 표면, 그것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경작지의 흙은 각종 벌레의 유충에서부터 설치류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는 동물들은 알아서 싫었고, 모르는 동물들은 몰라서 무서웠다. 지금은 동물들과 적당히 안면 튼 지 오래라 호미질 끝에 지렁이를 건드리면 미안해서 촉촉한 흙으로 덮어주고, 두더지의 흔적을...
도라지
2024.09.11 | 조회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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