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의 실화극장
  글, 다시 읽다   한 해가 다 갔다.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나누어 이름 붙이고 의미 부여를 한다. 1년 365일을 기준으로 한 이정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반추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배려의 글쓰기 연재도 어느새 끝에 다다라 벌써 마지막 글이다. 연재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으면 했다. 얼마쯤은 예상되는 뻔함과 살짝쿵 서프라이즈.   마지막 글 하면 예상되는 그 뻔함이 있지 않는가? 그간의 소회를 적당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는. 살짝쿵 서프라이즈로는 댓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리로 단 댓글들도 고맙다. 행간에서 댓글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쉽게 써지지 않는 댓글로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들이 꽤 있었으리라. 간혹 오다가다 마주치는 분들이 면전에서 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다. 잘 봤다고. 재밌었다고. 하긴 뭐 코앞에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해줄 때는, 역시 고맙다. 읽어봐 주고, 계속 쓰라고 힘을 주니까.   글을 올린 직후에는 예상 밖의 댓글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때는 ’글이 곧 나‘라는 강한 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줄기와는 다른 부분에서 반응을 하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예상 밖의 댓글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코멘트하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글도 거기 달린 댓글처럼 거리감이 생긴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예상 밖의 댓글들은...
  글, 다시 읽다   한 해가 다 갔다.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나누어 이름 붙이고 의미 부여를 한다. 1년 365일을 기준으로 한 이정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반추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배려의 글쓰기 연재도 어느새 끝에 다다라 벌써 마지막 글이다. 연재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으면 했다. 얼마쯤은 예상되는 뻔함과 살짝쿵 서프라이즈.   마지막 글 하면 예상되는 그 뻔함이 있지 않는가? 그간의 소회를 적당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는. 살짝쿵 서프라이즈로는 댓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리로 단 댓글들도 고맙다. 행간에서 댓글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쉽게 써지지 않는 댓글로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들이 꽤 있었으리라. 간혹 오다가다 마주치는 분들이 면전에서 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다. 잘 봤다고. 재밌었다고. 하긴 뭐 코앞에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해줄 때는, 역시 고맙다. 읽어봐 주고, 계속 쓰라고 힘을 주니까.   글을 올린 직후에는 예상 밖의 댓글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때는 ’글이 곧 나‘라는 강한 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줄기와는 다른 부분에서 반응을 하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예상 밖의 댓글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코멘트하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글도 거기 달린 댓글처럼 거리감이 생긴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예상 밖의 댓글들은...
스프링
06:56 | 조회 7
아스퍼거는 귀여워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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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5 | 조회 178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김윤경~단순삶
2025.12.20 | 조회 200
산골짝에 도라지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도라지
2025.12.09 | 조회 172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프링
2025.11.30 | 조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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